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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로스차일드 가문

myPPT 2012. 10. 9. 09:01





















<화폐전쟁> 제 1 장 로스차일드 가묷 : 대도무형의 세계적 부퍙 내가 한국가의화폐발행을 관장할수 누가법을정하든상관없다 . -메이어 로스차일드 있다면 암셀 매스컴에서는 500억 달러 재산가인 빌 게이츠가 세계 제일의 연일 떠들썩하게 소개한다 . 이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보기 좋게 속은 셈이 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이른바 세계의 부호 랭킹에서는 ‘대도무형 (大道 無形 )’ 의 초슈퍼급 부호의 수 없기 때문이다 . 이들은 서방의 주요 매스컴을 단단히 통제하고 . 로스차일드(Rothschild) 는 과연 누구인가 ? 금융업에 종사하면서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 마치 군인이 나폴레옹을 모르고 물리학을 연구하는 우리에게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 그가 전 세계인의 과거와 현재 , 그리고 미래에 미치는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 학자가 아인슈타인을 모르는 격이다 . 도인데 말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명도가 이토록 낮으니 , 그의 뛰어난 은신 능 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 로스차일드 가 (家)의 재산은 과연 얼마나 될까 ? 이것은 세계적인 수수께끼다 . 어림잡아 50조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 1. 워털루전투와 로스차일드 家 2. 워털루전투 3. 로스차일드 가문이 등장한 시대 배경 4. 로스차일드 가계도 5. 로스차일드 금융제국 Contents 1. 워털루전투와 로스차일드 家 -1815 년 유럽에서는 대륙의 결정핝 워털루 전투가 벌어짐 . -전쟁이 축팰 , 이 방대한 비밀 정보망은 산업 스파이들로 구성하게 됛 . -각 나라의 수도와 주요 도시뿐 아니라 중요한 상업 요지에 파견됙 그들은 갖가지 상업과 정치 정보. 수집팰 런던 , 파리, 프랑크푸르트, 빈, 나폴리. 오가 시작되기 전부터 로스차일드 가는 필요한 전략 정보. 수집핝 정보망읁 구 며 전달팬 . -로스차일드 가문의 마차와 배가 유럽 각지와 해협읁 누볐으며 , 거리마다 로스차읹 드 은행의 스파이들이 배치되었음 . -로스차일드 가는 어마어마한 현금과 , 정보. 주무르는 금융가의 큰손으로 군 림하게 됛 . -그들이 최신 정보는 순식간에 증권시장과 상품시장으로 전파하게 됛 . -1815 년 6웑 18읹 벨기에 브뤼섽 근교에서 전개됙 워털루전투는 국가의 걸 투자자가 고 벌이는 한 판 승부였었고 , 또한 수많은 놓고 벌이는 도박의 대상이기도 했음 . -영국이 패핝 경욪 영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 승리한다면 하늕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읁 판이었음 . 1. 워털루전투와 로스차일드 家 국채. -6 웑 19읹 새벽 네이선은 정보 전달원으로부터 소식읁 듣고 주식거래소로 향한 후 , 영국이 패했다는 소문읁 흘림과 동시에 영국 팔아 치우기 . -네이선의 행동에서 무언가 낌새. 느낀 감전이라도 됙 듮 서로 팔아 치우기 5%도 안 되는 휴지 조각으로 변팰 시작했고, 영국 잉글랜드은행의 버림. 내. -이 과정읁 지켜보던 네이선은 어느 순간부터 . 있는 -6 웑 21일밤 11시. 나폴레옹 대군이 고전 끝에 3분의 1의 병력읁 무참히 패팷 다는 소식이 전팰 졌지Θ , 이 소식이 런던에 도착한 시간은 네이선의 정보보다 무 접수하다 려 하루나 늦은 후였음 . -그 하루 동안 챙긴 로스차일드 가의 재산읁 합친 훨씬 . 로스차일드 家 영국 경제. . 채권자로 워털루전투로 네이선은 영국 정부 최고의 등극했으며, 그때부터 Н 행읁 주도하고 실권읁 장악하게 된다 . 영국 정부는 화폐발팸 권한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민간은행에서 돈읁 빌려 쓴다 . 자금을 발행해서 이. 담보로 재정 지출에 필요한 충당한다. 영국 부가 세금읁 징수핝 수 근거다. 이제 영국인들은 그 동안 정부에 내던 세금읁 로스차일드 은행에 했다. 국채는 정 공. 2. 워털루전투 워털루 전투 (Battle of Waterloo; 프랑스어 : Bataille deWaterloo) -1815 년 6웑 18일, 벨기에 남동부 워털루에서 발생.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과 웰링턴 , 블뤼허가 이끄는 영국 , 네덜란드 및 프 로이센 등이 포함됙 연합군이 싸워 연합군이 프랑스군읁 격파한 전투 . -나폴레옹 최후의 전투 . 2. 워털루전투 워털루 전투 발생 배경 -1813 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배한 나폴레옹은 다음팰 4월에 폐위되어 엘바섬으 로 추방 . -1815 년 2웑 엘바섬읁 탈출 . -농민들의 지지. 받으며 20 만에 파리에 다시 권력읁 장악. -그팰 6월, 나폴레옹은 12Θ 5000명의 프랑스군읁 이끌고 웰링턴 (1769~1852) 이 이센군과 벨기에 남동쪽 워털루 남방 교외에서 대전 . -프랑스군의 4만명 , 영국군 -전투에서 패한 나폴레옹은 6웑 22읹 대서양의 외딴 섬인 세인트헬레나 (Saint Helena Island) 로 유배됛 . -그 곳에서 영국군의 감시. 받으며 1820 년 5웑 세상읁 떠남 .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와 유럽 국가들 간의 23년에 걸친 오랜 전쟁도 끝이 남. 전사자는 1Θ 5000명, 프로이센군은 7000명. 만의프로 12 . 가지휘하는 (1742~1819) 명의영국군과블뤼팻 5000만9 . 지휘하는 3. 로스차일드 가문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1625 년 이후 두 차례에 걸친 내전과 정국의 혼란으로 영국의 국고는 바닥난 상태 . -심각한 재정난으로 헐떡읹 때 은행가들은 민영 설Γ 팰 국왕에게 개념읁 소개팬 . 융자. -금리는 연 8%로 정부는 120Θ 현금읁 사용하고 매년 10Θ 내면 되었음. -정부는 은행에 더 많은 특혜. 제공해서 국가가 승인한 은행권읁 발팸 할수 함. -은행은 주식읁 공모하기 시작함. -2000 이상읁 구매한 사람은 은행의 이사 . -핵심은 국왕과 왕실 가족의 개인 국가의 영구적 벾 잉글랜드 은행이 환하는 것이었고 , 전 국민의 세금읁 담보로 기반읁 둔 국 가 화폐. 발행했음 . 3. 로스차일드 가문이 등장한 시대적 배경 있펼수 -이로 인해 국왕이 전쟁에 필요한 돈을 확보했으며 , 정부도 뜻대로 게 되었음 . -하지만 이러한 은행시스템은 영국정부의 수직으로 상승시켰으며 국가화. -화폐를 신규 발행하면 국채를 묶어 놓는 구조가 되었음 . 국채가 늘어나게 되어 의 발행과 영구적 , 상환하면 국가의 화 폐를 폐기하는 셈이 되므로 유통할 화폐가 없게 됨 . -따라서정부는영원히 상환할수없었음 . "수표나 신용화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극소수의 사람은 그 시스템이 형성하는 그.기편으로만들어버린다 자인정치가와결탁해 자그시혜 ,이윤에큰관심을두거나 본이가져오는거대한이익에대해알도리 자러나대부분은이시스템으로파생되는 자심지어이시스템이 .박을받으면서도전혀불만을품지않는다 압그들은 .가없다 신의 이익을 해치지 않을까 의심하지도 않는다“ -로스차일드 형제 , 1863 년 4. 로스차일드 가계도 메이어 바우어 (1744 . 1812) )자시창( 살로몬 로스차일드 (1774~1855) 빈(오스트리아 ) 네이선 로스차일드 3(1777~1836) 런던(영국) 칼 로스차일드 (1788~1855) 나폴리(이탈리아 ) 로스차일드 (1773~1855) 프랑크푸르트 (독일) 로스차일드 (1792~1868) 파리(프랑스)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초 . 메이어 바우어 -로스차일드 가문의 메이어 바우어(Mayer Amschel Bauer) 는 1744 년 2웑 23읹 독읹 프랑크푸르트 유대인 -메이어 바우어는 아버지 ( 모세 바우어 )의 죽음 이 후 13살의 나이로 오 펜하이머 가묷 (세겿 최고의 다이아몬드 업첮 드비어스. 설립팰 100년 동안 세 겿 다이아몬드 시장의 90%. 장악하고 가문)의 은팸 수습생으로 일팬 . -젊은 시절읁 은행에서 일하면서 배경이 좋은 고객들과 친분 관계. , 그 중에는 훗날 그의 바꿔줄 "에스토르프 장군 "도 포함되어 . -그후 에스토르프 장군이 독일의 윌리엄 보필하게 되고 메이어 바욪 왕자에게 어는 에스토르프 장군과 윌리엄 희귀한 금화 와 골동품읁 싼 가격으로 바치면서 가까워 졌고 , 왕실의 정식 대리인이 됛 . 지역에서 태어남. 로스차일드 가문의 시초 . 메이어 바우어 -1769 년 9웑 21일, 메이어는 명패에 왕실의 엠블럼읁 새기고 그 곁에 'M. A. 로스차일드, 윌리엄 전하의 지정 대리인 '이라고 써 넣음 . 왕. -윌리엄 왕자의 사촌형 중 덴마크 국왕이 윌리엄 돈읁 덴마크 국왕에서 대출하는 것읁 중계하면서 유럽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읁 알리 게 됛 . -그 당시 윌리엄 나폴레옹과의 정치적인 문제로 윌리엄 덴마크로 황급히 망명하게 됙 사건이 이때 윌리엄 현금 300Θ 달러. 메이어에게 보관시킴 . 이 돈이 바로 메이어에게 막대한 권력과 재산읁 가져다 주고 금융제국읁 세우게 한 첫 번째 뭉칫돈이 됛 . -나폴레옹이 철수한 후부터 독일은 그 동안 흩어져 암섽 로스차일드 개의 여300 봉건국가 .개의큰봉건국가로구성된도이칠란트연방으로거듭남 여30를합병팰 -큰아들 도이치연방의 초대 재무장관으로 , 1822 년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봉해졌고, 로스차일드 은행은 독읹 금융의 중심이 됛 . -유감스럽게도 슬하에 자식이 없던 그중 받는이가 키우는 데 심혈읁 발 Н 그가바로훗날현대사에빛나는 , 비스마르크임. ※비스마르크 (Bismarck) 는 19세기의 독읹 정치인 오토 . 비스마르크의 이름이다 . 오토 에두아르트 레오폴트 . 비스마르크 (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 통일하. 독읹 제국읁 건설한 프로이 취. 남긴 독일의 철혅 재상 1815년 4웑 1읹 ~ 1898년 7웑 30일)는 독일읁 센의 정치인이다. 외교관이. 철혈정책읁 제2제국 수Γ 후 초대 수상이 되었으며 , 독일의 통일읁 위팰 프랑스 및 오스트리 추진하여 아와 전쟁읁 강행하. 이라고 불린다 . 승리로 이끄는 듯 보통 ‘철혅 재상’ 살로몬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가문의 눈에는 전쟁도 평화도 없으며 구호와 선언도 , 왕자가 희생과 영예도 없다 . 그들은 사람들의 눈읁 미혹하는 것들읁 철저히 무시했다 .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딛고 일어설 디딤돌Θ 뿐이다. 윌리엄 그중하나요 , 또 하나의 디딤돌은 메테르니히 (Metternich) 다." -프레더릭 머튼 (Frederic Morton) -살로몬은 가문의 둘째 아들로서 , 유럽의 대도시. 돌며 각 은행읁 조율하는 업무 . 담당했음 . -형제 중 외교능력이 가장 뛰어남 . 있읁 -그의 품성과 막대한 재력은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와의 관계. 급격 히 발전시켰고 이로 인팰 오스트리아 왕실의 문턱읁 넘었음 . -왕실은 고정적으로 살로몬의 은행에서 , 빠르게 그들과 사람으로 인정받게 됛 . 살로몬 로스차일드 -1822 년 합스부르크 왕조는 네이선읁 제외한 로스차일드 가의 4형제에게 수여함 칭호. . -1843 년 살로몬은 비트코비첮 연팭 광업회사와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련회사. 인수함. -이들 두 회사는 당시 세겿 10대 중공업기업으로 손꼽히는 큰 기업이었음 . -1848 년, 살로몬은 오스트리아의 금융과 경제. 주무르는 거물로 성장하게 됛 . 남작의 네이선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겿 금융시장읁 주도하면서 다. 거의 장악했다 . 그들은 이탈리아 남부 담보로 한 재산읁 보유하고 며, 유럽 모든 국가의 정부 각료가 이들의 영향력 안에 ." -베저민 디즈레일리 , 영국 수상 , 1844 년 네이선은 1815년 나폴레옹 전쟁 당시 1억 각국 왕실에 대부하는 한편 , 지. 전체의 재정 영국에도 전폭적인 군비. 지원하였음 . -네이선은 워털루 전쟁에서 웰링턴이 이길 수 도와줌. -1815 년 6웑 18일, 벨기에 브뤼섽 근교에서 전개됙 워털루 전투는 영국과 프랑스 수입읁 가 국가의 걸고 벌이는 한 판 승부였고 , 수많은 놓고벌 이는 도박의 대상이기도 했음 . -네이선은 유럽의 통신망읁 워털루 전투의 “나폴레옹 승리”라는 가짜 있었다 분야도 정보. 흘려 대폭락한 주식읁 긁어 모아 300 Θ 달러의 재산읁 75억 달럊 (2500 배) 로 불렸음 . 있었으 네이선 로스차일드 -이로 인팰 네이선은 영국 정부 최고의 등극했으며, 그때부터 발팸 읁 주도하고 -그로 인팰 영국인들은 정부에 내던 세금읁 로스차일드 은행에 했음. -영국 대부분읁 손에 넣었다는 것은 가격이나 영국 전체의 통화 공급량 잉글랜드은행의 실권읁 장악팬 . 읁 마음대로 주무. 수 있다는 의미였음. 칼 로스차일드 -넷째 칼은 로스차일드 다섯 형제 중 가장 평범한 인물이었음 . -그는 가족 간의 연락읁 도맡아 유럽 각지. 오가면서 소식읁 전하고 다. 형제들 읁 도왔음 . -1818 년 네이선으로부터 이탈리아 나폴리로 가서 은행읁 세우라는 명읁 받음 . -이탈리아에서 그는 형제들의 예상읁 뛰어넘는 훌륭한 능력읁 이탈리아 국채. 둘러싼 경쟁에서 큰 승리. 거두는 데 일조한 후로 , 칼은 왕실의 재정적 기둥이 되어 칼의 영향력은 이탈리아 반도 미침. "한 나라의 정부가 은행가의 돈에 의존하면 , 정국도 정부 아닌 은행가가 장악하기 마련이다 . 제임스 로스차일드 돈주머니. 쥔 쪽이 아무래도 돈읁 쓰는 쪽보다는 유리하기 때문이다 . 돈에는 조국이 없다 . 애국이고 금융재벌은 무엇이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 .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읁 얻는 것이다 . -나폴레옹 1815년 -나폴레옹 집권 시기에 주로 런던과 파리. 오가며 가족 네트워크. 세워 영 국의 상품읁 파리로 . -이런 네트워크는 로스차일드 가문에 한 Н 빠. 정보. 제공했고 이. 이용 런던의 네이선은 금과 통화의 투기로 엄청난 거금읁 . --> 이것은 형제들끼리Θ 가능한 제휴 플레이였음 . 지도자가 -1817 년 워털루전투에서 패한 프랑스는 경제적 , 정치적으로 매욪 불안정하였고 막대한 재산읁 프랑스의 금융가. 한 손에 쥐고 흔들게 됛 . 제임스 로스차일드 -로스차일드의 재산은 6억 프랑에 육박했음 . -프랑스에서 개인재산이 그보다 많은 사람은 8억 프랑읁 보유한 국왕 뿐이었고 , 프랑스에 다. 은행가들의 재산읁 모두 합쳐도 보다 1억5000Θ 프랑 이나 적었음 . -이런 재산은 그에게 막강한 권력읁 , 심지어 언제라도 정부 내각읁 쓰러뜨릱 정도였음 . 6. 로스차일드 금융제국 년이지난오늘날이들가족의 여,150 로계산하면 6%수익률을.된다 "너흪 형제들이 단결하기Θ 하면 세상의 어떤 은행도 너희와 경쟁이 안되면 , 너흪 . 해치거나 너희로부터 이익읁 취핝 수도 없읁 것이다 . 너희가 함께 후계자로 -데이비슨이 네이선에게 보낸 편지에서 , 1814 년 6웑 24읹 가운데 장자는 1850년읁 전후해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총 60억 달러의 재산읁 축적했으리라 최소 남자만이 있으면 세상의 어떤 은행보다 큰 위력읁 거머쥐게 됚 것이다 ." 한 50조 달럊 이상으로 추정된다 . 가족의 엄격한 통제 , 은밀한 물밐 , 기계처럼 있다 개입을 정확한 협조 , 빠. 시장 정보 수집 능력 , 냉철한 이성 , 금권에 대한 끝없는 욕망 , 그 리고 이 모든 것에 기반읁 둔 금전과 재산에 대한 깊은 통찰 등듯 . 로스차일드 가가 200년 동안 전 세계의 금융 및 정치와 정쟁의 냉혹한 소용돌이 속에서 인 류 가장 방대한 금융제국읁 원동력이 되었다 . 세. 수 M.A. 로스차일드의 유언 -가묷 은행의 모든 요직은 반드시 가묷 내부에서 참여할 된다. 가족 상업활동에 수 -사촌끼리 결혼함으로써 재산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읁 막는다 . -재산 상황읁 절대로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 -재산 상속 시 변호사의 절대 금지한다 . 있다. -집안의 모든 각 집안의 우두머리며 , 가족이 만장일치로 동의핝 경우에Θ 차남읁 할수 . 맡아. 하며, 외부인읁 써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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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제품및서비스의생산과판매제품및서비스의생산과판매

myPPT 2012. 10. 8. 16:59










































제품및서비스의생산과판매제품및서비스의생산과판매
차례 


1. 제품및 서비스의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3. 제품및 서비스의판매 : 마케팅관리의 개요 
4. 마케팅관리의 과정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의의 

생산 

여러 투입 요소들을 변환시켜 제품 또는 서비스라는 
경제적 가치를 산출하는 과정 

원자재 설비 인력 자금 시간 
제품 
서비스 
생산 · 운영관리의 의의 
생산 · 운영관리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활동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관리 운영관리 생산 · 운영관리 
생산 · 운영관리의 의의 
생산 · 운영관리 
제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시스템을 관리하는 활동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관리 운영관리 생산 · 운영관리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의의 


생산 · 운영관리의 대상 

4M 
원자재 
Material 
설비 
Machine 
인력 
Man 
작업방법 
Method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좋은 품질 낮은 원가 
신속 & 적시 유연성 있는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좋은 품질 
지속적인 품질 개선 , 균일한 품질 유지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좋은 품질 
지속적인 품질 개선 , 균일한 품질 유지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낮은 원가 
초코파이 자장면 인상률 
1974 

100 

100 

50% 

1997 

150 

3000 

300%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신속 & 적시 
하루 밤 사이의 특급 배송 , 빠른 반응 속도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신속 & 적시 
하루 밤 사이의 특급 배송 , 빠른 반응 속도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유연성 있는 

시장 요구에 따른 변경과 수정 
After Service 제공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목표 


우선경쟁역량 정의 사례 
원가 1. 저원가 운영 가능한 한 최저가 제공 능력 코스트코 
품질 
2. 최고 품질 
3. 품질 일관성 
뛰어난 서비스·제품 제공 능력 
언제나 설계 사양에 맞게 생산 능력 
페라리 
맥도널드 
4. 납품속도 고객 주문을 신속히 충족 시키는 능력 델 컴퓨터 
시간 5. 정시 납품 납품의 약속시간을 지키는 능력 UPS 
6. 개발속도 서비스·제품을 신속하게 출시하는 능력 Li&Fung 
7. 고객화 고객의 독특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능력 리츠칼튼 
유연성 8. 다양성 
9. 물량 유연성 
구색이 다양한 서비스/제품 처리 능력 
산출물 조정, 수요변동에 신속대응 능력 
Amazon.com 
미국 우체국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방식의 유형 


수요자와의 관계에 따라 
계획생산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함 
계획생산 판매하기 전에 미리 제품을 만들어 놓음 
계획생산 =시장생산 
주문생산 고객의 주문을 받아서 제품을 생산함 
개별생산 고객의 주문에 따라 소량 생산하는 방식 
로트생산 묶음(로트, lot) 으로 생산하는 방식 
대량생산 표준화된 제품을 대량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하기 위한 생산방식 
생산공정상의 자재흐름 특성에 따라 

1. 제품 및 서비스의 생산 : 생산 · 운영관리의 개요 
생산 · 운영관리의 합리화 원칙 


표준화 
STANDARDIZATION 
제품의 규격, 치수, 원재료 등을 일정한 규격으로 통일하고 
필요한 표준을 정하는 것 
단순화 
SIMPLIFICATION 
제품과 부분품의 낭비를 막기 위하여 불필요한 제품 종류, 
품목, 크기 등의 품종을 줄이는 것 
전문화 
SPECIALIZATION 
특정 제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것 
특정 제품 생산에 있어서 작업내용의 분화에 의한 생산성 
향상을 추구하는 것 

생산 · 운영관리활동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생산 · 운영관리활동 
생산 시스템의 설계 · 구축 
생산시스템의 운영 · 통제 
생산 · 운영관리활동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생산 · 운영관리활동 
생산 시스템의 설계 · 구축 
생산시스템의 운영 · 통제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제품설계공정설계생산능력결정입지선정설비배치작업설계제품설계공정설계생산능력결정입지선정설비배치작업설계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1. 제품설계 
2. 공정설계 
제품설계와 공정설계는 제품의 품질과 원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함 
최근에는 제품설계와 공정설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동시공학’ 기법이 활용됨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1. 제품설계 
2. 공정설계 
제품설계와 공정설계는 제품의 품질과 원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함 
최근에는 제품설계와 공정설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동시공학’ 기법이 활용됨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3. 생산능력 결정 
생산능력 
일정기간동안어떤조직체가만들어낼수있는최대생산량생산능력을 측정하는 예 
자동차회사.생산가능한대수식당.수용가능한손님의수학교.학생의수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3. 생산능력 결정 
생산능력 
일정기간동안어떤조직체가만들어낼수있는최대생산량생산능력을 측정하는 예 
자동차회사.생산가능한대수식당.수용가능한손님의수학교.학생의수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4. 입지선정 
기업의 
생산활동이 
위치핝 
지리적 
장소륹 
선정. 


입지의 영향을 받는 것 

① 
기업의 
운영비용 
② 
제품 
및 
서비스의 
가격 
③ 
시장에서의 
경쟁력 
2. 생산시스템의 
구축과 
운영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4. 입지선정 
입지선정에영향을미치는요인직접요인생산투입요소의공급비용공정비용에영향을미치는공정기술공급비용거시적환경요인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5. 설비배치 
공정별배치생산물위치고정형배치제품별배치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5. 설비배치 
공정별배치생산물위치고정형배치제품별배치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동일한기능을하는작업장을한장소에배치하는방식장점 
기계의이용도가높음공정순서를바꿀수있음(=유연성있음) 
단점 
느린작업속도생산계획과통제가어려움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공정별배치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동일한기능을하는작업장을한장소에배치하는방식장점 
기계의이용도가높음공정순서를바꿀수있음(=유연성있음) 
단점 
느린작업속도생산계획과통제가어려움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공정별배치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반복적이고연속적인생산을위해작업순서대로배치하는방식= 생산라인, 조립라인장점 
빠른생산속도낮은재고수준단점 
수명이짧거나불확실한제품의배치를다시해야할위험이있음→유연성낮음제품별배치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반복적이고연속적인생산을위해작업순서대로배치하는방식= 생산라인, 조립라인장점 
빠른생산속도낮은재고수준단점 
수명이짧거나불확실한제품의배치를다시해야할위험이있음→유연성낮음제품별배치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제품은한위치에고정되어있고, 작업자와장비가이동하여작업을수행하는방식조선, 열차생산, 댐건설, 집건축등에이용됨생산물위치고정형배치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제품은한위치에고정되어있고, 작업자와장비가이동하여작업을수행하는방식조선, 열차생산, 댐건설, 집건축등에이용됨생산물위치고정형배치
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6. 작업설계, 직무설계 
작업설계 작업의작업내용과작업방법을결정하는것직무설계 작업자가수행해야할직무의내용과방법을규정하는것생산시스템의 설계 · 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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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설계 작업의작업내용과작업방법을결정하는것직무설계 작업자가수행해야할직무의내용과방법을규정하는것
생산시스템의 운영 · 통제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총괄생산계획주생산계획일정계획생산수요예측주문재고관리생산시스템의 운영 · 통제 
2. 생산시스템의구축과운영총괄생산계획주생산계획일정계획생산수요예측주문재고관리
마케팅관리3. 제품및서비스의판매: 마케팅관리의개요마케팅상품이나서비스가여러경로를통해생산자에서소비자로이전되는것과관련된활동마케팅관리마케팅활동의계획을수립하고수행하며통제하는활동마케팅관리3. 제품및서비스의판매: 마케팅관리의개요마케팅상품이나서비스가여러경로를통해생산자에서소비자로이전되는것과관련된활동마케팅관리마케팅활동의계획을수립하고수행하며통제하는활동
3. 제품 
및 
서비스의 
판매 
: 마케팅 
관리의 
개요 
마케팅관리 


4P 
제품PRODUCT 
촉진PROMOTION 
유통경로PLACE 
가격PRICE 
3. 제품 
및 
서비스의 
판매 
: 마케팅 
관리의 
개요 
마케팅관리 
: 4P의예 


제품(Product)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야기 



귀여운 
캐릭터 


유통(Place=Distribution) 

아시아 
. 
자체 
배급 
유럽, 미국 
. 
해외 
배급사와 
공동사업 


홍보(Promotion) 

이탈리아 
애니 
페스티벌 
참가 
프랑스 
애니 
페스티벌 
참가 
대만 
뽀로로 
런칭 
이벤트 
주최 


가격(Price) 

브랜드 
이미지륹 
높이기 
위해 
일부럊 
높은 
가격 
책정 


4. 마케팅 
관리의 
과정 
마케팅관리의 
과정 


목표설정시장기회분석STP전략수립마케팅믹스개발마케팅활동전개조정및통제
마케팅목표의설정우리의주고객은누구인가? 
↓
그들의욕구는무엇인가? 
↓
그들의욕구를만족시키기위해어떻게할것인가? 
↓
우리를둘러싼환경은어떠한가? 
4. 마케팅관리의과정마케팅목표의설정우리의주고객은누구인가? 
↓
그들의욕구는무엇인가? 
↓
그들의욕구를만족시키기위해어떻게할것인가? 
↓
우리를둘러싼환경은어떠한가? 
4. 마케팅관리의과정
4. 마케팅 
관리의 
과정 
시장기. 
분석 


마케팅 
의사결정에 
도움읁 
주는 
자에게 
제공하기 
위해 
자료륹 
수집 
, 분석하는 
것 


정보륹 
의사결정 


기술 
박람. 
`컴퓨텍스 
2011` 연설에서 
모바읹 
성장과 
시장기회륹 
발표하는 


인텔의 
션 
말로니 
수석 
부사장 



STP전략의수립market Segmentation 
시장세분화S 
Target market 
목표시장선정T 
Positioning 
제품포지셔닝P 
4. 마케팅관리의과정STP전략의수립market Segmentation 
시장세분화S 
Target market 
목표시장선정T 
Positioning 
제품포지셔닝P 
4. 마케팅관리의과정
4. 마케팅 관리의 과정 
STP전략의 
예 
: 스타벅스 


시장세분화 


가격중시형 / 조화형 / 개성추구형 / 매니아형 

목표시장 
선정 


개성추구형 / 매니아형 

포지셔닝 


매니아형 그룹 ← 고급의 재료를 사용 
개성추구형 그룹 ← 제품을 다양화 


4. 마케팅 
관리의 
과정 
STP전략의 
예 
: 이온음료 
시장 


목표시장일상생활에서격렬한운동후
4. 마케팅 
관리의 
과정 
마케팅믹스 


마케팅목표륹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4P마케팅 
전략읁 
어 
떻게 
적절히 
혼합핝 
것인가에 
관한 
전략 


제품전략 
. 
제품믹스 
결정 
. 
상표 
결정 
. 
포장 
및 
서비스 


가격전략 
. 
제품의 
유형 
. 
제조방법 
. 
기술변화의 
정도 
. 
시장점유율 
. 
제품의 
수명 


유통전략
촉진전략 
. 
광고 
. 
인적 
판매 
. 
판매촉진 


마케팅활동의조정및통제.적절한조정및통제는목표달성가능성을높일수있음.마케팅활동이모두종료된후뿐만아니라마케팅활동이수행되는시점에서도이루어져야함4. 마케팅관리의과정마케팅활동의조정및통제.적절한조정및통제는목표달성가능성을높일수있음.마케팅활동이모두종료된후뿐만아니라마케팅활동이수행되는시점에서도이루어져야함4. 마케팅관리의과정
Quiz 


Quiz 1. □에 들어갈 알파벳은 ? 


