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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Money Ball)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최악의 팀. 선수단 연봉총액 최하위의 가장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그러나 단장으로 취임한 빌리 빈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자신의 ..

myPPT 2012. 9. 30. 03:26

머니볼(Money Ball)

마이클 루이스 지음 / 윤동구 옮김 / 송재우 감수

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 419쪽 / 13,000원



▣ 저자   마이클 루이스

마이클 루이스는 월 스트리트의 이면을 그려낸 베스트셀러 『Liar's Poker』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CEO 빌리 빈의 이야기를 담은 『머니볼(Money Ball)』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2004년 출간된 『머니볼』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그 해 전미(全美)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물론 기업을 경영하는 CEO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 역자   윤동구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현재 여의도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번역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악어 찰리와 마법의 잔』, 『감성지수』, 『타임베이스경영』, 『이카로스 패러독스』 외 다수가 있다.


▣ 감수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 메이저리그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경기 해설을 계기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팀과 이 팀의 운영을 맡고 있는 단장 빌리 빈, 그리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영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리그라는 자부심과 함께 오랜 노하우로 다져진 그들만의 경영전략과 선수수급의 철학이 있다. 빌리 빈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도전한 것은 이러한 낡아빠진 전통과 철학이었다. 태풍처럼 강력한 혁신적 방법으로 빌리 빈과 그의 팀은 풍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라이벌들을 무너뜨리면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이루게 된다. 빌리 빈의 승리는 메이저리그라는 기업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들, 즉 숨겨진 인재를 찾아내는 데에도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야구는 즐거움이지만 프로구단 운영은 철저한 사업이자 과학이다. 야구라는 분야를 지탱하는 수많은 숫자들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해석은, 그 어떤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새로운 것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시킬 때 이룰 수 있음을, 빌리 빈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 한 권의 책에 담긴 수많은 교훈들

저자의 글 - 빌리 빈, 신화를 쓰는 사나이


제1장  길을 잃은 천재

제2장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라

제3장  깨달음

제4장  무지(無知)의 필드

제5장  제레미 브라운 스페셜

제6장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제7장  지암비의 허점

제8장  스캇 해트버그의 부활

제9장  트레이드 테이블

제10장  투수 해부하기

제11장  인간적인 요소

제12장  아이디어의 속도


에필로그 - 오클랜드의 오소리 이야기

감사의 글


















머니볼(Money Ball)

마이클 루이스 지음 / 윤동구 옮김 / 송재우 감수

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 419쪽 / 13,000원



1. 길을 잃은 천재


빌리 빈은 어렸을 적부터 운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이길 자신이 넘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대표팀 투수로 등판했던 그는 2학년 때 미국 전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고교 리그에서 5할 대 타율을 올렸다. 3학년이 되어서는 키가 190cm를 넘어섰고 체중이 80kg을 넘어섰다. 야구의 파이브 툴(five tool : 스피드, 어깨, 수비, 정확도, 장타력)을 모두 갖춘 빌리는 나이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점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한마디로 감동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가면 같은 것이었다. 모두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만 관심을 쏟았고 경기가 부진할 때 나타나는 행동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졸업반이 된 빌리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무언가를 항상 부러뜨렸고 걸핏하면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실패를 싫어했지만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천재였던 것이다.  


1980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되자 1라운드 전체 1차 지명권을 갖고 있는 뉴욕 메츠가 상상 이상의 관심을 빌리에게 표했다. 원하기만 하면 그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빌리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야구와 풋볼 모두에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드래프트 날이 임박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빌리를 계약 불가능 선수로 분류했다. 프로에서 뛰지 않겠다는 철없는 고교생 하나를 잡기 위해 드래프트 첫 번째 선발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 메츠의 수석 스카우터 로저 용게워드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메츠 팀이 원정경기를 위해 빌리가 사는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용게워드는 빌리를 메츠 팀의 클럽하우스에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빌리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로 받고 쟁쟁한 스타 선수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팀이 빌리를 매우 필요로 하고 있으니 당장 빅 리그로 들어오라고 부추겼다. 빌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12만5천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메츠에 입단하게 된다. 빌리는 시즌이 끝날 때를 이용하여 강의에 참석함으로써 학업을 지속할 생각이었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더 이상 자기 대학의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학을 거절하는 서신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2.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라


