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주권국가의 출현과 근대국제정치질서의 형성-
I. 유럽국제질서의 역사와 근대질서의 출현
고대 그리이스 도시국가체제
로마 제국 시대
중세 봉건시대
근대로의 이행: 주권국가질서
현대세계
I-1. 그리이스의 도시국가체제 이전의 유럽
신석기 시대와 에게문명의 시작
이집트 왕조
청동기, 철기 시대
중국 - 은, 주나라 시대
I-2(1). 그리이스 도시국가체제의 성립과 펠로폰네소스전쟁
스파르타 시 탄생
로마건국
아테네, 솔론의 개혁
페르시아 전쟁
펠로폰네소스전쟁
I-3. 로마제국의 성립과 서유럽
게르만 민족 대이동의 발단, 서고트 족, 도나우 강 남쪽으로 이동
동, 서로마제국의 분할
부르군디족 라인상류로 이동
프랑크족, 라인강을 건너 벨기카로 이동
서로마제국 멸망
I-4(1). 중세봉건질서의 성립과 발전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왕조의 출현
피핀 1세, 카롤링거 왕조의 시조
샤를르 1세, Charlemagne의 치하
Norman인, 잉글랜드 침입, 200년간 지배
액버트의 잉글랜드 통일, 앵글로색슨 왕국성립
I-4(2). 중세봉건질서의 성립과 발전
베르덩조약, 왕국 3분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기원
오토대제, 신성로마제국의 성립
프랑스왕국, 카페조의 지배
신성로마제국, 프랑켄가의 지배
영국 내 노르만조(∼1154)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카놋사의 굴욕
I-4(3). 중세봉건질서의 성립과 발전
십자군시대
신성로마제국 내 이탈리아의 도시 발달, 점차 독자적으로 됨.
신성로마제국 내 루돌프 1세의 통치, 합스부르크가 황제의 시작
프랑스 왕국, 3부회 최초 소집
프랑스왕국, 발로와 왕조.
I-4(4). 중세봉건질서의 성립과 발전
영불간 백년전쟁
프랑스왕국, 샤를르 6, 7세의 통치
신성로마제국, 합스부르크가의 통치 시작, 알프레히트 2세
프랑스왕국-이탈리아 전쟁
I-4(5). 중세봉건질서의 성립과 발전
영국의 튜더가의 지배, 헨리7세, 전제군주권 확립
스페인의 통일완성
프랑스왕국 발로와, 오를레앙가
스페인의 카를로스1세(=카알5세), 합스부르크왕가의 시작
루터의 95개조
1534 영국 수장령 공포, 영국교회성립
I-5(1). 근대 국제질서의 성립
1618∼48, 30년 전쟁
신성로마제국의 사실상 해체
루이14세
영국내 휘그, 토리 양대 정당 창당
러시아, 피오트르 대제
I-5(2). 근대 국제질서의 성립
프로이센 왕국 성립, 호엔쫄레른 가
스페인계승전쟁, 유트레히트 조약
오스트리아 계승전쟁, 아아헨조약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
러시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I-5(3). 근대 국제질서의 성립
7년전쟁
러시아, 에카테리나 대제
오스트리아 요제프 2세
오스트리아제국 성립, 프란츠1세
나폴레옹 전쟁과 비엔나회의
II. 주권국가의 출현과 근대국제질서의 이론적 특징
II-1. 유럽 근대에 있어서 국가주권 성립의 의의
대내적 최고성을 가진 단일 정치체의 출현
근대 절대주의 왕조의 성립과 절대주의 국가간의 국제정치의 전개
대외적 배타성을 가진 주권국가의 출현
II-2. 근대 주권국가간 국제질서의 원천
국가의 생존과 안전을 둘러싼 안보경쟁의 논리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가 성장, 확산됨에 따라 경제발전에 유리한 시장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
근대국가는 영토국가, 경제국가, 식민지 국가
II-3. 주권국가간 안보와 국방의 원칙들
무정부적 조직원리 - 주권국가 상위의 권위가 없으므로 무정부적 상태
자력구제의 원칙 - 자국의 안보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
세력의 불균등한 배분구조 - 패권국가의 존재, 강대국들의 수에 따른 구조
II-4. 근대국제질서의 안보구조에 대한 이론적 분석들
현실주의 - 국가간 안보를 경쟁적으로 인식.