생산 · 운영관리의 대상 


4□
원자재설비인력작업방법
Quiz 2. □에 
들어갈 
알파벳은 
? 


표준화전문화단순화3? 
Quiz 3. □에 
들어갈 
알파벳은 
? 


4? 
제품촉진유통경로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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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오락 프로그램과 사회적 책임

myPPT 2012. 10. 8. 08:17

3)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성

방송에 매개되는 오락 활동은 형태적으로는 다양한 오락을 방관 오락 가운데로 끌어들이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오는' 오락을 창출하는 것이며, 내용적으로는 획일성, 통속성, 소비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 특징이 사람들의 사회적·문화적 생활 가운데 어떠한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즉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방송이 제공하는 오락의 사회적 의미를 실제로 규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별적인 프로그램 내용을 대상으로 그 기능을 실증적으로 조사한 연구사례가 결코 적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이 향유하고 있는 오락은 방송 미디어가 제공하고 있는 것 외에도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들이 그 나름대로 사람들의 오락활동을 자극하고 또한 오락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 종합적인 결과 가운데서 오락방송 특유의 사회적 의미를 가려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여기서는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이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인 H. Herzog의 "주간 연속 드라마"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성을 고찰하고자 한다. H. Herzog 연구의 대상이 되었던 "주간 연속 드라마"란 제 2차 세계대전 직전 미국의 라디오 전성기를 가져다 준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오전 6시부터 8시간에 걸쳐서 방송된 CBS계에서 25분, NBC계에서 20분이 넘는 멜로 드라마로, 스폰서가 치약, 세제 메이커였기 때문에 '숍 오페라'로 불려졌던 것이다. 그 가운데 27년간 7,565회로 막을 내린 (머·파키스)를 비롯하여 500회 이상 방송된 (행복의 권리), (청년의사 로망), (미세스·버튼) 등이 유명하다. H. Herzog는 이들 연속 드라마가 장기 고정 청취자에게 미친 영향을 조사·분석한 결과 정서적 해방, 꿈의 실현, 충고 내지 조언을 얻는다고 하는 세 가지 만족 유형을 제시하였다. 즉, 드라마 청취자들은 드라마가 제공하는 '우는 장면'(the chance to cry)에서 '충격·행복·슬픔'(surprises, happy, sad)을 즐긴다고 하는 보상적 만족을 얻고 있다.  

또한 드라마는 꿈을 제공하고 대리참가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청취자의 백일몽을 만족시킨다. 더욱이 연속 드라마를 현실 생활의 문제에 대한 교과서 또는 충고나 조언으로 삼고 있다. 특히 프로그램 청취로부터 얻은 만족은 청취자가 일상생활을 통해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하는데 필요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즉, 만족은 방송내용과 수용자라고 하는 폐쇄된 관계 가운데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 즉 사회적 상호작용이라는 공개된 관계를 예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 주부들에게 부여한 이러한 사회적 의미는, 첫째, 현실적이라기보다는 몽상적이고, 구체적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 단순한 기분적인 것에 불과하며 둘째, 그 감명은 공식적 스테레오 타입으로 모든 것이 해피 엔드로 막을 내린다고 하는 안이한 사고가 많고, 셋째, 특별한 가치나 행동경향을 창출하는 동인으로는 되지 못하고 있다.  

한편 R. Arnheim은 43분의 숍 오페라의 내용을 3주간에 걸쳐서 분석한 결과, 그곳에 노동자 계급에 속하는 주인공은 한 사람도 등장하지 않고 전부 중류 또는 상류계급 사람들이었으며, 다루어진 테마는 죽음이나 질병, 그리고 비극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그린 가정중심의 생활체제 유지적인 것이 많았고 사회규범에 부합된 쟁점이 적은 것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여, 미디어가 제 1차적 동인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효과는 그 밖의 변수에 의한 것이며 또한 그것은 변화가 아니라 보강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즉, 이들 고전적 연구가 밝혀낸 것은 장기 연속 주간 드라마와의 접촉은 앞에서 말한 도취적 오락효과의 가벼운 것이며, 정서적 해방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 존재가치는 수용자의 선유경향에 따라 다르고, 또한 이 경향은 강화된다. 그곳에서 얻는다고 하는 생활에의 조언도 청취자 각자의 척도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기존 태도나 행동을 바꾸게 하는 정도의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 보강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동일화는 프로이트가 주장하는 '방어기재'의 하나로 프로그램에의 몰입적 접촉은 주로 이 심리경향에 의한다. 동일화의 대부분은 자신의 성격과 일치하는 데가 있어 친근감을 갖는 주인공에 대해서 일어나지만, 반대로 예를 들면, 싫어하는 정치가가 등장해서 실패하면 갈채를 보내고 성공하면 못마땅해 하는 경험도 일종의 동일화이다. 일반적으로 드라마로부터 받는 효과는 대체로 선유경향에 부합해서 이것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최대 다수의 최다 생활시간에의 적합이라고 하는 텔레비전 그 자체의 본질에서 논한다면, 텔레비전 드라마의 파장과 진폭이란 평범한 일상성으로 불협화한 위대성이나 심각성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다.

한편 오락 프로그램의 사회적 악영향에 관한 논의는 주로 청소년을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청소년이 영향을 받는 것은 청소년 대상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성인대상 일반 프로그램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청소년에 대한 텔레비전의 영향은 일찍이 거의 모든 나라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어 과학적 조사의 대상이 되어 많은 연구를 남겼다. 그러나 이들 과학적 조사기법을 사용한 대규모적인 연구의 결론은 텔레비전이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대체로 낙관적이고 관대하다. 즉, 청소년의 도덕적 내지 법률적 비행의 원인은 선천적인 유전 형질이든가 생활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텔레비전에 대한 모든 비판은, "소박한 부모마음" 이든가 "비과학적인 상식"에 지나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최근 새로운 형태의 청소년 비행으로서 '장난형 비행'이 증가추세에 있다. 장난형 비행이란 비행의 동기가 그 행동 이외에 어떠한 목적도 갖지 않는 비행, 즉 장난적 요소가 강한 비행을 말한다. 예를 들면, 백화점이나 수퍼, 가게에서 주인 몰래 물건을 훔친다든가, 신나나 본드를 흡입하는 것 등이 이러한 비행에 속한다.  

이러한 장난형 비행은 특히 도시 청소년들의 놀이 공간의 박탈에서 오는 비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환경이 만들어낸 비행이다. 예를 들면 과거에 이웃 수박밭에서 장난 삼아 하는 수박서리 대신에 도시 청소년들에게는 그 무대가 백화점, 수퍼, 가게로 옮겨진 것뿐이다. 즉, 도시 청소년들이 마음 놓고 뛰어 놀 수 있는 운동장이나 공터조차도 없고, 어느 정도 마음대로 뛰놀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게임센터, 백화점 등이 고작이다. 더욱이 공부에 쫓겨 학원이라도 다닌다고 한다면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은 더 더욱 없어진다. 또한 학교생활은 연속되는 시험 때문에 강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어 학교나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된다. 이러한 환경의 돌파구로서 일으키는 장난형 비행은 실정법상 엄연히 범죄에 속하지만 단순 경미하고, 이들 비행은 그다지 발전되지 않으며, 사춘기의 일과성·통과 의례적인 비행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리고 실제로 대부분의 장난형 비행은 다른 비행과는 달리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성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다반사로 저지르고 있는 자동차의 스피드 위반이나 무단 횡단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4) 오락 프로그램과 문화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문화적 의의는 예술성과 대중의 레저생활에서 생산성·소비성, 적극적·소극적 의의의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주로 논의되어 왔다. 즉, 예술적 논의는 표현 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 기능에 관한 것으로, 텔레비전은 과연 예술작품의 창작에 대응할 수 있는 표현기능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텔레비전 방송 개시 이래 예술 평론가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제작자가 전력으로 추구해 온 것이다. 그리고 여러 번의 시행을 거쳐서 오늘날에는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논자는 없다. 즉, 모든 표현요소를 구비하여 영화마저도 포용할 수 있는 종합적 표현 매체인 텔레비전에서는 이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미 텔레비전의 독자적 기능에 의해서 다른 미디어에서는 볼 수 없던 경지를 개척하여 훌륭한 예술작품으로 인정된 프로그램도 수없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텔레비전은 논할 필요도 없이 대중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대중의 지지에 의해 존재하는 미디어이다. 텔레비전과 대중사회는 현대라고 하는 시대가 낳은 쌍생아이다. 대중의 레저시간에 침투해서 그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여 그 생활시간이 되어 대중적 일상성을 특징으로 하는 것이 텔레비전이다. 즉, 엘리트 계급을 위한 엘리트 예술(elite art)에 대해서 텔레비전은 대중을 위한 통속예술(popular art)의 대표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술에 대한 소질이나 식견을 갖지 못한 일반대중의 일상적인 예술경험에 투합하기 위해서 구태여 정신의 앙양이나 긴장과 집중을 요구하지 않고, 누구나 편안하게 접촉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텔레비전 예술의 특색이다. 한편 예술의 종류는 크게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첫째로 특수하고 고도의 창조력을 가진 전문가가 밀실에서 개인적으로 몰입 제작하는 정신적 가치로 그 가운데 뛰어난 것은 고전으로서 역사에 오래 남으며, 그 감상에도 높은 소양이 요구되는 순수예술 또는 고급문화(high culture), 둘째로 예술적 가치와 제작자가 고급문화와 같이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전문 직업인에 의해 만들어져 감상자도 교육·생활에서 지식인이라든가 문화인으로 불리는 계층에 속하는 중급문화(middle culture), 셋째로 제작자와 감상자와의 사이에 확연한 거리가 없고, 반드시 개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저급문화(low culture)라고 한다. 그 특징은 그때그때의 일시적인 것이며 일회용의 소모품적인 것으로 축적성이나 발전성이 없고, 대중기업의 대상이 되는 획일적·인위적·대량적으로 항상 변화와 신기를 쫓아 만들어지는 일종의 유행현상으로 동일수준으로 진행되는 데 있다.  

일찍이 산업혁명 전에 민중은 자신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창출한 독특한 성격을 가진 민속예술(folk culture)을 가졌었다. 이것은 대량상품으로 위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라 비전문적이긴 하지만 개성적·비인위적, 비획일적·비소모적인 점에서 현대의 통속, 저급, 대중예술과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이것에 비해서 현대의 대중문화는 기껏해야 고급문화가 저속화 한 것에 불과하다. 텔레비전이 개시와 더불어 비난을 받아온 것은 바로 이 점에 있다. 예상한 대로 텔레비전이 상업주의에 의해 운영되고 가장 쉽게 그 쌍생아인 대중과의 전면적 밀착을 노린다면 인간에게 보편적인 생식욕구와 공격성의 경향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이러한 경향을 우려한 것으로 앞에서 말한 FCC의 (방송 피면허인의 사회적 책임), 이른바 '청서'의 경고가 내려졌었다.  

텔레비전에는 숙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결함으로부터 국민과 대중의 입장에서 텔레비전을 보호하려는 두 가지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즉, 그 하나는 적어도 정치권력에 의한 표현의 자유 그 자체의 통제를 초래하지 않도록 경종을 울리는 소극적인 방법, 둘째로는 텔레비전을 단순한 소모품적·비생산적인 레저 미디어로 치부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가운데서 태어나는 민속 예술적인 생산문화의 미디어로 위치 부여하려는 적극적인 방법이다. 종래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예술가가 밀실에서 수작업에 의해서 창조된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오리지널 작품을 의미하고 그 이상의 것은 모조품이었다. 예를 들면, 영화작품의 경우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네가필름은 결코 완전한 작품은 아니다. 이것을 모형으로 해서 그곳에서 창출되는 하나하나의 프린트가 전부 오리지널 작품이다. 더욱이 광전 변화의 일렉트로닉스 기술에 의해서 무한대로 작품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텔레비전에서는 고전적 개념의 오리지널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수백만, 수천만의 영상이 전부 오리지널이다. 이것은 첫째로 만인이 평등한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로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기술발달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구 예술의 범주에서는 다룰 수 없는 자유로운 표현의 가능성이 주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은 표현·전달의 도구, 기계의 규격화와 표준화, 대량생산에 의해서 야기된 현상이다.

4. 오락 프로그램과 성 표현

우리들 인간의 성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구애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성을 끌어들여서 구체적인 성행위, 즉 전희나 성교에 이르기까지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단계의 성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역시 언어일 것이다. 그러나 성적인 언어의 사용은 많은 문화권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특히 남녀가 동석하는 경우에는 성기나 성행위를 의미하는 언어는 피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인 장소의 경우로 사적·성적인 장소의 경우에는 오히려 의식적으로 성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이 많다. 둘째로는 구체적인 성행위 단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이것은 자기자신이나 파트너의 성적인 쾌락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는 집단 가운데의 성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예를 들면, 술좌석에서의 음담이나 포르노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텔레비전의 선정적 프로그램 등 다양한 형태의 성적 커뮤니케이션을 생각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집단 가운데의 성적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에는 성교육적인 측면과 오락적 측면, 즉 성적 흥분과 긴장, 그리고 성적 불안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방송 미디어를 통한 오락 프로그램의 성 표현에 대해 방송의 자유론적 입장에서 논의하고자 한다.  

1) 성 표현과 방송의 자유

공공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의 선정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여기서 '선정성'이란 개념은 매우 애매한 것으로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주관에 좌우되어 자의적으로 운영될 여지가 많다. 그것은 이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것에 기인하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방송법)제 4조 제 1항에는 "방송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민주적 기본질서를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동조 제 3항에는 "방송은‥‥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동법 제 5조 제 2항은 "방송은 국민의 윤리적·정서적 감정을 존중하여야 하며.."로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송법)에 국한해서 보면 선정적인 성 표현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 '공중도덕과 사회윤리', '국민의 윤리적·정서적 감정'을 명백하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상적인 성 표현은 보호 받아야 마땅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선정성 등 저속성 논의는 자칫하면 방송활동의 진정한 자주성이나 창조성을 억압하려는 의도에 이용당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의 선정성, 외설성, 저속성은 시청자의 저속성을 반영한 것이며 이러한 대중의 주체성·인간성을 표현한 선정적 프로그램은 끊임없이 발전해 가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즉, 어떤 종류의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저속 프로그램에는 현 세태를 주시하는 눈이 존재하고 부정형이긴 하지만 내일을 생각하게 하는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가진 저속 프로그램과 단편적인 지식을 잘라서 파는 이른바 교양 프로그램과는 과연 어느 쪽이 저속한 것일까? 그리고 선정적인지, 외설적인지의 판단기준은 절대적인 것도 아니며 불변부동의 것도 아니고, 시대와 민족과 사회의 풍속, 습관, 전통, 도덕, 민족감정, 종교, 교육 등에 따라 다르며 또한 역사적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사회 통념상 판단을 내리지만 이러한 사회통념 역시 그 기반이 되는 사회의 변천에 따라 변화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선정적 프로그램의 규제수단으로 '성행위의 비공연성' 원칙을 들 수 있으나, 성행위 그 자체의 비공연성이든, 성행위 표현의 비공연성이든 앞에서 말한 논리에 따라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선정성 등은 시청자 각자의 속성에 따른 판단에 맡겨져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선정성 논의는 '표현의 자유'의 보장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로서 존재하기 때문에 충분한 배려와 합리적인 분석을 통해 언론탄압의 구실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항상 논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선정적 표현에 대한 언론의 당·부당은 언론자유 전체에 대한 기본적 입장을 나타내는 것으로 결국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왜냐 하면 선정성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기 위해서 어떠한 과학적·논리적인 증거를 채택할 것인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증명은 모든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조건이다. 이것이 반론에 대해 충분히 설득하지 못하면서 통용된다고 한다면, 방송 그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국가 전체에서 위기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반대로 합리적이며 과학적이고, 반론에 대해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면 그것이 적용되는 것에 타당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일반 원칙적인 제약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하겠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제약을 허가하는 경우에는 그것이 어떠한 실질적인 해악을 초래했는가에 대한 명확하고, 객관적이며 과학적으로 반론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적극적인 실증이 필요하다. 증명이 없는 경우나 불충분한 경우에는 제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겠다. 이것은 헌법상 보장된 기본적 인권의 가장 큰 의미이다. 이것이 없으면 헌법상 보장되어 있다고 하는 의미는 그 가치를 상실해버리기 때문이다.

2) 성 표현의 영향

성 표현과 영향의 관계를 규명한 기본문헌으로서 일정의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존슨 대통령 때 설치되어 닉슨 대통령 때 보고서를 제출한 "예술과 포르노에 대한 대통령 자문 위원회"의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의 결론은 "위원회 및 그 밖의 연구기관이 실시한 대규모적인 실증연구에서도 명백한 외설물과의 접촉이라든가 사용 등이 범죄, 비행, 성적 또는 성과 관계없는 일탈행위 등 심한 정서장애 등의 사회적 또는 개인적 해악의 발생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 인용된 몇 가지 연구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예를 들면 미네소타 도서관 학교의 조사보고서에서는 경찰서장 389명과 청소년 비행문제 전문가(소년 지도원, 정신 의학자, 사회학자, 사회사업가) 799명에게 "외설서를 읽는 것이 청소년 비행의 원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회답의 결과는 (표 3)과 같다.

그리고 시카고 대학의 조사 팀이 미국의 정신병학자와 임상심리학자 3,423명에게 "외설서가 반사회적 행위의 원인이었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전문직으로서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에 대한 회답결과는 (표 4)와 같다. 또한 "외설서에 접하고 있는 사람들은 접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보다도 반사회적인 성행동을 하기 쉽습니까"에 대한 회답결과는 (표 5)와 같다.  이러한 결과에서 나타나듯 성 표현에의 접촉이 반사회적 행위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과와는 반대로 일반여론이나 상식 그리고 양식은 적어도 '경찰서장'의 입장에 서고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남성의 47%, 여성의 51%가 "섹스표현이 강간을 증가 시킨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표 6)과 같은 조사결과도 주목 받을 만하다. 즉, 17∼20세의 비행소년 가운데 15세 이전에 성 표현을 접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결과와 동시에 보통 소년(15∼17세)의 경우, 모든 성 표현을 포함한 비율이 "영상을 통해서가" 63%, "문자를 통해서가" 53%로 나타났다.  

각각의 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연령이 다르고, 비행소년에 대해서는 성 표현을 종류별로 나눈 것에 비해 보통 소년에 대해서는 구별하고 있지 않은 등, 간단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비행소년만이 어렸을 때부터 성 표현에 많이 접촉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청소년의 성범죄는 범죄학적으로 소질성 범죄에 속한다"고 하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덴마크에서는 1960년부터 섹스(표현)의 자유화가 이루어져 인쇄물은 65년부터, 영상은 67년부터 자유로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67년에는 국회에서 외설물에 대한 규제법이 폐지되어 69년 1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가운데 수도 코펜하겐의 성범죄는 1959년의 1,018건을 중심으로 60년대에는 감소하기 시작하여 69년에는 약 3분의 1인 358건으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결과에서 볼 때 성 표현의 자유화는 성범죄를 오히려 감소시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속단에는 여러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즉, 성병이나 사생아의 증가가 성범죄와 직결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치료약이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병의 만연이나, 피임도구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생아가 통계상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의 자유화에 따른 성범죄의 감소는 어떤 면에서 예전에는 성범죄에 해당되었으나 지금은 무시되거나 합법화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왜냐 하면 포르노는 성욕을 일으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일단 성욕이 발생하면 그것은 만족을 추구하며, 이러한 만족의 추구에서 적당한 도덕적 구속이 없으면 반사회적 성행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즉, "포르노-성욕-만족-성병·사생아"라고 하는 인과관계의 연쇄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 역시 설득력은 약하지만 예를 들어, 어린이용 식품에 유해 물질이 들어 있다고 했을 때, 그것을 전량 수거해서 폐기 처분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논리와 같은 맥락에서 방송의 성 표현이 반사회적 성행동을 유발할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러한 제재는 당연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성인이 성 표현을 어떻게 보든 그것은 그 사람의 권리이며 자유이다. 따라서 성인이 자신의 의사로 보는 것까지 금지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서 말한 비정상적인 성 표현까지 표현의 자유라는 구실로 보호할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즉, 성의 노출도가 아니라 어떤 문맥상의 표현인가가 판단의 재료이다. 여기에는 제재상의 자의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객관적인 평가기준이 필요하리라 본다. 예를 들면, 전혀 성과 관계없는 행위의 묘사를 0점으로 하고 식스나인을 10점으로 해서 이 사이에 여러 가지 성행위의 묘사를 배치하는 것은 상정할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어느 정도 선까지를 규제의 대상으로 정할 수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규제나 제재보다는 전통적 가치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든가, 대응하는 새로운 가치 시스템을 용감하게 제창한다든가 하지 않으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볼 수 없다고 하겠다. 이것은 상업방송에 대응하는 공영방송의 본연의 임무라고 하겠다.  

3) 성 표현과 보호법익

지금까지의 논의는 성 표현을 제약함으로써 지켜지는 법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때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법익은 크게 '개인적 법익'과 '사회적 법익'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에는 개인의 감정, 감수성이나 도덕심, 정신적 평온 등이 포함되고 후자에는 성적·도덕적인 사회질서나 사회생활을 지킬 것, 성범죄 및 이에 관련하는 범죄로부터 사회를 지킨다고 하는 치안적 법익으로 이른바 보호법익이다. 이들 보호법익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감정, 감수성, 도덕심, 정신적 평온이 침해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감정 등을 법익으로 하는 것에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면, 모든 감정에 대해서 그것을 구별할 수 있는 과학적인 근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성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감정에 대한 침해도 외설에 대해서만 성악설을 전제로 하지 않는 한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오늘날 한국정치에 관한 모든 표현은 일체 할 수 없게 되며, 또한 특히 텔레비전의 모든 프로그램은 제작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물론 이와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이 분야에서 개인의 감정이 손상되어도 전혀 법익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즉, 감정 그 자체만으로는 당연히 보호법익이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러나 외설적인 성 표현에 관해서는 정치적·사회적·경제적 표현과의 정당한 구별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정 등을 법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그 하나는 같은 감정이라고 해도 그것을 가짐으로써 명백한 실해가 있는 경우에는 그 실해에 따른 감정도 보호법익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가 이에 해당된다. 즉, 명예훼손에서는 개인의 사회적 평가가, 프라이버시는 비밀로 해두고 싶은 사생활이 직접적인 보호 법익이지만, 이러한 법익 가운데는 '마음의 평온'이나 '공개를 원치 않는 감정' 등이 포함된다.  

이와 관련하여 선정적이고 외설적인 저속 프로그램에 대한 의문제기의 대부분은 특히 청소년의 감수성과 결탁 시켜 제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발육과정에 있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감수성 그 자체를 손상시키는 것이 실해라고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인을 어린이의 기준에 맞추는 것이며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다름없다. 청소년 보호의 필요성과 외설적인 성 표현의 보장과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요는 청소년에의 루트를 차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의미에서 외설적인 성 표현 그 자체를 억압하는 방법으로서 국가권력의 직접개입을 용인하거나 촉진하는 것은 방향이 크게 빗나간 것이다. 만약 이러한 개입이 허용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표현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일체 간섭하지 않는 별도의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언론의 자유와도 관계되는 것으로 만약 권력이 직접 방송필름 등을 압수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헌법상의 문제로 비약된다.  

이와 관련해서 고려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이른바 시청자의 문제이다. 외설적인 성 표현이 방송된다고 해도 통상의 경우는 그것을 피하는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표현에 접근하고, 않고는 개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다. 따라서 감정만을 대상으로 고려한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은 스스로 회피함으로써 문제의 해결을 간단히 도모할 수가 있다. 그러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그 자유로운 선택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즉 자신의 감정이 거부하는 외설적인 성 표현에 강제적으로 접촉하지 않을 수 없는 등 물리적·정신적으로 선택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외설적인 성 표현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시청자가 처한 상황의 문제이다. 이것은 특히 외설적인 성 표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표현에 공통적인 문제이다.  