2002년 여름 어느 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을 5년 째 맡고 있는 빌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카우터들과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날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드래프트가 팀의 장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클랜드는 싼 노동력을 찾아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는 자유시장의 논리가 빅 리그만큼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의 선수를 지명하고 계약까지 마친 구단은 그 선수에 대해 마이너리그 7년과 메이저리그 6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 즉 그 기간만큼은 선수가 가진 진정한 가치보다 훨씬 낮은 연봉으로 계약이 가능한 것이다. 오클랜드가 올해 배리 지토(2002년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투수)에게 50만 달러만 지급할 수 있었던 것도 1999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덕택이었다. 다른 팀에 있었다면 지토는 1천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회의에서 빌리는 제 2의 지토를 찾아내야 한다.  


스카우터들이 수집해 온 북미 지역 아마 야구 선수들의 명단은 680명 정도로 정리된다. 스카우터들은 명단을 놓고 한 명씩 탈락시키면서 스카우트 대상자를 압축한다. 책임자가 명단에 오른 한 신인 선수 이름을 거론하면 그 선수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스카우터들의 짤막하고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스카우터들은 반드시 피해야 할 선수들을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하곤 했다. ‘돌머리’는 극복 가능한 결함을 의미하고, ‘연약하다'는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실구조‘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표현인데 이들 중에는 전과자나 알코올 중독 또는 성격 장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실구조가 아니더라도 고교생 선수이거나 예상가격이 높은 선수의 파일은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3일째로 접어들면서 스카우터들은 신인 선수들의 명단을 판단이 확실해진 유망주 부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로 구분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관심은 누구를 선발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빌리가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오하이오 출신의 중견수 닉 스위셔였다. 그는 스카우터들이 사랑하는 원초적 재능을 가진데다가 빌리가 중시하는 성적 통계도 뛰어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빌리 자신은 스위셔의 경기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칫 빌리가 스위셔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스위셔의 주가는 수직상승할 것이고, 이로 인해 오클랜드가 가진 드래프트 첫 번째 지명권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빌리가 두 번째로 뽑은 선수는 세인트메리 대학의 3루수 마크 티헨이었다. 티헨은 타격자세는 좋지만 파워가 부족한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티헨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자 빌리가 말했다. “좋은 타자가 파워를 가진 타자로 발전하기는 쉽지만, 힘있는 타자가 좋은 타자로 발전하기는 어렵지요.” 빌리를 보좌하는 폴이 컴퓨터에서 뽑아낸 티헨의 성적을 제시했다. “출루율 4할9푼3리, 장타율 6할2푼4리, 총 194번의 타석에서 30개의 4구를 얻었고 삼진은 17개에 불과합니다.” 스카우팅 총 책임자 에릭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 2의 제임슨 지암비(2000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를 찾는다면 이 친구가 해답이 될 것 같군.” 지암비는 오클랜드가 그를 드래프트한 다음부터 파워를 기르기 시작한 타자였다.