세력팽창을 위한 경쟁과 폭력의 사용
자유주의 - 상호간의 협력에 의해 안보제도의 출현이 가능하다고 인식.
II-5. 현실주의가 보는 안보질서의 근원 - 세력균형의 특징
어떠한 국가도 절대적 지배를 갖지 않는다.
전면전의 부재
패자는 체제에 재편입된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맹; 따라서 패전국에 가혹하지 않다.
II-6. 세력균형의 파괴조건
세계제패를 도모하는 정복자의 등장.
신무기 발명으로 인한 세력균형의 변모 파괴
새로운 종교, 이념이 세력균형을 파괴.
세력균형체제의 외부에서 세력균형을 파괴
약소국이 소멸
힘의 극화현상.
민주주의, 입헌주의의 영향
국제법, 국제기구에 의한 안보문제 취급
II-7(1). 근대질서의 성립의 역사
30년전쟁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보히미아 신교도 탄압
세력균형으로 국제전화
덴마아크, 스웨덴, 프랑스가 신교측에,
에스파니아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가 황제측(구교도측)에 가담, 각국은 정치적 세력확장의 기회로
이용
II-7(2). 근대질서의 성립의 역사
부르봉왕가와 합스부르크왕가의 대립으로 변화
Westphalia 조약
신구 신앙의 자유와 신교 각파의 평등
스위스, 네덜란드의 독립을 승인
독일제후는 자주권을 인정, 분열 가속화.
II-7(3). 근대질서의 성립의 역사
종교전쟁의 총결산
최초의 국제조약
독일은 황폐화, 근대화에 낙오
국제세력의 지도적 위치가 Habsburgs-->Bourbon
Austria Habsburg의 축소
Spain의 결정적, 급속한 쇠퇴
II-7(4). 근대질서의 성립의 역사
스페인계승전쟁(1701∼13)과 7년전쟁(1756∼1763)
나폴레옹 전쟁의 발발과 19세기의 시작
1. 세력균형체제의 파괴와 복구
2. 민족주의, 자유주의의 출현과 국민군의 조직
3. 전면전, 무조건 항복 등 전쟁 양상의 변화
II-8. 결론 및 생각해 볼 문제들
1. 근대국제체제는 이전, 이후의 국제체제와 어떻게 다른가
2. 서구의 근대국제체제는 다른 지역, 예를 들어 동양에서의 국제체제와 어떻게 다른가?
3.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현재는 근대국제체제에서 탈피하고 있는가?(탈근대로의 이행)
2강. 유럽협조페제의 성립과 전개
I. 주안점
? 나폴레옹 전쟁 종식 후 각국의 입장 알기
? 비엔나회의로부터 생성된 유럽협조체제의 구성원칙과 본질
? 유럽협조체제가 19세기 유럽의 안보질서에 미친 영향
? 유럽협조체제가 변화되어 가는 과정
II. 19세기 국제정치의 특징
1. 100년간의 평화
2. 강대국간의 전쟁의 부재, 국제 국경의 철저한 준수, 조약의 준수
3. 변화가 통합되는 속도가 빠르고 부드럽다--독일과 이태리의 통일의 예
4. 지배를 위한 노력이 부재
5. 전사자 숫자, 이전에 비해 1/7, 1/8.
III. 19세기 평화의 세가지 이유
? 유럽협조 체제
? 유럽문제와 비유럽문제의 분리
? 중간적 국가들의 존재, 스위스의 영세중립, 독일 연합
IV. 사건의 전개(1)
? 제 1차 연합전선 1793-1797
? 원인
? 프랑스-독일관계
? 프랑스-법왕
? 프랑스 망명자들이 오스트리아 내부에서 군대 조직
IV. 사건의 전개(2)
? 대 프랑스 동맹 체결
? 유럽의 전복세력들에 대한 원조를 제공 약속
? 루이 16세 처형.
? 영국을 중심으로 대 프랑스 연합전선.
?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바덴, 뷔르템베르크, 바바리아, 포르투갈, 피에드몬트, 교황령, 나폴리
왕국.
