42대 윌리엄 제퍼슨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Bill" Clinton)과 Oedipus Complex의 개념과 사례
[백악관의 주인들] 42대 빌 클린턴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 재임 시절, 미국인들은 평화 속에 경제 호황을 누렸습니다. 덕분에 빌 클린턴은 반세기 만에 처음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 대통령으로 기록됐는데요.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핵 소추된 대통령이란 오명을 쓰게 됐습니다. 42대 빌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얘기입니다.
여러 장르의 문학작품을 접할 때 자주 접하는 것이 Oedipus Complex라는 용어이다. 사회상이 많이 다변화되고 질적으로 풍부해진 현대에 여러 장르의 문학이 성행과 함께 다양한 이즘(-ism)의 존재로 우리들은 자유로이 어떤 형식을 취할 수 있고 그 것에 따라 우리의 생각을 펴갈 수 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상과 개념의 존제로인하여 개체간의 의사소통의 부제가 다분히 일어나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이 물결 속에서 Oedipus Complex는 다른 용어들보다 더 많이 알려져 있어 다양한 정보와 변화의 시대에 한 가닥의 의사소통의 도구가 되어준다. 그래서 이번에 이 용어를 다시 정리하여 의사소통의 부재 또는 단절의 시대에 더 나은 communication의 도구로 사용되었으면 하는 취지에서 Oedipus Complex의 기원, 정의 그리고 개념의 전달의 도구로서 다양한 쓰임을 정리해 보겠다.
II. 기원과 용어의 정립
A.기원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한 사람으로 고대의 희랍 작가로서 최고의 자리를 누린 소포클레스(Sophocles, 496-406B.C.)의 작품 중에 Oedipus Lex(오이디푸스 왕)라는 비극이 있는데 그 이야기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한 주인공이 Oedipus이다. 그의 운명적인 부모의 관계에서 Oedipus Complex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Oedipus Lex의 줄거리는 이렇다.
줄거리1)
그리스의 테바이에 무서운 전염병이 돌고 백성들의 탄원이 계속된다.
오이디푸스 왕은 아폴론의 신탁을 가지고 돌아온 사촌 크레온에 의해 선왕인
라이오스가 도둑의 손에 살해되었고, 그 하수인을 처벌하지 않는 한 전염병은
계속된다는 얘기는 듣는다. 범인을 처벌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고, 장님인 예언자 테일레시아스가 불길한 말을 한다.
오이디푸스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괴롭혀 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을
운명이라는 내용의 예언을 생각해 내고 라이오스 왕의 살해 당시의 목격자를 찾으려
한다.
그때 국왕의 고향인 코린토스에서 부왕이 승하했으니, 왕위를 계승하라는 전갈이 온다.
오이디푸스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꺼리지만 사자는 죽은 코린토스의 선왕은
오이디푸스의 친아버지가 아니라, 키타이론 산에서 라이오스 왕의 목자로부터 받은
갓난아기를 왕자로 키웠다는 사실을 말하며 걱정할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목자를 찾아가 코린토스로 보내진 라이오스의 아기는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태바이 태생이며 라이오스의 자식으로서 그를 죽인
범인이며 왕비인 이오카테스는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게 된다.
결국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오이디푸스 왕은 스스로 자기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떠난다.
에디푸스 컴플렉스(Oedipus Complex)2)는 정신분석에서 쓰는 용어로서 남자(여자) 아이가 어머니(아버지)에게 느끼는 성적인 욕구에서 비롯한다. 아이는 아버지(어머니)가 각각 자신 보다 힘이 센 상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복이 두려워 의식적으로는 그 사랑을 포기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그 사랑을 간직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여자아이가 아버지에게 느끼는 것은 엘렉트라 컴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하기도 하나 정신분석에서는 남자, 여자에 상관없이 모두 에디푸스 컴플렉스라고 말한다. 또는 ‘3세에서 5세 사이 자아 발달 단계에 나타난다. 그 때문에 후에 많은 무의식적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오이디푸스기에 고착된 사람은 여러 면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나타내는데, 성 관계의 상대자로 자신의 부모와 닮은 사람을 택하는 것도 그 한 예이다’3)로 정의된다.
