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역사 , 인사이드 마케팅 , 다중코어로 컴퓨팅 한계 극복
1. 인텔의 역사
2.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3. 다중코어로 컴퓨팅 한계 극복
1. 인텔의 역사 |
□ 1968년 7월 18년, 페어차일드반도체 출신의 고든 무어와 로버트 노이스가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반도체 전문 회사를 설립했다.
□ 이름은 ‘인티그레이티드 일렉트로닉 코퍼레이션(Integrated Electro- nics Corporation)’, 오늘의 인텔이다.
□ 인텔이 처음 내놓은 제품은 1969년에 만든 메모리(이극성 램)다.
□ 같은 해에 첫 번째 금속 산화물 반도체(MOS)와 S램을 내놓기도 했다.
□ 1971년에는 상업적으로 판매 가능한 첫 번째 마이크로프로세서 ‘인텔 4004’를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그림 1] 인텔 4004, 상용화된 첫 마이크로프로세서
□ 하지만 초기 비즈니스는 메모리(D램) 위주로 펼쳐졌다.
□ 1970년대 중반부터 제품은 더욱 다양해지고 생산공장도 늘어나는 등 비즈니스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 그러던 중 1980년대 중반 들어 위기가 찾아왔다. 30년 이상 인텔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때를 ‘최악의 위기’로 기억할 정도다.
□ 1983년 일본 반도체 제조기업과의 경쟁으로 인해 매출과 손익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 1987년 당시 CEO인 앤디 그로브는 생사의 기로에서 과감한 결단을 내린다.
□ 인텔의 비즈니스를 마이크로프로세서 중심으로 돌린 것이다.
□ 창업 20여년 만에 비즈니스 모델이 완전히 바뀌는 순간이었다. 배경에는 PC 탄생이 있다.
□ 당시 IBM PC 사업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 PC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으며, 인텔은 IBM을 비롯한 PC업체에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공급하며 성장의 열매를 거뒀다.
□ 인텔은 PC 업계에서 10년 연속 유례없는 성장을 거듭하고,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리는 하드웨어 제조 기업의 위치를 공고히 하게 된다.
□ 1998년에는 세 번째 CEO가 등장한다. 크레이그 배럿이 앤디 그로브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다. 하이엔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 인텔의 위치도 더불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크레이그 배럿은 반도체 외에 통신장비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시도를 보였지만 그 중 성공한 사업은 많지 않다.
□ 2005년, 지금의 CEO인 폴 오텔리니가 부임한다. 그는 기업의 조직을 재정비하며 인텔의 강점인 x86 아키텍처(CPU)에 집중했다.
□ PC뿐 아니라 엔터프라이즈, 디지털홈, 모빌리티 등의 CPU사업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 CPU 성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나의 칩에 여러 개의 계산회로를 지원하는 멀티코어 시대를 열었으며, 최근에는 에너지효율을 강화한 3-D 트랜지스터를 발표했다.
□ 2010년부터 막강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활발한 M&A 정책을 펼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 2010년 8월 인텔은 보안 솔루션업체인 맥아피를 76억8000만 달러에 인수키로 발표했다.
□ 2주 뒤 인피니언테크놀로지의 무선사업부를 14억 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 인텔은 인피니언의 기술을 활용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무선 모뎀을 인텔의 칩으로 통합할 계획이다.
2.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 |
□ 인텔의 CPU를 복제하는 업체들의 난립이 바로 그것이다.
□ 그 중 대표적인 회사가 AMD였다. AMD는 인텔과 호환되는 CPU를 연속적으로 발매했다.
□ 인텔이 386을 판매하기 시작하자 얼마 후에 AMD는 Am386을 발매했고 인텔이 486을 판매하자 AMD는 Am486을 발매했다.
□ 인텔의 광고전략은 386이나 486을 브랜드화해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었는데 AMD와 여러 회사들이 유사 상표로 CPU를 출시하면서 인텔이 차지했던 시장을 공략했다.
□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386이나 486만 들어가면 같은 제품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 그래서 인텔은 386과 486등의 명칭을 다른 회사들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소송을 하였다.
□ 하지만 법원에서는 386과 486은 고유의 숫자이기 때문에 상표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 이에 당시 인텔의 CEO였던 앤디 그로브는 93년 새로 출시하는 586급의 CPU를 그 동안의 관례와 다르게 펜티엄이라는 고유 상표를 등록해서 판매를 시작한다.
□ 앤디 그로브는 과거 인텔이라는 회사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 대대적인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라는 캠페인을 진행 중이었다.
□ 인텔 인사이드는 마케팅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광고 전략이었다.
□ 1991년에 시작된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은 앤디 그로브가 CEO로 재직했던 98년까지 시행됐는데 34억 달러라는 거액이 투입된 대대적인 마케팅이었다.
□ 93년 펜티엄 출시 후부터는 팬티엄과 연계해서 보다 많은 물량을 투입해 인텔 인사이드 광고캠페인을 벌인다.
[그림 2] 인텔 인사이드 로고
□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은 앤디 그로브의 뛰어난 지혜가 발휘되어 있다.
□ 사실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은 일종의 조삼모사식의 마케팅이었다.
□ 인텔 인사이드는 컴퓨터를 제조 판매하는 회사와 연계하는 방식으로 마케팅을 벌였는데 컴퓨터 회사가 인텔의 CPU를 사용한다는 뜻으로 인텔인사이드 마크를 노출시켜주면 그 대가로 인텔로부터 보상을 받는 식이었다.
□ 삼성이나 LG처럼 컴퓨터 회사가 제품을 광고하면서 중간에 인텔 인사이드 마크와 효과음을 일정시간 노출하면 인텔은 CPU를 구입할 때 전체 가격의 6%를 할인해주었다.