“이제 제레미 브라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스카우터들은 기가 막혔다.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모르던 마크 티헨이란 놈을 견뎌내고 나니 그보다 더한 작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앨러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는 삼류 중의 삼류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제레미의 뚱뚱한 몸매에 대해 불평하자 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뽑는 사람은 모델이 아닙니다. 제레미의 장점은 4구를 얻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폴이 앨라배마 대학 홈페이지를 보며 말했다. “지난 2년간 390타석에서 98개의 4구를 얻고 38개의 삼진을 당했는데 이는 마이너리그의 어떤 선수보다도 좋은 기록입니다. 21개의 홈런이 있고요.” 스카우터들과 빌리와의 논쟁에서 문제의 본질은 어떤 방식으로 유망주를 선발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빌리는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폴의 컴퓨터를 통해서였다. 폴의 노트북은 유망한 선수들을 찾아내는 최고의 도구였다. 이곳에는 의미 있는 통계수치들이 가득했다. 통계수치들은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의 근거자료가 되었으며 현장을 중시하는 스카우터들이 갖고 있는 온갖 편견들, 가령 키 작은 우완 투수나 발만 빠르고 왜소한 타자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레미에 대한 논쟁이 끝나자 폴이 말했다. “이제 여러분에게 8명의 타자 목록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몹시 필요로 하는 선수들입니다.” 폴이 이름을 부른 8명 모두는 대학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 싫어하거나, 심지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었다. 이들 중에 어떤 선수가 어린 시절 빌리 빈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50년을 야구와 함께 한 어떤 스카우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봐 작가 양반, 여기에 빌리 빈은 없어.” 왜 그러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말했다. “빌리는 우리 모두가 꿈꾸던 선수였으니까.” 그의 말은 스카우터들이 꿈꾸던 선수들이 일찌감치 빌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3. 깨달음


메츠에 입단한 후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한 빌리는 경기장에서 잘 뛰고 잘 던지고 잘 잡았으며 게다가 침착했다. 다만 방망이에 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헛스윙이 반복됨에 따라 그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고, 조금이라도 재능이 발휘되는 듯 하면 누군가 시기라도 하듯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1986년 결국 메츠 구단은 빌리를 포기하고 그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  하고 말았다. 이후 3년 반 동안 빌리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사이를 오가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거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옮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성공하겠다는 의욕보다 망신만은 피하겠다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삼진아웃은 줄어들었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천부적인 파워가 사장되고 말았다. 이렇게 프로야구 선수로 보낸 8년 동안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1990년 스프링캠프와 함께 빌리는 현실 앞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이제 성인이었다. 고교 시절 만난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7개월 된 아이도 있었다. 그는 한때 모든 스카우터들이 동경하는 야구선수였지만, 야구는 그를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야구 없는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빌리는 구단 측에 스카우터 일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이로써 빌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여 온 부질없는 천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오클랜드 단장인 앨더슨은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로 경기 중의 전략은 물론 선수평가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야구인들의 경험과 직감보다는 과학적 통계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야구 선수의 어떤 면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에 앨더슨은 “출루율이 높은 타자에게 돈을 써야 한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야구에서 아웃을 세 번 당하기 전까지는 어떤 플레이도 가능하다. 따라서 공격하는 팀의 입장에서 아웃의 확률을 낮출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통계는 타자가 아웃을 당하지 않을 확률, 즉 출루율이다.”


1993년 앨더슨은 스카우터로서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는 빌리 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한 뒤,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야구철학을 담은 책자를 빌리에게 보여주었다. 빌리는 책을 읽는 동안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미 야구의 전통적 지식에 대해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품고 있던 그는 책을 접하는 순간부터 야구경기를 풀어가기 위한 급진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찾게 되었고, 그것은 단장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앨더슨은 빌리에게 야구에 관한 자신의 생각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준 빌 제임스의 책 몇 권도 선물했다. 빌리는 빌 제임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앨더슨이 다루는 내용 대부분이 빌 제임스의 이론에서 빌려온 것임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 무지의 필드


빌 제임스의 <야구 개요서> 시리즈는 전통적인 야구 개념에 대해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이었다. 1979년 판에서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의 최종목표는 점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매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공격부문 순위표를 만들면서 팀 성적의 첫째 목록에 가장 많은 점수를 기록한 팀이 아닌 최고의 타율을 기록한 팀을 올려놓는다. 하지만 공격의 최고 목표는 가장 많은 점수를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는 이어서 점수는 어떤 식으로 획득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일정한 수의 4구, 안타, 도루 등이 주어질 때 각 팀이 이를 통해 얻는 점수가 얼마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임스에 의해 ‘팀이 창출한 점수’라고 명명된 방정식 모양은 다음과 같다.  


