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정당정치와 선거제도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이념에서 정당 정치가 설 자리는 없었다. 대의정치는 직접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대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당은 또한 초기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초기 대의정치 이념에서도 이른바 ‘파당’으로 취급되어 금기시 되었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자본주의 등장 초기에 대의정치가 발달한 이후 서서히 정당화(legitimation)되어 온 것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당정치가 민주주의 실현의 중요한 제도적 표현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민주주의 이론가들 사이에서도 대의정치에 관한 첨예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쟁은 국가 규모의 팽창이라는 민주주의 작동의 범위 확대와 이해관계의 집단화라는 현상을 핵심적 배경으로 하였다. 즉 국가 규모가 팽창하고 인구가 증가하여 직접민주주의의 한계가 뚜렷해짐으로써 대의정치의 필연성이 생겨나는 한편, 이해관계가 집단화됨으로써 각 집단과 계층의 이익을 집약하고 표출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정당정치의 발달은 그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점차 민주주의와 배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게 되었고, 오늘날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문제점은 정당의 사회적 역할과 내부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이다. 현대의 정당은 사회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집약하고 표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목표를 실현한다는 고유의 역할을 벗어나 직업정치인들의 독자적 이해관계 집단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과두제적 철칙을 기정사실화해 가고 있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현상하는 투표거부와 정당혐오증은 정당의 부정적 변화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구체적 저항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적지 않은 시민과 사회집단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기 위해 정당의 형태를 탈피해 새로운 형태의 사회운동을 조직해 온 것은 분명 정당정치의 위기를 표현하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실현과 관련해 그 도구적 필요에 의해 고안된 장치가 오히려 민주주의의 실현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하는 것이다.
더욱 심각해지는 현상들과 새로운 문제점들에 천착하여 이론적 입장에서나마 새로운 대의정치의 방법들을 강구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대의정치 발달의 초기부터 현자들 사이에서는 그와 관련된 우려와 대안들이 제시된 바 있다. 그 적지 않은 부분은 현재에도 유용하지만, 또 적지 않은 부분은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기도 한다. 따라서 현대의 논의들뿐만 아니라, 19세기 당시부터 논의된 정당정치와 대의정치의 민주주의 논쟁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한편, 새로운 현상과 문제점들에도 천착하여 이론적 입장에서나마 새로운 대의정치의 방법들을 고민할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
1) 민주주의 이념에 따른 정당정치의 정당화(legitimation)과정
정당정치의 정당화 과정은 우선 대의정치를 둘러싼 논쟁을 거쳐 왔다. 고대 아테네 직접민주주의를 구태여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근의 아렌트조차 어느 누구도 공적 권력을 공유하지 않고 공적 권력에 참여하지 않는 한 행복하거나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하였다.1) 현대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자유로운 표현, 토론, 결정의 행위를 의미하는 이른바 진정한 정치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오직 정치적 대표자들뿐이라는 것이다. 대의정치는 시민체의 광범위한 부문을 사적 관심에 몰두하도록 제약하며, 그로 인해 공적 자유와 공적 행복이 소수의 특권으로 전락한 과두제적 성격을 띤다고 한다.2)
밀 또한 초기에는 대의정치의 민주성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후기에 와서는 그 부작용과 단점을 인정하지만 다른 바람직한 대안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곧 방대한 인구가 모여 살고 지리적․물리적 한계를 갖는 대규모 공동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업무에 참여할 수 없거나 극히 적은 숫자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밀은 모든 시민에 의한 정부일 경우는 최고의 능력을 갖춘 현명한 사람들이 기술, 지식, 경험을 결여한 다수에 의해 압도될 수 있다는 플라톤식의 수호자 민주주의적 우려도 표명한다.3) 따라서 현대 상황에서 “이상적으로 최선의 정체는 인민이 그들 자신에 의해 정기적으로 선출되는 대표자를 통해 궁극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4)
이와 같이 대의정치의 필연성은 정치공동체의 규모 확대에 따른 직접민주주의의 불가능성과 그에 따른 전문성과 효율성의 논리에 근거하여 대의민주주의로 발전해 왔다. 물론 대의정치의 관료성과 과두적 성격을 비판하는 입장도 적지 않으며, 그 대안적 형태로 평의회민주의나 무정부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논의도 등장하였다. 그러나 크게 보아 전자는 당내민주주의 문제와 결부되고 후자는 대의정치 테두리 내에서 고안된 대안으로 보아 여기에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기로 한다.
대의정치가 일정하게 수용되면서 정당정치의 정당화 작업이 시작된다. 물론 시기적으로 뚜렷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석적으로는 구분이 필요하다. 의회와 정부의 대의제에 대한 논의는 대부분 종식되었으나, 정당정치에 대한 수용은 정당조직의 발전과정과 관련해 역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공공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권력획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을 정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적 개념정의에 불과할 뿐, 현실정치는 그와 다른 것이 사실이다. 그에 따라 공공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 않고 권력획득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을 흔히 ‘파당(派黨)’이라 하여 비난의 대상으로 삼았다.5) 그러나 현실을 반영해 18세기말까지만 하여도 정당이 진실로 공공이익의 실현을 목표로 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아 일반적으로 정당을 파당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후 서구에 있어 산업화의 성숙과 민주정치의 발전에 따라 정당을 파당시하는 경향은 극복되었으나, 사회균열이론에서와 같이 정당이 대표하는 사회일반의 공익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는 언제든 다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로 남아 있다. 게다가 현대에 와서 ‘정치 계급’이 형성됨으로써 정당의 역할은 더욱 의문시되고 있다.