IV. 사건의 전개(3)
? 1차 연합의 와해.
? 프러시아와 프랑스의 바젤조약.
? 러시아, 오스트리아도 대프랑스 연합전선에서 이탈.
? 폴란드의 3차 분할. 프랑스의 침략을 묵인하면서, 다른 지역에서 보상을 추구하는 정책.
IV. 사건의 전개(4)
? 2차 연합전선 1798-1801.
? 나폴레옹이 1798년 5. 이집트 침공, 오토만을 놓고 러시아와 대립.
? 러시아와 영국중심의 연합전선.
? 영국의 Pitt수상의 유럽개편안--비엔나 회의의 골격이 됨
IV. 사건의 전개(5)
? 러시아와 오스트리아의 대립, 99.10. 러시아의 이탈
? 1802. 3.27. 아미엥조약. 영국과 프랑스간.
? 영국의 지나친 양보. 일종의 유화정책. 휴전상태에 불과.
IV. 사건의 전개(6)
? 3차 연합전선 1805-7.
? 나폴레옹은 종신총통, 황제.
? 영국과 러시아가 대프랑스 연합전선 형성. 오스트리아 참여.
? 프랑스의 승리.
? 프러시아의 대 프랑스 전쟁선포.
? 프랑스는 베를린에 입성.
IV. 사건의 전개(7)
? 틸지트조약
? 프랑스는 전 유럽을 통치. 러시아의 알렉산더1세와 프러시아의 프레데릭 윌리엄 2세와 만나
조약 체결
? 프랑스 러시아 전쟁 1812
? 1812년 초 프랑스의 러시아 원정.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는 프랑스에 형식적으로만 협력 ⇒
프랑스의 대패.
IV. 사건의 전개(8)
? 제4차 연합전선 1813. 7 1.
?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메테르니히의 등장.
? 메테르니히와 나폴레옹의 드레스덴 회견.
? 나폴레옹 엘바섬으로 격리.
IV. 사건의 전개(9)
? 1814. 3.1. Chaumont조약
? 과거 1세기동안의 세력균형의 원칙을 합의한 것. 명문화
? 1814. 5.30. 제1차 파리평화조약
?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스웨덴,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가 참가.
? 프랑스는 92년의 국경을 회복
V. 비엔나회의(1)
? 1815. 6.9. 최종의정서
? 121개조와 17개의 조약으로 구성된 부속문서
? 1815. 7.15. 나폴레옹의 투항
? 1815. 9.26. 신성동맹 조약.
V. 비엔나회의(2)
? 1815. 11.20. 2차 파리 평화조약.
? 프랑스는 90년의 국경으로 후퇴, 점령과 배상의 책임을 지게 됨.
? 1815. 11.20. 4국 동맹.
VI. 유럽협조체제의 성립이유
? Napoleon전쟁에 대한 염전현상
? 강대국들의 이익이 일치; 프랑스의 힘을 견제
? 사회적 목적이 일치; 즉 연합하여 국내의 자유주의적 세력을 막으려는 노력.
VII. 유럽협조체제의 성과
1. 강대국간 전쟁의 부재
2. Crimean War의 타결
3. 식민지문제의 합의적 해결
VIII. 유럽협조체에 대한 평가(1)
? 자본주의의 자본축적기간
? 식민지개척에 열중한 기간
? 다시 BoP의 등장으로 Concert체제의 붕괴; 19세기말의 복잡한 동맹체제의 등장
VIII. 유럽협조체에 대한 평가(2)
? 독일의 통일과 강대국화로 세력균형이 파괴됨.
? 약소국의 참여와 의사가 철저히 무시된 채 강대국 위주의 회의.
? 다자 동맹과는 다른 다자주의적 체제; 다자주의의 기반에 대해 설명
IX. 비엔나 회의의 원칙
? 1. 정통주의(legitimacy)--나폴레옹전쟁으로 퇴위당한 기존의 왕조들을 복귀시킨다는 것,
? 2. 복고주의--전쟁 전의 현상유지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 3. 보상주의.
X. 유럽협조체제의 목적
? 나폴레옹과 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예방
? 국경선 고수
? 1815년에 형성된 당시의 국제정치 질서의 유지
? 알렉산더 1세와 Metternich는 세가지 목적을 모두 추구,
? Castlerleagh는 마지막만을 추구.