팀 창출 점수 = (안타 + 4사구) x 총잔루수 / (타석 + 4사구)    


이 방정식은 그동안 야구 관계자들이 공격분야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지녔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공식에서 중요한 요소인 4구와 장타율의 가치는 별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임스가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던 타율과 도루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던 것이다.


5. 제레미 브라운 스페셜


2002년 드래프트 예정일 아침 빌리는 사무실에서 남부지역을 담당하는 스카우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카우터는 지난 며칠간 제레미 브라운에게 구단의 의견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 친구 우리말 잘 알아듣던가?” 빌리가 물었다. “그 아이는 우리가 1라운드 35번째로 자신을 지명할 거라고 했더니 믿지 못하더군요.” 제레미는 전통적인 스카우터의 눈에는 형편없는 체격조건의 삼류 선수였다. 제레미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카우터는 제레미에게 두 가지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1라운드 35번째 지명자가 통상 받는 액수에서 백만 달러나 모자라는 35만 달러만 받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을 빼라는 것이었다. 드래프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라운드 35번째 지명권이 다가왔다. 제레미는 부모와 여자 친구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자기가 한 말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자신의 이름이 불린 이후에야 사라질 수 있었다. “오클랜드는 앨라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 브라운을 지명합니다.” 그 순간 제레미의 집 전화기는 가족, 친지, 에이전트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불통이 되었다.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비슷했다. 그들은 만일 20명의 희망자 명단이 있다면 드래프트에서 3명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예외적인 선수수급 방식은 희망자 명단 20명 가운데 13명의 선수 확보라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그 중 몇몇은 너무 작고 마르거나 뚱뚱하고 느리다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도 있고, 파워가 없는 타자도 있었다. 심지어 드래프트에 오른 것조차 기적으로 여겨지는 애송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가 무엇이든 빌리는 상관없었다. 그는 야구만 하는 선수들을 드래프트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증권가에 새로운 큰손이 등장하여 채식주의자 전문 식당의 주식과 전기 자동차 회사 주식들만 사들이는 것과 비슷했다. 엉뚱하기는 했지만 그의 방식은 참신했고 그것은 오클랜드가 2류급 선수들을 위해 쏘아 올린 희망의 축포였다.  


빌리 빈은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제국에서 전통의 관습과 의식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고와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철저하게 자신과 닮지 않은 선수들을 찾아내려는 욕구에 있었다. 즉 빌리는 자신의 안티테제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던 것이고, 기어이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한 여행의 첫 번째 결과물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훌륭해야 한다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야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었고, 대학을 나온 선수들이었다.  


6.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끈 과학

적은 돈으로 많은 경기를 이기고 있던 오클랜드는 2002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행운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선수단 연봉은 전년에 비해 줄어들었고 그들이 소유한 세 명의 스타 선수(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자니 데이먼, 제임슨 지암비)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다른 구단으로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은 시즌 시작에 앞서 오클랜드가 2001년 거둔 102승보다 7승이 적은 95승을 기록하면서 2002년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스타 선수를 방출함으로 인해 이 팀이 실제 잃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마무리 투수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을 보자. 그는 1999년 뉴욕 메츠에서 트레이드 되어 올 때 마이너리거였다. 마이너리그의 별 볼일 없는 투수를 유능한 빅리그의 마무리 투수로 바꾸면서 그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는 순간 요구하는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솜씨의 핵심에는 마무리투수는 사오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낫다는 빌리의 철학이 깔려 있다. 빌리는 언제든지 평균보다 약간 더 우수한 투수를 선택, 마무리 보직을 맡겨서 그에게 찬란한 세이브 성적을 얻게 한 뒤, 그것으로 시장에서 비싼 값이 매겨지게 만들 수 있다. 이스링하우젠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선수인 셈이다.  