둘째, 사회적 법익, 즉 성적·도덕적인 사회질서를 지킨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학설이나 판례가 대부분 이른바 상대적 외설개념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질서에 대해서는 시대나 지역, 사회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변천하는 것으로 되어 반드시 일의적인 정의는 내려져 있지 않다. 다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외설적인 성 표현의 본질적인 요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상황에 의해서 성 표현의 제약이 정당화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즉, 공공복리에 의한 제약(헌법 제 37조 제 2항)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는 논리구조상에 모순이 있다. 즉, 헌법은 한편에서는 일체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질서가 문란하게 된다면 법의 규제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는 논리를 구사하여 공공의 복리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넌센스이다. 즉, 모든 표현을 원칙적으로 보장해야만 한다면 그것을 규제하는 경우에는 엄격하게,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 당연히 요구된다. 이것이 바로 헌법상 보장된다고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장된다고 하면서 아주 간단하게 침해하는 것이 가능한 보장이라면 전혀 의미가 없을 뿐더러, 구태여 헌법에까지 명문 규정을 둘 필요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성 표현의 자유는 헌법차원의 문제라고 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 제약의 기준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추상적인 논리나 포괄적이며 실증성이 결여된 '공공의 복리론'만으로는 이미 설득하기 어려우며, 특히 성 표현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는 정의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고 속단해버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성범죄나 그에 관련한 폭력, 협박, 유괴, 마약 등의 범죄 유발을 막는다고 하는 사회적 법익에 대해서는 외설적인 성 표현이 이들 범죄 행위에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하는 과학적 입증 역시 아직 없다. 예를 들면, 성 표현과 범죄의 상관관계에 대한 서독의 통계에 의하면, 이른바 포르노 영화, 잡지 등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풍속범죄 건수는 1966년부터 68년까지 각각 45,000, 1969년에는 43,000, 1970년에는 39,000대로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와 같이, 인간이 성적인 표현에 의해서 자극을 받는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반사회적인 범죄로 이어진다고 하는 것은 독단이며, 인간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기계적·형식적인 발상이라 하겠다. 더욱이 과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도 하지 않고, 일방적인 독단전횡에 의해 인간의 가장 중요한 헌법상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은 법치국가인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하나의 도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5. 결론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반드시 논증은 충분하지 않지만, 방송미디어를 통한 성 표현은 단지 '추상적 위험'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처벌은 물론 그것에 대한 여러 가지 제한을 해제하여 다른 모든 표현과 동등하게 헌법상의 보장을 보증함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근거로 성 표현의 자유에 따른 몇 가지 조건을 결론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성 표현도 표현인 한, 헌법(제 21조)에 의거하여 절대적 자유를 보장하여야 한다. 단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는 성 표현, 즉 앞에서 말한 도착적 성행위의 표현이나 인간의 기본적 인권을 무시하고 손상하는 성 표현의 경우는 표현의 자유로서 보장 받을 수 없다고 하겠다.  

둘째, 따라서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자들은 성 표현에 있어 지금까지 이상으로 사회적 책임을 자각해야만 한다. 즉, 방송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 또는 외부의 통제를 배제하기 위해서 특히 성 표현에 대한 자율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성 표현의 영향을 검토·평가할 때에는 시야를 표현 그 자체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 표현의 메커니즘 전체를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그 과정에 있는 가정, 학교, 지역, 사회라고 하는 장을 고려해야만 한다.  

넷째, 휴머니즘과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또는 이들의 확립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한다. 즉 휴머니즘, 민주주의라고 하는 우리들의 사상, 문화의 기본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 부정의, 인간 경시의 성 표현으로 욕망이 치달아 그러한 종류의 외설적인 성 표현이 횡행하게 된다. 따라서 휴머니즘이나 민주주의 사상이 확립되지 않는 한 이러한 종류의 성 표현을 검열이나 처벌로서 제한한다고 해도 병인은 근본적으로 없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잠복해서 악화할 뿐이다. 그리고 청소년의 성범죄나 이와 관련하는 범죄 역시, 자신과 주위의 모든 사람을 존중한다고 하는 휴머니즘적 사고가 결여된다면 진정한 해결방법은 없다고 하겠다.  

다섯째, 공영방송의 위상을 강화해야 한다. 민간 상업방송 역시 방송사업의 성격상 공익적인 성격을 갖긴 하지만 민방은 본래 상품적 성격을 가진 서비스이므로 공익성은 종속적 요인이다. 따라서 민방은 상업방송의 사익성과 전파의 공익성과의 복합체로서 존재하게 되므로 민방에 대해 제기되는 문제는 이들 두 이념의 조화 문제이다. 이와는 달리 순수하게 공익성만을 갖게 되는 공영방송은 이른바 공익성이 강한 프로그램, 수준 높은 실험적 프로그램에 전념하며, 시청률에 연연하지 말고, 민방에서는 취급조차 할 수 없는 소수 대상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에 노력해야 하며, 특히 전술한 휴머니즘과 민주주의 사상의 확립에 필요한 프로그램의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방송 프로그램의 저질, 저속, 선정성 논의의 이면에는 공영방송이 그 책무를 망각한 채 상업방송과의 시청률 경쟁에 연연하고 있고, 또한 정부 집권당에 편향하고 있다는 등 방송계 전체에 대한 뿌리깊은 사회적 비판 내지 불신감이 그 저류에 흐르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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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허공의 목소리  (0) 2012.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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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고발

myPPT 2012. 10. 8. 08:09

고소에 관한 문제



개요

  1. 고소란 범죄의 피해자 또는 그와 일정한 관계가 있는 고소권자가 수사기관에 대하여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
  2.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경우나 도난신고와 같이 범인의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 없이 피해사실을 신고하는 정도로 그치는 경우 고소가 아님
  3. 범죄사실의 특정은 고소인의 의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범죄사실을 지정하여 범인의 처벌을 구하고 있는 것인가를 확정할 수 있음면 됨
  4. 수인의 공범 중 1인 또는 수인에 대한 고소 또는 취소는 다른 공범자에게도 효력이 있다는 원칙을 주관적 불가분의 원칙이라고 함
  5. 주관적 불가분의 원칙은 간통죄, 강간죄 등과 같이 절대적 친고죄의 경우에는 예외 없이 적용되나 친족상도례와 같은 상대적 친고죄의 경우 비신분자에 대한 고소효력은 신분관계에 있는 공범자에 대하여는 미치지 않는다.
  6. 반의사불벌죄의 경우에는 고소불가분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오현웅, 외., 2009)

용어설명 (법전편집부, 2007)
고소

현재의 형사소송에서 기소할 것인가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검사뿐이지만 (기소독점주의)  범죄의 피해자와 그 법정대리인 및 그 밖의 일정한 자는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려 그 범죄를 기소하여 달라는 의사를 표명할 수 있다. 이것을 고소라 한다.  

고소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기소되는 것은 아니고(기소편의주의) 수사를 촉구하는 것뿐이다. 소위 친고죄에 대하여는 고소가 없으면 기소할 수 없고 심리를 시작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고소불가분의 원칙

일개의 범죄의 일부에 대하여 고소 또는 그 취소가 있으면 그 효력은 범죄전체에 미치고(객관적 불가분), 공범자 중의 1인에 대하여 고소 또는 그 취소가 있어도 그 효력은 공범자 전체에 미친다(주관적 불가분, 형소법 제233조)

양자 모두 예외는 있다. 전자에서 소위 과형상일죄(원래는 수개의 범죄인 것)의 경우에 피해자가 다르거나 또는 일부만 친고죄인 때에는 각각 나누어서 고찰하고, 후자에서 소위 상대적 친고죄(예 : 친족상도례)의 경우에는 일정한 신분을 가진 범인만에 대하여 분리하여 고찰한다.

유효한 고소의 경우
  1. 피해자가 법원에 진정서를 제출한 경우, 단순한 도난신고는 유효하지 않음
  2. 고소는 피고소인의 성명·연령등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아도 됨
  3.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고소할 수 있음(제225조1항)
  4. 고소권자가 사망한 경우 배우자, 직계친족, 형제자매는 고소할 수 있으나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고소할 수 없음(제225조2항)
  5. 일반적 친고죄는 6개월
  6. 강간죄 등 성폭력범죄는 1년
  7. 가정폭력은 배우자의 직계존속도 고소할 수 있음
소속기관장의 고발이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 사건
  • 출입국관리법 위반
  •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 위반
  • 물가안정에관한법률 위반
  • 관세법위반
  • 전투경찰대설치법 위반
  • 조세범처벌법 위반

고소와 고발

구분

고소

고발

공통점

방식이나 절차가 동일

개인이 모두 범죄의 소추를 구할 수 있음

수사개시의 단서가 되나 특정한 경우 소송조건

차이점

주체

일정한 자

고소권자 및 범인 이외의 제3자

기간

일반적으로 6개월

무제한

대리

허용

불허

취소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

제한없음



참고 문헌
법전편집부. (2007). 법률용어사전. (김. 이원숙, Ed.) 현암사.
오, 현., 이, 성., 박, 민., 신, 광., 조, 우., 나, 성., et al. (2009). 경찰실무종합. 경찰공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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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감시 사회 변천사 (감시 시스템의 기능 사례)

myPPT 2012. 10. 8. 07:38

contents-


1. 서론 3

2. 전자 감시 사회 4

2.1. 전자감시란? 4

2.2.  감시의 시작 4

2.3. 전자감시의 배경 4

2.4.  감시의 개념 4

3. 감시의 변천사 5

3.1.  과거의 감시 시스템 5

3.1.1. 빅브라더 5

3.1.2. 파놉티콘 6

3.2.  현재의 감시 시스템 6

3.2.1. 폐쇄회로(CCTV) 6

3.2.2. RFID 6

3.2.3. GPS 위치 추척 시스템 8

3.2.4. 인터넷 개인 정보 시스템 9

3.2.5. 전자발찌 9

3.3.  미래의 감시 시스템 10

3.3.1. 유비쿼터스 사회 10

3.3.2. 베리칩 11

3.3.3. 전자주민증 12

3.2.2. NEIS 12

4. 감시 시스템의 기능 사례 13

4.1. RFID 소형 전자칩 13

4.2. GPS 전자칩 14

4.3. CCTV-1 15

4.4. CCTV-2 16

5. 결론 16

5.1.   정보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자세 16

5.2. 정보기술을 생산하는 우리의 자세 18



1. 서론


● 정보사회와 전자감시의 출현

정보혁명은 산업의 생산성과 조직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있었던 계급갈등도 해결하여,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사회를 출현시킬 것으로 믿어져 왔다. 특히 정보통신혁명이 가능하게 만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이제까지 수용자, 소비자, 대중 혹은 대상으로 존재해 왔던 사람들을 생산수용자나 커뮤니케이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정보혁명은 공동체의 개방성과 연대성, 그리고 개인의 자율성과 주체성을 증진시킴으로써 이상적인 사회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과학 기술의 발달은 사용의 방향에 따라 선악의 양면성을 내포하고 있다. 기술은 선 혹은 악을 초래하는 동력이기보다는, 선과 악을 동시에 수반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선을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라 할지라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정보기술의 다양한 속성을 파악하고 파생될 결과들에 대한 대처를 생각해야한다. 특히 디지털 정보기술 및 기기는 산업기술보다도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더 밀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일상이 기술문화에 의하여 어떻게 영향 받게 될 것인지는 정보사회로 변화하는 과도기에 서 있는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전자감시에 따른 프라이버스 침해의 문제는 산업사회에서는 그렇게 심각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던 문제이다. 그러나 정보사회로 넘어오면서 프라이버시 침해는 공공연히 발생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개인정보를 불법 습득하여 신용카드를 위조하는 행위나, CCTV를 통하여 개인의 사적 행위를 은밀하게 훔쳐보다가 발각된 백화점도 있다. 개인의 전화대용을 도청한다든지, 종업원의 작업행위를 전자적으로 감시하는 행위는 전혀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을 정도이다. 심지어 공안전산망에서 보유하고 있던 개인의 주소가 유출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며, 그 결과 재산상의 침해뿐만 아니라 개인의 생명마저 앗아간 사건도 발생하였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사생활의 침해는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뿌리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개인의 사생활을 은밀하게 조사하는 무허가 용역업소도 상당수 존재하며, 개인정보의 전문수집상, 수집된 개인정보를 용도에 맞게 가공하여 판매하는 개인정보 가공업체도 다수 존재한다. 이들의 정보망에는 3천여만명 이상의 개인자료가 담겨져 있다고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 대부분의 개인정보는 그들의 손바닥 안에 있는 셈이다.

이렇게 실제로 드러나는 민간 정보업자 혹은 사생활 침해자들이 득세하는 데는 우리나라 특유의 많은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전세계에서도 선례를 찾기 힘든 국가기간전산망 사업의 구축에 의한 전 국민 개인정보의 통합연동관리, 전자주민카드 제도를 실행할 수 있는 정치 문화적 기반, 개인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가 거의 없는 시민 등 이미 우리 사회에는 시민의 사생활이 침해 받을 수 있는 근간이 형성되어 왔다.

위의 언급한 사례는 수많은 사건의 일부분이라 볼 수 있다. 향후 우리나라의 정보화에서 이러한 요인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개인정보 혹은 개인의 일상적 활동이 전자감시를 통해 훼손되는 일은 높은 확률로 발생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정보기술을 활용한 정보감시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에 따른 시민들이 부당한 침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 전자 감시 사회


1. 전자감시란?

● 전자감시란 축적된 개개인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감시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까지는 석방된 범죄자 등 범죄 우려 인물의 신체에 전자감응장치를 부착시켜 유무선 장비를 통해 원격 감시하는 것을 의미하는 다소 좁은 의미로 사용 되고 있다.


2. 감시의 시작

● 감시란 누군가를 단속하기 위해 주의 깊게 살핀다는 말로, 어떠한 사람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이 존재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발전하는 세계에 맞춰 정부와 자본가들은 그들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이윤을 창출하고 행정 관리 업무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에 대한 ‘관리‘를 시작했고 개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을 감시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산업화 초기의 노동자들은 농민계층들이 많았고 무지한 이들을 효율적으로 교육시키고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효과 적인 관리 방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용된 것이 ’감시와 통제‘였고 이러한 감시와 통제의 모습은 더욱 체계적이고 발전된 모습으로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현대 사회의 곳곳에 최첨단 정보 통신기술이라는 친구와 함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3. 전자감시의 배경

● 미국에서 최초 시행된 전자감시제도는 1983년 사회내처우 결정을 받은 보호관찰대상자에게 전자팔찌를 착용시켜야 할 사항의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방식으로 실시되었다. 이것은 범죄자를 자유박탈의 구금형에 처하는 것을 피하면서 구금형의 대체수단으로 전자감시를 수반한 보호관찰을 실시한 것이다. 그 후 팜비치 카운티에서 프라이드사가 전자감시프로그램을 시범 실시함으로써 본격적인 전자감시가 처음 실시되었다. 미국의 초기 전자감시제도는 교두소수감자를 가석방하면서 가택구금의 수단으로 전자감시를 활용하였다. 이후에는 점차 자유형을 선고하여야 할 피고인에 대하여 보호관찰을 선고하면서 전자감시를 준수사항으로 부과하는 형태로 발전해 왔다. 몇몇 전자감시 프로그램은 재범죄의 위험성이 높은 범죄자들에게 먼저 시행되었다. 현재 미국 각주 및 연방에서 입법된 전자감시제도는 강력 성범죄자를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4. 감시의 개념

● 감시는 정보사회의 형성원리이며 문화적 기반이 되는 가장 특징적인 것이다. 정보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감시에 대한 개념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감시라는 단어적인 의미는 “단속을 위해 은밀하게 숨어서 대상을 관찰 한다”이다. 단속이라는 의미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감시에 연루된 다는 것 자체가 좋은 느낌을 주지 못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사회적 삶 속에서 하나의 필연적인 삶의 양식으로 감시를 받아드리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관계의 형성에서 신뢰를 확인할 수 있는 정보의 수집을 바라는데, 이것이 대상과 대상 사이의 감시로 연결 된다. 그러나 감시는 시민들의 권리를 획득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자율성을 침해받는 경로가 되기도 한다. 향후 시민사회의 개념화에서 정치적, 윤리적으로 분석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든스(1991)는 감시를 근대국가의 성격에서 연유하는 것으로서 근대성의 한 차원으로 보고 있으며, 라이언(1994)은 포스트모던 사회의 한 차원으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의 논리에 다르면 감시는 사회가 분화되기 시작하는 근대의 태동기 때부터 체계화되었거나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질적으로 매우 고양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정보사회의 형성원리이며 문화적 기반이라 할 수 있는 ‘감시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감시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조명할 필요가 있다. 감시는 어떤 주체가 특정 의도를 가지고 대중을 관찰, 감독하는 것을 말한다.(D. Lyon & E. Zureik, 1996) 이러한 의도에는 다양한 감시의 방법이 존재한다. 아래 Table 1은 감시 개념에 대한 지도이다.


구분 감시의 의도

악의적 선의적

감시의 방식 은밀 감시 I 감시 III

공개 감시 II 감시 IV

감시의 기능 역기능 순기능

Table 1. 감시의 개념


Table 1에서는 감시를 감시 주체의 의도와 방식에 따라 4가지로 구분한다. 위 표에서 나온 감시의 개념들을 구체적인 정의를 통해 설명해보면 아래 Table 2와 같다.


감시 I (은밀 + 악의) 상식적인 감시의 개념, 뒷조사, 음해, 개인정보 침해

감시 II (공개 + 악의) 흑색선전

감시 III (은밀 + 선의) 사적 배려, 보살핌

감시 IV (공개 + 선의) 신용정보조사, 업무감사, 정보공개 요구

Table 2. 감시의 정의


3. 감시의 변천사


1. 과거의 감시 시스템


1. 빅브라더 (Big brother)

●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George Orwell, 1903~1950)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비롯된 용어로 긍정적 의미로는 선의 목적으로 사회를 돌보는 보호적 감시, 부정적 의미로는 음모론에 입각한 권력자들의 사회통제의 수단을 말한다. 사회적 환난을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도 있는 이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통해 소설 속의 사회를 끊임없이 감시하는데 이는 사회 곳곳에, 심지어는 화장실에까지 설치되어 있어 실로 가공할 만한 사생활 침해를 보여준다. 음모론에 입각하여 재해석하자면, 독점권력의 관리자들이 민중을 유혹하고 정보를 왜곡하여 얻는 강력한 권력의 주체가 바로 빅브라더의 정보 수집으로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과거 빅 브라더의 실체는 매우 비현실적으로 보였지만, 소설 속의 그것과 흡사한 감시체제가 현대에 이르러 실제 사회에서도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미국의 경우 국방부의 규모와 맞먹는 국토안보부가 설치되고, 이들의 감시행동을 법적으로 보호해 줄 애국법이 통과된 상태이다. 


2. 파놉티콘

● 감시의 상징적이고 대표적인 장치이다. 벤담이 설계한 원형 감옥. ‘봄’과 ‘보임’을 분리함으로써 간수들에게 감시 편의를 제공하고 죄수들로 하여금 피감시의 두려움을 높이는 이중 효과를 노렸다. 파놉티콘의 구조상 원형 건물의 원주를 따라 배치한 죄수들의 방은 항상 밝게 유지되고 중앙에 위치한 간수의 감시 공간은 항상 어둡게 유지시켜 죄수는 간수를 볼 수 없지만 간수는 죄수들의 일상을 다 드러낼 수밖에 없는 형태이다. 그렇게 하여 죄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 간수의 시선 때문에 규율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못하다가 점차 이 규율을 ‘내면화’하여 스스로 감시하게 된다.

Picture 1. 폐쇄회로 시스템


2. 현재의 감시 시스템


1. 폐쇄회로 (CCTV)

● CCTV(closed circuit television)는 특정 수신자를 대상으로 화상을 전송하는 텔레비전 방식을 말하며, 산업용, 교육용, 의료용, 교통관제용 감시, 방재용 및 사내의 화상정보 전달용 등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다. 텔레비전 시스템은 폐회로 시스템(Closed Circuit System)과 개회로 시스템(Open Circuit System)으로 분류되는데, 후자는 화상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보통 우리가 말하는 TV 방송이 여기에 속한다.



CCTV는 화상의 송, 수신을 유선 또는 무선으로 연결하며 수신대상 이외는 임의로 수신할 수 없도록 돼 있어 폐쇄회로 텔레비전이라고 한다. 

CCTV는 때로 Industrial Television의 약어인 ITV로 불리기도 하는데 방송텔레비전 이외의 산업용, 교육용, 의료용, 교통관제용 감시, 방재용 및 사내의 화상정보 전달용 등으로 그 용도가 다양하다. 최근에는 특히 골목과 같은 우범지대에 CCTV를 설치하는 등 범죄예방을 위한 설치가 늘고 있다. 


2. RFID


1. RFID란?

●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이란 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을 말한다. 여기에는 RFID 태그(이하 태그)와, RFID 판독기(이하 판독기)가 필요하다. 태그는 안테나와 집적 회로로 이루어지는데, 집적 회로 안에 정보를 기록하고 안테나를 통해 판독기에게 정보를 송신한다. 이 정보는 태그가 부착된 대상을 식별하는 데 이용된다. 쉽게 말해, 바코드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것이다. RFID가 바코드 시스템과 다른 점은 빛을 이용해 판독하는 대신 전파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코드 판독기처럼 짧은 거리에서만 작동하지 않고 먼 거리에서도 태그를 읽을 수 있으며, 심지어 사이에 있는 물체를 통과해서 정보를 수신할 수도 있다.

RFID는 사용하는 동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오직 판독기의 동력만으로 칩의 정보를 읽고 통신하는 RFID를 수동형(Passive) RFID라 한다. 반수동형(Semi-passive) RFID란 태그에 건전지가 내장되어 있어 칩의 정보를 읽는 데는 그 동력을 사용하고, 통신에는 판독기의 동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능동형(Active) RFID는 칩의 정보를 읽고 그 정보를 통신하는 데 모두 태그의 동력을 사용한다. RFID를 동력 대신 통신에 사용하는 전파의 주파수로 구분하기도 한다. 


2. RFID의 역사

● 1939년, 영국에서 비슷한 기술을 이용한 IFF(Identification, Friend or Foe) 자동응답기가 개발되었다. 이 기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에 부착해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데 이용되었다. 1946년, 소비에트 연방의 레온 테레민은 첩보전을 위한 장비를 만들었다. 이 장비는 공기 중의 전파를 변조하여 정보를 송신하는 장치로, 음파가 진동판을 진동시키면 그 떨림이 공명기를 변화시켜 전파를 변조한다. 비록 정보 인식 및 저장 기능은 없지만, 전파 변조를 통한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장비가 RFID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1960년대 들어서 미국 정부가 핵설비의 장비 및 작업자 식별에 RFID 기술을 활용하였다. 1973년 마리오 카둘로가 특허를 취득한 장비는 진정한 최초의 RFID라고 할 수 있다. 메모리를 갖추고 전파로 통신하는 RFID의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카둘로의 특허는 전파, 음파, 빛까지 통신에 사용하는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었다. 같은 해, 로스 알라모스 국립 박물관에서 스티븐 뎁 등이 제한된 출력의 RFID 기술을 최초로 시연했다. 1980년대부터는 육우용 소의 귀에 태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91년 미국 오클라호마 주 고속도로에 RFID를 이용한 통행료 시스템이 개통되었다.


3. RFID의 전망

현재 RFID 기술은 굉장히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육상 선수들의 기록을 재거나 상품의 생산 이력을 추적하는 데서부터 여권이나 신분증 등에 태그를 부착해 개인 정보를 수록, 인식하는 데까지 폭넓게 쓰인다. ‘하이패스’라고 불리는 유료 도로 통행료 징수 시스템이나 교통카드에도 RFID가 이용된다. 동물의 피부에 태그를 이식해 야생동물 보호나 가축 관리 등에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초등학생의 가방과 옷 등에 태그를 부착하고 있으며, 신분증을 통해 건물의 출입을 통제하는 시스템도 RFID를 이용하고 있다. 때때로 태그는 사람 몸에 이식되기도 한다. 멕시코 법무장관은 18명의 사무실 직원의 몸에 태그를 이식해 기밀문서 저장실에 출입하는 것을 통제하는 데 이용했다.  또한 RFID 업체인 VeriChip사는 애틀랜타 당뇨병 엑스포(Atlanta Diabetes Expo)에서 18명의 당뇨병 환자들에게 RFID 칩을 이식하여 RFID 칩이 이식된 환자들이 병원에 무의식 상태 또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상태로 수송될 경우, RFID 리더기를 사용하여 몸 안에 있는 RFID 칩을 스캐닝 함으로써 데이터베이스에서 환자에 관한 상세 정보를 가져올 수 있게 하였다. 앞으로 RFID가 사용될 수 있는 분야는 더욱 넓다. 특히, RFID는 바코드의 대체품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RFID 태그는 메모리로 집적 회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단순한 음영으로 정보를 기록하는 바코드보다 더 다양한 정보를 수록할 수 있다. 따라서 바코드처럼 물건의 종류만 식별하는 대신 개개의 물건마다 일련번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런 기능들은 물건의 재고를 관리하고 절도를 방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Picture 2. RFID의 원리

4. RFID의 문제점과 취약점

RFID의 활용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정해진 국제적 규격이 없다. 이로 인하여 미국에서 사용하는 주파수와 유럽, 일본에서 사용하는 주파수가 달라 서로 호환성이 없다. 이런 까닭으로, RFID 여권을 이용한 공항에서의 자동 통과가 현실화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RFID 도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우려도 만만치 않다. 시민 단체들은 RFID를 통해 개인정보가 노출될 것을 걱정한다. 신분증에 RFID 태그가 붙어 있을 경우, 같은 주파수를 읽는 판독기만 있으면 누구라도 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물품 관리에 바코드 대신 RFID를 이용할 경우, 각 물품마다 일련 번호가 붙기 때문에 소비자가 결재 시 태그를 제거하지 않는다면 소비자의 이동 경로를 다른 사람이 추적할 수도 있다.

현재의 RFID기술은 보안기능이 매우 취약하여, 태그 정보 및 센서 노드의 위변조, 위장리더, DoS 공격, 네트워크에서 개인 추적 정보 유출 등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RFID는 관리 대상이 되는 태그 및 노드의 수가 기존의 네트워크보다 월등히 많고 이들에 의해 구성되는 네트워크가 중앙 집중 구조가 아닌 자율분산 구조이므로, 기존의 네트워크보다 훨씬 더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

2010년 미국에서 건강의료보험 개혁 법안이 통과되면서 그 내용으로 신체에 RFID칩을 삽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논란이 되고 있다.



3. GPS위치추적시스템


1. GPS란?

●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GPS 위성에서 보내는 신호를 수신해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계산하는 위성항법시스템이다. 항공기, 선박, 자동차 등의 내비게이션 장치에 주로 쓰이고 있으며, 최근에는 스마트 폰, 태블릿 PC등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추세다. 원래는 군사용 목적으로 개발된 기술이지만 그 유용성 때문에 민간에서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 


4. 인터넷 개인정보 시스템

●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용자가 급증하면서 여기저기 사이트에 가입하는 사람 수가 늘어나고 기업들은 관리의 목적으로 홈페이지 가입자에게 신장 정보 등의 개인정보를 요구한다. 입력된 개인정보는 약관에 의해 보호되지만 개개인들의 정보가 데이터베이스화 되어 어느 특정 기업에 누적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기업들은 이러한 개인들의 정보를 이용해서 이윤을 창출에 이용한다. 예를 들어, 쇼핑몰 사이트는 고객들이 구입한 상품과 구입가격, 구입빈도 등을 정리해서 분석해서 판매 전략을 짤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개인들이 어느 사이트에서 무엇을 사고 무엇을 했고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며 어떠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기관들이 분석해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알게 모르게 감시를 받고 있는 것인데 이러한 개인정보가 유출되기라도 하면 범죄에 악용 되는 등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5. 전자 발찌


1. 전자 발찌란?