XI. 회의 체제의 종류
? congres, congress: 군주들이 직접참여하여 실제적인 교섭보다는 축제나 의식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는 회의.
? conference: 대사들이나 대신들이 모여 실질적인 교섭을 벌이고 그 합의 내용을 의정서의
형식으로 발표하는 보다 실질적인 모임.
? reunion: conference와 같은 규모의 모임이지만 합의 사항에 도달하지 못하는 회의.
XII. 협조체제를 보는 세가지 시각
? 1. conservative view--Castlereagh
? 2. balance of power theory--Palmerston, Russell
? 3. progressive theory-Gladstone
? 영토적 보수주의
? 왕조적 보수주의
XIII. 신성동맹과 유럽협조체제의 용례
신성동맹의 세가지 용법
? 1. 15년 9.26일의 동맹만을 가리킬 때.
? 2. 4국동맹과 같이 지칭할 때.
? 3. 15년의 모든 조약을 총칭하는 경우.
유럽협조 Concert of Europe라는 용어는 1830년대에 쓰이기 시작, 70년대에 유행.
XIV. 유럽협조체제의 의의와 영향(1)
? 18세기와 19세기의 세력균형의 원칙은 어떠한 차이를 가지게 되는가?
? 30년 종교전쟁과 더불어 적국의 완전정복의 개념이 사라지고, 정당한 적이란 관념이 등장.
전쟁법의 발달.
? 전쟁이 정책의 정당한 수단으로 인정됨.
XIV. 유럽협조체제의 의의와 영향(2)
? 세력균형에 대한 규범적 준수와 같은 생각의 발달
? 나폴레옹은 Comte d'Hauterive에게 프랑스가 아닌 영국이 세력균형을 파괴하고 있다고 선전함.
XIV. 유럽협조체제의 의의와 영향(3)
? 영국은 F. von Gentz를 고용, 반박
? 나폴레옹은 기존의 외교행태를 왕정의 것이라 하여 비난하고, 외교관들은 거만하게 행동. 다른
이념에 기초. 즉 외교는 국민을 대표한다.
XV. 비엔나체제의 동요과정(1)
? 1818. 9.--11. Aix-la-Chapelle 회의
?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모든 사건들을 최종적으로 청산한 것.
? 프랑스는 연합국과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서 유럽협조체제의 일원이 됨.
XV. 비엔나체제의 동요과정(2)
?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는 이태리 내에서의 입헌주의 자유주의 운동의 문제.
? 1820. 7. Naples에서 반란. Ferdinand왕으로부터 헌장의 승인을 얻어냄.
XV. 비엔나체제의 동요과정(3)
? 1820. 10-12월. Troppau회의
? 영국과 다른 유럽국가들간의 이견이 노정됨. 협조체제를 분열시키는 첫 조짐.
? 1821. 1--5. Laybach회의.
? 영국의 입장; 내정 불간섭
XV. 비엔나체제의 동요과정(4)
? 1822. 10-11. 베로나회의
? 스페인이 문제를 놓고 프랑스, 오스트리아, 러시아 대 영국이 대립.
? 결국 프랑스가 단독 개입.
제3강. 유럽 내 자유주의, 민족주의 운동의 발전과 크림전쟁
I. 강의의 주안점
? 유럽내 자유주의가 19세기 중반의 국제질서에 미친 영향의 분석
? 강대국간 관계의 변화와 유럽협조체제의 갈등 심화
? 크림전쟁으로 인한 강대국간 갈등의 원인과 결과 학습
II-1.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지에서의 자유주의 운동
스페인의 페르디난드 7세, 헌법부활.
그리스전쟁
; 유럽 반동보수체제의 결정적 붕괴
; 기존질서의 유지라는 대원칙의 수정.
미국, 몬로독트린 선언
II-1. 스페인, 포르투갈, 이태리 등지에서의 자유주의 운동
? 이태리, 피에몬테의 자유주의자들은 왕 Victor Emmanuel I세에게 압력을 가해
양위하도록 함.
? 포르투갈, 브라질로 망명했던 Juan VI세가 귀국, 헌법준수를 약속했으나 프랑스
군의 지원하에 헌법 폐기.