그러나 중견수 자니 데이먼은 성격이 달랐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데이먼은 도루 능력을 갖춘 나무랄 데 없는 선두타자였다. 하지만 출루율을 가치있게 여기는 폴의 관점에서 데이먼은 평균적인 공격능력을 갖춘 대체가능한 선수였다. 문제는 데이먼의 수비력은 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폴은 데이먼을 테렌스 롱이라는 중견수로 대체할 경우 손실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았다. 손해비용을 경기당 잃을 수 있는 점수로 환산하자 매 10번의 경기당 1점이라는 수치로 나타났다. 결국 폴은 데이먼의 수비능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간 800만 달러를 지불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먼과 이스링하우젠과의 결별은 비록 그들이 검증된 스타이긴 해도 오클랜드에게 큰 충격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클랜드가 이 두 선수만 잃는 것으로 끝났더라면 폴의 컴퓨터는 2002년에도 자기 팀이 2001년과 똑같은 경기 수만큼 이길 것이라는 예상결과를 산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제임슨 지암비까지 잃었다는 것이다. 지암비는 메이저리그에서 점수를 산출해내는 부분에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전문가였고, 경기 중에 가장 효율적으로 활약하는 공격수였기 때문이다.           


7. 지암비의 허점


폴은 외부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설치된 장애물을 스스로 뚫고 들어간 빅리그 최초의 외부인이었다. 빌리가 두 개의 대립국가(‘실제 야구 참가’라는 봉건국과 ‘야구 잘하는 법 연구’라는 공화국)사이에 다리를 놓은 인물이라면, 폴은 제일 먼저 그곳을 건넌 사람이었다. 그는 오른손에는 컴퓨터를 들고, 왼손에는 빌 제임스의 사상을 들고 있었다.


2002년 초 어느 날 폴의 질문은 “왜 제이슨 지암비(아메리칸리그 최고 1루수)를 방출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오클랜드가 지암비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와 같은 1루수는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오클랜드는 그런 식으로 그의 공백을 메울 돈도 없었다. 대신 지암비의 복합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가능했다. 지암비의 가장 강력한 공격 부문인 출루율을 대체하기 위해 폴이 강구한 방식은 다른 팀에서 원치 않아 저렴하게 사 온 세 명의 선수(데이빗 져스티스, 스캇 해티버그, 제레미 지암비)들을 내부적으로 승격시키는 방법이었다. 제레미 지암비(제이슨 지암비의 동생)는 느린 발을 가진 선수로 유명하지만 오클랜드에서는 좌익수 자리를 맡고 있다. 오클랜드가 좌익수 자리에 허둥대는 어릿광대를 세운 것은 그의 타격 능력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이다.


양키스에서 데려온 데이빗 저스티스의 결함은 나이였다. 대부분의 구단이 36세의 그를 퇴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폴의 말로는 4구를 많이 얻는 선수들은 나이를 먹으면 더욱 많은 4구를 얻어낸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데이빗은 누구보다도 4구를 잘 얻는 선수였다. 그의 홈런을 때려내던 힘의 상당 부분이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클랜드 구단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로서는 그의 우수한 출루율로부터 몇 방울이라도 짜낼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지암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세 개의 부속품 중 가장 끝 부품에 속하는 스캇 해티버그도 타석에서의 인내심이라는 그리 특별하지 않는 장점을 지닌 선수이다. 그러나 다른 구단이 보는 해티버그는 점수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포수로서의 능력을 겸비한 선수가 아니라, 우선 포수로서의 능력을 먼저 갖추고 그 뒤에 몇 개씩의 안타를 쳐낼 수 있는 선수였다. 그랬기에 그의 송구하는 쪽 팔꿈치 신경이 파열되었을 때 그의 포수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고 이곳에 싼값으로 올 수 있었다.