● 위치추적 장치를 이용하여 팔찌나 발찌 착용자의 위치나 상태를 감시하는 장치다. 주로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재범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되며 독거노인이나 어린이가 혼자 있게 될 경우 모니터링을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그 시작은 1984년 미국 뉴멕시코주 판사가 만화 '스파이더맨'에서 나온 위치추적 장치에서 영감을 얻어서 특정 범죄 전과자나 관리대상자에게 처음 부착토록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44개 주),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고 대만, 일본, 호주 등에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고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Picture 3. GPS의 원리


2. 전자발찌의 원리

● 전자발찌에는 위치추적 시스템인 GPS(global positioning system)가 적용되어 있다. 범죄자가 착용한 전자발찌의 위치정보는 위성으로 전달되어 법무부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로 보내집니다. 이후 각 지역 보호관찰소로 전해진다. 보호관찰소 상황판에는 전자발찌를 착용한 범죄자들의 위치 정보가 깜빡이는 점으로 실시간 표시됩니다. 관찰관들이 24시간 상황판을 주시하고 있는데, 전자발찌 부착자가 아동시설 등 출입금지 구역에 진입하면 전자발찌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휴대용 추적장치에 '그 지역을 벗어나라'는 문자메시지가 뜨고 이런 상황은 담당 관찰관에게 바로 통보된다.

전자발찌가 고의 혹은 실수로 훼손되면 위치추적 중앙관제센터 상황판에 위험경보가 표시됨과 동시에 경보음이 울리며 관제요원이 경찰에 신고하면 경찰관과 담당 보호관찰관이 출동해 상황을 확인한다. 


3. 특정장소 추적불가, 사생활 침해 및 이중처벌 문제

● GPS는 미국방성에서 운영하는 24개의 위성으로부터 매 1초 마다 신호를 수신하여 현재 위치를 스스로 알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 위치정확도는 10m 에서 30m 정도이고 최소한 3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동시에 신호를 수신해야 위치 계산이 가능하다. 따라서 위성신호 수신이 불가능한 건물 안이나 지하철 등의 지하에서는 GPS 만으로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으며 중계기가 거의 설치되지 않은 시골 등의 야외에서는 수 Km의 오차가 발생하기도 한다. GPS 전자발찌는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도 크다. 항상 감시 받는데서 느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상당하고 교도소에서 충분히 죄의 대가를 치룬 경우에도 다시 전자발찌로 인해 고통받게 되는 '이중처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4. GPS의 단점을 극복한 RFID 시스템

● 이러한 전자발찌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 받는 것이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이다. 태그가 내장된 전자발찌를 착용한 범죄자가 휴대용 무선식별 리더기 근처에 일정거리 이내로 접근하면 리더기가 전자발의 무선식별 태그 정보를 읽고 감시센터로 전송할 수 있으며 이 때 무선식별 리더기의 위치정보를 함께 감시센터로 전송하여 범죄자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언제나 위치감시가 가능한 GPS 방식에서 무선식별 리더기에 접근할 때만 식별이 가능한 RFID 전자발찌를 도입하게 되면 범죄자의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하면서 범죄를 효율적으로 예방할 수 있게 될 뿐만 아니라 가격이 GPS 방식에 비해 매우 저렴하고, 전력소모가 적어 수년간 전지 교환이 필요 없는 등 RFID에는 다양한 장점이 존재한다.


3. 미래의 감시 시스템


1. 유비쿼터스 사회 

● 냉장고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기능을 넘어 스스로 인터넷 쇼핑사이트에 접속, 식품을 원격주문하고 결제까지 처리하는 인터넷 냉장고로 탈바꿈한다. 가스오븐 역시 요리 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다운로드 받아 스스로 음식을 조리한다. 화장실 변기는 소변 성분을 분석해 그 사람의 건강 상태를 의료사이트로 전송, 건강진단 기능을 하며, 욕실의 욕조도 그 사람의 신체 상태에 가장 적절한 성분과 온도를 함유한 목욕물로 자동으로 받아준다. 또 전동칫솔은 치아상태를 점검하여 자신의 주치의에게 정보를 전송해주는 단말기 역할을 한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요금을 지불하느라 자동차가 길게 늘어설 필요도 없어진다. 센서가 자동차 번호판을 판독하여 휴대전화 요금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Picture 4. 전자발찌를 통한 감시

이러한 사회가 가능해지려면 우리 생활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에 고유의 IP 주소를 부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32비트의 IPv4 주소체계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128비트의 IPv6 주소 체계로의 전환을 통해 이 같은 일들이 가능해 졌다. 43억개의 주소밖에 만들지 못하는 IPv4 체계에 비해 IPv6체계는 무한대에 가까운 주소를 생성할 수 있어 냉장고와 가스오븐, 화장실의 변기와 욕조, 전동칫솔과 자동차 번호판에까지 고유의 IP주소가 부여되고 그만큼 IP추적을 통한 모든 행적을 기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는 이처럼 가사노동의 경감, 교통체증 해소, 건강 관리 등 보다 인간에게 풍요롭고 편리한, 행복한 세상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가로 우리는 중요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

인터넷 냉장고와 인터넷 가스 오븐은 매일 저녁 당신의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왔는지,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이 무엇을 얼마나 많이 먹는지 속속들이 기록하고 그 정보를 쇼핑 사이트에 제공해 줄 것이다. 또 인터넷 변기와 인터넷 욕조 그리고 인터넷 전동칫솔은 당신도 몰랐던 자신의 건강정보를 의료 사이트에 알려주게 될 것이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의 판독기는 통행료만 부과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신이 언제 어디를 다녀왔는지 까지도 기록해 놓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네트워크가 편재하는 유비쿼터스의 시대는 뒤집어보면 당신의 일 거수 일 투족에 대한 전자감시 시스템이 편재하는 프라이버시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전자 감시와 프라이버시 침해는 정보사회의 도래와 함께 진작부터 심각하게 제기되어온 문제이다. 그러나 유비쿼터스 시대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것이다.


2. 베리 칩 (Verichip)


● 베리 칩은 주사기를 통해 몸 안에 이식할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그 안에 메모리와 무선 송수신 장치가 들어있어 주로 의학 분야에 활용된다. 예를 들면 베리 칩을 이식해 놓은 알츠하이머 환자가 집을 못 찾고 길을 헤매고 있을 때 무선 송수신 장치를 통해 위치를 추적할 수 있으며 당뇨병 환자의 혈당 수치를 정기적으로 체크해 위험을 알려줄 수도 있다. 성범죄나 아동학대 전과자 등의 전과자들에게도 이 칩을 이용해 움직임을 파악하여 제2, 제3의 범죄를 막을 수도 있다. 멕시코에서는 기밀 정보 접근 권한을 가진 법무부 직원들에게 기밀 유출 사고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이러한 생체 칩 이식을 의무화했다고 한다. 이렇게 생체 칩의 활용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개인의 사생활 침해 가능성과 범죄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베리 칩 사에서는 16자리 숫자 수준의 정보만 담긴 칩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주장하지만 이게 확대되면 미국인들에 대한 ‘인식표’ 정보가 베리 칩 사에 저장되어 마치 ID 카드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위험성을 지닌다. 게다가 누구나 무선 판독기로 이런 정보를 읽을 수 있어 해킹이나 오용 문제로 인해 본래 용도와 관계없이 정보가 악용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 동의 문제도 있다. 

Picture 5. 베리칩


3. 전자주민증


● 전자주민증이란 주민증에 전자 칩을 장착해 지문과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저장하고, 외부에서 리더기를 통해 판독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전자주민증은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등 갖가지 신분증이 연계되는 통합신분증으로 사용되는데, 전자 칩의 특성상 향후 전자주민증에 공인인증서 등 전자서명과 운전면허증, 의료보험증 등 고급 보안 정보들도 수록될 가능성이 있다. 설령 이러한 사항들을 지금 당장에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자주민증은 주민번호와 지문이라는 조합을 이용하여 온라인으로 식별될 수 있으므로 사실상 통합신분증으로서 활용되는 방대한 정보저장소가 되리라는 예측도 어렵지 않다.



Picture 6. 전자주민증의 예상 모습

그렇게 될 경우 앞으로 공공기관이든 민간이든 구별 없이 어디서나 전자주민증을 활용해 신분을 증명하게 되는 일이 잦을 것이며, 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리더기를 통해 판독되어 전송된 전자 칩 내의 개인정보는 순식간에 온라인상에 전송된다. 정보는 데이터베이스로 저장되어 자료가 남게 되는데, 이러한 일이 잦을수록 정보의 주체는 자신의 개인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유통되는지 통제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지게 된다. 전자주민증은 특히 현재에도 불합리한 청소년보호법, 각종 매체 등급제 등을 강화시키며 연령 확인과 청소년 색출을 빌미로 신분확인 강박사회를 불러올 것이다. 한편 위변조와 유출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정보를 전자화시키는 것 자체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을 극대화시킨다. 전자주민증이 공공영역뿐만 아니라 민간영역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다 보면 판독 과정이나 온라인으로 전송되는 과정에서 유출될 위험도 따라서 커질 수밖에 없다.


4. NEIS

●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 이하 NEIS)에 입력되는 정보는 이전에 학교에 존재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교무/학사와 보건 영역의 업무를 처리했던 시스템(수기 장부, S/A, C/S)과 NEIS의 결정적 차이점은 교무/학사의 업무 처리가 학교를 벗어나 시•도 교육청 단위의 서버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기존의 C/S는 단위 학교에 서버를 두고 교내의 교사용 컴퓨터를 LAN으로 연결하여 운용하였다. 이에 비하여 NEIS는 교육청 단위로 서버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단위 학교에 서버를 두고 있지 않으므로 LAN방식의 연결은 불가능하기에 인터넷을 통하여 시스템을 운용하게 된다.그러나 NEIS에 의해 이러한 모든 자료가 웹을 통해 누적된다면, 이는 개인의 건강 상태를 본인의 허락도 없이 쉽게 가공, 조작될 수 있는 정보의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므로, 이 자체가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정보가 기업체 취업과 상급 학교 진학에 자료로 쓰여질 경우, 성적에 따른 차별과 더불어 건강 상태에 따른 차별이 가능하게 된다. 정보 주체인 학생들은 담임 교사는 물론 친한 친구들에게도 자신들의 몸무게조차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즉 학생들은 이를 매우 내밀하고 민감한 정보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Picture 7. 학부모를 위한 NEIS 활용 가이드

결론적으로 생활기록부와 건강기록부의 정보는 담당 교사에게는 학생 생활 지도를 위해 유용한 정보일 수 있으나, 국가가 함부로 수집하거나 집적 과정에서 유출되었을 경우 심각한 프라이버시 침해를 야기하는 정보이다. 따라서 전자정부특별위원회에서도 의료 정보를 신조•범죄 정보와 같은 1급 개인정보로, 교육 정보를 고용•금융신용•DNA 정보등과 같은 2급 개인정보로 분류하여 엄격한 보호를 요구하고 있다. 

더구나 이렇게 수집된 학생들의 정보는 고등학교 졸업 후 5년 간 NEIS에서 관리하고, 이후에는 교육청의 별도 전산매체에 저장하고 학교에서는 출력물로 보관하도록 되어있다. 이는 사실상 생활기록부에 입력되는 전 국민의 정보를 교육청과 교육부가 수집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무/학사 영역을 NEIS로 운영하면서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NEIS가 가동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이다.


4. 감시시스템의 기능 사례


1. RFID 소형 전자칩

RFID라고 부르는 소형 전자칩, 이 전자칩은 스캐너가 읽을 수 있는 무선신호를 발신하는 전자기기다. 멕시코 검찰에서는 절대 보안지역 출입통제를 위해 총장을 비롯한 약 160명의 검찰 간부, 수사관들에게 마이크로칩의 체내 이식을 실시했다. 극비 보안 지역의 출입 시 신원 확인을 위한 방안으로 출입 통제와 보안의 성격을 띤다고 멕시코 측은 말을 했다. 또, 납치시 위치파악에도 사용될 수 있다고 한다. 체내 이식을 한 마이크로칩은 RFID기술을 이용한 베리칩 기술이다. 크기는 길이 12㎜, 너비 2.1㎜이며, 쌀알만한 크기의 이 칩은 주사기를 사용해 간단히 팔의 피부 밑에 이식할 수 있다. 핵심 정보가 자주 새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 수단으로 생체 칩 이식을 통한 최첨단 출입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한 멕시코에서 자주 일어나는 납치사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간부들에 이어 군 및 경찰의 핵심 간부 그리고 대통령궁 관리들도 칩 이식 을 받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가축이나 애완동물 추적용으로 개발된 칩 이식 기술을 인체에 도입했다 는 점에서 앞으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휴대전화를 이용한 위치추적 시스템이 문제가 되는 가운데, 이보다 더 나 간 생체 칩 이식을 통한 위치추적은 치명적 사생활 침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의학용 마이크로칩의 몸 속 이식을 아직 승인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체 내에 칩을 이식하는 게 인권문제와 의학상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아직 흔한 일은 아니다. 각 소형칩에는 고유번호가 있다. 스캐너가 훑는 순간 데이타베이스에 접촉, 이름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기술적으로 이 데이터베이스가 저장가능한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없다. 칩의 크기는 쌀 한톨보다 약간 큰 정도, 칩을 제거하지 않는 한 이 칩은 영원히 이식자의 몸에 있게 된다. 이 수술은 마취를 해야 한다. 피부 표면의 안쪽에 이식한다. 근육에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이식하면 근육이 손상을 입어 움직일때마다 칩이 있는걸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제대로 되면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 칩을 이식하게 되면 신분의 확인에서부터 휴대용 결제 수단의 역할까지 수행할 수 있게 되는데, 일부는 머지않은 장래에 이 칩이 신분증을 대신하리라 생각한다. 새로운 감시기술에 동참하는 것이다. 

신분확인용 칩 이식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래에는 아마 GPS와 결합해서 누가 언제,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것쯤은 충분히 가능해진다. 자녀를 둔 부모나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이미 GPS를 이용해 이들을 추적하고 있다.

미국내에서는 7500명의 범되자들이 GPS에 의해 감시를 받고 있다. 감시기기들도 점점 작아진다.

현재 GPS기술이 없다해도 모든 범죄자를 그리고 일반 시민까지 전자칩을 활용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공상과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일을 감시기술이 현실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는 만큼 논쟁의 여지는 더욱 커진다.


2. GPS 전자칩

● 지하철 공사가 지하철 역사에 근무하 는 공익근무요원들이 성실 근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자칩을 지급한 사실이 드러나 인권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익근무요원의 근무지 이탈과 근무태만이 잦다는 지적에 따라 전자칩이 든 근무자 위치표 250여개를 각 역에 2개씩 보급하였는데, 이 전자칩은 지하철 승강장에서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이 근무 시 소지하는 것으로 불시에 순찰자가 공익근무요원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자신의 칩과 교차하면 그 시각이 칩에 기록된다. 현재 지하철에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은 지하철 승강장에 나갈 때 전자칩이 내장된 카드를 휴대해야 하는데 일선 지하철역에서는 분실 방지를 위해 보통 줄을 달아 목에 걸고 근무하고 있다. 공익근무요원들은 이 조치에 대해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반발하였고 시민단체에서도 인권침해라며 비난하였다.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며 전자칩으로 근무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고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또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공익근무요원이라 해도 명백한 노동감시로 볼 수 있으며, 전자칩을 통해 근무지를 확인하는 행위는 상당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고 여겨진다.

또한 범죄예방용 폐쇄회로TV가 모든 국민을 범죄 예비자로 보듯이 지하철 공사의 이같은 행위는 공익근무요원을 예비 근무태만자로 간주하는 것으로 관리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한 편의적 발상이며, 일종의 감시제도를 도입한 것으로 명백한 인권 침해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한다 해도 인간의 존엄성과 사생활은 보장돼야 하고 전차칩을 통한 감시가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여론이 만연하다. 또 미국에서도 보호 관찰자를 대상으로 비슷한 감시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인권침해 논란으로 결국 무산된 사례가 있다. 반발이 잇따르자 지하철공사측은 최근 지하철 자살사고와 테러위협이 높아지고 승객 질서유지 때문에 공익근무요원이 승강장에서 상시근무를 하고 있는데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례가 많아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하며 전자 칩에 시간이 기록되면 기존에 종종 신고되었던 근무태만 행태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인권침해인지 근무태만을 방지하기 위한 예방책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 CCTV-1

● 서울 창전동에서 네 모녀를 살해한뒤 자살해 국민을 충격에 몰아넣은 전 야구선수 이호성 사건을 계기로 CCTV의 위력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사건의 결정적 단서는 이씨가 피해자 김모씨의 아파트에서 커다란 여행용 가방을 여러차례 나르는 화면이 담긴 CCTV였다. 김씨가 한 은행에서 정기예금1억7000만원을 인출하는 생전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 화면도 증거가 됐다. 앞서 국보 1호 숭례문 화재 사건때에도 범인의 행적이 담긴 CCTV가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 이와 같이 범죄자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순기능도 존재하지만 사생활 침해의 논란은 여전하다. CCTV의 순기능인 범죄예방효과가 높다는 점에서 CCTV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계속된 CCTV의 증설로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며 회사까지 가는 도로를 비롯해 회사 엘리베이터며 주차장. 점심에 들르는 음식점이며 은행. 편의점. 백화점.지하철 등 온 종일 사람들은 주변에서 CCTV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경찰이 추산하는 전국의 CCTV 대수는 대략 200만대 이상이다. 서울 시내 공공기관이 운영하고 있는 CCTV 수만 현재 1만5694대로 지난해보다 3961대(33.8%)나 증가했다. CCTV 보유대수가 가장 많은 자치구는 강남구로 580대가 설치돼 있으며 역삼동의 경우 반경 100m안에 300여대가 설치된 곳도 있다. 여기에 기업과 가게. 개인이 설치하는 CCTV까지 급증하고 있다.

실제로 2004년 8월을 기준으로 강남구 역삼동에는 CCTV 설치 후 범죄 비율이 20%나 감소하는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범죄예방 효과라는 CCTV 찬성론 못지않게 사생활 침해라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않다.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지난달 지하철 5~8호선 객차 1558량에 CCTV를 설치하기로 하자 사생활 침해 논란이 불거졌다. 공사는 객차 한칸당 2대의 CCTV를 설치해 사생활 침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지하철 내 범죄예방 및 잡상인 단속 등에 활용한다는 계획. 하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반대 여론도 만만찮다.

대학가 역시 CCTV 논쟁이 뜨겁다. 교내에서 도난사고가 빈번하면서 CCTV를 설치하는 학교들이 늘고 있다. 2003년 도서관에 CCTV를 설치한 한양대는 최근 추가로 48대를 열람실 등에 설치했다. 숭실대학교에서는 현재 도서관에 CCTV 설치여부를 묻는 찬반투표가 진행중이다.


4. CCTV-2

중국의 음주운전 관련 재판에서 피고인의 사생활이 녹화된 CCTV가 증거로 제시되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의 과정이 녹화된 자료인데, 문제는 CCTV의 감시수준이었다. 피고인의 사고 전후 행적이 아주 세세하게 나왔는데, 피고인이 교통사고 전에 술집에서 어떤 종류의 술을 마셨으며, 몇잔을 마셨는지 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범인은 잡혔지만 당국의 은밀한 사생활 감시가 폭로되면서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었다. 현재 중국 전역에 설치된 감시카메라는 700만대. 하지만 2014년엔 2배로 늘어날 예정이며 이미 전화 도•감청과 해킹을 통한 인터넷 감시까지 일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개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사회를 뜻하는 '빅 브라더'의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례이다.


5. 결론


● 극단적 역기능의 발현 - 전자감시사회

만약 이러한 최첨단의 기술들이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들에 의해 사회에 극단적인 역기능을 발휘한다면, 우리의 생활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감시되고, 누군가를 감시한다. 이러한 전자감시사회를 ‘브이 포 벤데타’는 잘 보여주고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인 2040년 미래의 영국 사회는 거리를 비롯한 모든 장소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 등이 설치되어 감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마저도 철저히 통제를 받으면서 살아가게 된다. 정부 지도자와 정치적 성향 뿐 아니라 성적 취향, 피부색 등이 다른 사람들마저 ‘정신집중 캠프’로 끌려가서 사라지지만, 겉으로는 매우 평온하고 질서정연한 생활이 유지되며, 아무도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그 누구도 감시사회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감시의 일상화, 내면화는 결국 인간이 그들이 만든 기술로 그들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는 행위와도 같다. 말 그대로 전자감시사회다.


1. 정보기술을 사용하는 우리의 자세


i. 개인정보 마인드에 대한 재고

비록 우리 사회가 산업적 측면에서 정보사회의 모습을 갖추고는 있지만, 의식의 측면에서 정보화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에 대한 보기로 시민들이 아직 ‘정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도가 그렇게 높지 못하다. 물론 각종 통계자료에서 정보사회에 대한 인식도는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업 등의 조직에서는 ‘정보’를 조직의 사활이 달린 문제로 생각하고 대처하는 데 비하여, 개인들은 자신들의 사적 삶에 있어서 타인과 자신의 정보권 보장 등의 문제에 대해 특별한 인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프라이버시 문제와 결부해서 이해할 때, 정보사회에서는 개인정보가 사회적 인간으로서 한 사람의 정체성과 관련된 부분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이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개인정보 마인드가 보편화되어 있지 않은 정보문화권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법 조항들은 현실성을 갖지 못한다. 또 정보공개법 등을 제정해 놓는다고 해도, 이 법적 제도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의식 있는’ 시민들이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현재 우리에게는 선진적인 법 조항보다는 정보사회에 걸맞는 의식을 갖추는 캠페인 등의 운동이 요구된다.


ii. 각 가치가 조화되는 정보문화의 조성

● 정보사회에서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집단의 가치를 어떻게 조화시켜서 합의를 만들 수 있을지가 전자감시에 대처하는 문제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를 하지만, 이익이나 효율성, 생산성과 같은 또 다른 가치와 비교하여 유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렇게 유보되는 현실이 프라이버시 문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고, 나아가서 전체 정보화의 추진력을 약화시켜 놓고 있다. 정보화가 앞서가는 선진국가들의 경우 각 가치들이 균형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지난 90년대 시행된 전자고속도로가 행정의 효율성은 이루었지만, 대중의 모든 사회활동이 전자적으로 기록되어 인권침해의 도로가 되고 있다고 비판받고도 있다. 이러한 비판과 견제 속에서 보다 나은 정보화가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Picture 8. 균형 잡힌 정보화 지향


하지만 정보화는 시민들의 권리가 신기술에 의해 장려됨과 동시에 시장권력과 감시에 의해 제한되는 이중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이상적인 유형으로서 조직체계의 효율성과 개인의 자율성을 조화시키는 형태를 구상할 수 있다. 사기업의 이윤가치, 국가의 행정관리에서 효율성의 가치, 그리고 시민의 자율성의 가치와 권리가 조화를 이룬다면 이를 정보민주주의사회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정보화의 각 주체가 다른 주체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고, 조화를 추구한다면, 조화된 이상적인 정보화가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강하여 각자의 가치만을 추구하려고 하고, 다른 주체를 이를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고만 한다면 전자전체주의적 사회, 정보상업주의적 사회 혹은 사생활 중심주의적 사회가 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가와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보권력’의 약자인 시민들은 전자감시사회 속에서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이상적인 정보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참여’한다면, 전자감시에 의한 폐해는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를 실현시킬 것인가?


iii. 프라이버시에서 시민정보권으로

정보사회에서 핵심적 문제의 소지를 가진 프라이버시 침해의 문제를 단순히 침해를 받는 것으로부터 대비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정보주체로서 정보의 생산,유통,관리에 있어서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는 적극적 개념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보사회의 시민 정보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이를 ‘시민정보권’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우리나라의 정보화는 국가에 의해서는 ‘정보망 구축’, 기업에 의해서는 ‘정보기기구매’ 혹은 ‘정보산업화’ 등의 용어와 동일시 되어왔다. 그러나 ‘시민의 정보주권화’를 통해 시민이 지향하는 또 다른 가치가 더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에 대해 이러한 가치의 중요성을 설득하고, 시민사회에 내면화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사회가 정보사회에 걸맞게 각계각층의 적극적인 참여가 활성화되어야만 올바른 정보화가 가능할 것이다.


2. 정보기술을 생산하는 우리의 자세

앞으로의 기술발전을 책임질 엔지니어들은 정보화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사회에 무엇을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술은 사회와의 상호작용에 의한 산물이다. 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 또한 엔지니어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속해 있고, 기술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엔지니어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그 누구보다도 책임 있는 자세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바른 움직임이 하나 둘씩 모일 때, 기술은 인간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1] 리처드 헌터, “유비쿼터스 : 공유와 감시의 두 얼굴,” 21세기북스, March, 2003. 

[2] 홍승필 외 1인, “정보 보안 기술과 구현”, 파워북, 김인택, “학점 인플레는 대학의 제 무덤 파기”, 동아일보, May, 1998.

[3] 주식회사 니츠, “인터넷 보안 기술”, 동서, January, 2000.

[4]  한국정보보호학회, “차세대 네트워크 보안 기술”. 한국정보보호진흥원, Novembe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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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5장 허공의 목소리

myPPT 2012. 10. 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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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허공의 목소리

 

1. 스미스적 오류의 딜레마가 증폭

  → 전 지구적 규모의 자본주의가 처한 혼돈

 

 

Ⅰ. 존 메이너드 케인즈

 

1. 블룸즈버리 서클 멤버

  → 빅토리아적인 도덕에 대한 블룸즈버리 서클의 비판적 태도는 그 시대의 정통적 금융과 경제 교리에

     대한 비판과 공명

 

 

Ⅱ. 케인즈 시대의 자본주의

 

1.  자본주의의 위기

  가. 19세기 자본주의 팽창과 제국주의

    → 세계시장과 자원통제 및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를 둘러싼 유럽 강대국들 사이의 격렬한 경쟁이

       발생하였고 1차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짐

  나. 세계 금융시스템 : 전쟁기간에 극적으로 변화

    1) 각 민족들은 국제무역과 투자를 조절해왔던 금본위제 포기하였고 중앙은행이 가진 고유한 권력과

       막대한 유연성을 깨달음

    2) 기술과 기업 조직의 진보에 기인하는 생산력의 막대한 증가에 대처하기에 부적절

  다. 1차세계대전 이후의 위기들

    1) 독일의 인플레이션 : 독일통화에 대한 투기와 막대한 전쟁배상금 지불에 대한 독일 정부의 정치적

       무능력의 결과

    2) 영국의 경기침체 : 전쟁 이전의 파운드 평가 복귀로 노동분규와 장기침체를 겪음

    3) 대공황 발생 : 높은 실업과 디플레이션, 금융적 파멸 등이 발생

  라.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과 그와 연관된 군사력 증강을 통해서야 해결됨

 

2. 전간기의 혼란

  가. 자본주의 경제발전에서 단절적 국면

  나. 당시에는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

  다. 전후 불안정성의 완화는 상당부분 이 시기 위기를 다루기 위해 고안된 이념들과 제도에 기인

 

3. 자유방임의 종언과 케인즈

  가. 자유방임 정책의 무능 : 금에 대한 명목가격 기준이 없는 통화들에 대한 투기는 민족경제에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압력을 만들어내고 정치적 불안정성을 증대시키고 장기적 실업을 야기

    → 균형으로 이끄는 힘은 부재하거나 약했음

  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탄생

  다. 케인즈는 중앙계획적 사회주의에 대한 강력한 비판자 : 일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경제적 역할을 통해

      자본주의 개혁을 추구

 

 

Ⅲ. 세의 법칙과 자유방임

 

1. 세의 법칙

  가. 총계적인 차원에서 상품의 수요가 가계와 기업의 상품공급에 기인한다고 주장

  나. 정부정책은 자원들의 상이한 배분에만 영향을 끼칠 뿐 총계적 수준에서는 무용하다는 주장의 기반

    1) 한 시장의 초과공급은 다른 시장의 초과수요를 의미하고 총계적 수준에서의 초과공급은 존재하지

       않음

    2) 일부시장의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초과수요 및 공급을 해소할 수 있는 상대가격의 변화가

       필요 : 실업은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해결 가능.