Oedipus Complex라는 용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4) -Sigmund Freud. 1896년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써서 정신분석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1996년 정신분석학 정립 100주년을 맞이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인간 정신의 탐구자. 현대 사상에 코페르니쿠스적인 대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상가. 마르크스와 더불어 20세기 사상사의 양대 산맥으로 불리는, 무의식 세계의 개척자- 의 이론에서 정립되었다. 정신 영역의 탐구에 대한 장애가 점차적으로 드러나면서 프로이트의 이론 또한 점차적으로 완성되어 갔으며, 브로이어와 함께 시작한 히스테리에 대한 연구를 통해 프로이트는 관찰자나 환자 모두에 의해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신 활동 영역이 있다는 것을 밝혀 내어 이를 <무의식>이라고 명명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부분들을 탐구하기 위해 최면 암시라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최면 상태에서 이루어진 암시는 깨어 있을 때에 완벽하게 수행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때에 따라서 불완전한 것임이 밝혀졌고 프로이트는 자유 연상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도입한다. 그는 이 방법을 통해 환자들의 <저항>을 극복하여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것들을 찾아내면서 그는 무의식 과정에 의식 과정과는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을 밝혀 냈다. 무의식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프로이트는 어린아이들의 성적인 삶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비밀을 알아낼 수 있었으며, 자기 분석을 통하여 꿈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신경증 증상과 마찬가지로 일차적인 무의식의 충동과 이차적인 의식적 충동 사이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타협의 산물인 꿈을 구성 요소 별로 나누어 분석함으로써 숨어 있는 무의식의 내용을 추론하고 신경증 환자의 저항을 간파하기 위한 기술적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또한 꿈의 관찰을 통해 무의식 과정과 의식 과정의 차이를 분류하였고, 무의식 속에서 연상 논리와는 아무런 관련 없이 지속되는 정신 과정들을 찾아냈다. 「리비도의 여러 가지 유형」은 정신에 관한 후기의 구조적인 관점에서 성격 형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해소」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논문으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성욕 발달이 서로 다른 경로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처음으로 관심의 초점을 두고 있다. 「가족 로맨스」은 흔히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불리는 정신 과정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III.여러 분야에의 적용
A. 우리나라의 교육과 Oedipus Complex5)
김홍도의 `서당`(35)-울며 대님푸는 학동 종아리 맞을 준비 '체벌'당연하다는 듯 환한 표정의 학동들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교육방법은 서구적인 방법과는 차이점이 있는 것이었다. 중세이후 서구는 기독교적인데 비해 우리는 불교적이었으며 조선조에 들어 오면서는 엄격한 유교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또 살아온 땅의 특질이 다르고 문화의 전통도 서구의 내용과는 실로 거리가 멀다. 그렇기 때문에 오이디푸스 컴플렉스같은 교육심리적 이론은 우리 민족에 있어서는 해당되지 않는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인 남자 아이가 아버지가 어떤 날, 자기의 성기를 거세해 버릴 것이라는 걱정때문에 갈등을 느끼게 된다는 이 어이없는 이론은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이론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걱정은 옛날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 확실하다. 서구의 생활습속이나 전통문화 속에 또는 생활환경 속에서 자란 남 자 어린이들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서구적 교육원리를 그대로 가져와서 우리교육에 적용함으로써 야기된 부작용의 피해가 이미 적지 않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 우리민족에게 안성맞춤인 교육이론도 개발해야 될 시점에 와 있다. 그림은 단원 김홍도의 `서당'이다. 누룽지처럼 구수한 표정의 글방 선생님이 미소를 짓고있다. 천자문을 배움직한 학동 하나가 왼손으로 눈 물을 닦으며 오른손으로는 왼발 발목에 묶인 대님을 풀고있다. 숙제를 해오지 않았거나, 수업 분위기를 흐려 놓았거나 무엇인가 잘못한 일이 있어 10초쯤 후 에 종아리를 맞기 위해 준비중이다. 선생님의 왼손 앞에 작은 회초리 하나가 놓였다. 나머지 8명 학동의 표정들이 환한 것을 보면 체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B. 라이언 킹의 ‘삼바’의 아버지에 대한 Oedipus Complex6)
