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시 읽기-수용(맛보기), 표현(짓기)
1. 맛보기
맛보기(감상)에는 읊기와 새기기 두 단계를 둔다.
가. 읊기(소리 읽기→느낌 읽기→눈 읽기)
(1) 속뜻이 잘 짚히는 시의 경우
‘소리 읽기’에서 ‘새기기’로 들어간다.
소리읽기의 세 단계는 아래와 같다.
∙가락이 살아나는 대로 읽는다.
∙결음보는 그만큼 쉬고 읽는다.
∙맛을 내어 읽는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세 단계를 거치는 동안 얻어지는 것
∙속뜻이 몇 마디 낱말로 요약되어 머리 속에 잡힌다.
∙속뜻에 얽혀 있는 리듬, 이미지, 비유 등이 자아내는 말맛이 잡힌다.
∙앞 두 항이 녹여진 상태의 전체맛이 한 마디로 머리 속에 잡힌다.
(2) 속뜻의 테두리가 잘 짚히는 시의 경우
‘소리 읽기’와 ‘눈 읽기’를 하고 ‘새기기’로 들어간다.
눈읽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각 구절, 연은 모두 눈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읽는다.
∙강렬한 맛이 풍겨지는 구절, 연에서는 천천히 지나간다.
∙여러 개의 눈이 있을 때는 으뜸 눈이 잡히도록 더 천천히 지나간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참아 이 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여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인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이육사의 <광야>
1련 2련 3련 4련 5련
(천천히) (약간 천천히) (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약간 천천히)
(2) 속뜻이 잘 짚히지 않는 시의 경우
이 경우 읊기 세 단계를 다 거치고 새기기로 들어간다. ‘느낌 읽기’란 시를 읽어 나가는 동안 마음을 유달리 움직여 주는 자리에 몸을 흔든다거나 눈을 지긋이 감는다거나 먼 데를 바라본다거나 빙그레 웃는다거나 한숨을 짓는다거나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느낌 읽기는 다음과 같이 한다.
∙마음을 유달리 움직여 주는 자리는 잠시 머물거나 천천히 지나간다.
∙자리마다 감흥에 따라 몸을 맡긴다.
∙몸을 맡기며 상상의 층을 더듬어 나간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정지용의 <유리창>
나. 새기기
(1) 새기기의 요령
∙마음을 비운다.
∙시인의 이름에 먼저 빨려 들지 않는다.
∙전체로 오는 맛을 잡는다.
∙찬찬히 느낌을 음미한다.
∙마음이 머물고 맴도는 자리를 새긴다.
∙말맛이 나는 자리, 상상을 잣는 말을 챙겨 본다.
∙화자의 생각과 취향을 살핀다.
∙시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 이유를 따져 본다.
(2) 새기기(말하기·듣기·짓기)
정지용의 <유리창>
∙이 시의 맛은? (시원스럽다. 통쾌하다. 달콤하다. 안타깝다. 슬프다. 쓰라리다.)
∙화자가 서 있는 자리를 떠올려 보라.
∙이 시는 할말과 심상이 교차하는 기법을 보여준다. 할 말과 심상을 구분해 보라.
∙어디서 말맛이 나는가?
∙환자의 심정을 몇 문장으로 적고 읽어 보라.
이육사의 <광야>
∙이 시가 주는 맛은?
∙화자의 목소리가 어떤가?
∙이 시에서 쓰여진 시어의 성격에 대해 말해 보라.
∙마음이 머무는 자리는 어디인가?
∙이 시에서 잘 말해진 부분을 몇 가지 들고 이야기해 보라.
∙화자는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일까?
2. 짓기
짓기는 ‘분별하기’와 ‘지어보기’ 단계를 밟는다.
가. 분별하기
환기 기능 : ① 감각. ② 정서. ③ 암시.
사색 기능
정지용의 <유리창>은 주로 환기 기능이 강하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 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 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
감각 : 유리, 차고, 어린거린다, 입김, 언 날개, 파다거린다, 새까만 밤, 물 먹은 별, 반짝, 보석, 백힌다, 찢어진 채로.
정서 : 전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언어 운용은 정서적이다.
암시 : 슬픈 것, 언 날개, 물 먹은 별, 외로운 황홀한 심사
이육사의 <광야>는 사색 기능이 강하다.
| 원 시, 과 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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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래 | 광 야 | 역 사 |
| 현 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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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지어보기
∙환기 기능은 그대로 두고 주제만 바꿔 본다.