2) 선거제도와 정당민주주의
선거자체와 관련된 정당민주주의 논의는 일반적 수준에서의 논의와 선거제도의 구체적 형태에 따른 공공성과 대표성 논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도 물론 공천이나 후보자 선출 및 의사결정과정에 따른 당내민주주의 논의가 중요하지만, 이 문제는 따로 논의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공직 선거와 관련된 부분만 다루기로 한다.
선거제도와 정당민주주의의 일반적 논의로는 막스 베버의 논의가 대표적으로 소개할 만 하다. 의회제 정부와 경쟁적 정당체계를 갖춘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데 있어 베버는 19세기와 20세기의 다수의 자유주의자들과 비슷한 입장에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베버는 보통선거권의 실시로 정당이 정치관계의 핵심을 차지하게 되고 정치생활의 동력성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것도 보았다. 곧 선거권의 확대와 정당정치의 발달로 인하여 국가정책이 합리적 사유 과정에 의해 해결되고, 공적 혹은 일반적 이익에 의해서만 이끌어지는 장소로 의회를 정의하는 고전적 자유주의의 개념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6)
선거권의 확대라는 것은 국가비상시나 전쟁이 아닌 일상적인 환경 속에서 이익이 분열되고 분화되어 나타나는 유권자들과 사회집단을 조직하기 위한 정치적 결사체의 확대를 의미한다. 이 때 다원적인 사회세력은 공공업무에 대한 영향력 확보를 위해 경쟁하며, 정치적 결사체들은 자원을 동원하고 재정자금을 확보하여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따라서 정당은 이상적인 정치적 원칙을 실현하고자 할 수도 있으나, 정당의 활동이 선거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에 기반을 두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정당은 무엇보다 선거투쟁과 그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서, 경쟁정당의 발달은 불가피하게 의회정치의 속성을 변화시킨다고 한다. 정당이라는 수단은 그 스스로를 충성심 창출의 중심부로 구축함으로써, 선출된 대의원에 바탕을 두더라도 그 대의원들은 잘 훈련된 ‘예스맨’보다 낫지 않다는 것이다.7)
정당의 출현과 활동이 선거권의 확대를 통해 관료제로 연결되는 경로는 다음의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우려는 선거가 점차 전문화되고 유권자의 수가 증가하며 정당 또한 거대해지고 전문화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에 따라 선거제도의 민주성 담보를 위한 노력과 연구는 다양한 선거제도를 발전시키는 한편 선거공영제와 같은 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인 선거제도와 관련해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모든 국민은 주권자로서 평등한 선거권을 가지므로 선거는 모든 표의 등가성과 대표 구성의 비례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선거의 공정성은 운영의 묘미에 앞서 제도상의 결함에 따른 선거의 불비례로 나타나는 것이 현실인데, 선거방식, 1선거구당 의석수, 선거구별 유권자 수의 차이와 지지표의 분포가 주요 원인이다.
선거방식은 단순 다수대표제와 절대 다수대표제 그리고 비례대표제와 추가의석할당제 및 혼합방식으로 대별된다. 단순다수제는 단순 최다득표자를, 절대 다수제는 과반수 이상 득표자를 당선으로 확정하며, 추가의석할당제는 한국의 전국구와 같이 선거후 일정한 의석을 추가 배분하는 방식이다. 선거의 불비례 정도를 선거방식만으로 가늠할 수는 없지만, 비례대표제보다 다수대표제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로버트 달은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선거제도로 비례대표제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8)
그러나 선거의 불비례는 일반적으로 선거방식보다 1선거구당 의석수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1구 다수제의 폐해를 경험한 일본을 비롯한 다수대표제 국가들은 대개 1구1인제를 채택하고 있다. 선거구별 유권자 수의 차이도 미국에서 특히 큰 해악을 보였던 게리맨더링을 야기했다. 이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선거방식과 관계없이 게리맨더링의 가능성은 어디에나 상존하고 있다. 선거구별 유권자수의 차이는 지지표의 분포와 결합될 때 더욱 큰 불공정성을 낳는다. 선거구당 유권자수가 적을수록 그 지역 유권자들이 상대적으로 과잉대변되며, 어느 당이든 지지율이 높은 지역의 유권자수가 적을수록 지지율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농민들의 지지를 많이 받았던 과거 일본 자민당과 프랑스 공화당이 대표적 예이다. 주민수뿐만 아니라 교통과 면적 등 사회조건을 감안하는 선거구 획정에 따라 인구밀도가 낮은 농촌지역은 대개 유권자가 적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제도적 문제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론에서 정당정치와 관련해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적극적으로 고려되지 못했다. 일반 이론의 수준에서 자본주의적 보통선거권이 갖는 관료제 촉진경향이나 비민주성들이 언급되기는 했으나, 구체적 제도형태와 관련되어서는 논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각국의 역사적 배경과 고유한 특수성에 입각하여 이러한 제도적 구체성들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선거제도와 정당민주주의라는 세부 주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베버 이후의 보통선거권과 정당정치의 민주성 문제를 일반적 수준에서 정리하면서, 더 나아가 구체적 사례나 각 선거제도들을 정당정치의 민주성 시각에서 비교 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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