월트 디즈니의 38번째 장편 만화영화 <라이언 킹 The Lion King(1994) / 감독: 로저 앨러즈 & 로브 밍코프>의 원작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5막20장의 희곡 <Oedipus Complex적 햄릿>이다. 놀랍다고? 물론이지. 왜냐하면 이건 심각하지만 거만하고, 아름답지만 유머가 없고, 진지하지만 진부하고,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지만 지지부진한 이야기가 시종일관 뒤엉킨 엉뚱한 최신작이기 때문이다. 6백명의 애니메이터들과 1천1백97개의 배경그림, 11만9천58장의 장면과 2년에 걸친 작업기간을 함정에 몰아넣은 것은 전적으로 디즈니 간부들의 `거만한 착각'에 그 탓을 돌려야 할 것이다. 디즈니는 언제나 자신들이 독창적이라고 생각해왔다. <인어공주>의 MTV 아이디어와, <미녀와 야수>의 뮤지컬과, <알라딘>의 라이브 개그 앞에서 누가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성공했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디즈니가 예술가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꿈과 환상은 거대한 제작비와 노동집약적 기술 위에서 `일류의 솜씨'로 빚어낸 오락산업의 솜사탕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먹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지, 거기서 인생에 대한 충고와 쓴 맛을 보기 위해 매혹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한 오락산업적인 솜사탕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라이언 킹>은 온통 주인공의 분열된 자의식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전체를 내리누르는 아버지의 위엄과 가족의 붕괴, 그리고 로맨스 없는 사랑과 모험 없는 왕국의 건설이 이어진다. 사자왕 무파사는 정글의 위대한 통치자. 그에게는 가족과 사랑하는 아들 삼바가 있다. 그러나 여기 악당 사자인 삼촌 스카와 그의 심복 하이에나가 끼어든다. 함정이 만들어지고, 무파사는 아들 삼바를 구하려다 유명을 달리한다. 삼바는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으로 고향을 등지고, 그리고 정글은 황무지가 된다. 누가 다시 천국을 구할 것인가?
C. 서편제의 Oedipus Complex적 해석에 대한 비판
: [서편제'의 정신분석학적 논의 유감]7)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다. 압도적인 칭찬 속에서, 또한 그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도 이 영화를 보았고, 충무로에서는 지난 10년간 한번도 극장에 오지 않은 나이든 관객을 끌어낸 사실을 특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난데없는 학계의 관심이 발표되어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다름 아닌 일부 신문에 보도된 서울대 의대 정신분석교실 세미나 내용이다. 필자가 세미나에 참석하지는 못했으나 신문에 실린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건 `지나친' 관심이다. 그 제목은 `공연예술과 정신의학'인데 <서편제> 속에 나타난 아버지 유봉과 그 의붓아들인 동호, 그리고 딸 송화의 행동양식에 대한 정신의학적 분석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동호는 어린 시절에 말뚝에 매였던 적이 있기 때문에 탈춤을 꿈꾸게 되었고(이런!), 송화가 장님이 되어서도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것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의 해방감과 현실 도피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라고 설명되었다. 특히 그 많은 비평가와 관객이 주목한 송화의 한은, 동호의 어머니에 대한 살의와 유봉을 독점하려는 욕망이 실제로 그녀가 죽어서 제거되면서 오는 죄책감에 대한 벌로서 눈머는 과정을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웃으려고 작정한다면 그렇게 따분한 분석은 아니지만, 이건 학문의 이름을 내건 세미나이다. 우선 이 분석의 가장 놀랄 만한 점은 거의 모든 분석이 이야기 물신주의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다. 정신분석이란 환자와 의사가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작용 내부로 들어가는 것인데, 정작 전문가들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빠져들어 일체의 해석을 포기하고 겉으로 드러난 행위들만 붙들고 늘어져서 개념의 도식적 적용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출발점이 있다.
첫째 그 대상이 환자의 꿈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영화인 것이다. 그런데도 이건 마치 서구의 인류학자들이 낯선 섬 원주민들의 신화를 해부하듯 갈라놓고는 모계사회에서 누가 오이디푸스냐는 식의 근심 어린 표정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말인가?
두 번째, 영화의 줄거리는 그렇게 믿을 만한 최종심급이 아니다. 그것은 시나리오와 연출, 촬영, 연기(그리고 숨어 있는 자본!)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중층결정이다. 그래서 여기에서 이루어진 단순화는 그것을 무시하고 거의 시나리오(와 원작)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종의 인상비평이라는 혐의가 짙다.