  다. 세의 법칙의 중요한 가정 : 경제의 화폐와 금융메커니즘이 극도로 효율적임을 가정

    → 화폐유통속도가 무한정하여 가치와 화폐형태의 전환이 즉각적으로 발생 : 물물교환 경제와 유사

 

2. 케인즈의 비판

  가. 고도로 발전된 금융시스템 하에서 세의 법칙은 유효하지 않음

  나. 다양한 금융상품의 존재 : 상품 판매와 구매 사이의 분리가 길어지고 가변적이 됨

  다. 몇몇 기업과 가계는 금융 자원이 없어서 상품 구매를 제한받는 상황 : 유동성 제약

  라. 화폐지출의 외생성 : 지출자는 상품을 획득, 동시에 판매자에게 유동성을 공급하여 구매행위를 촉진

    → 개별적 지출자들은 이러한 외부성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지출량이 경제적으로 모든 자원을 사용

       하기에 더 적을 수 있음 : 정부의 지출보조 혹은 직접지출이 필요

 

3. 세의 법칙 기각과 정부정책

  가. 자유시장에서 수요의 침체로 인한 자원의 유휴 발생 가능

  나. 정부지출을 통해 이러한 유휴자원을 이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부의 증가가 가능 : 

 

4. 케인즈주의와 신고전파의 타협 : 신고전파 종합

  가. 단기에는 케인즈주의를 수용하고 장기에는 신고전파 주장을 유지

  나. 이러한 종합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불안정

    → 1970년대 통화주의와 합리적 기대이론에 의해 경제이론분야에서 쇠퇴

 

5. 세의 법칙과 아담의 오류

  가. 세의 법칙은 스미스의 오류를 지탱하는 지주

  나. 세의 법칙이 틀렸다면 자본주의의 사회적 이점은 우연적이고 불확실해짐

    → 자본주의의 도덕적 약점 감수가 정당성을 상실

 

 

Ⅳ. 노동시장과 실업

 

1. 노동시장 균형의 이해 : 신고전파와 케인즈

  가. 신고전파의 노동시장 균형 : 노동투입에 의한 한계생산물과 노동의 한계비효용이 일치하는 점

  나. 케인즈 : 노동시장 균형이 위의 노동수요 곡선 위에서 결정된다고 생각

    1) 실질임금이 노동공급곡선으로 평가되는 노동의 한계 비효용을 초과하는 상황에서 균형이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

    2) 더 낮은 실질임금에서도 일하려는 사람들이 존재 : 비자발적 실업

 

2. 한계주의에서의 비자발적 실업

  가. 노동시장의 불균형상태 : 실질임금이 균형수준보다 높게 설정되기 때문에 발생

    → 실질임금이 균형수준으로 하락하면 비자발적 실업이 해소됨

  나. 케인즈는 균형상태에서도 비자발적 실업이 존재한다고 생각

 

3. 비자발적 실업에서의 균형(케인즈) 

  가. 비자발적 실업에서의 균형 : 실질임금이 노동의 공급가격 위에 존재해도 실질임금을 하락시키는

      경향적 힘이 존재하지 않을 수 있음

  나. 노동의 초과공급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식 : 화폐임금 삭감

    → 현실의 임금협상은 화폐임금이 대상임

  다. 화폐임금의 하락이 실질임금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음 : 화폐임금이 생산비용중 큰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가격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

    → 이 경우 실질임금은 하락하지 않음 : 비자발적 실업이 사라지지 않음

 

4. 실업문제에 대한 케인즈의 해법

  가. 중앙은행의 명목화폐량 유지 + 화폐임금과 물가의 연속적 하락 : 구매력의 증진을 통한 경제의

      유동성 제약을 해소

    → 이는 우회적이고 고통스러운 방식의 유동성 공급방법

  나. 중앙은행이 단순히 명목화폐 공급을 증가시키는 것이 더욱 좋은 방법

 

5. 케인즈 균형 개념의 모호성

  → 균형의 의미 : 화폐임금에 대한 단기적 압력이 존재하지만 고용량 변화의 단기적 압력은 없는 상황

 

6.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의 비자발적 실업 문제

  가. 신고전파 경제하에선 균형과 비자발적 실업은 공존 불가능

  나. 극단적 합리적 기대이론은 현실 경제가 항상 균형상태이기 때문에 비자발적 실업 또한 없다고 주장

    → 더 나은 일자리를 찾기위해 자발적으로 실업상태에 있다거나, 경기후퇴로 인한 실질임금 하락시

       실질임금 상승을 기대하고 자발적으로 실업상태 있다고 설명

 

 

Ⅴ. 기대와 화폐

 

1.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화폐

  가. 자본주의 경제의 근본적 불확실성 때문에 반드시 필요

  나. 기업의 생산 동기는 이윤에 대한 기대 :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위해서 자본가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평가하고 대비해야함

    → 화폐 및 신용관계가 중요

 

2. 신고전파 경제학에서의 경제적 위험 측정

  가. 신고전파 이론은 위험의 통계적 예측이 가능하다고 가정

  나. 위험평가 및 할당이 자유로운 자산시장의 작동에서 효율적으로 이뤄짐

 

3. 케인즈의 경제적 위험

  가. 중요한 경제적 위험 : 해결불가능한 불확실성

    → 금융시장이 이를 더 악화시키는 효과를 가짐

  나. 거시경제의 불확실성은 경제 내적 : 자본주의적 기대의 상호작용에 대한 불확실성 기인

    1) 자기충족적 메커니즘 : 모든 사람들이 경기후퇴를 예상하면, 투자지출 및 생산을 줄이고 소득이

       줄어드는 방식의 메커니즘이 작동    

    2) 경기후퇴는 계산가능한 위험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계산불가능한 동역학적 상호 작용의 표현

      → 자산시장은 이런 유형의 위험을 할당 및 방지할 수 없음

 

4. 케인즈의 해법

  가. 금융시장의 위험성 : 위험의 계산이 불가능하면 자산가치 평가의 합리적 기초는 존재하지 않음

    → 시장가치 평가는 집단심리, 유행의 결과로 불안정해질 수 있고 이는 실물경제와 투자를 불안정하게

       만듬

  나.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억제를 위해서 포괄절인 투자의 사회화를 주장

    → 금융시장과 관련된 경제적 균형추 역할을 정치적 과정에 맡길 것을 주장

 

5. 금융투자의 특징과 제약의 필요성

  가. 화폐의 광범위한 사용과 정교한 금융시장 및 자산의 발달

    → 미래의 근본적 불확실성에 맞선 방어적 반작용

  나. 실물투자와 금융투자

    1) 실무투자 : 투자가의 비유동적이고 위험을 감내하는 장기적 헌신을 요구

    2) 금융자산 : 유동적이고 그와 관련된 기금의 궁극적 사용에 관한 결정을 유예 가능하게 함

       → 화폐와 금융자산이 잠재적인 위험을 가짐

  다. 불확실성이 지배적일 때 재산보유자들은 실물투자를 금융투자로 대체 : 상품 및 서비스 구매와 판매

      사이의 시차가 확대(총수요와 총공급 사이의 격차 발생)

    → 투자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실물 투자에 헌신하는 강제가 필요하다고 주장

 

 

■ 단기적 기대

 

1. 단기적 기대의 역할

  → 만족할만한 이윤보증에 대한 단기적 기대가 존재할 경우, 생산자는 투입물과 노동을 구매하여 생산에

     착수 : 수요에 대한 단기적 기대↑ → 생산증가(고용증가)↑

 

2. 케인즈의 단기적 균형 설명

  가. 시장의 총수요 : 고용의 종속변수

  나. 균형달성 과정

    1) 높은 임금소득으로 노동자의 유동성 제약이 완화되면 노동자는 임금의 일부를 소비재 구입에 지출

    2) 증가된 임금 소득의 일부만이 소비에 지출되고 총수요가 새로운 생산으로 발생한 소득 1달러보다

       적게 늘어나게 되어, 총수요와 총공급 사이의 교차점에서 기업가의 단기적 기대를 충적시키는

       단기적 균형이 나타남

 

3. 신고전파 이론에서의 단기적 기대의 역할과 케인즈의 비판

  가. 신고전파 이론은 완전경쟁가정 : 개별기업은 시장가격에 영향을 끼칠 수 없음

    → 개별 기업의 수요곡선은 수평 : 이런 상황에선 주어진 판매량에 대한 개별 기업의 단기적

       기대라는 가정은 무의미

  나. 케인즈의 비판 : 유동성이 제약된 경제에서 완전경쟁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작동하지 않으며 개별

     기업들은 가격과 판매 사이에 나타나는 일부 역관계에 주목해야 함

    1) 신고전파이론보다 훨씬 현실적

    2) 개별기업의 단기기대 형성에 대한 이론이 부재 :  케인즈 균형이론에는 미시적 기초가 부족

 

 

■ 장기적 기대

 

1. 투자 심리의 성격

  가. 자본주의 체계의 핵심 : 장기적인 투자에 기인하는 미래의 수익성 획득을 위한 투자

  나. 투자행위가 근거가 취약하고 불안정한 심리에 기초 : 본능적 충동

 

2. 이자율 하락의 효과

  가. 장기적 기대가 주어진 상태에서 화폐와 이자율 정책이 실제 투자량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

    1) 투자자들이 안전 금융자산의 이자율과 실물투자의 수익전망을 비교하기 때문

    2) 중앙은행이 은행시스템의 준비금 조정을 통해 단기이자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

  나. 이자율 저하를 통한 경기침체 활성화에 회의적 : 명목이자율이 0이하로 떨어지는 것이 불가능하고,

      비관적 전망을 하는 재산보유자들이 유동성을 절대적으로 선호하기 때문

 

3. 신고전파 투자이론

   가. 투자를 통한 재화 및 서비스의 현재가치와 투자비용을 초과할 때 투자를 감행

   나. 이자율 하락의 효과 : 이자율 하락(투자수익의 현재가치를 증대시키고, 차입비용이 감소)이 투자를

       증가시킴

  다. 투자계획의 장기적 전망을 나타내는 미래 시장이 존재하지 않음 : 시장메커니즘이 투자자의 장기적

      기대들 사이에 존재하는 비일관성을 해결하고 균형을 수립할 수 있을지는 명확치 않음

 

4. 케인즈의 해법

  가. 총수요를 안정화하는 재정 및 화폐 정책을 채택하고, 정부 투자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장기적

      기대의 교유한 불안정성에 대한 해법

  나. 정부가 시장보다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없겠지만, 사회적 집단적 행위는 자본가의 투자의 경제적

      조건들 가운데 일부를 안정화시킬 수 있음.

 

 

Ⅵ. 자본주의의 운명

 

1. 케인즈의 장기 관념

  가. 케인즈는 장기분석을 중시하지 않음 : 장기를 단기의 연속이라고 간주

  나. 장기와 단기의 문제 : 단기적 힘이 순간순간의 경로를 규정하더라도 단기적 과정을 경향적으로

      장기적 균형에 이르게하는 포괄적인 교정력이 존재할 수도 있음

 

2. 케인즈의 자본주의 전망

  가. 단기적 불안정성이 급속한 자본축적 및 이에 기반하는 노동생산성과 생활수준의 급속한 상승을 가로

      막는 주요 걸림돌이라 생각 : 총수요의 안정이 중요

  나. 자본의 한계생산성이 0이 되는 지점까지 자본축적이 진행되면 이윤율과 이자율 역시 매우 낮아질

      것이라 생각

    1) 이는 정치혁명없는 자본가계급의 효과적 소멸을 의미 : 금리생활자의 안락사

    2) 낮은 이윤율은 임금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의미 : 평등한 소득분배 달성,

 

3. 리카아도, 마르크스, 케인즈의 전망

  가. 케인즈의 이윤율의 제로수준으로의 하락 전망 : 리카아도의 정상상태.

  나. 이윤율 하락이 생산성의 거대한 상승에 기초한다는 생각 : 마르크스와 유사

 

4. 전후 자본주의 황금기

  가. 케인즈가 권고한 재정 및 금융안정화 정책을 통해 가능

  나. 케인즈가 기대한 자본주의적 경제생활의 갈등과 긴장을 제거하지는 못함 : 이윤율의 0수준 하락 X,

      자원고갈과 환경파괴, 불평등한 분배가 증대

    → 자본이 본질적으로 사회적 관계라는 마르크스의 관찰이 유효

 

 

Ⅶ. 복합성 대 집산주의

 

1. 오스트리아 학파의 임무

  가. 마르크스의 경제 및 사회적 이념을 반박

  나. 사적소유와 경제적 자원의 분권화된 조절의 충실한 방어자

  다. 집산주의 및 사회주의적 열망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자

 

2. 하이에크의 기여

  가. 오스트리아학파적 경기순환 이론을 발전시켜, 재정정책과 이자율 정책에 대한 자유방임적 개념의

      확장을 시도 : 국가의 경제 개입에 대한 옹호를 반박하려 함

  나. 집중화된 사회주의적 메커니즘을 통해 분업을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비판이 가진 치명적 결함을 간파

 

 

■ 경기순환인가, 자본주의적 위기인가?

 

1. 경기순환 이론

  가. 경기순환 변동이 체계 위기의 징후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자본주의의 특징임을 주장

  나. 경기변동이 자유주의적 원칙이 불완전하게 적용된 금융시스템의 지배구조 및 조직 때문에 발생

      한다고 주장 : 이로인한 변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논증

  다. 일관적인 분석틀 마련에 실패 : 스라파의 혹독한 비판에 완전히 무너짐

 

 

■ 시장이 하는 일

 

1. 오스트리아 학파와 스미스의 오류

  → 사회주의 개념이 해롭고 부적절할뿐만 아니라 자연법칙과 같은 경제법칙의 존재로 인해 파멸할

     것이라 주장

 

2. 위 주장의 한계들

  가. 자본주의는 정치적, 규제적 제도들과의 긴밀한 공생을 통해 존재하고 발전 : 매우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통해 정부의 개입정도 또한 각기 상이한 수많은 자본주의 ‘모델’이 존재

  나. 자본주의 역사의 변화 : 불변의 경제법칙이 존재한다는 가정은 무모

  다. 소비에트 연방은 60여년 동안 중앙계획을 통해 경제발전 이룸 :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에 배치됨

 

3 오스트리아 학파의 자본주의 옹호 : 초기 주장

  가. 자본주의적 시장이 파레토 배분에서 나타나는 유보가격들의 균등성을 설명하는 막대한 양의 수학적

      조건들을 효과적으로 계산한다는 관찰에 근거

  나. 어떤 중앙계획적 관료제도 이런 수학적으로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

 

4. 시장사회주의의 오스트리아 학파 비판

  가. 사회주의 경제도 균형가격을 시장적 방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찾을 수 있다고 주장

    → 사회주의적 관리자가 마치 자본가들인 것처럼 서로 경쟁하도록 교육받으면 됨

  나. 시장사회주의자와 아담의 오류 : 시장사회주의자들은 시장과 소득분배를 지탱하는 법률 체계를 제외

      하면 분업의 사회주의적 조직화와 자본주의적 조직화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주장

    → 이 경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역사적 우연성으로 설명될 수 밖에 없음

 

5. 하이에크가 파악한 시장

  가. 시장형태가 분업을 조직화하는데 결정적이라는 주장보다는, 개인들간의 이해충돌이 시장의 내용임을

      강조

  나. 시장의 현실적 신진대사는 모든 사람들이 필요한 기술, 자원들에 대한 사적 정보를 드러내도록 강조

      할 수 있는 능력에 의존

  다. 하이에크는 시장의 정보적 측면을 중시 : 자본주의적 시장은 정부의 공개와 교환이라는 복잡계의

      결정적 구성요소가 됨

  라. 사회주의적 관리자가 자본주의적 시장을 흉내낼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시장교환을 주장하고 방어할

      아무런 직접적인 실존적 이유가 없기 때문

 

 

■ 자유주의의 부활

 

1. 혼합경제(케인즈주의) 비판

  가. 자본주의 경제를 안정화시키고 규제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은 전체주의적 독재만큼이나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협한다고 주장

  나. 정부의 개입은 시장의 자율적 질서를 파괴하고 집산주의적 괴물에 예속되어 버릴 것이라고 생각

 

2. 하이에크 이론의 한계

  가. 하이에크는 시장에서 이뤄지는 자연발생적인 분업의 조직화를 과장

    → 역사적으로 재산권 성립의 과정은 중앙집중적인 정치권력의 역할을 필요로 함

  나. 정보가 사회적으로 조직화되는 다른 모든 형태들을 폄하

    → 집합적 정치적 행위로부터 나오는 긍정적인 경제적 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

 

 

Ⅷ. 기술의 예언자

 

1. 슘페터의 목표

  → 마르크스의 기술변화 이론을 한계주의 틀 속에 도입해 균형에 대한 신고전파의 물신숭배를 바로

     잡고자 함

 

2. 발라스적 균형의 한계

  가. 발라스적 균형 : 정태적

    → 발전의 관점에서 이러한 균형은 혁신의 부족이며 결국 자본주의적 내적 기질을 표현하는데 실패

  나. 초과이윤을 동기로하는 기업가들은 새로운 생산물, 생산기술, 생산조직을 도입하여 발라스적 균형을

      파열시킴

 

3. 창조적 파괴와 자본주의의 발전, 사회적 안정

  가. 기업가적 혁신 : 창조적 파괴

  나. 창조적 파괴를 중심으로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을 설명

    1) 일반적으로 은행과 금융이 혁신에 자금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

    2) 덜 혁신적인 자본들의 실패로 실업과 금융재난이 발생 : 혁신의 파괴적 단계

    3) 초과이윤의 끊임없는 추구와 좌절은 물질적인 생활수준의 증대 및 생산성의 향상 모두를 성취

  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체계적으로 기술변화를 발생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마르크스 이론을 경유해,

     분업의 확대를 통한 물질적 부의 획득이라는 스미스 오류의 근본원리로 돌아감

  라. 사회가 기업가들의 파괴적 행위들을 견뎌낼 수 있을지에 의구심을 가짐

 

4. 자본주의의 장기적 전망

  가. 자본주의의 장기적 생존을 비관적으로 바라봄 :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대량 실업, 부의 불평등,

     경제적 불안정성 등을 서구 문명이 감내하기는 힘들 것이라 판단

  나. 케인즈처럼(어떤 측면에서는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가 스스로 자신이 역사적 과업으로부터 벗어날

     것이라 생각

    → 물질적 후생수준이 증가하고 생산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생활수준의 제공이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스미스의 오류를 지지하지 않고, 시장이 독창적 무정부성을 대체하는 어떤 유형의 합리적

       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이라 전망

 

5. 베블런의 교훈

  가. 과시적 소비의 새로운 경계를 창조하는 기술적 모험의 화려한 전망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세계적

      규모로 낳고 있는 사회적 분열과 빈곤, 불평등에 대해 사람들이 상당히 무관심해질 수 있음

  나. 스미스의 오류는 첨단기술과 소비자의 과시주의가 결합된 물적 형태를 취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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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와 금융

myPPT 2012. 10. 1.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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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의 발전과정. 
45년 : 독립, 미군정. 
48년 : 정보수집, 남한은 산업시설 전무,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토지개혁, 하지만 많은 농지가 개혁대상에서 누락. 
50년 : 전쟁발발. 
53년 : 휴전, 미국의 원조, 해외 의존성 심화, 2차산업, 소비재공업, 삼백산업 중심육성. 
62년 : 1차계획 시작, 경제성장 3대전략. 
67년 : 2차계획, 중공업. 
70년 : 새마을운동. 
72년 : 3차계획, 제철, 석유화학, 조선 등. 
73년 : 오일쇼크. 
79년 : 오일쇼크, 10.26, 12.12
86년 : 3저호황. 
97년 : 외환위기. 
01년 : IMF긴급자금 상환. 
이후 : 비정규직, 청년실업, 양극화, 신용불량, 
08년 : 세계금융위기.

수출의 변화. 
60년대 : 1차 산업, 원재료, 아시아
70년대 : 가발, 의복, 신발, 미국
80년대 초반 : 재료별 제조물품. 

80년대 중반 : 기계 및 운수장비. 이후 : 기계 및 운수장비, 전기, 전자, 화학. 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의 비중 급증. 미래산업. ICT : 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 NT : Nano Tech. : x86 미국이 甲, D램 한국이 甲, ARM 대만이 甲. BT : Bio Tech. 황우석 사기 이후 미국이 잘 나간다더라. ET : Environment Tech. 유럽이 甲, 그런데 중국이 무서움. 경제력집중. 독과점 - 한국은 대부분의 주요산업이 독과점상태이다. 담합등의 문제가 있다. 소유자지배 - 소수의 자본가가 여러기업의 지분을 보유하여 경제력이 특정계층에 집중되어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의 그것은 정도가 심하다. 경제력집중은 불균형성장, 외자도입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금융 독과점과 관치금융, 투기, 조세특혜, 정책에 의한 경쟁업체에 대한 진입장벽, 상호출자 및 상호지급보증등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어갔고, 수출장려로 인하여 더더욱 심해졌다. 그렇기 때문에 공정위와 공정거래법을 기반으로 기업결합을 금지하고, 금산분리(지주회사설립금지,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제한)의 원칙을 세웠다. 상호출자금지, 주식소유량 신고의무등등의 방법으로 견제하고 있다. 또한 출자총액제한제도를 09년도에 폐지하였으나 최근 부활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1:99사회 : 영국의 폭동과 미국의 월가를 점령하라등 경제력집중에 대한 반발로 이러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영, 미 등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미리서 그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소유집중의 완화와 구조 투명화, 경쟁촉진, 순환출자규제, 기업윤리 확립, 상호출자 및 상호지급 보증 금지 등으로 경제력집중을 방지하여야 한다. 소유집중의 완화(이병철이 삼성을 삼성, 신세계, CJ, 세한 등으로 나누어 준 것이나, 정주영이 형제에게 KCC, 현대산업등을 나눠주고 아들들에게 현대차, 현대중공업, 현대상선등을 나누어 준 것처럼.) 유럽의 재벌은 수백년간 여러차례 분가되었기 때문에 기업들이 비교적 많이 쪼개졌다. 하지만, 한국은 60년대 이후 생긴 재벌들이 아직 지분분산, 분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문제점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을 요구한다. 이것을 서두른다면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다. 서구의 복합기업은 상당수가 없어지거나, 완화되었다. 순환출자 /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출자하는 행위. 기업집단(그룹, 1987~) : (형식적으로) 독립된 기업들이 인적 물적 자본적 결합을 통하여 동일한 관리체계 안에서 기업활동을 영위하는 조직. 서구의 복합기업(conglomerate)과 유사하다. 특히, 한국에서 인적 결합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생산확대와 고용창출, 재투자와 국력력강화등등의 성과가 있었으나, 족벌경영체제 및 전횡과 문어발식 다각화, 대마불사(Too big to fail)식 차입경영, 대주주의 이익 대변, 무능한 2,3세로의 세습, 정경유착을 기반으로 부정부패등의 문제점이 생기고 있다. 기업집단(자산총액 xx원 이상)에 대한 규제 : 금산분리, 순환출자금지, 출총제(이게 핵심인데 로비해서 없앰), 상호보증 제한 // 경쟁제한적 기업 결합의 금지 등 기업결합 규제 (주식취득 및 소유, 임원겸임, M&A, 합병,영업양수, 회사신설, 불공정 기업결합 금지)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집중 억제 및 경제정의 실현 (공정위) 출총제(5조 이상) / 상호출자제한 (2조이상) -> 09년이후 출총제를 미친 로비로 폐지하고 상호출자제한 5조원으로 완화. (독과점 / 대주주 지배 / 경제조직 / 금융/ 시대상황 순서) 50-70년대 : 자본축적&독점심화 / 경영자원 희소성 / 규모의 경제 / 정부통제 / 독점하의 경제력집중 80-90년대 : 국내시장확대->집중완화 / 총수경영 / 무분별 다각화(문어발) / 관치금융 / 모방주의 다각화를 시행한 성장기(me-tooism) 00년-현재 : 대외개방 / 상속&분가 (소유분산) / 효율적 경제조직의 모색 / 금융산업 개편과 독립성 확보 / 재벌의 구조조정 or 재벌해체 압력 경제위기. 우리나라의 외환 위기 : OECD에 무리한 가입시도 -> 시장개방, 해외여행 자유화 -> 금융, 주가 외국에의해 좌우 -> 국제수지적자 -> 외채-> 97년 아시아 유동성위기 -> 외환위기. 08년 세계금융위기 : 숫자에 집착한 미국이 금리를 내림 -> 금융회사들이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한테도 돈을 빌려줌(서브프라임 모기지론). -> 경기과열로 미국이 금리를 올림. -> 신용이 없던 사람들은 돈도 없기 때문에 채무를 못 갚음. -> 금융회사들이 손해를 봄. ->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 -> 금융회사 파산 -> 파산한 금융회사에 투자했던 다른 회사들 파산 -> 회사들이 망하니까 일자리가 없네?! 돈도 없다?! -> 현재 진행형. PIGS 재정위기 : PIGS의 무리한 EU가입 -> 인플레 등 부작용과 과도한 포퓰리즘 복지, 부정부패 -> PIGS曰"EU친구들아, 나 돈 좀." -> EU曰"나중에 갚아." -> 과도한 포퓰리즘 복지, 부정부패 -> PIGS曰"EU친구들아, 나 돈 좀." -> EU曰"또 왔냐. 나중에 갚아." -> 과도한 포퓰리즘 복지, 부정부패 -> PIGS曰"EU친구들아, 나 돈 좀." -> EU曰"미쿡놈들이 깽판쳐서 나도 돈 없다." -> PIGS曰"나 파산." -> 후폭풍. 현재 진행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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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으로 만들어진 세계 . 금융버블의 역사

myPPT 2012. 10. 1. 08:11















금융투기의 
역사 


발표자 
: 오영균 
금융재무연구센터 


원서 
제목 
: Devil Take The Hindmost . A History of Financial Speculation 
저자 
: Edward Chancellor 
출판년도 
: 1999년 
출판사 
: Gillon Aitken Associates 

역서 
제목 
: 금융투기의 
역사 
역자 
: 강 
남규 
출판년도 
: 2001년 
6월 
출판사 
: 국일 
증권경제연구소 


저자 
소개 
-케임브리지와 
옥스포드 
대학에서 
역사학 
전공 
. 
-1990 년대 
초반까지 
Lazard Brothers 에서 
금융실무를 
담당 
. 
-현재 
<Financial Times> 와 
<Economist> 의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음 
. 