주제는 ‘이별’로 할 수 있다.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 · · · · ·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
|
|
∙사색 기능에 기대어, 시를 재구성해 본다.
‘과거→현재→미래’ 시간성을 바꾸어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계절 순환으로 지어본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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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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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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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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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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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1 맛보기 전에 할 일이 있다.
시 맛보기는 시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임을 앞에서 말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위해 어떤 점을 헤아려야 할지 두 가지로 풀어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마음을 비운다.
마음을 왜 비우는가. 마음을 열기 위해서이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좋은 시를 읽고도 좋은 시로 받아들일 수 없고 자기를 흔들고 있는 시를 흔들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마음을 비우는 일은 먼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 지금 자신이 무엇에 빠져 있고 무슨 생각을 가슴에다 잔뜩 실어놓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는 가스에 실려 있는 짐짝들을 걷어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 노력은 신앙인이면 신앙의 방법이 동원될 수 있을 것이고 기(氣)를 하는 사람이면 기 다루는 방법에서 방법을 원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말이 그렇지 무념무상에 든다는 일이 어디 밥 먹듯이 되는 일이던가. 그렇더라도 그렇게 하려는 지향만으로도 시 맛보기에서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한다.
그 다음에는 내가 시에 대한 어떤 편향에 젖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를테면 신경림의 시가 나와야 발등이 간질간질해진다든가 김춘수의 시 앞에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노랫말이 떠오른다든가 하는 편향 말이다. 실험시를 쓰는 시인은 시인이기 때문에 평생의 고집을 고집대로 가기도 하고 민중시로 온몸을 몰아가는 시인은 시인이기 때문에 실천적 이행에다 삶의 고비를 매어 놓고 산다.
그러나 독자는 시인의 편향을 편향으로 감지하는 몫을 지니고 있다. 편향으로 갈 때는 무섭게 따라가더라도 옳은 독자는 작품 앞에서 편향인 채 서 있는 것이 아니다. 시 작품 앞에서 편향의 지뢰를 걷어내는 것이 비우는 일의 마지막 단계 작업이 된다.
둘째, 지은이의 이름에 먼저 빨려 들어가지 않는다.
지은이의 이름에 먼저 현혹이 되지 말자는 것은 앞의 편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다만 시에 대한 편향은 일반적인 것이고, 지은이에 대한 것은 읽을 텍스트의 구체적인 시인을 말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먼저 김영랑의 시를 한 편 읽어 보자.
큰 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든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셔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 박팽년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오! 일편단심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오! 일편단심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이 무엇이기
그 때문의 꽃의 춘향 그만 옥사한단 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의
흉칙한 얼굴에 까물어쳐도
어린 가슴 달콤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오! 일편단심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질으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 고을도 깨어지고
오! 일편단심
-김영랑의 <춘향>
<춘향>을 놓고 지은이 김영랑의 일반적인 평가에 기댄다면 맛을 전혀 엉뚱한 쪽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른바 김영랑이라는 이름이 지닌 일반적인 정보로 이 시를 읽으면 맛보기에서 실패를 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일반적인 정보란 순수시의 시인, 유미주의 시인, 내 마음의 세계를 드러내는 시인, 음악성을 추구하고 말을 아름답게 골라 쓰는 시인,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등을 포함하고 있다.
<춘향>은 이런 정보의 어느 대목하고도 무관하다. 우선 유성음 중심으로 말을 골라 쓴 흔적이 안 보인다. ‘큰 칼’, ‘독했든가’, ‘원통코’, ‘흉칙한’, ‘까물어쳐도’, ‘깨어지고’ 등에서 k, t, h, ch나 경음 ‘ㄲ’을 예사로 쓰고 있다. 이런 소리들은 불쾌한 소리로서 음악성에 반하는 것들이다. 김영랑의 초기 시에 주로 드러나는 ㄴ, ㄹ, ㅁ, ㅇ 따위의 부드러움 선호 현상이나 ‘속삭이는→소색이는’ , ‘날개→나래’, ‘가볍기→가부엽기’ 등의 부드럽게 말하기의 노력이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춘향>은 김영랑이 <四行詩>나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썼을 때의 생각이나 작시 태도로 쓴 것이 아니다. 말을 윤이 나는 것으로 골라내고 정서를 미적 질서와 어울리게 하는 등의 유미적 태도를 버리고 현실 속에서 지향하는 바의 메시지를 우선하여 시를 쓰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변학도에게 핍박받는 춘향이를 소재로 쓴 것이지만 ‘논개’를 등장시켜 광복이나 겨레의 아픔에다 힘을 주고 있다 보니 말의 아름다운 운용이라는 여유를 지니니 못한 것이 드러난다.