세 번째, 여기서는 송화의 한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맺힘과 풀림으로 그려내는데, 설혹 그렇다 하더라도 그 사이에 자리한 판소리에 대해서 일체의 설명이 없는 것은 신기하다.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더 나아가 이 영화의 `진짜' 주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되는 셈인데 발제자들은 진심으로(설마!)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일까?
네 번째, 주인공들의 행위구조와 그 동기를 분석한다고 하면서 바로 그 동기가 되는 문화의 구조와 역사에 대해서 애써 눈을 감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 많은 관객들이 마지막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콤플렉스에서 벗어났다는 느낌 때문일까?
이것이 <서편제>를 이용해 정신분석 용어를 해설하는 것이라면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정말 주객이 전도된 농담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의 정서를 서구화하는 데 앞장서게 될 것이다. 프로이트의 가족 삼각형이란 19세기 근대 유럽의 부르주아 중산층을 모델로 한 것이 아닌가? 실제로도 영화학에서 이야기 구조를 정신분석 용어로 설명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 증명된 지 오래다. 압권은 "일본의 학계가 구로자와 아키라의 작품세계를 학문적으로 도왔듯이 우리도"라는 아전인수격의 자화자찬인데,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 그런 예는 본 적이 없으며 아키라 자신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물론 <서편제>를 통하여 많은 찬반양론이 벌어지고 그래서 영화에 관한 진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얼마든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학문적 에고이즘이나 더 나아가 나르시시즘에 이른다면 아마도 그 현상 자체가 정신의학의 대상이 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유감스럽긴 하지만 지적 스노비즘(속물주의)이란 언제 어디서든지 스스로 자제해야 할 일이다.
:국내 성의학자가 본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색다른 행위'8)
중앙일보 [ 해외 ] 1998. 9. 14. 月
클린턴의 성행위는 정상인가 변태인가. 윤리적.법률적 비난을 떠나 의학적 잣대로만 본다면 정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울성의학클리닉 설현욱 (薛玹旭) 원장은 "위증과 혼외정사란 점을 제외한다면 그의 성행위는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고 말했다.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건강한 남녀가 서로 합의하에 성적 쾌락을 즐기는 것은 비록 보편적이지 못한 행위일지라도 변태는 아니라는 것. 다른 사람의 성행위를 훔쳐보는 관음증 (觀淫症) , 자신의 치부를 일부러 드러내는 노출증 (露出症) , 어린이에게서 성적 쾌락을 탐하는 소아간음증 (小兒姦淫症) 등 성도착증과는 구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상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난잡함에 대해선 그가 성적으로 유치하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성적 충동과 욕망을 절제하거나 승화할 수 있는 능력은 지적인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와는 관계없이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 정동철 신경정신과 정동철 (鄭東哲) 원장은 "성적 호기심이 시작되는 3~6세와 2차 성징이 비롯되는 사춘기 무렵 형성된 성적 자아가 평생 지속된다" 고 설명한다. 클린턴의 경우 유아시절 편모슬하에서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성적 방종의 대명사격인 전 케네디 대통령을 우상화함으로써 사춘기 시절 무의식속에 성적 왜곡을 갖게 됐을 것으로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은 보고 있다. 이 점에서 클린턴은 카사노바가 아니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유아시절 이성부모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콤플렉스) 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구상유취 (口尙乳臭) 의 단계라는 것. 폴라 존스나 르윈스키 등 그와 관계했던 대부분의 여성이 외모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동등한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영웅호색' 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게 대다수의 성의학자들의 견해다. 권력자라서 특별히 여색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생물학적으로 건강하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있는 사람이 대개 권력자가 되기 때문에 성적으로 방종한 권력자가 많아 보인다는 것. 더욱이 권력자의 사생활은 일반인에 비해 언론 등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더 잘 알려질 뿐이라는 것이다.
