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학파
• 개인과 사회의 조화(폴리스)가 깨진 대제국 시대의 철학(알레산더의 마케도니아 제국, 로마):코스모폴리탄(세계시민주의)
• 개인보다 사회, 전체에 자신들을 종속시킨 경향을 보임
이에 반해 에피쿠루스 학파는 전체보다 개인에 초점을 맞춤
• 헬레니즘철학 전체가 이론보다는 실천에 더 주안점을 둠: 윤리학이나 종교적 실천, 실제 삶의 태도 등
4. 우주론: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인식론: 유물론적 관점
윤리학:운명에 대한 순응, 사회나 국가에 대한 의무 강조
5. 물질적 원자로 구성된 이 세계에 신과 같은 이성적인 법칙이 내재한다. 이 세계는 이 법칙에 따라 필연적으로 움직인다.
6. 인간은 우주의 법칙을 깨닫고 이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쁜 일에 슬퍼한다. 희노애락의 감정(pathos)에 빠진다.
7. 설령 나에게 좋거나 나쁜 것처럼 보이는 일도 세계법칙에 따른 필연적 산물이다. 모든 일이 운명에 따라 결정되어 있다. 좋고 나쁨이란 없다.
8. 그래서 나쁜 것이란 좋고 나쁨이란 없는데 있다고 착각하여 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스토아는 무정념(apatheia)를 궁극적 경지로 추구한다.
9. 스토아에게서 좋고 나쁨이란 무엇인가? 이런 입장의 의미와 한계는?
모든 일이 운명이라면 인간의 선택이나 감정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가?
에피쿠루스 학파
• 데모크리토스 원자론에 따른 유물론, 이에 기반한 인식론
• 개인의 쾌락과 안위야말로 선이라는 개인주의적 윤리관, 쾌락주의(ataraxia)
• 사회에 대한 의무보다 개인의 쾌락이나 친구간 우정을 소중히 여기는 정원철학
•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고, 신의 개입이나 운명을 부정하고, 죽음까지도 거부함
5. 아타락시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 학파에서는 쾌락을 추구하고, 궁극적 쾌락을 아타락시아라고 한다. 누구나 쾌락과 고통을 구분하는데 어렵지 않다. 문제는 쾌락을 추구하다가 고통을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를 쾌락의 역설(paradox)이라고 한다. 쾌락이 고통을 낳는다. 어떤 경우들이 있는가?
6. 아타락시아는 역설에 빠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적극적 쾌락이라기보다는 고통에 빠지지 않는 상태로 지속될 수 있는 경지다.
7. 그렇다면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볼 수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육체적 가치를 배제하지 않는다. 물론 역설에 빠지지 않는 소극적이고 지속적인 쾌락을 추구한다. 정신적 쾌락도 쾌락인한 추구될 수 있고, 육체적 쾌락보다 더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정신적 가치나 의무가 중요한 선이라고 간주해서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신플라톤주의
• 종교적 평안을 추구함.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았고, 주었음.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을 체계화하는데 플라톤, 플로티누스 철학이 결정적으로 기여함.
• 그리스의 이원론이 일원론으로 바뀌지만 무로부터 창조라기보다는 세계의 영원성이라는 그리스 세계관이 여전히 유지됨.
• 스토아나 에피쿠로스와 달리 원자론적 유물론을 따르지 않고, 물질이나 자연물이 상위의 영혼이나 정신, 일자에서 나온 것으로 간주함.
유출설
• 인간 영혼은 자신과 결합한 육체를 통제한다. 개별 영혼은 자신과 결합한 물체에 생명을 부여한다.
• 세계 영혼은 개별 영혼의 운동뿐 아니라 모든 물체의 운동을 일으킨다.
• 영혼뿐 아니라 모든 물체는 일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이고 변한다. 이러한 법칙은 정신이 규정한 영원한 관념이다.
• 물질이나 영혼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하나이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존재는 하나에 참여해서 존재한다. 궁극적으로 모든 존재는 하나의 산물이다.
• 인간 영혼은 상위의 부분이 정신의 차원을 거쳐서 하나에 이를 수 있다. 인간 영혼은 정신을 배제하지 않고 하나 안에서 진정한 자기 실현을 이룬다.
• 인간 영혼의 하위 부분은 육체 지향적이어서 영혼이 정신성을 상실하고 육체에 함몰될 수 있다.
7) 하나에서 하위의 존재들이 왜, 어떻게 산출되는가?
궁극적 완전자로서 하나는 자신의 완전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자기 아닌 것을 산출할 수 있다. 완전자는 가득 차기 때문에 넘쳐서 자기 아닌 것을 유출한다.
하나가 자기 완전성을 보이기 위한 작용으로 정신의 인식활동을 들 수 있다. 정신 작용은 대상을 규정하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된다. 순수한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차원에 해당한다.