이 작품만 놓고 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김영랑의 것이라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도 지은이가 ‘김영랑’이라고 적혀 있으므로 독자는 그냥 김영랑의 변화된 시적 태도를 떠올리기 전에 ‘유미주의 시’라고 생각하고 유미적인 정서나 분위기로 읽어내려 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고 고쳐야 할 독자의 태도이다.
지은이의 이름에 먼저 빨려 들어갈 경우 시 맛보기에 크게 낭패를 보는 예로 이형기의 시를 들어볼 수 있다. 이형기는 진주농업학교 재학 시절 《문예》에 <비오는 날>, <코스모스>, <강가에서>를 추천받아 시인이 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서울에 나타난 것을 보니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 고등학생임을 알고 놀랐다는 심사위원 서정주의 술회가 전해진다.
이형기의 초기 시는 리리시즘(문예 작품을 서정적으로 나타내는 태도)로 미적 감각에 있어 매우 날카롭다는 평을 들었으나 후기에 와서는 ‘충격의 미학’, ‘파괴의 미학’으로 불리는 시를 썼다. 이른바 존재론적인 시로서 그 스스로 유독성(有毒性)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이형기의 <낙화>
청순한 시심을 자아 올리고 있는 시다. 이 시에서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가 인구에 회자되는 대목이다. 경구적이기에 그렇다. ‘낙화’를 이처럼 의미있게 드러낸 시인은 다시 찾기 힘들 것 같다. “축복에 싸여”라든지 “꽃답게 죽는다”든지 하는 소박한 표현이 이 시를 애송시로 끌어 올려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시를 쓴 사람으로 이형기를 머리 속에 새겨 놓은 사람은 후기에 쓴 시를 있는 그대로 읽어 낼 수가 없을 것이다. “챔피언 벨트는 내놓기 위해 존재한다. 꿈은 무너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꿈의 옆구리에다 비수를 꽂는 것이 시”라고 생각하는 시인의 시학을 어찌 따라잡을 수 있겠는가.
삽 한 자루
자갈밭 한 뙈기
땅을 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묻기 위해
꿈을 파내 그 정수리를 찍어버린
犯行의 알리바이
불을 지르고도 저도 함께 타 죽어버린
그 완전범죄를 위해
아물어선 안될 상처의 永久保存
그 소금 절임을 위해
오 이 삽 한 자루의 敵愾心
垂直의 幻想
마침내는 한 뙈기 자갈밭만 남는
그 이미지를 위해 땅은 있다.
-이형기의 <자갈밭>
<자갈밭>은 적개심의 시다. 삽 한자루는 땅을 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파내어 그 정수리를 찍어 버리기 위해 있는 것이다. 무너지기 위해 있는 꿈은 결국 허무에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시인은 적개심을 가지고 꿈을 미리 파내고 마는 것. 이형기의 시가 인생론적 서정시인 줄로만 아는 독자가 <자갈밭>을 읽는다면 참으로 황당해 마지 않으리라. 옳은 독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를 읽기 전에 시인의 이름, 곧 시인의 제한된 정보에 빨려 들어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임을 웅변으로 말해 주는 것이 <자갈밭>이라 하겠다.
그러면 초기와 후기의 시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인들의 시를 읽을 때는 지은이 이름에 마음 놓고 빨려 들어가도 되겠다고 눈치 빠른 이들은 생각해 볼 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도 안 된다. 시를 맛보기 전에 지은이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것은 그 어떤 쪽이든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수업 시간에 김종길의 <소>를 맛보려고 하는 참인데 교사가 지은이 소개를 장황하게 한다고 치자.