E. 동성애에대한 Oedipus Complex적 해석
: 칼럼~동성애 (이윤구)9)
인간은 두가지 성을 가지고 있다. 소위 여성과 남성이 그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서로를 위하며 반대의 성에 지남철이 끌리듯이 이끌려간다. 동성의 성에 대해서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을 갖는다. 프로이드는 아이들이 커가며 이성의 부모에게 이끌리며 동성의 부모는 미워하는 감정을 가진다고 했다. 여자 아이는 이성의 아빠에게 애정을 느끼며 잘보이고자 노력한다. 반면에 동성인 엄마에게는 아빠에 대한 경쟁심리와 더불어 아빠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질투를 하며 미워한다.‘일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한다. 반면에 남자 아이는‘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하여 엄마를 사랑하며 아빠를 미워하는 감정을 갖는다. 그러나 간혹 이성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동성애이다. 이성의 성에는 무관심한 사람들. 오로지 동성과의 사랑만을 갈구하며 목말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아쉬움이라면 사랑하는 상대가 어디 있는지 잘 구별이 안된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남자가 한쪽 귀에만 귀거리를 하면 동성애자임을 나타내는 표시라는 말이 있다. 왜 이성이 아닌 동성을 택하게 되었을까. 이성과 사귄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왼손잡이에게‘당신은 왜 왼손잡이이요’라고 묻는 것과 같을 지도 모른다.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다는 설이 있다.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애정결핍 혹은 과보호나 마마보이 등이 문제가 된다고도 한다. 어쨌든 이성애자에 비하여 사회적으로 동성애자는 열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있다.
F. 꿈해몽에서의 Oedipus Complex
:죽은 사람.유령, 도깨비에 관한 꿈에서; 죽음이 가지는 심리학적 의미10)
사람이 죽는 꿈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부모의 죽음이다. 우선 여성은 어머니의 죽음을, 남 성은 아버지의 죽음을 꿈꾸게 되는데 자신이 동성의 부모보다는 이성의 부모와 친하고 싶은 욕망이 잠재한 때문이다. 이런 욕망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유아기에 싹이 트고 성인이 되어도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다. 부모가 죽는다는 슬픈 사건을 꿈 속에서 예행 연습하여 그 고통에 익숙해지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것은 환자가 수술 전에 수술하는 꿈을 꾸어 그 고통에 익숙해지는 경 우와 같다. 특히 부모가 고령이거나 병석에 누었을 경우 더 많이 꾼다. 이미 돌아가신 부모가 죽는 꿈을 꾸는 것은 부모의 죽음이 몹씨 슬플 때 또는 부모의 죽음 이 자기 책임이라는 죄악감이 잠재했기 때문이다. 아니면 현재도 살아계시기를 바라는 마 음의 간절한 표시다. 이때의 꿈은 부모의 장례식에 가니까 아직 부모가 살아서 자기의 손 을 잡는 장면, 보무에게 무엇을 승낙해 달라는 장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꿈 속의 부모가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부모가 죽는다는 것 은 자신이 부모처럼 성인의 인격을 가졌다고 느끼고 싶어도 여러 제약과 압력 때문에 독립 된 인격을 가질 수 없는 것을 나타낸다. 부모 이외의 죽음도 부모의 죽?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자신이 죽는 꿈은 의미가 다르다. 꿈에서 자살은 자신의 나쁜 성격을 버리려는 의지다. 자살하려 해도 잘 죽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자신이 더욱 부끄럽다고 느끼는 꿈은 자신의 약점을 버리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안되는 고민의 표시이다. 남이 자살하는 꿈도 자신과 관계가 있다. 즉 친구가 자살하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못하게 말리는 것도 자신이 다시 새로운 인생으로 변하여 탄생하려는 욕심의 발로다. 여성이 자기 성격의 남성적인 일면을 버리려고 원할 때 남동생의 죽음을 꿈꾼다.
G. The Doors의 곡 ‘The End’의 Oedipus Complex
:체제에 온몸으로 달려든 반항아의 숭고한 의식11)
그들의 노래는 문학적이며 간결하나 무섭다. 그들의 곡 형식에 대한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팝에서 시가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짐 모리슨(싱어)과 로비 크리거(기타), 레이 만자렉(오르간), 존덴스모어(드럼)의 4인조 그룹 도어즈는 당시 샌프란시스코 지역을 휘몰아친 히피즘과 반전 , 그리고 록 혁명이라는 사회적 영향과 결탁한 독특한 컬러의 사운드로 록계에 또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그것의 집적된 결과물이 1967년 1월 발표된 바로 그들의 데뷔앨범이었다. 기존 가치의 총체적 전환을 사랑과 평화라는 모토로 주창한 히피즘의 우산 아래 도어즈가 위치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접근 방식은 좀 달랐다. 그들은 사랑보다는 증오를, 평화보다는 폭력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왜곡된 현실사회에 대항했다. 도어즈의 음악이 무서웠다함은 바로 이 점에서 연유한다. 그들은 현실참여 대신 '현실탈출'이라는 방식을 택했다.