목차 


1. 거품으로.. 만들어진.. 세계.. -금융버블의.. 기원.. 
2. 미시시피.. 버블과.. South Sea 음모.. 
3. 1820년대.. 이머징.. 마켓.. 투기.. 
4. 새시대의.. 종말.. -1929년.. 미국.. 대공황과.. 그.. 여파.. 
5. 카우보이.. 자본주의.. .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6. 가미가제.. 자본주의.. -일본의.. 버블경제.. 
7. 투기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 
8. 시사점.. 
1. 거품으로 
만들어진 
세계 
. 금융버블의 
기원 
투기에 
대한 
인류 
최초의 
역사기록은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 
신전건립, 조세징수 
등 
을 
담당하던 
법인체인 
Publicani사의 
주식매입 
열풍으로 
간주되고 
있음. 

Speculator의어원Speculator의어원
-라틴어로 
Speculator의 
어원인 
Speculare는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요인을 
찾아내는 
초병을 
의미 
하며, Questor는 
뭔가를 
쫓는 
사람을 
뜻함. 

-로마 
사람들은 
Graeci 또는 
Greek라는 
말로 
투기꾼을 
표현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당시 
투기꾼 
의 
상당수가 
그리스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음. 

Publicani 
주식열풍Publicani 
주식열풍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는 
로마법이 
자유로운 
자산이전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리대금, 
외환거래, 환어음 
발행 
등이 
가능했던 
시기였음. 

-시장이 
번성하면서 
Publicani(조세징수, 신전건립 
등을 
담당했던 
법인체)의 
주식 
투기열풍이 
발생하였고, 투기로 
인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곤궁해졌다는 
기록이 
남아있음. 

근대초기정크본드파동근대초기정크본드파동
-중세 
유럽 
봉건제 
하에서는 
탐욕, 권력, 섹스를 
‘3대 
중죄’로 
선언했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르 
침에 
따라 
상거래와 
금융 
등을 
통한 
이윤추구와 
투기는 
엄격히 
규제되었음. 

-근대로 
접어들면서 
다시 
채권 
및 
주식거래가 
발생하였고, 상설 
증권시장이 
인가되는 
등 
투기 
가 
가능하게 
되었음. 한편, 1550년대 
중반 
프랑스 
왕실채권(연리 
16%) 발행과 
이자지급 
중단은 
최초의 
‘정크본드 
파동’ 간주되고 
있음. 

튤립투기튤립투기
-17세기 
초반 
네덜란드는 
국제교역의 
중심지로서 
유럽의 
금융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음. 
-터키에서 
튤립이 
유입되면서 
이것이 
마치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로서 
인식되기 
시작하였음. 
-꽃 
수집가가 
변종 
튤립뿌리를 
고가로 
매입한 
것을 
계기로, 시세차익을 
노린 
새로운 
시장 
참여 


자들이 
유입되면서 
튤립투기 
열풍이 
불어 
닥쳤음. 1637년 
2월 
고가에 
튤립을 
살 
사람이 
없다 


는 
것이 
소문이 
나돌면서 
튤립시장은 
붕괴되고 
말았음. 

2. 미시시피 
버블과 
South Sea 음모 
정부가 
고평가된 
특정 
기업의 
주가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투기가 
조장 
되기도 
함. 

미시시피버블미시시피버블
-1717년 
존 
로에 
의해 
설립된 
미시시피 
사는 
프랑스의 
미국 
식민지 
루이지애나의 
관할권을 
갖 
고 
차이나 
컴퍼니, 화폐주조업, 조세징수 
대리업, 중앙은행 
등을 
지배하던 
대형 
합병회사였음. 

-미시시피사는 
엄청난 
은행권을 
발행하여 
미시시피 
주식을 
사려던 
사람들에게 
미시시피 
주식 
을 
담보로 
대출해 
주었음. 그 
결과 
유통주식수가 
급감하면서 
미시시피 
주가가 
치솟았고, 더많 
은 
은행권이 
인쇄되었음. 

-1720년 
1월 
프랑스 
콩티 
왕자가 
미시시피 
지분을 
팔아 
금과 
은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주식을 
현금으로 
전환하려는 
열풍이 
일어났고, 프랑스 
중앙은행의 
금고가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자금유출을 
막기위한 
비상조치가 
취해지면서 
미시시피 
사는 
파국을 
맞음. 

South Sea 음모South Sea 음모
-존 
블런트와 
로버트 
나잇에 
의해 
1720년에 
설립된 
South Sea 사는 
만기가 
다양하고 
매년 
이자 
를 
지급해야 
하는 
영국채권을 
자기회사 
주식으로 
전환해 
주는 
사업을 
제안함. 

-South Sea의 
주가가 
상승할수록 
채권 
보유자들이 
전환에 
참가해 
얻는 
이익이 
커지게 
되고, 주 
가상승으로 
얻은 
차익을 
정부와 
회사가 
나눠 
갖음으로써 
회사와 
정부, 채권 
보유자들이 
주가 
를 
끌어 
올리는데 
의기투합 
할 
수 
있는 
고리가 
만들어 
졌음. 이때 
South Sea 임원들은 
영국 
재무 
장관을 
매수해 
주가와 
채권과의 
전환비율을 
확정하지 
않은 
채 
South Sea의 
계획을 
승인 
받았음. 

-South Sea는 
미시시피의 
존 
로의 
수법을 
모방해 
청약에 
필요한 
증거금 
비율을 
낮춰 
주었고, 
South Sea 주식을 
담보로 
돈을 
대출해 
주었음. 그 
결과 
투자자들은 
South Sea에서 
돈을 
빌려 
주 
식을 
청약하고, 주식을 
청약하자마자 
주식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아 
다시 
주식을 
매입함으 
로써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수는 
감소되고 
주가는 
액면가의 
10배까지 
치솟게 
되었음. 

-South Sea는 
다른 
버블기업 
때문에 
자사주가 
하락할 
것을 
우려해 
‘반버블법’을 
제정토록 
하고, 
버블기업주를 
단속하는 
영장을 
발부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주식시장 
투매가 
나타나 
버블이 
파국에 
이르게 
되었음. 

3. 1820년대 
이머징 
마켓 
투기 
1822~1825년 
영국의 
버블은 
‘손쉬운 
신용창출’ 때문임. 즉 
지방은행이 
마구 
남발한 
은 
행권 
덕분으로 
투기를 
위한 
자금조달이 
무한대로 
가능하다는 
착각이 
확산되었음. 

이머징마켓채권투자붐이머징마켓채권투자붐
-1817년 
프랑스가 
전쟁배상을 
위해 
발행한 
채권을 
매입했던 
영국 
투자자들이 
엄청난 
단기 
수 


익을 
거두자 
런던에서는 
프러시아, 남미, 그리스 
등 
외국정부 
채권에 
대한 
투기열풍이 
몰아침. 

-남미 
채권의 
경우 
스페인 
군대가 
축출될 
경우 
이 
지역에서 
채굴되는 
금 
때문에 
경제성장이 
기 
대된다는 
전망과 
함께 
높은 
금리, 시세차익, 소액의 
증거금 
등으로 
개인 
투자자를 
유인하였음. 

벤처투기벤처투기
-1820년대에는 
벤처기업들도 
투기열풍을 
이용해 
자본 
이득을 
얻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음. 피 
서를 
위해 
런던까지 
바닷물을 
공급하는 
사업, 이집트 
보석인양을위한홍해물퍼내기 
사업, 
트라팔가 
해저에서 
포탄을 
인양하겠다는 
사업 
등 
황당무계한 
사업계획을 
가진 
벤처기업도 
등장. 

-벤처 
기업인은 
자사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해 
의회 
의원과 
귀족들을 
‘얼굴마담’으로 
영입하씀 
고, 벤처기업과 
유착된 
의원들은 
1720년에 
만들어진 
반버블법을 
폐기시켰음. 

불신의역류불신의역류
-1825년 
주식시장 
대세상승 
분위기가 
한풀 
꺾인 
데다, 영란은행의 
발행권 
규모가 
금 
보유량을 
크게 
넘어서면서 
통화긴축에 
나서자, 신용경색과 
함께 
지방은행이 
줄줄이 
도산하고, 주가폭 
락과 
함께, 신용붕괴로 
금으로만 
물건이 
거래되는 
현상이 
나타났음. 

-1826년 
내내 
영국은 
극심한 
공황으로 
부도율이 
급증하였고, 제조업 
생산성은 
급락했으며, 해 
고된 
노동자들이 
영국 
전역을 
방랑하며 
폭동을 
야기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해외원정까지 
제안될 
정도였음. 

-또한 
남미채권 
가격이 
폭락하자 
브라질을 
뺀 
남미 
국가들이 
디폴트 
상태에 
빠지면서, 만기연 
장 
및 
이자경감 
조치를 
받게 
되었으며, 영국과 
남미간 
무역도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음. 

4. 새시대의 
종말 
. 1929년 
미국 
대공황과 
그 
여파 
미국경제가 
끝없이 
번영할 
것이라는 
새 
시대에 
대한 
확신과 
차입투기의 
만연이 
1920 
년대 
미국증시 
버블의 
주요인으로 
작용하였음. 

경제낙관론확산경제낙관론확산
-1913년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출현으로 
불황이 
사라질 
것이라는 
경제적 
낙관론이 
대두되기 
시작하였음. 특히 
행정부의 
작은 
정부 
추구에 
따른 
기업규제의 
완화와 
조세율 
인하, 규모의 
경 
제에 
따른 
생산 
효율성 
증대, 연구개발 
투자 
활성화, 자유무역의확대 
등도새시대도래에대 
한 
신념을 
강화시켰음. 

-1920년대 
미국증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기술혁신 
관련종목에 
대한 
투기가 
아니라 
빚을 
내 
주식투기를 
벌이는 
차입투기의 
일반화였음. 주가의 
대세상승이 
이어지면서 
개인투자자 
뿐만 
아니라 
상호출자로 
복잡하게 
결합된 
기업들도 
마진론을 
통해 
쉽게 
대규모 
차입이 
가능했음. 

군중의광기군중의광기
-주식시장의 
대세상승세가 
이어질 
때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소위 
‘인식의 
부조화 
현상’(집단 
환 
상과 
조화되지 
않는 
정보는 
사람들의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성 
향) 이 
나타나기도 
하였는데, ‘새시대 
이데올로기’로 
무장된 
군중과 
주식시장은 
악재(유럽국가 
의 
경쟁력 
향상, 미국의 
수출 
둔화세) 를 
무시하고 
초단기 
수익에 
연연하는 
모습을 
나타냈음. 

-1929년 
10월 
24일 
미국 
주가는 
이유 
없는 
급락을 
경험함. 그 
영향으로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마진론의 
회수를 
종용했고, 외국 
은행과 
기업들도 
콜시장에서 
대출을 
회수해 
가면서 
증시폭락 
사태는 
11월 
중순까지 
이어짐. 일시적인 
주가 
회복세도 
있었으나 
다우지수는 
1929년 
10월 
300 
포인트 
대에서 
1932년 
41포인트 
대까지 
하락하였음. 

증시붕괴와경제공황증시붕괴와경제공황
-증시붕괴에 
따른 
대공황의 
발생으로 
1932년 
미국 
GDP는 
1929년 
수준보다 
60% 감소되었고, 농 
업인구를 
뺀 
나머지 
국민의 
1/3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음. 

-1933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케인즈의 
일반이론을 
기초로 
하여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통해 
투기를 
억제하는 
정책을 
채택하였음. 즉 
은행과 
투신 
업무를 
엄격히 
분리하는 
‘Glass-Steagell’법안이 
제정되고, 작전세력과 
내부자 
거래, 시세조종을 
불법화하는 
증권거래법 
이 
제정되었으며, 증권감독기관도 
생겨나게 
되었음. 

5. 카우보이 
자본주의 
.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후 
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부활하면서 
정보통신기 
술의 
발전과 
각종 
파생상품의 
등장으로 
금융시장은 
새로운 
혁명을 
맞이하게 
됨. 


자유주의이데올로기의부활자유주의이데올로기의부활
-밀턴 
프리드만은 
투기꾼이 
사적이익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시장의 
공급부족을 
해결하는 
순 
기능 
역할을 
하게 
되며, 최악의 
경우라 
하더라도 
투기는 
상대편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 
로섬 
게임을 
만들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주장함. 

-시장이 
효율적이고 
지속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가격결정도 
우연적이라면 
비합리적 
버블은 
존재할 
수도 
없고 
버블은 
음모가 
아니라 
합리적인 
것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 

파생상품의혁명파생상품의혁명
-1972년부터 
1982년까지 
외환 
선물, 금 
선물, 담보채권 
선물, 국채 
선물, 원유 
선물, 통화옵션 
등이 
차례로 
거래되기 
시작하였음. 과거에는 
도박으로 
간주되던 
차액결제가 
이자율 
선물의 
도입으로 
합법화 
되었으며, S&P500지수 
선물을 
비롯한 
다양한 
지수 
선물과 
선물에 
대한 
옵 
션거래도 
나타나게 
되었음. 

레이건시대레이건시대
-공화당 
정부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경제주체의 
이윤추구가 
옹호되고, 조세인 
하, 규제완화 
등이 
시행되자 
계층간 
소득격차는 
더욱 
확대되었음. 

-금융시장에서는 
프로 
트레이더가 
출현하였음. 그 
배경으로 
대형 
투자은행이 
기업공개를 
통 
해 
자금을 
끌어들이고 
고유계정을 
이용한 
투기를 
통해 
대규모 
단기 
수익을 
획득하기도 
하씀 
는데 
그 
결과 
펀드매니저는 
엄청난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음.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주식과 
채권, 외환시장에서 
자산을 
운용하여 
고수익을 
얻는 
헤지펀 
드가 
설립되고 
인수합병에 
따른 
자산가치 
급변을 
이용한 
고위험 
차익거래 
사설펀드가 
난립 
하게 
되었음. 

1980년대.. 중반.. 차입매수(LBO) 붐이.. 미국.. 증시활황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작용했.. 
음. 인수합병의.. 경우.. 전통적인.. 기업가치평가는.. 의미를.. 잃었고, 현금흐름.. 중심의.. 
기업가치평가.. -즉.. “차입금을.. 원활하게.. 상환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 되었음. 

차입매수붐차입매수.. 붐.. 
. 1980년대에는차입매수(leveraged buyout, 인수할.. 기업의.. 자산을담보로차입금을.. 조달해.. 벌이.. 
는.. 기업인수) 방식으로기업을인수해, 이자율이하락하고.. 주식시장이활황장세에접어들때.. 
되팔아.. 막대한.. 차익을.. 남기는.. 형태의.. 투기가.. 성행함. 
. 
드렉셀.. 번햄램버트사의정크본드트레이더.. 밀켄은‘신용등급이낮은채권은부도율보다높.. 
은.. 수익률을보장한다’는메시지를전파하며자금을.. 동원하고, 자신의소수정예.. 기관투자자.. 
조직과.. 대상기업의차익거래꾼을동원하여적대적기업인수합병을주도함으로써.. 정크본드.. 
시장의.. 대부로.. 군림했음. 론.. 펄먼의.. 래브론.. 인수, 캠푸의.. 앨리드.. 스토어스.. 인수, 이반부스키.. 
의.. 네슬레인수등이대표적인적대적기업인수합병.. 사례들임. 
1987년10월증시대폭락1987년.. 10월.. 
증시.. 대폭락.. 
. 1987년.. 8월인플레이션에대한우려로미국재무성채권값이.. 떨어지고엔화에대한달러가치.. 
가하락세를보인데다.. 일본정부가.. NTT의.. 민영화를.. 위해주식매각을준비하자.. 일본투자자들.. 
은.. 미국의투자자산을.. 처분하고.. 현금을마련하기시작함. 
. 
1987년.. 10월중순에는‘미국주식시장의.. 파국이.. 임박했다’는보고서가.. 출현하였고, 미국.. 유조.. 
선이.. 페르시아만에서미사일공격당하는사태때문에.. 주가가불안한모습을보임. 
. 
1987년.. 10월.. 19일극동지역의.. 주가하락부터시작되어.. 유럽증시의.. 하락은.. 미국증시.. 대폭락을.. 
야기시켰음. 특히프로그램매매에따른주가폭락.. 악순환이.. 이어지면서단.. 하루동안다우지수.. 
는.. 22%, S&P 선물지수는.. 29% 폭락함. 
. 
1987년.. 증시대폭락은.. 연방준비제도의유동성공급과.. 자사주매입을유도하는행정조치로경.. 
제공황으로이어지지는않았음. 효율적시장론자들은.. 1987년증시대폭락을투기적붐과증시.. 
대폭락이.. 경제대공황을유발하지않는다는.. 점을보여주는.. 증거로.. 활용하고.. 있음. 
. 
한편.. 정크본드.. 투기붐은.. 차입매수비용의증가, 횡령과.. 시세조종, 내부자거래혐의등으로.. 조.. 
사를.. 받고, S&L이보유한정크본드.. 강제청산법안등으로.. 1990년.. 2월드렉셀번햄램버트사.. 
가.. 파산하면서.. 막을내림. 
6. 가미가제.. 자본주의.. . 일본의.. 버블경제..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일본의.. 성장률이.. 위협을.. 받자.. 
일본정부는.. 재할인률.. 인하로.. 대응하였음. 소비자.. 물가가.. 안정되어.. 있던.. 상태에.. 
서.. 금리인하는.. 주식시장을.. 투기적.. 장세로.. 변질시키는데.. 일조하는.. 결과를.. 낳았음. 

부동산버블부동산.. 버블.. 
-1980년대.. 중반.. 일본상품이세계시장을석권하면서..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하였고, 주체.. 
할.. 수없는.. 무역수지흑자를해소하기위한미국부동산.. 매입열풍이나타났음. 

-일본버블의핵심은‘부동산버블’로볼수있음. 일본의.. 땅값은.. 1956~1986년.. 사이.. 50배이상뛰.. 
었기.. 때문에일본인은.. 땅값은.. 절대떨어지지.. 않는다는.. 신념을갖게되었고, 부동산담보를통.. 
한.. 대출이일반화되었음. 

-1987년.. 12월국제결제은행의바젤회의에서일본은행의.. 보유지분.. 중미실현이익을자본으로.. 
인정해주자는예외조항이마련되자, 일본은행들은대출규모를늘려땅값과주가를부양시켰.. 
고, 그결과은행의자본규모가.. 확대되는선순환구조가.. 형성될수있었음. 

플라자합의플라자.. 합의.. 
-미국의.. 무역적자가심화되자.. 1985년.. 9월미국.. 제임스.. 베커재무장관은플라자호텔에서.. 각국.. 
재무장관을소집하여달러의평가절하를유도하였음. 그결과엔화는.. 1986년.. 1월달러당.. 259엔.. 
에서.. 150엔으로.. 떨어지면서국제시장에서는.. 일본상품.. 가격이.. 2배.. 가까이.. 뛰어.. 올랐고, 일본.. 
의.. 경제성장률은.. 2.5% 이하로급락했으며, 일본.. 기업들이.. 산업시설을외국으로옮기면서산업.. 
공동화.. 우려가.. 확산되었음. 

-그러나.. 대장성의.. 재할인율대폭.. 인하하고, 국제유가.. 하락, 소비재.. 가격이.. 안정되게유지되자.. 
1986년.. 8월일본니케이지수는이해초보다.. 40%나올라.. 일본인들을.. 주식시장으로끌어들이기.. 
시작했음. 

-당시.. 정부가재정조달을.. 위해.. 민영화.. 시킨.. NTT의시가총액은.. 50조엔수준으로독일과홍콩전.. 
체.. 상장기업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큰수준이었음. 이러한.. 주가상승이가능했던이면에는.. 
일본.. 개인투자자들사이에정부가.. NTT주가하락을방어할것이라는믿음이존재했으며, 주식.. 
을뇌물로받은정치인들은정치자금을마련하기위해투기를방관했기.. 때문임. 

1980년대.. 후반.. 도쿄증시의.. 가치기준은.. 미래에.. 대한.. 장미빛.. 전망으로.. 대체되었으.. 
며, 주가조작이.. 팽배하여.. 대다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낮은.. 수익률을.. 기록하였음. 

도쿄증시의가치기준도쿄증시의.. 
가치기준.. 
-1980년대.. 후반.. 도쿄증시는더.. 이상미래수익의현재가치.. 할인과.. 같은서구의합리주의.. 방식으.. 
로는.. 평가할수없는상황으로발전했음. 일본주가의.. 주가수익배율이과도하게.. 상승하자서방.. 
투자자들은보유주식을처분하고있었으나, 일본애널리스트들은‘일본경제가세계경제.. 성장.. 
의.. 견인차역할을할것’, ‘증시주변의풍부한자금때문에.. 주가가.. 더오를것’이라는.. 논리를통.. 
해.. 주가상승을.. 유도했음. 

-기업의.. 펀더멘털을무시하는투기적장세에서주가는.. 개별기입의.. 이익이나.. 재무상관과는상.. 
관없이.. 동일업종.. 다른.. 기업보다.. 저평가되었다는이유.. 하나만으로.. 상승세를.. 나타냈음. 

-부동산.. 버블도..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끼쳤는데, 어떤기업이부동산지분을보유하고.. 있다.. 
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급등하였음. 한편.. 1990년일본.. 전체부동산가치는미국전체땅값의.. 4배.. 
수준이었고, 도쿄왕궁터가치는캐나다전체땅값보다.. 높은것으로조사되었음. 

주가조작주가조작.. 
-1987년.. 10월.. 19일미국의증시대폭락에불구하고.. 일본증시가비교적양호하게지지될수있었.. 
던.. 것은대장성의.. ‘빅4’ 증권사를.. 중심으로.. 한노골적인.. 증시부양책이효과를거두었기때문. 

-1980년대.. 후반.. 일본개인투자자는투신사들이증권사의.. 거래수수료수입을늘려주기위해과.. 
도하게.. 주식을.. 사고팔았기때문에매년.. 20% 주가상승률을.. 기록하는동안에도.. 4%의수익률밖.. 
에.. 올리지못했으며, 반대로은행가, 관료, 정치인, 큰손, 야쿠자등은.. 증권사가제공하는내부.. 
정보를.. 통해큰수익을얻을수.. 있었음. 

-노무라증권의주요고객인아줌마부대는노무라증권사가내놓는증시테마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을.. 보였으며, 증권사는보유주식을지렛대삼아.. 언론사를이용한주가조작작전을.. 
펼치기도.. 하였음. 

-투기꾼과.. 야쿠자, 은행, 증권사, 정치인들은공동의목적인투기적수익을올리기위해네크워.. 
크를.. 구축하였고, 매집또는그린메일(경영권을.. 위협할.. 정도의주식을웃돈을얹어주고.. 사는.. 
것) 방식을통해주가조작은시간이흐를수록.. 일상화되었음. 

일본버블의.. 붕괴는.. 버블로.. 인해.. 경제가.. 버블이전.. 상태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음. 

새로운황금시대새로운.. 황금시대.. 
잃어버린10년잃어버린.. 10년.. 
-경제가.. 버블화되자일본인들은자산가치상승, 엔고현상, 소득세감면에따른가처분소득의.. 
증가로.. 외국사치품수입에열을올리게되었음. 

-버블기에는‘신인류’ 들이.. 출현하여.. 베르사체, 알마니.. 같은외국브랜드에빠져들게되었고, 여.. 
성들.. 사이엔‘보디콘’(몸매가.. 그대로.. 들어나는옷)이.. 유행하였으며, ‘호화생활’이라는.. 신조어.. 
가.. 만들어지기도.. 함. 

-1987년세계증시.. 대폭락이후일본투기꾼들은위험한주식대신예술품투기에관심을가지기.. 
시작하였음. 1988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예술품.. 시장은‘역사상.. 가장선풍적인시기’로명.. 
명될.. 정도로예술품가격이상승했음. 1980년대말까지.. 15년동안프랑스인상파화가들의작.. 
품.. 값이모두.. 20배.. 이상.. 솟구친.. 것으로.. 나타났으며, 투기꾼들은어떤.. 작가의.. 작품을.. 살것인가.. 
보다는.. 얼마나.. 많은자본이득을.. 얻게.. 될까에.. 관심을.. 기울였음. 

-버블을.. 치료하기.. 위해.. 1989년말.. 일본은행총재가미에노.. 야스시로.. 교체되고재할인율을인상.. 
시키자.. 주식수익률이장기국채.. 수익률을밑돌아투자자들은주식시장에서돈을빼기시작함. 

-1990년.. 여름주가하락으로부패.. 금융스캔들이모습을.. 드러냈고, 수많은투기꾼들이파산하게.. 
되었음. 일본기업이사들였던해외자산들은다시헐.. 값에되팔려나갔음. 

-버블기의.. 설비투자가과잉투자로드러나면서.. 일본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음. 일본정.. 
부는.. 경제와증시부양을.. 위해.. 재할인율을.. 1995년.. 9월.. 역사상최저수준인.. 0.5%까지.. 낮추었지.. 
만.. 통화정책도.. 경기부양에는실패하였음. 

-1995년이후부터는.. 은행및증권사의도산사태가이어졌으며, S&P에.. 따르면.. 1998년.. 9월일본.. 
은행들은.. 정부지원으로엄청난부실채권을.. 덜어내고도.. 150조엔상당의부실채권을짊어지고.. 
있는.. 것으로나타났고, 여파로수많은기업이운영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도산위험에직면했던.. 
것으로.. 나타났음. 

-일본버블의붕괴는일본처럼강력한정부규제가존재하더라고버블은발생할수.. 있으며, 버블.. 
경제가.. 금융위기로끝날.. 경우.. 경제는.. 버블.. 전보다.. 악화될.. 수있다는것을시사해줌.. 

7. 투기를옹호하는경제학자들.. 
효율적.. 시장론자들은.. 투기가.. 기업에게.. 자본을.. 공급하고,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경제성장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촉진한다고.. 주장하나, 케인즈는.. 오히려.. 투기.. 
의.. 기술적.. 매매.. 특성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함. 

모멘텀투기모멘텀.. 투기.. 
-버블기에.. 투자자들은기업의장기전망에대한새로운.. 정보보다는.. 주가의.. 변동에.. 민감하게반.. 
응하여.. 투자를.. 결정하는‘기술적.. 매매’, 또는‘모멘텀.. 투자’에의존하는경향이나타남. 

-모멘텀.. 매매는.. 펀더멘털을고려하지않기때문에..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와같이태국.. 바트.. 
화.. 폭락이인근지역의.. 통화가치를폭락시키고증시붕괴를.. 야기시키기도함. 

위험한파생상품위험한.. 파생상품.. 
-대부분의.. 금융학자들은파생상품이.. 위험을.. 헤지하는.. 수단으로사용될수있기때문에시장의.. 
안정판.. 구실을.. 한다고.. 주장하지만, 소로스, 카프만, 알프레드.. 스타이너등은.. 파생상품거래가.. 
잠재적인.. 유동성을무시하고거래되기때문에대폭락.. 사태가발생할경우금융공황의도화선.. 
이.. 될가능성을경고하고있음. 

-노벨경제학상수상자인마이런숄즈와로버트머턴이.. 운영했던롱텀캐피탈.. 헤지펀드의파산.. 
은.. 이펀드가딛고.. 서있는논리즉‘다양한.. 자산의과거.. 가격변동이.. 미래에도계속될것’이라는.. 
경제이론이현실에서적용되기어렵다는것을시사해.. 주고있음. 