8. 스캇 해티버그의 부활


론 워시는 오클랜드의 내야 수비 코치다. 그의 주 임무는 빌리가 데려다 놓은 온갖 허접한 선수들을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훈련시켜서 최소한 홈 팬들의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바꿔놓는 일이다. 워시에게 스캇 해티버그를 6주 만에 오클랜드의 선발 1루수로 만들어 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22년간 포수를 했던 해티가 스프링캠프에서 겪은 1루수로서의 생활은 공황 상태의 연속이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의 수비 능력이 나아지지 않자 1루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빌리는 젊은 유망주인 페냐를 트레이드 해 왔다. 그러나 시즌 초반 오클랜드의 팀 성적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빌리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팀의 선발멤버 3명을 쫓아내 버렸는데 그 중에는 페냐도 포함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팀의 정규 1루수가 사라지자 임무는 해티에게로 떨어졌다. 1루수로서의 경기는 포수였을 때보다 훨씬 어려웠다. 공이 유격수나 3루수 앞에서 튀는가 싶더니, 어느새 준비 자세를 갖추지 못한 그에게로 날라 왔고, 내야 플라이는 잠시 시야에서 놓쳤다 싶으면 어느새 10미터 이상 떨어진 파울 지역까지 날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1루수 수비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도 차츰 그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6월이 끝나갈 무렵부터 그는 자신감을 갖고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던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에게는 ‘평균 이상의 1루수’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공격으로 점수를 얻을 때 팀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 타격자세에 있었다. 그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자주 안타를 때려냈고 삼진을 당하는 일도 드물었다. 해티가 지닌 이런 자질은 팀 공격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시장에서는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질은 어떻게 획득되는 것일까? 그것은 학습된 기술인가 개인의 천성인가? 만약 천성이라면 그것은 신체적 재능인가, 아니면 정신적 기질인가? 해티는 이에 대해 전해줄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떤 타자든지 빅리그에 들어서면 그의 허점은 각 팀들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된다. 고치지 못하면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해티는 누구보다도 이 이론을 잘 습득한 선수였다. 그는 각 투수가 던지는 특정한 투구에 집중하고자 했고, 그것을 늘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덕분에 자신이 칠 수 있는 것과 칠 수 없는 것에 대해 정확히 터득할 수 있었다.


시즌이 끝나자 폴은 오클랜드의 전 타자들의 성적을 색다른 방식으로 측정했다. 그는 각 타자들이 타석에서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것은 해당 타자들을 똑같이 여러번 세워서 라인업을 구성했을 때 얼마나 많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폴의 계산에 의하면 아홉 명의 해티버그로 구성된 라인업은 연간 940점 내지 950점의 점수를 기록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뉴욕 양키스는 897점의 점수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해티버그가 아홉 명만 있다면 메이저리그 최상의 공격 팀을 이루는 것이다.     


9. 트레이드 테이블


오클랜드가 시즌 후반에 대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다른 팀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면 성적이 나쁜 팀은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한다. 희망을 포기하면 비용부터 삭감하고 싶어지고, 가장 먼저 선수들부터 무더기로 팔아 치우게 한다. 이런 식으로 선수들의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한다. 시즌 중반에 빌리가 데려오려고 하는 선수들의 가격은 시즌 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액수들이다. 시즌 초 빌리의 목표는 6월 말까지 경쟁에서 완전히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성적만 유지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빌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들을 쇼핑하기 시작한다. 2002년 7월 30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될 때까지 그가 데려오려고 신경을 집중한 선수는 클리블랜드의 좌완투수 린콘이었다. 장터에 나선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린콘의 연봉 중 남은 기간 동안 지급될 액수는 불과 50만 8천 달러지만 구단주는 그 돈을 내주는 것조차 아까워하고 있었다. 따라서 린콘을 얻으려면 이쪽에서 제시한 이적료가 최상임을 클리블랜드 측에 설득시키는 것 이외에 린콘의 나머지 봉급을 다른 수단을 써서라도 지불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빌리의 아이디어는 오클랜드의 실력있는 좌완투수 베나프로를 경매시장에 내놓는 것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가 린콘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단장 브라이언 새빈에게 베나프로를 저렴한 가격으로 건네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것으로 순식간에 린콘을 사올 자금의 일부(베나프로의 연봉)를 저축함과 동시에 경쟁 팀(샌프란시스코)에게 베나프로를 대안으로 선택할 기회를 줌으로써 린콘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욕 메츠도 린콘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빌리는 메츠의 단장 스티브 필립스에게 베나프로를 팔겠다고 제안하고 그 대가로 현금과 마이너리그 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새빈과 필립스가 빌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빌리는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모든 위험을 자신이 부담하고 린콘을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린콘을 데려옴으로써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구원투수 매그난테에게 방출을 통보하였다.  