이 앨범에서 가장 문제시된 곡 <종말>(The end)은 '알려진 사실'만이 존재하는, 규율과 억압의 기존 사회질서에 역행한다는 의미에서 현실탈출의 극단을 드러내고 있다. 11분에 걸쳐, 아들이 어머니에게 품는 이성애, 즉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쇼킹한 문제를 다룬 것이었다.
아버지, 난 당신을 죽이고 싶어. 어머니 난 당신을 밤새 사랑하고 싶어.
그건 가슴 시리도록 당신을 자유롭게 하지.
패륜아라는 지탄도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이 심안에 포착된 제임스 조이스적인 팝"이라는 평을 받기도하였다. 프로듀서 폴 로스차일드는 이 곡을 녹음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록 레코딩의 가장 완벽한 순간 중의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녹음할 당시 짐 모리슨은 마치 샤먼(무당)이 된 듯한 분위기에 휩싸였으며 몰아의 경지로 바져들어갔다"고 술회했다. 실제로 이 앨범을 녹음할 때, 분위기를 북돋우기 위해 촛불을 켰고 향을 피웠다고 한다. 따라서 이 음반은 음향기술에 의한 여과가 거의 없는 순수한 의식의 산물 그 자체였다.
도어즈와 그들의 최고 걸작인 이 앨범은 젊음의 사회변혁 욕구와 반전이 일궈낸, 사랑의 여름이라는 시대상황의 심장부에 위치한다. 따라서 , 그같은 시대성을 간과한 채 이 앨범을 파악한다는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
H. <두번째 이별>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12)
:아들이 모친에게서 느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담은 닐 조단 감독의 <두번째 이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차용한 소재 가운데 가장 극적인 내용을 담아 시대를 초월해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닐 조단 감독의 <두번째 이별>(90)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소재로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17세의 지미(니올 반)와 그의 여자친구 로즈(로레인 필킹톤)는 행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이 갖고 있을 사연을 상상해가며 서서히 저물어 가는 여름날을 보낸다. 클럽에서 색스폰 연주자로 일하는 부친(도날 맥칸)과 단둘이 살고 있어 늘상 외로움을 느끼던 지미는 어느날 클럽에 들른 미모의 중년 부인(비버리 단젤로)을 보고 단번에 마음이 끌린다. 지미는 상상력을 발휘해 마음 속으로 이미 그 중년 부인과 열렬한 사랑을 만들어간다. 마침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중년 부인에게 과감히 접근하는 지미. 그러나 그는 매혹적인 그 부인이 어려서 부친과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모친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고는 심한 갈등과 자책감에 휩싸인다. 닐 조단 감독은 흔히 '신조차도 거부한 사랑'으로 정의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소재로 선택한 것에 대해 "인간의 내면에는 금기시하고 파괴적인 행동을 추구하려는 성향이 은밀히 잠재돼 있다 바로 이와 같은 규칙을 깨뜨린다는 것에서 묘한 쾌락을 맛보려는 심리를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는 연출론을 밝히기도 했다. 개봉 직후 서구의 영화평론가들은 "인간의 복잡다단한 심리에 초점을 맞춰 결코 평범하지 않은 로맨스드라마를 펼쳤다"는 평을 보냈다.
