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존경받는 대통령들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이유는?
위대한 대통령들
나라를 이끄는 리더십과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십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문에 또 중국의 급성장 때문에 제 1의 경제대국이란 타이틀에 위협을 받고 있지만 미국은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이 수많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도 세계의 리더 자리를 꿰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의 저력을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분석한 전남대 김봉중 교수(미국사)의 글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 선뜻 퇴임을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이 미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세계사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 순간이다. 혈연적 상속이 아니라, 국민들이 뽑은 대표를 중심으로 국가 체제를 시작한 최초의 역사적 실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실험은 성공했다. 미국의 경험은 대통령 중심제로 대표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전형이 되었으며, 미국은 100여년이라는 짧은 시간 만에 세계사의 강자로 등장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미국의 성공에 워싱턴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 민족이든 시작이 중요하다. 특히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 후 첫 시작이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신생 독립 국가들이 첫 단추를 잘못 꽤서 아픔을 겪었는지 역사는 차갑게 기억한다.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상태였고, 끊임없이 갓 독립한 미국을 괴롭혔다. 서로 다른 국가나 마찬가지였던 13개의 식민지가 연합해서 하나의 나라를 만들었기에, 초기 미합중국은 모든 면에서 불안정했다. 당쟁과 파당은 끊이지 않았고, 남과 북의 지역감정은 갈수록 증폭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 퇴임을 결정한 근본적인 이유는 미국의 이상과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워싱턴은 퇴임사에서 미국은 “자유롭고 진보적이며 가까운 장래에 위대해질” 것임을 확신하며 미국 국민은 “숭고한 정의와 박애 정신을 존중하면서” 인류에게 “신선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또한 미국이 시도하고 있는 역사적 실험은 “적어도 인간의 본성을 고귀하게 하는 모든 선한 감정의 발로”라는 점을 역설했다.
미국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초대 대통령이 선뜻 퇴임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국민들과 후대 지도자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은 국민을 믿었고, 동료 정치인들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한 믿음의 토대는 미국 건국의 이상과 그것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워싱턴은 임기 내내 그리고 퇴임을 하면서 그러한 자부심을 국민들에게 고취시켰던 것이다.
남북전쟁 위기에서도 링컨이 굳건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자부심은 후대 대통령들에게 그대로 전수되어서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에까지 이른다. 링컨은 남북전쟁이라는 건국 이후 최대의 어려운 위기를 겪으면서도 미국의 건국 이상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그것을 국민들에게 고취시키려 했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미국의 건국 이상인 자유와 평등을 지키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의 시험대로 보았으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단순히 사람과 영토가 아닌, 미국 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에서 찾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지도력을 발휘했다.
루스벨트가 전임 대통령에 경의를 표할 수 있었던 이유
미국은 20세기에 와서 또 한 번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다. 1929년 10월 24일 뉴욕주식시장의 대폭락과 함께 시작한 미국의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이었다. 대공황은 공화당의 12년 장기집권을 종식시키고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새로운 대통령으로 탄생시켰다.
루스벨트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국의 과거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에 근거해서 대공황을 타개하려 했다는 점이다. 루스벨트는 이전 정권에 대공황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신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위기를 극복했던 과거사에 대한 믿음을 강조했으며, 미국이 겪고 있는 현재의 경제 위기가 “본질적인 실패에서 온 것”이 아니며, 미국은 “아직도 감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환기시키며, 국민들에게 국가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놓지 않도록 격려했다. 더군다나, 루스벨트는 “존경하는 후버 대통령”이라는 말과 함께 취임사를 시작했다. 대체로 신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친애하는 국민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것이 통례였지만 루스벨트는 이례적으로 대공황의 수렁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것을 더욱 깊게 만들었던 전직 대통령이었으며, 그의 정적이었지만, 후버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루스벨트의 이러한 생각과 태도가 일견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루스벨트와 거의 동시에 정권을 잡았던 독일의 히틀러를 보면 루스벨트의 진가를 상대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정권을 잡은 후 첫 대중연설에서 히틀러는 독일의 문제는 바이마르 정권의 “부패와 타락” 때문이라며 이 전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삭도처럼 예리한 히틀러의 광기어린 외침에 청중들은 환호했다. 버거운 현실에 비척거리던 민중은 이미 판단력이 마비되었고, 히틀러의 광기는 대중의 함성과 함께 증폭하기 시작했다.
취임사에서 보여준 히틀러와 루스벨트의 이 자그마한 차이는 결국 엄청난 결과로 나타났다. 한 사람은 인류를 최악의 악몽으로 몰아갔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으로부터 인류를 지키려고 했다.
리더가 어떠한 시각과 시선으로 과거를 보느냐, 그리고 국가의 전통과 역사에 어떠한 자부심을 갖느냐의 차이는 엄청나다. 미국이 짧은 시간에 지금의 위치에 올라오기까지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대통령의 리더십이었다. 미국의 국민수준이 다른 국민들보다 더 높다거나 자연이나 기타 외형적 환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굽이굽이에서, 무엇보다도 국가적 위기에서, 대통령이 국가의 과거와 전통에 어떠한 자부심을 갖고 위기에 대응했느냐는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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