방출을 통보 받은 매그난테는 말없이 라커룸을 나섰다. 젊은 때라면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에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겠지만 전성기가 지난 지금은 침묵만이 그가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편 조금 전까지 클리블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린콘도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갈 것이란 소문이 떠돌던 것이 불과 2~3일 전인데 하루아침에 오클랜드의 유니폼을, 그것도 오클랜드 대 클리블랜드의 시합 직전에 입게 되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빌리의 트레이드를 지켜보던 폴은 문득 주식을 거래하는 것과 인간을 거래하는 것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의 거래는 잘못하면 불쾌감이 따른다. 빌리는 자신의 일에 그런 불쾌감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선수란 장기판의 말과 같기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적과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10. 투수 해부하기


오클랜드의 투수들 가운데 채드 브랫포드는 정통적 개념과는 거리가 먼 투수이다. 하지만 그는 팔의 힘이 아닌 상상력을 이용해서 끝내 빅리그로 올라섰다. 그는 원래 뛰어난 투수가 아니었다. 15세에 고교 야구부에 합류한 채드는 투수가 되길 원했지만 코치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코치에게 사이드암 투구법을 배우면서 채드의 직구는 실전에 사용할 만한 무기로 변했다. 물론 그가 사이드암 투구 방식을 체득한 것은 팔이 마비될 정도로 매일 연습을 한 덕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채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직구는 웃음거리만 면하는 수준이었고 가족을 건사하느라 시즌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나 1998년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투구자세를 한층 더 낮춰 아예 타자보다 낮은 위치에서 공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추락에 대한 불안감이 그로 하여금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볼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서 타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는 여세를 몰아 꿈에 그리던 빅리그 입성을 하게 된다. 1999년 스프링캠프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가슴속에는 ‘나도 메이저리거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화이트삭스는 그의 성공을 신뢰하지 않았다. 팀 관계자들은 그가 빅리그 타자에게는 통할 수 없는 속임수를 사용하는 투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그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그로부터 2년 간을 마이너리그 선수로 뛰면서 메이저리그의 땜질용 투수 역할을 하던 그를 어떤 팀이 지켜보고 있었다.


폴은 화이트삭스가 이러한 투수를 썩혀 두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빌리에게 채드를 오클랜드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설득했다. 채드를 주목한 또 한 사람은 보로스라는 환타지 야구를 즐기는 법률가였는데 그는 투수의 가치평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투수의 가치를 평가할 때 공을 던진 뒤 안타를 맞지 않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보로스는 투수들은 일단 공이 인플레이 상태가 된 이후에는 안타를 막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투수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홈런과 4구, 아니면 삼진으로 공이 인플레이 상태가 될 가능성 자체를 막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빅리그의 누구도 보로스의 주장을 검토하지 않았지만 폴은 달랐다. 그의 기사를 본 폴의 반응은 “빌 제임스에 버금가는 사람이 보로스다.”라는 평가였고, 그에 앞서 보인 반응이 “채드를 잡아야 한다.”였다.


채드는 폴의 컴퓨터에 몇 가지 차별화된 성적을 지닌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웬만해서 타자를 4구로 거르는 일이 없다. 홈런도 잘 내주지 않고, 삼진은 이닝당 한 개꼴로 기록하고 있다. 또 장타를 잘 허용하지 않았다. 폴이 가장 흡족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상하게도 스카우터들이 그를 싫어했다는 점이다. 빌리는 2000년 시즌이 끝날 무렵 화이트삭스 단장인 윌리엄즈에게 “투수 명단에서 열두 번째나 열세 번째 자리를 차지할 만한 선수를 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화이트삭스에 트레이드 희망자 명단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윌리엄즈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침내 채드를 거명했다. 하지만 그가 허리를 다쳤기 때문에 당장 보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빌리가 대답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11. 인간적인 요소