I. 현대 소설의 Oedipus Complex
:[문학] 떠돎과 머묾…아주 조용한 소설 하나 김주영씨 '홍어'13)
방 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이 쌓인 산골마을 외딴집. 젊은 어머니와 열세 살 소년이 6년째 돌아오지 않는 아비를 기다리고 있다. 마을 유부녀와 통정을 한 뒤 야반도주한 아비는 부엌 문설주에 매달린 말린 홍어로나 상징될 따름이다. 눈이 많이 퍼부은 어느 날, 밤 사이 부엌으로 숨어든 떠돌이 처녀가 그 홍어를 먹어치운다. 삼례로 불리게 된 그 처녀는 기다림 속에 가라앉은 집안에 활기와 긴장을 불어넣는다…. '홍어'는 매우 단순한 소설이다. 바느질하는 어머니와 몽상을 즐기는 아들, 잔잔한 연못에 던져진 돌멩이와도 같은 삼례, 보이지 않는 금 너머에서 이 집 주위를 맴도는 옆집 남자, 그 집의 개 누룽지, 어머니의 일손을 돕는 동네 과부,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장면까지 부재원인으로서만 존재하는 아버지가 등장인물의 거의 전부라 할 정도이다. 소설의 무대 역시 모자가 사는 외딴집을 중심으로 동네의 저수지와 정미소, 그리고 읍내의 술집에 국한된다. 그래서 소설은 잘 짜인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고 보면 고전 그리스 비극에서 영원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이 단순해 보이는 소설을 독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될 듯하다. 화자인 세영은 어머니를 두고 아버지와 경쟁관계에 놓여 있다. 6년째 부재하는 아비가 현실적인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가. 홍어가 그 아비 노릇을 대신한다. 홍어는 평소 그것을 즐겨 먹었던 아비가 불시에 돌아올 것에 대비하여 걸려 있는 것이지만, 동시에 생식기가 두 개 달렸다는 특징으로 하여 바람둥이 아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아비가 낯선 여자에게서 낳아 보낸 갓난 동생 호영과, 어머니가 사다 기르는 도도한 수탉 역시 아비를 대리한다. 어머니가 자고 일어난 방안을 채우는 “짙은 살냄새”, 얇은 자리옷 사이로 내비치는 “어머니의 흰 살결과 어깨의 가녀린 굴곡”과 같은 것들은 소설에 은밀한 관능성을 부여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연인으로서 어머니를 아비에게 빼앗길까 저어하는 아들의 초조를 부각시킴은 물론이다. 아비란 경쟁상대일 뿐만 아니라 닮고 싶은 모델이기도 하다. 세영은 정초가 되면 어머니가 만들어준 가오리연을 하늘에 띄우며, 일쑤 날개를 달고 날아다니는 몽상에 빠져든다. 좁고 답답한 마을을 떠나 세상 곳곳을 떠돌고 있을 아비에 대한 부러움에서 나온 행동이다. 세영을 중심으로 놓고 볼 때, '홍어'는 한 편의 성장소설이다. 소설 곳곳에서 그는 비밀스럽고 수상쩍은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며 매혹과 두려움을 함께 맛본다. 열여섯 나이치고는 되바라졌다고나 해야 할 삼례는 그의 입사(入社)를 이끄는 매력적인 조교가 된다. 해가 바뀌어 다시 눈이 내리고, 아비는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가 아내와 아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환멸과 각성뿐. 어머니는 오랜 기다림의 세월이 끝나는 순간 스스로 집을 떠나고, 더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된 세영 역시 뒤를 따른다. '객주' '야정'과 같은 대규모 역사소설을 즐겨 써 온 작가는 “아주 조용한 소설 하나”로 '홍어'를 자평했다. 소설은 전쟁이 지나간 얼마 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사회적 맥락은 거기서 그친다. 남은 것은 설화적 분위기조차 풍기는 원형적 공간. 작가는 여기에 눈과 날개, 떠남과 머묾과 같은 몇몇 이미지를 정교하게 짜 넣음으로써 무게와 깊이를 더한다.
J.실생활에서의 Oedipus Complex
:라벨르 1999년 2월호에서14)
CASE 9 유난히 아빠를 싫어해요
초등학교 3학년 딸애는 아빠 목을 껴안으며 갖은 애교를 부리는 등 살갑게 구는 편인데, 여섯 살짜리 아들애는 누나와 딴판입니다. 아빠 손이 제 몸에 닿는 것도 싫어하고 아빠 눈치만 슬글슬금 살피며, 아빠 옆엔 얼씬도 하지 않으려 해요. 그동안 아빠가 매일 늦게 들어오고 집안일에 무심한 편이어서 저 같은 경우 불만이 꽤 많았는데, 아이도 그런 아빠를 미워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돼요.