III. 러시아의 자유주의
니콜라이 황제 즉위
데카브리스반란
알렉산더2세의 개혁
농노제 폐지
VI-1. 프랑스의 7월 혁명
? Charles 10세는 1830년 선거에서 왕당파 해산, 공화파 대승, 왕은 의회 해산.
? 1) 왕의 허가 없이 신문발행 금지
? 2)부유한 토지소유층에게만 투표권 부여, 종래 유권자의 3/4이 투표권을 상실
VI-2. 프랑스의 7월 혁명
3) 왕만이 새법을 제정
4) 강력한 전제군주제
7월 혁명으로 Charles 10세는 망명, Louis Philippe을 추대, 입헌군주제 실시.
중산층에 선거권 부여, 그러나 하층민은 실 패
VII. 폴란드의 자유주의 운동
? 폴란드의 반란, 바르샤바의 러시아 당국 전복, 군대 장악, 국회는 독립선포.
? 니콜라이 1세는 군대 파견, 진압 성공.
? 실패이유; 폴란드 내부의 의견분열, 강력한 러시아 군대, 열국의 무관심.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방관, 프랑스의 회피.
VIII. 프랑스의 왕위계승 정리
? 프랑스의 왕위계승
? 루이 18세; 1814∼1824
? Charles X 샤를르 10세; 1824∼1830--부르봉 왕조 최후의 왕.
? 루이 필립; 1830∼1848.
IX-1. 벨기에의 독립
1831. 벨기에의 독립. 프로테스탄트인 홀란드와 카톨릭인 벨기에. 홀란드는 항해와 상업, 벨기에는
농업과 공업.
윌리암 1세의 압정. 러시아는 폴란드 문제에 집중, 오스트리아는 이태리 혁명에 분주, 영국은
무역상의 이익으로 독립을 지지, 프랑스도 환영.
IX-2. 벨기에의 독립
1831. 2. 벨지움에 관한 5개국 의정서.
1831. 11. 벨지움 독립에 관한 18개 조항
프랑스군 파견, 영국이 해상봉쇄,
결국 홀란드는 벨기에 독립을 승인.
1839, 벨기에의 영세중립 인정.
X-1. 2월 혁명
1840년대 프랑스내 사회주의자의 등장, 생시몽, 푸리에, 루이 블랑.
? 1848. 프랑스에 동력기계보급. 파업 및 노동조합은 금지되어 있었음.
? 1848. 프랑스 인구 3천 5백만, 이중 유권자는 1% 미만인 30만.
X-2. 2월 혁명
자유주의자는 입헌주의, 자유방임경제, 의회주의 등을 주장
그러나 민주주의를 찬성하지 않음. 중간계 급은 귀족 및 지주계급의 정치적 영향력을 빼앗으려
했지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노동계급의 성장을 원하지 않음.
X-3. 2월 혁명
? 공화제 선포. 공화파와 사회주의파의 임시정부. 라마르틴느가 수반이 됨.
? 프랑스에 제헌의회
?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의 6월 폭동.
? 루이 나폴레옹의 대통령 당선.
X-4. 2월 혁명
1851. 12. 2. 4년간의 임기를 연장하고자 나폴레옹의 쿠데타. -> 10년으로 연 장.
1852. 황제로 즉위. 제2제정의 시대
XI-1.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변화
?프로이센 주도의 관세동맹 창설
?베를린 폭동
?프랑크푸르트 회의--오스트리아, 보헤미아 등 모든 독일계국가의 참가.
XI-2.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변화
?1) 독일이란 무엇인가;
? 2) 통일독일의 정부형태.
? 기타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 오스트리아의 입장과 독일의 입장
XI-3.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변화
? 오스트리아의 자유주의 운동
? 1848. 오스트리아 빈에서 3월 혁명 발생,
XII-1. 영국의 자유주의 발전
영국의 Luddites 운동
1815년 경 영국의 대의제는 5%만의 성인남자만이 투표.
1820년대부터 자유화
1832 선거법 개정(상업자 층의 이익)
XII-2. 영국의 자유주의 발전
노예폐지법.
구빈법
도시자치법.
