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의 종류 & 동서양의 인물
역사가 사마천은 흉노에게 포로가 된 패장을 찬양했다하여 황제의 노여움을 사 중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그 형을 면제받을 수 있는 50만냥의 속전을 마련하지 못해서 거세형을 받았고, 남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때부터 사마천은 거세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마음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패배의식을 딛고 일어서 {사기(史記)}라는 거작을 남겼다.
손자(손무)는 발을 잘리는 단근형을 받고 절름발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콤플렉스를 승화시켜 그 유명한 {손자병법(兵法)}을 남겼다.
일본의 무사 다테 마사무네는 어릴 적에 앓은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오른쪽 눈을 잃었다. 그는 결국 애꾸눈이던 자신의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스스로를 독안룡이라 칭하며, 에도 막부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그리스의 대웅변가 데모스테네스는 반벙어리였다. 그 열등감을 보상코자 자갈을 물고 해변에 서서 파도소리를 이기는 발성연습을 했다고 한다.
베토벤은 점차 청력을 잃어갔지만, 그럼에도 굴하지 않고 교향곡 9번 ‘합창’ 등을 작곡하였다.
http://ko.wikipedia.org/wiki/%EB%A3%A8%ED%8A%B8%EB%B9%84%ED%9E%88_%ED%8C%90_%EB%B2%A0%ED%86%A0%EB%B2%A4#.EC.B2.AD.EB.A0.A5_.EC.83.81.EC.8B.A4
미국의 대통령 중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통령직에 네 번이나 당선된 루즈벨트는 찬물에 빠진 이후 소아마비 진단을 받고 걷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뼈를 깎는 재활 치료와 노력을 하여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정계에 복귀하였다. 이후 그는 수차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오늘날까지 미국인들에게서 존경 받는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케플러는 기존 사회로부터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던 맨 아래 계층 출신이었다. 게다가 다른 과학자들처럼 사회적 출세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자신의 사회적, 종교적 여건상 출세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포기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케플러는 신의 세계의 상징이던 원에서 과감하게 탈피해 행성의 운동을 타원으로 보았으며, 그것을 주장하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케플러의 유년 시절은 암울했다. 스스로 아버지를 “싸우기 좋아하고 범죄성이 농후한 인물”, 어머니를 “마르고 수다스러우며 성격이 고약한 사람”으로 묘사할 정도로 가족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신교도라는 이유로 수학교사 자리를 박탈당하고 오스트리아에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절망감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케플러는 자신의 미래가 오직 티코 브라헤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으며 그가 남긴 데이터에 근거해 수학적 천문학이라는 분야에 외곬으로 몰입했다.
사회적 열등감을 경쟁심으로 표출한 뉴턴
뉴턴은 왕족들의 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는 영광을 누렸지만 자기 이름도 쓸 줄 모르는 가난한 농부를 아버지로 둔 하층 출신이라는 사실이 항상 열등감을 가지게 했다. 그러한 사회적 열등감은 지적 경쟁심으로 표출됐다. 뉴턴은 왕립학회의 회장이 됐을 때 회원들을 동원해 독일의 라이프니츠와 미적분법의 발견을 두고 치사할 정도의 우선권 논쟁을 벌였다. 만유인력의 기본을 이루는 행성을 움직이는 힘의 본성에 대해 연구하도록 도와준 후크와 플램스티드를 비난하기도 했다. 뉴턴은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비양심적으로 행동했으며, 자신보다 뛰어난 동료를 인정하는 것에는 무척이나 인색했다. 또 오만으로 지적 좌절감을 감추기도 했다. 뉴턴은 가까운 친구가 하나도 없었으며,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인생의 후반부에는 비밀스런 연금술 연구와 성서의 재해석을 유일한 친구로 삼고 지냈을 뿐이었다.
절망감을 연구로 승화시킨 갈릴레이
갈릴레이는 시대가 주는 제약에 과감하게 맞서기보다는 우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망원경으로 달과 태양을 들여다보고, 태양흑점의 변화를 새로운 우주론의 구체적 증거로 내세우면서 예수회 신부들과 맞섰다. 결국 종교재판에 회부됐던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중얼거린 적이 없다. 그는 과감하게 시대적 제약에 직접적으로 대항하는 대신 고해자의 옷을 입고 코페르니쿠스 주의를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참회의 글을 썼으며, 영구적인 가택연금을 당했다. 사방이 막힌 듯한 절망감에 빠진 갈릴레이는 나머지 생을 역학 연구에 몰두했다. 이것은 뉴턴 물리학의 초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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