1926~. 경북 안동 출생. 시인. 영문학자. 1947년 혜화전문 문과졸. 1950년 고려대 영문과 졸업. 영국 세필드대학 W. 엠프슨 교수 밑에서 영문학을 연구. 청구대학. 경북대학을 거쳐 고려대에서 교수로 재직. 1955년 《현대문학》에 <성탄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에 등장. 그 후 시 <수국>, <달>, <고고孤高> 등을 발표했고, 평론 ‘史談’, ‘엘리어트의 인간’, ‘신낭만파와 운동파’, ‘아카데미시즘과 나르시즘’ 등을 발표. 시집에 《성탄제》(1969년 삼애사), 《하회에서》(1977년 민음사), 번역 시집 《20세기 영시선》(1954년 신생). 시론집 《시론》(1965년 탐구당) 등이 있다. 그의 시는 T·E. 흄, E. 파운드, T·S. 엘리어트 등의 영미 주지주의 영향을 받아서 감상이나 감정을 억제하고 사물의 선명한 이미지의 조형에 주력함으로써 언어가 매우 지적이며 절도 있다.
이렇게 김종길에 대한 소개를 하고 나면 학생들은 시 읽기에 들기도 전에 김종길의 시는 영미 주지주의 영향을 받음, 사물의 선명한 이미지, 절제, 간결 등을 머리 속에 넣고 그 쪽으로만 반응하려 들 것이다. 거기다 영국에서 W. 엠프슨 이론에 기울어졌다면 애매성 이론이 창작에 영향을 미쳤을 텐데, 시가 단순하지 않겠는 걸. 이런 정보를 깔고 이제 시를 읽게 되리라. 볼 만한 일이 벌어지겠다.
너 커다랗게 뜬 검은 눈에는
슬픈 하늘이 비치고
그 하늘 속에서
내가 산다
어리석음이 어찌하여
어진 것이 되느냐
때로 지긋이 눈을 감는 버릇을
너와 더불어
오래 익히었구나
-김종길의 <소>
<소>를 읽고 나면 주지주의 특징부터 가려내야 할 판이다. “너 커다랗게 뜬 검은 눈에는/슬픈 하늘이 비치고” 정도가 이미지의 조형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영미 이미지즘의 그 ‘단단함(hardness)’과는 거의 무관하다. 말의 운용이 진술적이면서 ‘슬픈 하늘’이라는 감상성이 개입되고 있는 것은 구체적, 객관성을 지향하고 감상성의 표출을 피한다는 원칙에 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단한 이미지 쪽이기 보다는 여백과 여운을 동반하는 서정의 영역에 훨씬 더 깊이 들어와 있음을 본다.
또 엠프슨의 애매성 이론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학생이라면 김종길의 시와 연관지어 보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한 낱말이나 문법적 구조가 동시에 여러 방향의 효과를 가져온다거나, 단일 진술이 상관되는 다양한 상황을 암시하여 해석의 다양성을 내포하는 등의 애매성이 드러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소>의 경우 음성적 애매성이든 문법적 애매성이든, 혹은 어휘적 애매성이든 간에 노출되는 애매성이 없다. 지은이에 대한 정보가 학생들로 하여금 쓸데없이 엉뚱한 쪽으로 나돌게 했으니 정보를 제공한 쪽에서는 민망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 민망함을 피하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에게 시를 읽기 전에 지은이 소개를 하지 않아야 한다. 학생들도 스스로 지은이의 이름에 먼저 빨려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여 시 밖에서 쓸데없는 배회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 참고·2 맛보기에도 단계가 있다.
시를 맛보기하는 단계는 네 단계로 잡는 것이 좋겠다. 학교에서 시를 가르치는 시간에 교사들이 참고로 했으면 한다. 일반인들도 이 단계에 따라서 맛보기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
1단계 |
스며드는 맛보기
2단계 |
퍼져나는 느낌 잡기
3단계 |
가슴 울리는 자리 젖어들기
4단계 |
화자(말하는 이)의 자리 서 보기
네 단계 중에서 4단계는 생략할 수가 있다. 화자의 생각, 곧 주제나 메시지가 별로 건질 만한 것이 못되는 경우 굳이 화자의 생각을 붙들어 볼 필요가 없거나 화자가 처한 자리에 서 있어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1단계는 시를 읽고 난 뒤 스며드는 맛을 그대로 음미하는 단계이다. 이때 맛이란 ‘시원스럽다, 구수하다, 달콤하다, 답답하다, 갑갑하다······’라는 것들이 기준이 될 것이다.
2단계는 맛 다음에 오는, 퍼져 나는 느낌을 잡아 보는 단계이다. 시를 읽는 동안이나 다 읽고 하나의 맛을 붙든 다음에 이어지는 머리 속 그림자를 잡아 보는 것이다. 맛은 시 그 자체의 맛이지만 느낌은 시가 내게 들어와 작용하고 있는 부분에 관한 것이다.