광산법
1830년대초부터 차티스트 운동
크림전쟁의 원인, 경과, 결과 및 의의
XIII-1. 사건의 전개
? 프랑스가 성지관할권을 요구.
? 터어키는 프랑스의 요구를 수용.
? 러시아의 멘시코프가 특사로 파견됨. 멘시코프 훈령의 내용
XIII-2. 사건의 전개
친영파인 레시드 파샤가 터어키 외상으로 취임.
터어키 정부는 러시아 요구를 거부하기로 결정
러시아, 다뉴브공국인 몰다비아, 왈라키아의 점령을 선언. 7월초에 점령.
XIII-3. 사건의 전개
? 영국군은 베시카만까지 진출, 프랑스군도 살라미스 주둔 해군을 합세.
? 비엔나 노트;
? 터어키, 영국의 뒷받침을 받고 러시 아에 선전포고.
? 시노페사건
XIII-4. 사건의 전개
? 영국과 프랑스 해군이 흑해로 진입.
? 영국, 프랑스가 터키와 동맹.
?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동맹.
? 오스트리아, 대러시아 선전포고
? 비엔나 4개 조항
XIII-5. 사건의 전개
l영불원정군이 크림반도에 상륙
l영불원정군이 세바스토폴 포격.
l러시아는 비엔나 4개 조항을 무조건 수락.
l오스트리아, 영불과 공수동맹.
l사르디니아, 1만명의 병력을 크리미 아에 파견.
XIII-6. 사건의 전개
? 러시아는 4개항을 기초로 평화협상을 요구.
? 알렉산더 2세 즉위.
? 영불연합군이 세바스토폴 점령.
? 평화예비안
XIII-7. 사건의 전개
? 평화예비안, 러시아에 전달되고, 무조건 수락됨.
? 1856. 2.25-3.30, 파리강화회의
XIV-1. 각국의 입장
1. 영국
현상유지의 변화가 실제화되기 이전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비엔나회의의 목적은 반불동맹이자, 패권등장의 방지이다.
정당성의 원칙에 기초한 열강의 공동간섭에는 반대한다.
XIV-2. 각국의 입장
2. 프랑스
5대 강국에 다시 복귀한다.
3. 러시아
신성동맹을 통해 유럽 각지의 혁명세력에 공동간섭하고 이를 통해 세력을 확장한다.
XIV-3. 각국의 입장
4. 오스트리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혁명세력, 민주주의세력을 억압한다.
러시아의 팽창을 경계한다.
발칸반도에서 팽창한다.
XV-1. 전쟁원인론
? 러시아 남진정책
? 영국의 경제적 이익
? 영국 외교정책의 혼란
? 나폴레옹 3세의 현상변경 정책
? 니콜라스 1세의 팽창주의
? Canning의 반러시아적 입장
XV-2. 전쟁원인론
? 전쟁의 우발성을 강조하는 견해.
? 러시아에 대한 예방전쟁으로 보는 견해--크림전쟁은 최초의 대러시아 봉쇄정책. 초기단계의
냉전이며 반러시아 전쟁이다. 영국이 유럽의 코작화를 예방한 전쟁.
XVI-1. 분석의 주안점
international political structure; 영국과 러시아의 양극체제적 성격
제도적 환경. 비엔나회의, 전통적 세력균형
구조적 환경. 무역의 확대로 인한 영국과 러시아의 양극체제적 대립의 격화
XVI-2. 분석의 주안점
Gilpin의 Hegemonic theory의 적용⇒국 력의 불균등한 발전
장주기이론
France의 상대적 발전; 나폴레옹 3세.
XVII. 전쟁의 결과
? 교재 참조...
제4강. 이태리와 독일의 통일과 유럽 국제질서의 변화
I. 주안점
이태리와 독일의 통일과정, 특징에 대한 이해
이태리와 독일의 통일이 유럽의 국제질서 변화에 준 의의 분석
이태리와 독일의 통일이 한국에 주는 함의 학습
II. 이태리의 통일과정
1858. 1. Felice Orsini사건
1859. 3.3. 프랑스 러시아의 비밀합의; 프랑스는 흑해 중립화 방안의 폐지를 위해 노력, 러시아는
프랑스. 오스트리아 전쟁에 프랑스에 우호적 입장을 지키기로.