-효율적.. 시장가설에근거한여러.. 실무적인아이디어는‘현실은.. 변하지않는다’는가정을깔고.. 
있으나, 1987년프로그램매매오류로주가대폭락이.. 나타나고, 1990년대후반헤지펀드의파.. 
산으로.. 파생상품시장의혼란이가중되었던것처럼‘흔들리기쉬운기반위에구축된논리’로.. 
평가될.. 수도있음. 

금융투기의결과금융투기의.. 결과.. 
-케인즈는.. 시장은.. 본질적으로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한.. 사회의.. 자본성장이카지노.. 
의.. 부산물로이루어질때이는.. 올바른.. 방향으로발전하는.. 게아니다”라고경고하였음. 그러나.. 
베어링이.. 지적한.. 대로.. “관료들이투기억제를이유로.. 기업경영의욕을꺾어놓는다면‘치료’는.. 
‘병’(투기) 보다더..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는딜레마에.. 봉착할수도있음. 

-역사적으로투기는규정의허점을이용해기존의질서를.. 정반대로.. 움직이는힘으로작용했음. 

8. 시사점.. 
-저자는.. 새로운.. 산업의.. 태동과.. 신기술의.. 출현.. 등으로.. 사회구성원의.. 눈에.. ‘새로운.. 것.. ’이.. 출현.. 
하면.. ‘투기적.. 광기.. ’가.. 발생하여.. 버블이.. 발생하고.. 그.. 결과.. 어리석은.. 군중들은.. 투기의.. 희생자.. 
로.. 전락하게.. 된다는.. 킨들버거의.. ‘투기분석.. 모델.. ’을.. 적용하고.. 있음. 

-실제적으로.. 버블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투자자들은.. 신중하게.. 판단한다.. 할.. 지라도.. 집단.. 최면.. 
에.. 휩쓸려.. 버블을.. 인정하려.. 않게.. 되고, 설령.. 버블을.. 인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어리석은.. 그.. 누군가에게.. 손실을.. 전가시킬수.. 있다는.. 신념으로.. 투자에.. 임하기.. 때문에.. 버블은.. 
붕괴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팽창하는.. 성향이.. 나타남. 

-인류가..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투기적.. 성향.. 때문에, 투기와.. 이에.. 따른.. 실패와.. 좌절의.. 역사.. 
는.. 한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음. 

-투기를.. 옹호하는.. 경제학자들은.. 투기가.. 기업에게.. 자본을.. 공급하고, 전지구적인.. 차원에서.. 경.. 
제성장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촉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케인즈가.. 지적한.. 대로.. 투기의.. 
기술적.. 매매.. 특성.. 때문에.. 투기가.. 오히려.. 자본주의.. 시스템에.. 해가.. 될.. 수도.. 있음을.. 상기해.. 둘.. 
필요가.. 있을..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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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밥상 정리 : 1월 3일 ~ 1월 11

myPPT 2012. 10. 1.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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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 축산업을 위해서는, 고기가 접시에 오르기 전에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소비자들이 적게 알수록 좋다. 현대 축산업의 가장 큰 행운 중 하나는 산업화된 국가들의 국민은 몇 세대 동안 농촌과 동 떨어져 살아왔고, 따라서 가축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처리되는지 제대로 모른다는 사실이다.
27
쪽

 

2.     윤리적으로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닭이 얼마나 똑똑한지가 아니라 닭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느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별로 없다. 닭은 인간의 신경계와 비슷한 신경계를 가지고 있으며, 감수성 있는 동물을 해치려고 할 때는 항상 그렇듯이, 닭들은 자신을 해치려는 상대에게 인간과 흡사한 행태적, 심리적 반응을 보인다.

40쪽

 

3.     타이슨푸드가 싼 치킨을 내놓을 수 있는 이유는 많은 비용을 남들에게 전가했기 때문이다. 그 비용 중 일부는 파리떼 때문에 뒤뜰에 나갈 수도 없고, 악취 때문에 창문도 꼭꼭 닫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있다. 또한 동네의 냇물에서 수영할 수 없는 아이들, 그냥 물은 오염되었기 때문에 생수를 사 먹는 소비자들, 자연을 자연 그대로, 그 본연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운 생태계를 즐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는 사람들도 타이슨푸드가 치어야 할 비용을 대신 치러주고 있다. 이런 비용들을 경제학 용어로 ‘외부 효과’라고 한다. 생산자와 소비자 관계 외부


에 제 3자가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55쪽

 

4.     닭들을 돌볼 책임을 맡고 있는 납품업자들, 이 업계에서 ‘사육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노동자들보다는 자유로워 보인다. 하지만 일단 타이슨 푸드와 납품 계약을 맺고 나면, 타이슨푸드가 정한 기준을 따르는 수 밖에 없다. 사육자들은 자신들의 돈으로 닭장과 장비를 마련해야 하며, 종종 그 때문에 많은 빚을 진다. 그러면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타이슨푸드와 같은 기업과 계속 계약을 갱신하지 않을 수 없다. 계약 갱신을 하지 못하면, 그들의 닭장에는 더 이상 병아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닭장이란 더 이상 병아리가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닭장이란 닭을 키우는 용도 외에는 쓸모가 없으므로, 계약 갱신에 실패한 사육업자들은 투자 자금만 잃을 뿐만 아니라 땅마저 잃게 된다. 보통 한 기업은 25마일 반경의 구역에서 영업을 하며, 같은 지역에 두 개의 기업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기업은 다른 기업과 계약했던 사육업자와는 거래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따라서 어떤 사육업자가 타이슨푸드가 제시하는 계약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달리 어찌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들의 독립성은 사라지고, 사육업자들은 그들 중 한 사람의 표현대로 “ 기업의 머슴과 같이 일하며, 기업의 배만 불려준다. “ 

57쪽

 

5.     2005년 10월, 유엔 특별 조사단은 조류독감 유행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다수의 동물들을 좁은
지역에 몰아넣고 기르는 축산 방법’에
있을 밝혀냈다. 다른 전문가들도 이 점에 동의 했는데, 그 중 한사람인 오타와 대학교의 바이러스 학자 얼 브라운은 캐나다에서 조류독감이 유행한 직후 이렇게 말했다. “ 고밀도 닭을 기르는 방식은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발생하기 위한 이상적인 조건이다.” 비록 야생 조류에서 놓아 기르는 닭들로 바이러스가 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으나, 브라운 박사의 지적처럼 야생 조류가 가지고 있는 바이러스는 대부분 별로 위험하지 않다. 하지만 그런 바이러스가 집약적 가금 운영 체제와 접촉했을 경우에는 그보다 악성인 바이러스로 변이될 수 있다. 더욱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길러지는 닭들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유전적으로 동질적인 닭들이 좁은 공간에 갇힌 채로 살아가는 시스템의 닭들보다 저항력이 훨씬 높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라도, 놓아서 기르는 닭들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공장식 농장은 생물학적으로 안전지대가 아니다. 병균을 전염시킬 쥐, 들쥐, 작은 새들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58
쪽

6.     공장식 농법은 전통식 농법보다 싸게 먹힌다는 이유에서 널리 퍼진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것이 소비자에게 싼 상품을 제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그것이 그 비용의 일부를 남들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59
쪽

7.     사육장 시스템은 환경 재난이기도 하다. 목초를 뜯으며 살았던 되새김질 동물의 고기를 먹을 때, 우리는 사실상 태양이 방출한 부정형의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육장이 번성하는 이유는 미국산 저품질 옥수수 가격이 1파운드에 4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생산비보다 낮은 가격인데, 미국 정부가 옥수수 재배업자들에게 주고 있는 수십억 달러의 보조금 ( 국민의 세금 ) 덕분이다. ( 대부분의 보조금이 이미 아주 부유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 한편 옥수수에는 화학비료가 필요하다. 그리고 화학비료는 석유로 만든다. 그러므로 옥수수를 먹고 자란 사육장 소는, 폴란의 말처럼 “우리에게 가장 좋지 않는 것, 바로 화석연료 기계이다. “ 폴란은 코넬 대학교의 생리학 교수인 피멘텔에게 534번을 도살 가능 중량이 1250파운드까지 살찌우려면 얼마나 많은 석유가 필요할지 계산해 달라고 부탁했다. 피멘텔의 답은 284갤런 이었다.
99
쪽

 

8.     에머리 대학교 의학부의 가정 및 예방의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인 에리카 프랭크는 맥베지 버거와 보통의 맥도날드 햄버거를 비교해보았다. 그녀의 말로는 보통 햄버거 대신 맥베지 버거를 선택할 경우 당뇨병, 고혈압, 고콜레스트롤, 암, 심장 혈관 질환에 걸릴 위험이 줄어든다. 또한 이 콩 패티 햄버거는 더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 뿐만 아니라 두 햄버거의 맛은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의 건강과 지구의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쉬우면서도 바람직한 첫 걸음이 될 수 있죠.”
115
쪽

 

9.     월마트를 주의 깊게 봐야 할 필요는 무엇보다 그 규모에 있다. 월마트는 이미 미국의 식품시장 중 11퍼센트를 장악했으며, 메릴린치의 애널리스트인 대니얼 베리의 말에 따르면 2013년에는 21퍼센트까지 차지할 것이라고 한다. 당연히 최대 식료품 구매자이기도 한 월마트는 그 구입 식료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잇다. 과연 하나의 회사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해도 좋은 것일까? 그 대답은 그 기업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17
쪽

 

10.   빌은 이렇게 대답했다. “ 싼 먹을 거리가 좋다. 이것은 미국의 통념이죠. 그러나 잘못된 통념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상품이 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사실은 당신과 내게 내는 돈이 그 싼 가격을 벌충해 주고 있습니다.
149
쪽

11.   이기적인 행위자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세계에서는, 공동재산은 비극적으로 탕진된다는 법칙이 실현된다. 그것은 바로 1968년에 가렛 하딘이 내놓은 유명한 글에서 제시된 법칙이다. 공동의 토지를 가진 마을이 있다고 해보자. 이 땅에서는 전통적으로 마을의 모든 소를 먹여왔다. 과거에는 모든 집이 한 마리씩의 소만 소유하고 있었다. 소 한 마리면 가정에서 먹기에 충분한 우유와 치즈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동의 토지는 여러 마리의 소가 먹기에 충분한 풀을 제공했다. 그러나 새로 길이 뚫리면서 어떤 집들은 여분의 치즈를 인근 마을에 내다 팔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를 위해 더 많은 소를 키우며, 공동의 목초지에 넣었다. 얼마 후, 공동의 목초지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소가 많아졌다는 게 아주 분명해졌다. 각각의 집은 저마다의 이익만 추구하면 최대한 많은 목초지의 목초를 자기 소들에게 먹이려고 했다. 일부 가정의 경우는 치즈를 내다 팔아 생기는 부수입이 없어지면 어찌해야 할지 상상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각 집의 소들이 먹는 목초에 제한선을 두자는 협의는 깨지고 말았다. 그 시점에서, 제한선 설정에 동의했던 집들마저도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 공유지에 소가 너무 많아. 하지만 우리 소들을 공유지에 내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입을 잃을 것이고, 다른 집 소들이 우리 집 소들이 먹을 풀을 먹게 될거야.”
166
쪽

12.   1998년의 한 연구에 따르면, 원산지에서 생산되어 시카고에서 팔리는 농산물의 평균 이동 거리는 1,518마일이었다. 그 대부분은 캘리포니아에서 오며, 매년 50만 대의 트럭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싣고 그곳에서 출발, 3000마일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한다.  중략,, 그러나 비록 그 양상추가 메이블베일 바로 가까이에서 재배된 것이라고 해도, 벤튼빌까지 220마일을 트럭으로 옮겨져 월마트의 고도로 자동화된 120만 평방피트의 지역 유통센터로 들어가고, 다시 거기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거의 20마일을 이동, 매일 그 센터를 출입하는 다른 45만 개의 케이스와 함께 분류된 끝에 다시 트럭으로 제이크 동네의 월마트로 돌아오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것이 월마트와 다른 대부분의 미국 대형 마트 체인이 쓰고 있는 유통 시스템의 기본이다. 이 시스템은 식품의 운송 거리를 최소화하기보다는 공급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되었다.
199
쪽

13.   토산 농산물을 사기 위해 농장 근처에 살 필요는 없다. 매주 토요일이면, 전통적으로 노동자들과 좌익 운동권의 집회가 열리곤 했던 맨해튼 유니언스퀘어에서는 농산물 직거래 시장이 열려 떠들썩하다. 여기 나오는 농산물은 현지 농민들이 그날 아침 직접 따서 트럭에 싣고 가져온 것들이다. 가장 최근에 가서 세어보니, 뉴욕 인근에서 저마다 온 청과상들이 47개 업체가 되고, 잘나갈 때는 25만명의 고객이 몰려든다. 이 시장을 관리하는 뉴욕시 환경과에서는 인근에서 자체 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업자들에게만 판매 허가를 내준다. 중간 상인은 끼어들지 못한다.
202
쪽

14.   농업의 본질을 다시 그리는 한 가지 방법은 먹을거리를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을 한데 모으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농민은 소비자들이 먹을거리를 위해 쓰는 돈 중 고작 20퍼센트가 아닌 거의 전부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보통의 경우에는 제조업체, 가공업체, 광고업체, 소매업체 등에서 나머지를 가져간다. 그러한 상황의 변화는 가족 경영 농장을 보전하고, 이농 현상을 막으며, 농촌 사회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거나, 아니면 적어도 도시 지역까지 통근 가능한 거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지금 그들의 고향이 유령마을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들의 고민을 덜어 줄 것이다. 많은 농민은 자신들의 농가를 도저히 다시 일으킬 수 없을 만한 타격을 실감하고 있으며, 절망에 빠진 끝에 자살까지 시도한다. 중략…
이농 현상은 그 자체로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루 종일 들에서 고된 노동을 해야 하는 중국의 농민이 그 대신 도시에서 일자리를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더구나, 일부 ‘전통적인 농촌의 가치’는 잊어버리는 것이 낫다.  농촌 사회란 어리석을 정도로 사고의 폭이 좁으며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그런 사회는 특별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챙겨줄 만큼 기회를 많이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농촌적 가지는 분명 보전할 가치가 있다. 누가 자신을 부모에게서 받은 유산을 잠시 맡았다가 자신의 자녀에게 물려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땅을 보물처럼 아낄 것이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것이다. 중략.. 따라서 위기에 처한 가족 경영 농가를 지원하는 일은 중요할 수 있다.
211
쪽
 

15.   주디는 자신의 비즈니스를 사회정의 실현 수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화이트독을 일종의 살롱으로, 사람들이 만나서 시사 문제와 사회적 이슈를 토론하는 장으로 운영해나갔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나라를 가보며 적은 내용을 가지고 토론회와 시사회를 열었다. 그녀는 환경, 교육, 예술 등등의 전문가들의 초빙 강연을 열었다. 오늘날, 화이트독 카페는 월요일 밤마다 강연회를 개최하며, 음식, 서비스, 분위기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249
쪽

16.   그녀는 채식주의 식당은 ‘청중에게 설교’ 하는 것이나 다름 없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고 있는 사람들보다는 일반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었다.
249
쪽

17.   유기농업이란 식품, 섬유, 목재 등을 환경적,사회적,경제적으로 건전한 방식으로 생산할 수 있는 농업 시스템이다.
282
쪽

18.   유기농법은 다른 논거를 갖고 있다. 그것은 농부를 토지의 관리인으로 여기며, 토지를 돌보는 가운데 그 결실을 수확하여, 자신이 농사를 시작했을 때의 토질 수준을 유지 또는 개선하여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고 여긴다. 따라서 유기농 농민들은 유기물질을 투입하는 방법으로 토질을 유지, 발전시킨다. 그것은 흙 속의 벌레와 미생물을 늘린다. 유기물질이 풍ㅂ한 토양은 관개의 필요가 적은데, 흙이 습기를 더 잘 머금기 때문이다. 또한 바람이나 폭우에 표토가 씻겨 내려갈 가능성도 적다.
287
쪽

19.   그러나 제약업계가 말라리아 치료보다 남성 대머리 치료에 더 관심이 있듯, GM 식품을 개발하는 업계 역시 자기네 제품을 구입할 능력이 되는 선진국 국민들에게 더 관심을 갖는다.
304
쪽

20.   이 농장은 ‘공동체 후원 농업’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로체스터에 살고 있는 300명의 패밀리 회원이 농장에 회비를 낸다. 그 회비 액수는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지금은 매주 14달러에서 20달러 사이이며, 1년에 27주가 회비 납부 주로 정해져 있다. 이 패밀리 회원들은 농장에서 일손을 거들기도 하는데, 한 철마다 세 차례씩 반나절 동안 품앗이를 한다. 그 보답으로 그들은 매주 신선한 농산물을 배달 받는다. 헨더슨은 그녀가 잘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만들어서 농장을 운영하는 일이 특히 즐겁다고 말한다. 중략.. 그녀가 ‘유기농’ 마크가 단지 해당 농장이 몇몇 합성물질을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까닭이다. 중략.. 그녀에게 유기농이란 하나의 산업이 아니며, “산업적 식품시스템에 대한 하나의 대안이다.”
306
쪽

21.   뭔가 변화를 가져오려면, 일반 사람들에게 편한 것으로 만들어야 해요.
311
쪽

22.   식물성 단백질은 다양한 식품성 식품을 소화하고 에너지 필요량이 충족될 때 필요량만큼 섭취될 수 있다. 연구 조사 결과는 하루에 여러 번 여러 가지 식물성 식품을 섭취할 경우 모든 필수 아미노산이 섭취되며, 건강한 성인에게 필요한 질소 축적률이 달성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320
쪽

23.   ‘밀집식 가축 사육(CAFO)’ 은 그 이름이 암시하듯 동물들을 한데 밀집시켜놓고 먹이는 방식이다. 초원에서 풀을 뜯는 소들과 달리, 이 동물들은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없다. 여기에 근본적인 환경 관련 문제점이 생긴다. 모든 CAFO는 곡물 재배지에 의존하고 있다. 거기서 동물들이 먹을 사료가 생산되는 것이다. 갇혀 지낸다고 해도 동물은 움직이고, 체온을 유지하고, 뼈와 기타 신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 많은 영양분을 소비한다. 따라서 이 전체 사육 과정은 사람의 먹을 거리를 마련하는 데는 비효율적인 방법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다른 방식의 영농에 비해 토지, 에너지, 물의 사용 면에서 환경에 더 큰 부담을 준다.
325
쪽

24.   미국에서는 거대한 자연 저수지 하나가 이 나라의 관개 수로망의 물을 65퍼센트까지 공급한다. 이 대수층이 채워지기까지는 수천 년이 걸리는데, 지금 이 대수층에 물이 채워지는 속도보다 펌프로 올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리하여 그 수면은 급속히 내려가고 있다. 대수층에 의존하는 농업이란 지속 가능한 농업에 비해 마치 광업 같다. 제한되어 있는 자원을 마지막까지 긁어내면서 거기서 이익을 취하고, 더 이상 자워이 남아 있지 않게 되면, 원래 모습으로 회복이 영영 불가능한 상태로 되어버리고 만다. 따라서 1파운드의 소고기란 사실 ‘물을 많이,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330
쪽

25.   시카고 대학교의 기든 에셸과 파멜라 마틴은 동물성 식품 생산 과정에서 방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을 조사했으며, 전형적인 미국의 식단(그 중 28퍼센트가 동물성인 )은 같은 양의 칼로리가 포함된 베건 식단에 비해 한 명이 1년에 약 1.5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배출시킨다는 결과를 얻었다. 대조적으로, 보통의 운전자가 미국의 전형적인 자동차 대신 좀 더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꾸었을 때 1년에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방출량은 1톤이다. 다시 말해서 내가 기후 변화에 마치는 영향을 억제하는 데는 차를 바꾸기보다 베건식단으로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다.
338
쪽

26.   공리주의자들이란 버려진 고아를 살해하는 일도 정당화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에게는 살해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54
쪽

27.   재화의 부족이라는 문제부터 시작하여 그것을 극복할 최선의 방법을 찾는 통상적인 경제학자와 달리, 바타유는 지금의 사회경제적 질서를 그 과잉 현상에서 풀어나갔다.
374
쪽

28.   프리건주의는 공짜 음식만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에 대한 가치관이 있다. 소비 사회에서 설정된 우선순위를 거부하고, 그런 우선순위에 따라 이루어지는 라이프스타일도 거부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지위를 자신이 가진 부(富)에,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벌고 있는지와 연결 짓기 때문에 자기 지위를 향상시킬 돈을 벌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한다. 프리건들은 그런 지위 인식을 거부하고, 심지어 기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조차 돈을 벌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 모두가 1950년대에 살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소비재를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한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더 작은 집에서 살았고, DVD며 전자오븐, 휴대폰, PC 등은 아무도 못가지지 않았던가? 그러나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는 그때 사람들보다 행복을 덜 느끼며 산다. 프리건들은 행복이란 뭔가를 소유하는 데서가 아니라 뭔가를 하는 데서 온다고 여긴다. 그들이 뭔가 일을 한다면, 그것은 그 일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소비하는 모든 것에 돈을 내는 사람들보다 프리건들은 훨씬 많은 자기 시간을 가지며, 그 시간은 팀의 말처럼 즐기는 데, 또는 자신이 가치있다고 믿는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두 배로 자유롭다. 소비문화의 에토스에 구속되지 않으며, 욕구 충족을 위해 돈을 벌 필요성에서 자유롭다. 그들은 대안적인, 그보다 덜 착취적인 경제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74
쪽

29.    애리조나 대학교의 고고학자인 티모시 존슨 박사는 미국 연방정부가 후원하는 음식 쓰레기 연구를 진행 중인데, 미국에서 만들어지는 식품의 40퍼센트 이상이 유실 또는 폐기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매년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음식물이 버려진다는 의미이다.
375
쪽

30.   투명성 : 우리는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권리가 있다.
공정성 : 식품생산의 비용을 다른 쪽에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379
쪽

31.   유기농 식품이 비싸다면서, 4.5달러짜리 까페라떼를 마시는 사람들의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385
쪽

32.   건강에 좋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은 개인의 자유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거기에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정하지 않다.
393
쪽

33.   먹을 거리에 대한 타당한 윤리적 접근은 이렇게 자문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음식을 먹을 때, 먹지 않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나의 먹을거리 선택은 나와 남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런 자문에 스스로 답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심지어 편리함 등을 고려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395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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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과학사 백과 사전

myPPT 2012. 9. 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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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과학 사조

베이컨의 경험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스의 수학 연역적인 자연 철학 사고 방식을 비판하면서 실험 기구를 사용하거나 실험적 방법을 활용해 자연의 본질을 알아내는 귀납적 방법을 주장했다. 과학자들이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사실들을 축적한 후 그 지식에서 보편적인 진리를 이끌어내는 진정학 과학자의 자세로 보았다. 이러한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과 경험주의 철학은 보일을 비롯한 영국의 과학을 이끈 왕립 학회의 많은 실험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독일의 과학 사조

데카르트의 영향을 받았다. 절대적 지식의 근거에 대해 고심했고 명징성이 확보된 명제에서부터 자연의 존재를 하나씩 증명해 나가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주관적인 감각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없애거나 줄일 수 있는 논리적인 연역의 방법을 생각했다. 연역이라는 논리적 방법은 참다운 진리로 인도하는 확실한 방법이므로 연역적 전개가 가능한 것을 참다운 지식이라고 여겼다.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관념을 모두 말한 것이 아니라 ‘직관’에 의해 설명 가능한 기본적 관념을 논리적 연역의 출발점으로 보았다. 데카르트의 이러한 연역적 철학으로 인해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많은 이론 물리학자가 배출되었다.



페러데이의 암부
1838년 영국의 페러데이는(Michael Faraday, 1791 1867)는 다양한 기체로부터 스파크의 형태로 나타나는 전기 방전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대기압 하에서의 기체 방전뿐만이 아니라 압력을 낮추었을 때 나타나는 방전의 모습도 관찰했다. 그는 기체의 기압이 낮아지면서 양극에서 음극까지 다소 지속적인 발광이 나타나다가 기압이 아주 낮아지면 전극의 중간 지점에서 어두운 지역이 나타나면서 발광이 중단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을 흔히들 패러데이 암부(Faraday dark space)라고 부른다.


가이슬러 관

유리공이었던 독일의 기술자 가이슬러가 만든 방전관, 진공 실린더 속에 전극을 넣고 저압 상태(1Torr 이하)에서 아르곤이나 네온 등의 기체를 포함하는 관이다. 높은 전압이 걸리면 전류가 기체를 타고 흐르면서 기체를 이온화 시키고 기체에서 방출된 전자가 다시 이온과 결합하면서 빛을 내게 된다. 전자가 기체 분자와 충돌할 정도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음극선을 만들지 못한다. 네온 사인의 원리로 알려져 있다. 독일의 율리우스 플뤼커는 가이슬러 관을 이용하여 자기장이 방전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였다. 가이슬러는 수은 진공 펌프를 개발하고 물의 최고 밀도 온도를 측정하기도 하였다.



캐서드

음극 또는 전지의 음극과 연결한 부분, 전기 분해에서는 환원 반응이 일어나는 부분을 말한다.



골드스타인의 음극선

플뤼커의 제자였던 빌헬름 히토르프는 가이슬러의 진공 펌프와 고전압 발생 장치를 이용하여 고전압 방전관을 이용하여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는, 자기장에서 휘는 광선을 발견하였고 이를 글로우 방전 또는 글로우 광선이라고 불렀다. 골드스타인은 더욱 정밀한 실험을 통해 이를 확인한 후에 이 광선을 음극선(Cathod Ray)라고 불렀다.



크룩스의 암부

가이슬러관보다 현저하게 압력이 낮아 10-2Torr 이하로 낮아지게 되면 밝게 빛나는 곳은 없어지고 음극의 반대 쪽 유리관의 벽이 녹색 빛을 내게 된다. 이 상태의 방전관을 크룩스관이라 한다. 1878년 영국의 크룩스(William Crookes, 1832 1919)는 방전관의 음극 가까이에서 소위 '크룩스의 暗部'(Crookes dark space)의 두께가 방전관 내의 분자의 압력이 감소함에 따라 넓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듬해까지 계속된 실험에서 크룩스는 음극선이 고체를 통과할 때 그림자가 생기는 것과 자장에 의해서 휘어지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이런 일련의 연구를 종합해서 크룩스는 1879년 왕립학회의 강연에서 자신이 관찰한 것을 기초로 음극선이 음으로 하전된 분자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고, 이것을 보통의 기체, 액체, 고체 상태와는 다른 물질의 '제 4 상태'라고 불렀다.

음극선이 하전된 분자의 흐름으로서 물질의 제 4 상태에 해당한다는 크룩스의 주장에 대해서 음극선을 에테르적인 파동으로 해석했던 독일의 과학자들은 강한 비판을 가했다. 우선 1883년 킬 대학에 있던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 1857 1894)는 글로우 방전에 관한 정확하지 않은 자신의 실험을 바탕으로 해서 음극선이 정전기장에 의해서는 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헤르츠의 실험

J.C.맥스웰에 의해 예언된 전자기파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실시하였다. 발진기로서 유도 코일을 사용하여 그 양끝에 불꽃을 일으키고, 간극이 있는 고리 모양의 철사를 검출기로 사용하여 그 양끝에도 전기불꽃이 생기는 것을 발견하였다. 헤르츠는 이 장치를 사용하여 전자기파가 빛과 같이 회절(回折)이나 편향을 나타내고 빛과 같은 정도의 속도로 직진한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또 전자기파가 실험실의 벽에서 반사되며, 단단한 피치의 프리즘에서 굴절된다는 것도 실험으로 밝혔다. 헤르츠의 실험은 맥스웰의 전자기파설을 실증함과 동시에 라디오통신이나 기술의 기초를 세우는 것이었다



뢴트겐 X선

오늘날 의학의 없어서는 안될 기본적인 기술이자 방사선 과학의 태동이 된 사건이며 톰슨의 전자의 발견의 계기가 되었고 톰슨의 전자 발견은 상대성 이론의 배경이 되었다. 또한 X선을 통해 빛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져 물질파 이론과 양자 역학 요람이 되기도 한, 20세기 과학의 전면적인 혁신을 가져오게 된 놀라운 사건이 1895년 겨울에 일어났다.