정신은 자신의 활동에 의해서 하나와 합일할 수 없는가?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하나될 수 없는가? 정신이 하나와 합일하는 것은 정신과 대상이 구분되는 다수성의 차원에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비적 일치를 내세운다. 그렇다고 비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신이 자신을 대상으로 삼으면서 주체와 일치를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능성을 인정한다면 하나에 이르는 것이 탈아적 일치라고만 할 수 없다.
8) 정신은 세계 영혼을 유출한다. 세계 영혼은 두 양상을 지닌다. 정신이라는 위를 향할 때 영혼은 만물의 영원한 관념을 바라보며, 자연이라는 아래를 향할 때 원리를 부여해준다. 관념과 자연 세계를 연결한다. 정신은 자신의 완전성을 펼치기 위해 자신보다 낮은 등급의 영혼을 산출한다. 이런 영혼에 의해 시간과 운동이 생기며, 자연 세계에 법칙을 부여하게 된다.
9) 개별 영혼은 세계 영혼에서 유출된다. 인간 영혼은 위를 바라볼 때 정신과 관념을 공유하지만 아래를 바라볼 때 육체와 관련된다. 세계 영혼 역시 개별 영혼을 통해서 자기 완전성을 펼친다. 영혼을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움직이게 한다. 개별영혼은 자신이 관할하는 육체에 이런 작용을 하며, 기타 다른 자연물에는 세계 영혼이 영향을 끼친다.
10) 개별 영혼 역시 자신의 완전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낮은 등급의 존재자, 물질이 필요하다. 물질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작용하고, 물질을 통제한다.
11) 물질은 가장 낮은 단계의 유출물로서 그자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물질은 영혼이 개입하여 형상을 부여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물, 불, 흙, 공기 같은 기본질료의 경우에도 영혼이 관련해야만 존재한다. 물질은 그 자체로는 무와 다를 바 없다.
12) 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형상설과 플로티누스의 유출설을 비교할 수 있는가? 질료의 성격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인가?
회의주의
• 회의주의자의 어원인 고대 그리스어 skeptikoi는 추구자, 탐구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회의주의자는 의심하는 자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스토아, 에피쿠로스 학파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 피론이 그 창시자며,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지도자인 아르케실라오스도 회의주의 경쟁학파를 이끌었으며, 섹스투스 엠피리쿠스가 피론 철학의 전통을 계승했다.
• 회의주의는 마음의 평화나 평정을 얻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인간은 모순으로 혼란스럽고 선택지에 대하여 의심함으로써 고통을 받는다. 회의주의자가 자신들의 탐구에 의하여 진리를 밝힌다면 마음의 평정에 도달할 수 있다.
4.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유형
• 독단론자: 자신들이 진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자
• 자신들이 진리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이들 역시 독단론자로 간주한다.
• 진리를 꾸준히 탐구하는 자: 경험의 모든 설명이 반대경험에 의해 검사되는 계속적인 탐구 과정
5. 섹스투스에 의하면 서로 반대되는 논거들도 균등한 힘을 지니므로 설명의 개연성을 신뢰하는 정도가 같다. 따라서 회의주의자는 판단을 보류하며 어떤 것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판단을 중지함으로써 혼란없는 평온한 정신 상태에 도달하고자 한다.
6. 회의주의자가 실제 세계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세계가 정확히 기술되는가를 의심한다. 한 대상이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실제로 존재하는가이다. 예를 들어 꿀이 단 경우도, 우리에게 달게 지각되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꿀이 실제로 단가에 있다.
7. 회의주의자는 탐구의 두 가지를 구분한다. 명백한 일과 명백하지 않는일이다. 전자는 낮과 밤의 구분, 법과 관습이 사회와 개인의 평정을 위한 필수조건 등이다. 후자는 사물의 본질이 원자나 불이라는 주장과 같은 경우다. 그래서 우주가 어떻게 되어있느냐고 물으면 회의주의자는 아직 모른다고 대답한다.
8. 감관은 기만적이다. 지식의 대부분은 우리가 진리의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지각에 기초한다. 그래서 사물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힐 수 없다.
9. 도덕률은 회의를 일으킨다. 관습과 법은 사회마다 다르다. 인간이성이 보편적 합의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견해에 대해 그런 증거가 없다고 반박한다. 스토아 학파가 주장하는 불가항력적 지각이라고 하더라도 회의주의자는 그것을 속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인간은 확실한 지식을 갖지 않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대해서 판단을 보류할 권리가 있다.
10. 지적인 확실성 없이도 도덕률이 가능한가?
절대적 확실성이 없다고 하더라도 분명하지 않은 개념과 거의 분명한 개념을 구분할 수 있다.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방식은 따라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11. 우리가 진리의 규준없이 열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심리적으로 안정되려면 탐구의 창을 열어놓아야 한다. 안정되게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는 절대적 진리라고 하는 것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의에 의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때가 횅복한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다.
12. 분명하지 않은 명제에 동의하는 독단을 거부하지만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밝혀주는 일련의 추론과정이라는 체계는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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