2002년 9월의 어느 날 오클랜드는 미네소타를 상대로 20연승에 도전하고 있었다. 빌리는 자신의 팀이 경기를 벌이는 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는 야구란 확률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TV에 차베스라는 선수가 비치자 빌리는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24살의 그가 얼마나 밝은 미래를 갖고 있는지를 필자에게 설명했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인간의 미래에 대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간단했다. 야구선수들은 모두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고, 패턴은 기록을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는 차베스가 빌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거나 막 휘둘러' 식의 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리는 내 말을 가볍게 일축했다. "그는 젊고 잘 생겼고, '아무거나 막 휘둘러'도 나름대로 잘 소화하고 있잖아요. 당신이라면 저 나이에 어땠을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은 그렇지 못한 빌리의 모습이었다.    


TV는 오클랜드의 중견수 테렌스가 내야땅볼을 치고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내야땅볼을 치면 천천히 뛰어가다가 이내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빌리에 따르면 며칠 전 테렌스는 주차장에서 누군가 자신의 차에 흠집을 낸 것을 발견했다. 그 소식을 들은 빌리는 테렌스의 팬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범인이라면서 보내온 이메일을 테렌스에게 보여주었다. 이 팬은 테렌스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한 것이 너무 화가 나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 사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작지 않았다.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조깅하던 습관을 버리고 최대한 빨리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시합에서 오클랜드의 포수 에르난데스는 바깥쪽 직구 두 개를 밀어 쳐서 모두 2루타를 만들어내었다. 이것도 색다른 현상이었다. 시즌 내내 그는 바깥쪽 공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리가 에르난데스의 라커룸을 찾아와서 내기를 걸었다. 그가 바깥쪽 공을 만날 때마다 밀어 쳐서 안타를 때려낸다면 빌리가 50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르는 사실은 자신들이 빌리의 교묘한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바꾸려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 아이디어의 속도


2002년 시즌 종료와 함께 오클랜드가 플레이오프 진출 팀으로 확정된 이후 코치들과 선수들, 신문기자들 모두가 빌리의 번트와 도루 기피증에 대해 심각한 근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정규시즌의 성적은 잊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오클랜드가 트윈스에 패하자 언론은 오클랜드가 투수력과 홈런에만 의존하고 번트나 도루에 의해 점수를 제조하는 법을 모르기에 패배를 자초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플레이오프는 합리적으로 팀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킬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작은 오차 범위의 문제점만으로도 충분히 실패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파머는 메이저리그에서 실력 차이로 발생하는 경기당 점수의 차이는 1점 정도지만, 운에 좌우되는 점수는 4점 정도라고 계산한 바 있다. 다만 여러 팀이 오랫동안 경기를 하는 시즌 중에는 운이 공평하게 돌아가므로 결국 최후에 빛을 발하는 것은 실력 차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처럼 몇 번의 시합으로 끝나는 승부라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가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메이저리그의 시즌 운영 방식은 구조적으로 합리성을 비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리는 자신의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것을 보고도 놀랄 만큼 침착했다. 필자가 왜 그렇게 초연한지 묻자 그는 말했다. "내 전략은 플레이오프에는 별 효력이 없거든요."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빌리와 계약을 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에게는 5년 간 1,250만 달러라는 연봉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그 어떤 단장들도 받아보지 못했던 큰 액수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 뿐이었다. 문제는 레드삭스라고 하는 그가 별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구단을 위해 일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특수한 재능을 증명해 보이는 것도 나름의 가치는 있었다. 그것도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가치였다. 그러나 그 점이 또한 그의 정체성에 모순을 일으키고 있었다. 결국 빌리는 레드삭스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사실 하나를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평생 돈을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 적이 딱 한 번(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메츠 구단과 계약한 것)있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소."


필자는 빌리가 특별한 사고만을 담아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담아두었던 사고들은 오늘도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런 사고들 덕분에 빌리는 행동인이 될 수 있었고, 또 행동인이 되었기에 뚜렷한 업적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평생 알릴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에게는 삶의 구원자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선수들이 오늘도 그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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