3단계는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대목에 한없이 젖어 드는 단계이다. 메시지나 상황이 가슴을 울리기도 할 것이고, 이미지나 특종의 정서가 그렇게 하기도 할 것이다. 독자는 그저 그 자리에 젖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으면 될 터이다. 감각적인 시거나 정서 중심의 시일 경우 3단계에서 맛보기를 끝낼 수도 있을 것이다.
4단계는 화자의 자리 서 보기인데, 시의 말을 드러내게 한 그 화자의 처지가 되어 보는 단계이다. 메시지를 정리해 보기도 하고 메시지가 화자를 붙들고 있는 정도를 짚어 보기도 하는 단계이다. 메시지가 중요하지 않은 시의 경우 화자의 모습과 그 심중을 떠올려 보면 된다.
시 한 편을 맛보기의 네 단계를 거쳐 읽어 보도록 하자. 맛보기 전(前) 상태로 돌아가 주기 바란다. 그리고 <논개>를 읽어 보자.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 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마음」흘러라
아름답던 그 아미(蛾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마음」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 꽃 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흘러라
-변영로의 <논개>
1단계 |
스며드는 맛보기
맵쪼롬하다.
2단계 |
퍼져 나는 느낌 잡기
논개가 죽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아리따운 얼굴과 맵시로 살아서 남강물처럼 영원히 우리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대밭을 바라보며 젖은 옷 그대로 머리를 매만지며 강에서 성큼 성큼 우리를 향해 걸어 나오고 있는 느낌이 온다.
3단계 |
가슴 울리는 자리 젖어 들기
1연에서 압도해 오는 시의 무게. 거룩한 분노가 종교보다 깊고. 불붙는 정열이 사랑보다 강하다니. 논개의 정체가 이리 적절히 큰 관념으로 드러내 질 수 있으니. 보조 관념으로 가져온 것이 종교이고 사랑이 아닌가.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 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 시라고는 근처에 얼씬거려 보지도 못한 사람에게는 시 그 자체의 원론으로 다가오고, 시를 책장 속에 오래 묻어 둔 사람에게는 아련한 향수로 다가오는 경구. 시는 첫 새벽 여명처럼 오는가 보다. “거룩한 분노는······”과 같이 오는가 보다. 그러다가 “아! 강낭콩꽃 보다도 더 푸른/그 물결 위에/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그 마음 흘러라”로 이어지니 시가 새 태양의 햇살을 받아 투명한 모습으로 솟아오르네.
앞에서는 어떤 생각을 산처럼 무게 있게 끌고 오더니 여기 이르러서는 개울물처럼 졸졸거리는 투명한 그림, 투명한 이미지를 제시해 놓네. 다시 앞으로 가 보자. “거룩한 분노는/종교보다도 깊고/불붙는 정열은/사랑보다도 강하다”의 근엄함은 그대로 있네. 그런데 아! 강낭콩. 강낭콩이 나오니 매우 친근하고 가벼운 것이 아닌가. 여기서부터 시의 만만함, 시의 부드러움, 그 팔에다 우리들의 팔을 걸고 가는 것 아닌가. 진주에 가면 촉석루 입구에 촉석문이 있는데 그 앞에 논개 시비가 서있어. 사람들 대부분 “거룩한 분노는 ․․․․․․”
은 속으로 읽고 “아! 강낭콩”부터는 소리내어 읽는다. 왜 그런가. 친근하고 가볍고 가까운 것이 강낭콩이고 양귀비꽃이라서 그래. 아! 강낭콩. 이 콩 하나의 이미지만으로 <논개>의 언덕을 오른 셈이지. 이 콩꽃만 있으면 남강물 그 푸른 물을 가서 볼 필요는 없어. 이 콩꽃 빛깔일테니······
4단계 |
화자의 자리 서 보기
논개의 분노와 논개의 정열은 꽃다운 혼이 되어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저 푸른 강물이 흐르고 그 물결이 일렁이는 한 거기 그는 살아서 얼로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화자는 그런 확신을 <논개>에 담았다.
지금까지 내 입장에서 4단계를 단계별로 맛보기한 것을 적어 보았다. 사람이 다르면 맛보기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 시 맛보기다. 단계별 내용의 심도나 거기 깃드는 시간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같은 것을 고집하거나 같지 않은 것을 우열의 격차로 보아서도 안 된다. 이 사람은 바다가 좋다고 할 수 있고, 저 사람은 산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어느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문화와 문화의 관계하고 같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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