진단해 봅시다
유치원 무렵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문제로 이런 현상은 유치원 무렵의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난다. 아빠를 경쟁적인 관계로 인식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며, 때로는 지나치게 아빠를 멀리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한다. 아빠가 기질적으로 아이와 함께 놀아 주는법을 잘 모르거나 귀찮아할 경우에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더욱이 아빠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거나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이 극히 적을 경우, 아빠를 낯선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고 아빠와의 접촉을 싫어한다. 이런 아이들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에도 늘 엄마에게만 가려고 하고 아빠가 안아 주거나 놀아 주려고 하면 싫은 표정을 짓거나 아빠의 권위에 눌려 억지로 따르게 된다. 또한 엄마와 아빠 사이가 원만하지 못할 때,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아이는 자신을 엄마와 동일시하여 아빠를 미워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해주세요
아빠가 먼저 노력하는 자세 보여줘야 아빠의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평소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지 않은지, 혹은 부부 사이의 문제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특히 부모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엄마가 아빠와 싸우고는 아들을 데리고 다른 방에서 자면서 “엄마는 이 세상에서 너밖에 없단다.”고 말하며 아이와 심정적으로 밀착한다고 하자. 그러면 아이는 아빠를 더 미워하게 되고, 엄마에 대한 측은한 마음과 동정심이 생겨 잘 보살펴야겠다는 의무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럴 경우에는 부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이에 대한 집착을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아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씩이라도 갖게 하여 아이가 느끼는 거리감을 좁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K. 공포 SF영화이야기에서의 Oedipus Complex
: 싸이코15)
1960년에 히치콕이 만든 이 영화는 호러 영화의 시기를 나누는데 있어 아주 중요하다. 이 작품 이전까지 호러는 사실 유럽의 전설과 민담에 사로 잡혀 있었다고 볼 수 있으며, 50년대에 SF와 결합한 호러는 어떻게 보면 핵의 위협이라는 모티브 아래 허무맹랑한 괴물들을 창조하는데 주력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 작품은 바로 유럽의 전설과 허무맹랑한 괴물들에게서 호러를 현대사회로 끌어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호러의 규범은 이제 현대사회의 일상 속으로 돌아온다. 이곳에는 광기와 혼돈된 자아, 그리고 억압당하는 인간의 본능 (단적으로 성)과 '가부장'에 대한 숨겨진 증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었다. 히치콕은 영화 초반부에 관객들을 카메라 이동에 의한 관음증적인 시선에 동참하게 만들며, 어머니를 죽인 주인공 노먼 베이츠를 통해서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현대사회의 정신 병리학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샤워 씬은 불길한 음악과 극단적인 사운드, 클로즈업된 주인공의 표정으로 슬래셔 영화의 전형적인 난도질 장면을 창출해낸다
IV.결론
대중 매체의 발달과 상호 통신 방식의 개선에도 불구하고, 그 개선에 편승하여 더욱 더 다양하고 많은 사상과 이즘의 분화와 다양화에 서로 간의 의사소통은 오히려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임을 앞에서 밝혔다. 현재의 추세에 따라 갈수록 어려워져가는 의사소통의 방법과 그로 인한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를 막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의 문화의 특성을 잘 말하여주는 용어의 설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에 한가지 방법으로 그리하여 지금까지 Oedipus Complex의 개념의 정리를 하였고 더 나아가 여러 가지 실제적 쓰임을 알아보고 그에 어떻게 적용되었는 지를 알아보았다. 즉, Oedipus Complex는 그리스 신화에서 기원이 되었고, 프로이드에 의해서 개념이 정리가 되었으며 오늘날의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잘 말하여주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그 예로 미 대통령의 스캔들에 대한 재해석, 사회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영화의 해석, 서양의 교육에 대한 우리나라 교육의 나아가야할 방향, 어린아이들의 행동방식의 해석, 꿈에대한 해몽에의 적용, 널리 알려진 팝그룹에 대한 해석, 문학에 적용되는 예를 들어 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수 많은 용어들도 이와 같이 적용, 발전이 된다는 것을 알고 다른 여러 사상과 주의의 생성에 우리의 이해력을 맞추어 나갈 수 있고, 더 나아가 창조적으로 해석 가능한 능력의 배양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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