□ 전 세계에서 1600개나 되는 컴퓨터 회사들이 인텔 인사이드 광고캠페인에 참여했다.
□ 하지만 인텔은 6%를 할인해주는 대신 CPU 가격 자체를 높은 가격에 판매해서 손해를 최소화했다.
□ 컴팩이나 IBM같은 회사도 참가했지만 나중에는 인텔의 의도를 파악하고 재빠르게 탈퇴한다.
□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인텔 인사이드 광고가 인텔의 브랜드 파워만 높여주고 또 그만큼 인텔의 CPU에는 프리미엄을 더해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 고객들이 어느 순간부터 컴퓨터에 펜티엄이 들어가지 않으면 자신의 제품이 뒤떨어진 기분을 가지기 시작했다.
□ 그도 그럴 것이 98년 포춘에서 발표한 브랜드 순위에서 펜티엄은 코카콜라와 말보로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 나이키보다도 더 유명해진 펜티엄의 브랜드 파워 덕분에 인텔은 다른 회사의 CPU보다 50%이상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었다.
□ 컴퓨터 회사에서 인텔의 CPU를 6% 할인해서 구입한다고 해도 결국 인텔은 강력해진 브랜드 인지도 덕분에 CPU 가격 자체를 타사보다 높게 부르고 있었으니 손해 볼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 컴팩과 IBM이 인텔의 의도를 알고서 나중에 인텔 인사이드 광고를 하지 않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 이제 완성품 형태의 컴퓨터를 판매하는 회사들은 CPU 선택권이 없어지고 오직 인텔의 제품을 사용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 인텔 CPU를 사용해야 컴퓨터가 팔리는 현실을 절감한 컴팩과 IBM은 다시 인텔 인사이드 광고에 동참하게 될 정도였다.
□ 처음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펼칠 때 만해도 '컴퓨터 부품 만드는 회사의 미친 짓'이라는 비웃음을 샀지만 인텔 인사이드의 성공으로 인텔은 시장 점유율이 88%가 넘어설 정도로 대성공을 거두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디지털 시대의 윈텔(Win-Tel) 제국을 완성하게 된다.
□ 사실 인텔 인사이드 캠페인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인텔은 엄청난 반대에 직면해 있었다.
□ 주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컴퓨터 제조사를 상대로 마이크로프로세서를 판매하는 인텔이 일반 대중들을 상대로 그 많은 돈을 사용하는 건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 하지만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인텔 인사이드 마케팅을 보면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하고 도전하는 과정은 항상 주위의 반대 속에서 리더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3. 다중코어로 컴퓨팅 한계 극복 |
□ PC와 서버, 슈퍼컴퓨터 등에 들어가는 멀티코어를 통해 최신 기술을 선보인 인텔이 다중코어를 통해 컴퓨팅 한계를 극복한다.
□ 2011년 9월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2011 인텔 개발자회의(IDF)' 마지막 날 행사에서 인텔은 멀티코어(Multi Core)와 다중코어(Many Core)가 컴퓨팅 혁명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 IDF 기조연설로 나선 인텔 기술그룹의 저스틴 래트너 최고기술책임자(CTO)는 “2006년부터 인텔과 IA 개발자들은 멀티와 다중코어 컴퓨팅 가능성을 구체화하기 위해 협력했다”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컴퓨팅의 미래는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 IA(Intel Architecture)는 인텔(Intel)사의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기본설계(아키텍처)의 총칭이다.
□ 그는 “2006년부터 듀얼코어를 개발해 상용화했지만, 소프트웨어(SW)는 싱글코어만 적용해 하드웨어 성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며 “병렬화 프로그램을 이용해 멀티코어와 다중코어 SW를 개발할 수 있는 도구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를 위해 인텔은 소프트웨어의 개발 플랫폼인 `나이츠 페리'(Knights ferry)를 일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 먼저 보급했다.
□ 현재 인텔은 슈퍼컴퓨터에 적용 가능한 48코어 제품을 2012년 출시할 예정이다.
□ 나이츠 페리는 48코어와 같이 다중코어 환경에서도 구현 가능한 SW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게 도와주는 SW개발 플랫폼이다.
□ 나이츠 페리는 `나이츠 코너'(Knights Corner)라는 이름으로 역시 2012년 정식 출시된다.
□ 래트너 CTO는 “현재 10코어가 적용되는 슈퍼컴퓨터는 가상화, 교육 시뮬레이션, 금융 모델링 등에 사용되고 있다”며 “48코어와 같이 다중코어 컴퓨팅의 강력한 성능은 향후 데이터센터, 웹 애플리케이션, 무선 기지국, 보안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또 인텔은 코어가 늘어나면서 가질 수 있는 성능 향상과 함께 에너지 효율성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이를 위해 인텔은 새로운 초저전압 회로를 이용한 `유사 문턱전압 동작 코어'(Near Threshold Voltage Core)라는 신기술을 선보였다.
□ 트랜지스터의 전압 한계치에 근접하게 작동해 에너지 소모량을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는 이 기술을 통해 인텔은 2018년 전력소모량을 현재의 100분의 1 수준으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 또 PC에 사용되는 CPU만으로는 전력 소비를 낮추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 인텔은 메모리 전력 소비도 함께 낮추기 위해 마이크론과 공동 개발한 `D램 하이브리드 메모리 큐브'를 선보였다.
□ 하이브리드 메모리 큐브는 현재 DDR3에 비해 에너지 효율이 7배 향상돼 울트라북, 태블릿 PC, 클라우드 컴퓨팅에 최적화 될 수 있다는 게 인텔측 설명이다.
□ 래트너 CTO는 “기술이 한계가 아니라 우리에겐 상상력이 한계”라며 “꿈만 있다면 우리가 함께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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