이태리의 통일전쟁 과정
III. Italy 통일의 분석
actors: Cavour, Mazzini, Garibaldi France의 Napoleon III세.
영국과 프러시아의 불개입
이태리: 프러시아 중립화, 친러시아.
프랑스의 배신
전쟁의 의의:1815년 질서 근본적 수정,나폴레옹 3세 신의 추락,세력균형변동
IV. 전쟁의 의의
① 1815년 질서의 근본적 변화 - 새로운 강대국의 탄생
② 나폴레옹 3세의 신의 추락
③ 세력균형의 변동
V-1. 독일의 통일과정
주요 actors: 윌리암 1세, Bismarck
주변 구조: 관세동맹
경과--> 2.1. 1st War
① Schleswig의 합병사건.1864/2/1 오스트리아, 프러시아는 덴마크와 전쟁.
V-2. 독일의 통일과정
② 영국:덴마크약화에 반대
③ 러시아:친프러시아
④ 프랑스:자아르지방요구
V-3. 독일의 통일과정
2nd War:오스트리아vs.프러시아
① 이태리-프러시아 동맹
② 프랑스의 애매한 태도
③ 전쟁의 결과; 마인강 이북의 독일통일, 오스트리아,헝가리 Dual Mornarchy탄생
V-4. 독일의 통일과정
3rd War: 프러시아 vs. 프랑스
① 프랑스⇒Luxemburg사건
② 프러시아+러시아; 오스트리아 견제
③ 이태리-로마를 프랑스에 요구, 결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이태리는 전쟁에 소극적.
④ 영국; 프랑스를 견제, 아일랜드 문제.
VI-1. 독일 통일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공화정으로,
알자스-로렌 할양,
로마는 이태리로 할양,
러시아는 흑해중립조항 철폐,
강대국 독일의 등장,
완충지역의 소멸
VI-2. 독일 통일전쟁의 결과
자유방임시대의 종말,
민족주의의 시대,
여론의 중요성 증가
VII-1. 양국 통일의 공통점
1) 전쟁을 통한 통일
2) 개인적 역량:비스마르크와 카부르
VII-2. 양국 통일의 공통점
3) 국제정치상황의 중요성
;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독일과 이태리 통일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
; 러시아와 영국의 중립이 중요.
VII-3. 양국 통일의 공통점
4) 통일 이후 강대국으로 부상
5) 모두 오스트리아가 방해요소로 작용
VIII-1. 양국 통일의 차이점
1) 자립적 통일 vs. 외세의존적 통일 : 독일은 자체 군사력으로 자립적 통일을 이룩한 반면, 이태
리는 프랑스의 군사력을 빌어 외세의존적 통일.
2) 독일은 관세동맹으로 경제적 통일의 토대를 마련
VIII-2. 양국 통일의 차이점
3) 독일: 통일 전 5대 강국의 하나
이태리: 완전히 분리된 약소국.
4) 독일:통일 전 연방,이태리:분리됨.
VIII-3. 양국 통일의 차이점
5) 독일: 완전한 통일, 이태리: 실지로 인한 실지회복주의가 중요한 과제됨.
6) 독일은 몰트케 중심의 군사개혁이 추진, 오스트리아는 상대적으로 부진.
IX-1. 양국 통일의 의의
1) 강대국 독일과 이태리의 등장
2) 강대국간 완충지역의 소멸; 전쟁의 가능성이 커짐.
3) 자유무역이 퇴조하고, 신중상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증가
IX-2. 양국 통일의 의의
4) 집단적인 투쟁심리가 등장.
5) 여론의 역할이 증가
6) 경제단체의 힘이 강화되고, 군부의 힘도 커짐.
7) 비엔나 체제의 커다란 수정
8) 민족주의의 승리
'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의 이해:: (0) | 2014.01.14 |
---|---|
소득분배-펜의 난쟁이의 행렬 (0) | 2014.01.07 |
시의 갈래 이론 정리 (0) | 2014.01.03 |
향수의 역사-향의 고향 프랑스 (0) | 2013.12.29 |
공리주의(Utilitarianism)::벤담(Jeremy Bentham) (0) | 2013.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