1850년대부터 독일과 영국의 과학자들은 전기 방전관에서 나오는 음극선을 이용해서 다양한 실험을 해나가고 있었다. 초기 이들의 실험은 주로 음극선 자체의 성질에 대한 연구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음극선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과학자들은 음극선을 다양한 물체에 충돌시켜 여기서 나타나는 모습을 분석하는 실험을 하게 되었다. X-선의 발견은 바로 이런 실험 과정에서 얻어졌다.

1892년 본 대학의 헤르츠(Heinrich Rudolf Hertz, 1857 1894)는 음극선이 얇은 금박을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새로운 현상을 발견한 헤르츠는 그의 제자인 레나르트(Philipp Lenard, 1862 1947)에게 이 실험을 계속해 볼 것을 권유했다. 레나르트는 음극선 관의 한쪽 끝에 얇은 알루미늄 판('레나르트 창문')을 대어서 여기에 음극선을 쏜 다음 이 금속 창문을 통과해서 나오는 광선의 성질을 여러 기체들 속에서 면밀하게 점검했다. 이 실험에서 레나르트는 음극선에 관한 여러 가지 성질들을 관찰했다. 만약 레나르트가 여기서 금속판을 투과해서 나오는 음극선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반대편에도 감광판을 대었더라면 레나르트는 새로운 종류의 광선인 X-선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50세가 넘은 1895년초까지 뢴트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48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발표한 논문 하나로 그는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가 되었던 것이다.  

1894년 5월 5일 레나르트는 뢴트겐에게서 음극선을 금속 박판에 쏘기 위한 실험장치에 관한 문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때 레나르트는 뢴트겐에게 '레나르트 창문'에 사용되는 금속 박편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레나르트의 도움을 받아 뢴트겐은 레나르트가 했던 실험을 반복해 볼 수 있었다. 그 때 히토르프와 크룩스가 만든 향상된 진공관과 륌코르프가 만든 고전압 장치로 발생한 음극선이 유리관의 금속박에 빠른 속도로 충돌해서 새로운 종류의 광선이 나왔다. 새로운 광선 X-선이 검은 종이를 뚫고 나와서 백금시안화바륨으로 이루어진 감광지를 감광시켰던 것이었다. 이 놀라운 현상을 목격한 뢴트겐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12월 22일 그는 자신의 처를 실험실로 불러서 그녀의 손을 X-선으로 찍어보았는데, 이때 처음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뼈를 사진으로 찍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리하여 12월 28일 뢴트겐은 그간의 실험을 정리해서 뷔르츠부르크 물리·의학 학회지에 '새로운 종류의 광선에 관해서'라는 논문을 접수시켰다.

의학자들은 X-선의 의학적 중요성을 발 빠르게 알아차리고 뢴트겐에게 강연을 요청했다. 학계뿐만이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의 언론들도 이 놀라운 발견을 대서특필해서 뢴트겐은 일약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인간의 뼈가 찍힌 뢴트겐 사진을 파리의 아카데미에서 회람된 후 얼마 있지 않아서 베크렐은 강한 투과성을 지닌 우라늄 화합물의 감광 현상 즉 방사선의 발견에 대해 발표하게 된다.

X-선 발견은 영국 과학자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J. J 톰슨은 X-선 발견의 소식을 듣고 이에 관련된 실험을 하다가 X-선 이온화 현상을 발견했다. 그 뒤 톰슨은 음극선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음전하를 띤 미립자, 즉 전자의 전하량과 질량의 비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X-선의 발견은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뢴트겐은 발견 당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노벨상의 물리학 분야의 첫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X선은 뢴트겐 이전에 여러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었을 것이다. 1879년 크룩스 자신도 음극선 주변에서 사진 건판이 흐려지는 것을 불평하곤 했었다. 더구나 레나르트를 비롯한 몇몇 독일 물리학자들은 크룩스 관 주변에서 발생하는 발광현상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음극선의 성질을 연구하는 데 그들의 관심을 집중하는 바람에 발견의 기회를 놓쳤다. 특히 레나르트의 창문 실험은 X-선 발견에 가장 근접했던 실험이었으며, 실제로 레나르트는 뢴트겐이 히르토프-크룩스 관을 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레나르트는 자신이 이 중대한 발견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매우 애석하게 생각했으며, 특히 뢴트겐이 X-선 발견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도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크게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X-선의 본성에 대한 초창기의 해석

우선 초창기 유행하던 X-선 본성에 대한 해석으로는 1900년까지 주로 독일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선호되던 해석으로 X-선을 매우 높은 진동수를 지닌 통상의 빛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뢴트겐이 발견한 새로운 광선은 빛과 같이 직진을 하며, 자기장이나 전기장에 의해 휘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뢴트겐 자신은 X-선을 19세기를 통해서 과학자들이 오랫동안 찾아왔던 에테르의 압축에 의해서 생기는 종파(longitudinal wave)로 해석했다. 당시에 빛은 압축 가능한 매질에서 전파되는 소리와는 달리 횡파(transverse wave)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만약 에테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압축이 불가능한 완전탄성체라는 극히 이상적인 매질로서 존재해야만 했다. 그런데 만약 에테르가 조금이라도 압축이 가능하다면 소리와 같이 빛의 종파 성분이 존재할 수 있고, 바로 이것이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스톡스는 X-선이 기본적으로는 아주 높은 주파수를 지닌 횡파로서 개별 음극선이 아주 빠르게 충돌함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충격파라는 설을 제안하였다. 맥스웰 전자기학의 대가인 J.J. 톰슨마저 스톡스의 가설을 인정한 이후 X-선의 편광 실험까지 밝혀지면서 충격파 가설은 1905년까지 X-선의 본성을 설명하는 지배적인 견해가 되게 된다.


레나르트의 방아쇠 가설

1905년경부터 우선 X-선의 이온화 성질에 관한 이해가 진전되면서 X-선에 대한 충격파 해석에 문제가 있음이 서서히 제기되었다. 우선 X-선이 모든 기체 원자들을 이온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극히 일부만을 이온화시킨다는 것이 설명되어야만 했다. 또한 X-선에 의해서 생성되는 2차 전자의 속도가 매우 크다고 하는 특이한 성질도 설명되어야만 했다. 1902년 레나르트는 광전효과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자외선에 의해서 방출되는 전자의 속도가 빛의 강도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때 그는 이런 광전효과 현상을 원자 속의 전자는 이미 원자 속에서 퍼텐셜 에너지에 해당하는 속도를 얻고, 빛은 단지 전자를 방출시키는 방아쇠의 역할을 한다고 하는 방아쇠 가설(triggering hypothesis)를 제기했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X-선에 의해서 생성되는 2차 전자의 속도가 매우 큰 이유도 이 방아쇠 가설로 설명했다.


광양자 가설의 등장

한편 1905년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1955)이 광양자 가설에 입각해서 광전효과를 설명한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X-선에 대한 다양한 양자론적인 해석들이 나타났다. 아인슈타인은 빛을 광양자라는 국소적으로 독립된 에너지 흐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레나르트가 방아쇠 가설로 설명했던 광전 효과 설명을 이 새로운 광양자 가설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양자 가설에 의하면 빛에 의해 튀어나오는 광전자의 최대 속도는 빛의 세기와 무관하고, 빛의 진동수만이 전자가 받는 에너지의 양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이 광양자 가설은 당시의 과학자들에 의해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 과학자들에 의해서 널리 수용되고 있었던 빛의 파동설은 빛과 관련된 아주 많은 현상을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광전 효과는 잘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빛의 간섭 현상을 비롯한 몇몇 현상들을 당시 과학자들에게 납득이 갈 정도로 설명하지는 못했다. 1905년 양극선에서 나오는 양이온선(canal ray)의 도플러 효과를 발견한 슈타르크는 이 양이온선에서 관찰된 현상과 연관하여 광양자 가설을 논의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X-선의 성질을 광양자 가설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에테르 파동설'과 광양자 가설을 동시에 적용해 본 슈타르크는 전통적인 연속체 물리학의 무비판적인 적용을 반대했으며, 광양자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많은 이유를 독일의 과학자들의 구미에 맞게 제시하였다. 이리하여 독일에서 빛에 대한 양자론적 해석이 서서히 수용되면서 레나르트에 의해 제기된 방아쇠 가설은 점차로 힘을 잃어갔다.


X-선 회절 실험: 라우에 반점과 브래그 부자의 실험

광양자 가설이 등장하고 X-선에 대한 입자론적 가설이 대두되었지만 1911년까지도 X-선이 전자기파인가 아니면 입자인가 하는 것은 좀처럼 분명한 형태로 결판이 나지는 않았다. 한편 X-선 발견으로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뢴트겐은 1900년 뷔르츠부르크를 떠나 뮌헨 대학의 물리학 연구소 소장 겸 물리학 교수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뢴트겐은 이 뮌헨에서 대학의 엄청난 지원 속에서 거대한 연구 시설을 갖춘 연구소를 꾸려나갔다. 이 거대한 연구소 옆에는 이보다는 규모가 작은 이론 물리학 연구소가 하나 있었는데, 1906년 좀머펠트는 뢴트겐의 추천으로 이곳의 교수로 오게 되었다. 결정격자에 의한 X-선 회절 실험에 성공해서 X-선이 파동이라는 것을 결정적으로 밝힌 곳은 X-선을 발견한 뢴트겐이 꾸민 거대한 연구소가 아니라, 바로 이 거대한 연구소 옆에 있었던 좀머펠트의 작은 이론 물리연구소였다.

좀머펠트 역시 X-선의 본성에 대해 연구한 학자였는데, 그는 특히 우수한 학생들을 발굴, 교육, 육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좀머펠트 연구실에는 막스 폰 라우에(Max von Laue, 1879 1960)라는 강사가 있었다. 그는 베를린 대학의 막스 플랑크 밑에서 상대성 이론과 광학에 대한 연구를 한 뒤 1909년부터 이곳에서 강사 생활을 하는 이론 물리학자였다. 또한 좀머펠트의 연구소 내에는 이론 물리학 분야 이외에 작은 실험 분과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조교로 일하던 사람이 바로 발터 프리드리히(Walther Friedrich, 1883 1968)였다.

라우에는 만약 X-선이 아주 짧은 파동이라면 아주 규칙적인 원자 배열로 이루어진 결정 격자를 통해서 나오는 밝고 어두운 회절 무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막스 폰 라우에의 이 같은 생각에 대해서 정작 뢴트겐과 좀머펠트와 같은 뮌헨 대학의 물리학 교수들은 강한 의문을 내비치며 회의를 표명했다. 막스 폰 라우에는 자신의 이 생각을 실험실에 있던 발터 프리드리히에게 개진해 보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실험실의 한 젊은 박사과정 학생과 함께 이들 3명은 X-선 회절 실험을 시작할 수 있었다. 황산구리 결정격자에 X-선을 쏘는 실험을 통해서 좀머펠트 연구소의 젊은 과학자들은 X-선이 결정 격자를 통과할 때 회절과 간섭을 일으켜 사진 건판에 소위 라우에 반점이라는 여러 반점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이것으로 그들은 X-선이 아주 짧은 파장을 지닌 전자기파라는 것을 밝혀주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격자의 존재를 실험적으로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었다. X-선 회절 소식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6월 10일 아인슈타인은 막스 폰 라우에에게 "당신의 실험은 물리학이 경험한 가장 아름다운 것에 속합니다."라는 내용의 축하 엽서를 보냈다.

뮌헨의 젊은 과학자들이 얻어낸 놀라운 실험은 곧 영국의 과학자들로 하여금 이와 관련된 실험을 하도록 자극했다. 특히 영국의 윌리엄 H. 브래그와 그의 아들 W. 로렌스 브래그(William Lawrence Bragg, 1890 1971)는 선택적 반사 방법을 활용하여 X-선 회절 법칙을 얻어냄으로써 결정 격자를 매우 간단한 수학식으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리하여 이들의 실험은 X-선결정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생명 현상에 대한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분자생물학의 성립에도 많은 기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1912년에서 1913년에 걸쳐 이룩한 X-선 회절 실험에 대한 노벨상 위원회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1914년 막스 폰 라우에는 자기의 스승 막스 플랑크보다 먼저 노벨상을 받게 되었고, 그 이듬해에는 브래그 부자도 X-선 회절 실험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베크렐

방사능 물질이 방사능을 방출하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방사능의 국제단위(SI)로 베크렐(Bq)로 표시한다. 종전에는 방사능 단위로 큐리(Ci)를 사용하였다. 베크렐선을 발견한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투안 앙리 베크렐(Antoine Henri Becquerel, 1852~1908)의 이름에서 붙였다.

방사선의 양을 측정하기 위하여 방사능 단위와 방사선량 단위를 사용하며, 방사선량의 단위는 흡수선량 단위와 등가선량 단위로 나눌 수 있다. 방사능 단위는 국제단위(SI)로는 베크렐(Bq=/s)을 사용하고 종전단위로는 큐리(1Ci = 3.7 × 1010 Bq)를 사용했다.

방사선량 단위 중 흡수선량 단위는 종전단위로는 라드 (1rad = 0.01Gy)를 사용했고 국제단위(SI)로는 그레이(Gy=J/kg)을 사용한다. 등가선량 단위는 종전단위로 렘 (1rem = 0.01Sy)을 사용했고 국제단위(SI)로는 시버트(Sv=J/kg)을 사용한다.

X-선 법석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프랑스의 과학자 베크렐은 우라늄염을 올려 놓았던 사진 감광지에 우라늄 광물의 자국이 찍힌 것을 보고 우라늄에서 X-선과 비슷한 광선이 나온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베크렐 선이라고 불렀다. 베크렐이 그 원리의 해명을 대학원생 마리 퀴리에게 맡겼고 마리 퀴리는 마리는 남편 피에르의 도움으로 베크렐선의 세기는 우라늄 원소의 함량에 비례하고 우라늄의 물리적 화학적 상태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마리는 자신의 박사 논문 <베크렐선의 해명>에서 방사선은 원자 내부에서 베크렐 선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라늄뿐만 아니라 토륨이라는 물질에서도 베크렐선과 비슷하지만 훨씬 세기가 강한 광선이 방출됨을 발견하여 이를 방사선 또는 방사능(radioactivity)라고 명명한다. 이에 우라늄 토륨 이외에도 방사능 물질이 있을 거라 추측하고 찾던 중 우라늄보다 330배다 강한 방사능을 내는 물질을 찾아내고 인류가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원소임을 직감한다. 자신의 조국 이름을 따서 폴로늄이라 이름 붙였다. 퀴리 부부는 연이어서 라듐까지 발견하여 제 3회 노벨 물리학상을 스승 베크렐과 함께 공동 수상하였다. 후에 마리 퀴리는 라듐 염화물에서 순수한 라듐 금속을 얻어내는 실험 방법이 갖는 가치를 인정받아 11회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로써 마리는 최초의 여성 노벨 수상자에 이어 최초의 2회 수상자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로렌츠 변환

네덜란드의 수학자겸 물리학자 헨드릭 안톤 로렌츠가 전자기학과 고전역학 간의 모순을 해결해 낸, 맥스웰 방정식을 보존하는 변환식을 발견했다. 로렌츠는 허황된 에테르 가설을 믿었고,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에 이르러 로렌츠 변환 식의 의미가 재해석 되었다.

로렌츠의 주요한 목표는 전기·자기·빛의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전자기 복사는 전하의 진동에 의해 생겨나지만 빛을 내는 전하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훗날 로렌츠는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원자도 하전 입자로 구성되어 있을지 모르며, 원자 안에 있는 이 하전 입자들의 진동이 빛의 원천일 것이라고 가정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한 자기장은 반드시 진동에 영향을 미칠 것이고 따라서 생겨나는 빛의 파장에도 영향을 미쳐야 했다. 1896년 그의 제자였던 제만이 '제만 효과'로 알려진 이 현상을 증명해 1902년 그들은 이 연구로 노벨상을 받았다.



제만 효과

광원을 강력한 자기장 안에 두고, 거기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했을 때, 관측되는 스펙트럼선이 여러 개로 갈라지는 현상이다. 이 스펙트럼선의 개수에 따라 정상 제만 효과와 이상 제만 효과로 나눌 수 있으며, 정상 제만 효과는 스승인 로렌츠의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었으나 이상 제만 효과는 후에 양자 역학이 확립된 후에야 전자의 스핀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졌다. 분자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 볼 수 있게끔 한 기술 핵자기공명(NMR)의 이론적 바탕이 된 이론이다.



밀리컨의 기름 방울 실험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910년을 전후해서 물리학계에서는 자연에 존재하는 최소 전하량의 존재를 둘러싸고 두 물리학자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 이후 여기에 참가했던 두 물리학자들은 과학계에서 서로 다른 운명의 길을 가게 되었다. 이 논쟁에 참가했던 두 논객 중 한 사람은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측정한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으나, 다른 한 사람은 전자의 최소 전하량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정신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밀리컨이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측정하는 실험을 계속 개량하고 있는 동안 유럽 대륙에서도 이와 유사한 실험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곧 전자의 기본 전하량의 존재 유무를 놓고 밀리컨과 평생 동안 논쟁을 하게 되는 펠릭스 에렌하프트였다. 에렌하프트는 밀리컨에 비해 11살 아래의 젊은 과학자였지만, 적어도 과학적 연구 경력과 명성에 있어서는 밀리컨에 비해 훨씬 앞선 인물이었다.

밀리컨이 물방울을 이용하여 기본 전하량을 측정해서 이를 발표한 것을 본 에렌하프트는 1910년 4월 갑자기 자신이 전자의 전하량보다 더 작은 전하량을 얻었다고 발표했다. 1910년 5월 12일 에렌하프트는 빈 아카데미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전자 이하의 하전입자'(subelectron)하는 단어를 만들어냈는데, 이 논문에서 그는 자연계에서 나누어지지 않는 전하량은 1× 10-10(esu) 혹은 그 이상의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그는 금 입자의 전체 전하량이 5×10-11에서 1.75×10-10에 이르기까지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에렌하프트와 그의 학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자의 절반, 50분의 1, 100분의 1, 심지어는 1000분의 1의 양까지 발견했다. 에렌하프트가 이렇게 전자의 기본 전하량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 이면에는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에른스트 마흐(Ernst Mach)를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었던 반원자론적 분위기가 부분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었다. 경험비판론이라는 상대주의적 지식관을 주장했던 마흐는 죽을 때까지 원자의 존재를 부정했다.


에렌하프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밀리컨은 전자의 기본 전하량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 개선해나갔다. 이미 밀리컨은 1909년 가을부터 1910년 봄 사이에 물이나 알코올 이외에 기름방울에 의한 전하량 측정 실험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동차 엔진오일로 사용되는 기름은 상대적으로 휘발성이 낮기 때문에 기름 방울이 오르내리는 것을 30분에서 4시간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측정할 수 있었다. 물 이외에 기름 방울을 선택한 것은 밀리컨이 기본전하량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다.

많은 오차 요소를 제거해나간 끝에 마침내 1913년 6월 2일 밀리컨은 4년에 걸친 그의 실험의 결과를 『피지컬 리뷰』에 발표했다. 당시에 그가 발표했던 기본하전량은 4.774 ± .009 × 10-10(esu)였다. 밀리컨은 자신이 얻은 값을 페랭(Jean Baptiste Perrin) 등이 브라운 운동을 이용해서 얻은 값, 플랑크의 열복사 이론에서 얻은 값, 레게너가 방사선 방법으로 얻은 값과 비교해서 이들의 평균값이 기름 방울 방법에 의해 얻은 값의 오차의 한계 내에 있음을 보였다. 더 나아가 밀리컨은 전자의 기본 전하량이 정확하게 측정됨으로써 분자의 기체상수,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물리학에 기본이 되는 여러 기초 상수들도 새롭게 계산될 수 있었다.


유적 실험이 마무리되는 동안 밀리컨은 그 동안 자신이 미루어 놓았던 광전 효과에 관한 실험에 새롭게 착수하였다. 광전효과에 관한 실험은 밀리컨이 이미 1906년부터 하던 실험이었는데, 당시에 그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관한 논문도 알지 못했으며, 실험 자체도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1912년 이제는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대한 논문을 알게된 밀리컨은 광전 효과에 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재개했다. 당시까지 입사선의 진동수와 광전자의 속도와 관련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의 유효성을 실험적으로 정확하게 입증한 사람은 아직 없었다. 오히려 1914년 독일의 람사우어(Carl Ramsauer)가 측정한 실험에 의하면 입자 진동수에 따르는 광전자의 최대 에너지가 존재하지 않고, 속도 분포도 입사광의 파장과는 독립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1915년까지의 주의 깊은 실험을 통해서 밀리컨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의 유효성을 실험적으로 분명하게 입증해낼 수 있었다. 그는 입사광의 진동수와 퍼텐셜 에너지 사이에 선형적 관계가 있음을 분명하게 그래프를 통해 보여주었으며, 이 선의 기울기가 플랑크 상수를 전자의 전하량과 나눈 값이라는 것도 확인함으로써 플랑크 상수를 아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나타내는 다양한 모습을 다각도로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 자체는 믿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빛의 파동론을 옹호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그는 아인슈타인의 광양자 가설은 배제한 채로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에 관한 방정식만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던 것이다.

밀리컨은 과학 발전에 있어서 혁명적인 변화보다는 점진적인 개선을 더욱 중요시하는 보수적 유형의 물리학자였다. 그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과 같은 혁명적 이론이 출현하는 것을 과학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로 본 것이 아니라, 실험 장치를 개선하고 물리량을 될 수 있으면 정확하게 측정하는 과정이 곧 과학 발전에 가장 핵심적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광양자론을 부정하면서 광양자 방정식은 입증하기도 했다. 우주선(cosmic ray) 연구에 관한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시켜 양전자를 발견한 칼 앤더슨을 길러내기도 하였다.



에디슨 효과

700 ~ 2700℃로 가열된 금속이나 금속산화물 반도체 표면에서 전자가 방출되는 현상이다. 열에 의해 에너지를 얻은 전자가 전자를 속박하는 정전기력을 이겨내어 분리되어 고체 표면에서 튀어나오는 것으로 진공관, 방전관 등에 응용된다. 어떤 금속에서 전자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최소한 일 함수(속박에너지)만큼의 에너지가 가해져야 한다. 넓은 의미의 에디슨 효과는 열전자 방출을 뜻한다. 가열에 의해 금속표면을 이탈한 전자는 (-)전하를 띠므로 나머지 한 극에 (+)극을 연결하면 전기력에 의해 이동하게 된다. 그러나 (-)극을 연결하면 같은 극이므로 척력이 작용해 전자가 이동하지 않고 전류가 흐르지 않게 된다.

플레밍은 에디슨 효과를 이용하여 진공관을 개발하여 다이오드를 만들어 무선전신의 검파에 이용했다. 1906년에는 미국의 드 포리스트가 2극진공관에 다른 전극을 넣어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여 증폭작용을 하게 했으며, 이를 보완한 4극관 5극관 등이 만들어지게 된다. 오웬 윌란스 리차드슨(Owen Willans Richardson)은 열전자방출에 관한 연구로 1928년 노벨상을 받았다.



리처드슨의 법칙

금속에는 자유전자 즉, 금속 내에 비교적 속박 없이 움직이는 전자들이 있다. 이 자유전자의 속력은 일정하지 않고 통계분포를 따른다. 한 전자가 금속 표면에서 튀어나올 때 필요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일함수(work function)라고 한다. 이 일함수는 금속의 특성이며 수 일렉트론볼트이다(eV: 전자가 1볼트의 전위차를 지날 때 얻는 에너지).



그리드

한 번에 한 곳만 연결할 수 있는 기존의 월드와이드웹(WWW)과 달리 동시에 여러 곳과 연결해 마치 신경조직처럼 작동하는 인터넷망(網) 구조를 말한다.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포스터(Ian Foster) 교수가 창시하였고, 1998년부터 구축계획에 들어갔다. '그리드'는 진공관의 음극과 양극의 중간에서 전류의 흐름을 통제하는 '격자(格子)'에서 유래한 용어로, 기존의 웹과 차세대 인터넷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뜻으로 이런 이름을 붙였다. 적게는 수십 대에서 많게는 수백만 대의 퍼스널컴퓨터(PC)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어 제어할 수 있어 가상 슈퍼컴퓨터로도 불린다. 인터넷은 이용자가 모든 정보를 담은 서버에서 필요한 정보를 얻는 수직 구조인 반면, 그리드는 동시에 여러 사이트와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수평 구조로 되어 있다. 즉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의 컴퓨터와 연결해 동시에 같은 연구를 수행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찾은 자료를 여러 사람이 동시에 보면서 서로 의견을 나눌 수도 있다. 나아가 한 대의 컴퓨터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컴퓨터를 원격 조정해 복잡한 계산을 나누어 시킨 뒤 이들을 다시 하나로 합칠 수도 있다. 또 슈퍼컴퓨터처럼 고속연산과 많은 양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해 정보기술(IT)·나노기술(NT)·생명과학(IS) 등 다양한 분야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로 평가 받는다.



백열전구

진공 속에서 금속을 가열하면 전자가 방출되고 필라멘트 주위에서 무리 지어 존재하게 된다. 필라멘트가 녹는 것을 방지하고, 진공관 내부가 고온을 유지하게끔, 기체를 넣어 주어야 하는데 공기를 넣으면 필라멘트가 산화되는 문제점이 있어서 아르곤과 질소의 혼합 기체를 넣어준다. 단 고열에 의해 팽창과 수축을 크게 하는 것을 감안하여 저온에서 0.8기압을 유지하게끔 넣어준다.




2극 진공관 에디슨 효과를 이용하여 플레밍이 만든 진공관. 정류 작업이 가능하여 교류를 직류로 바꿀 수 있고 원론적인 다이오드이다.



3극 진공관(Audion) 리 드 포레스트가 플레밍 진공관을 개선하여 그리드를 첨가한 진공관 RF파를 검출하여 본격적인 라디오와 TV의 시대를 여는 직접적인 촉발이 되었다.



컴퓨터의 시작

1835년 영국의 찰스 베비지는 고속의 연산 기계를 설계한다.


1933년 미국의 뉴딜 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은 방대한 규모의 통계적 연산을 필요로 했다. 그때까지 IBM의 전신 CTR사는 타자기 제조 업체에 지나지 않았다. CTR은 펀치 카드를 이용한 테뷸레이팅 머신을 개발하여 미국 연방 인구 센서스국에 납품하였다. 8년에 걸쳐 분석되던 통계처리 수개월 만에 마무리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최초의 입출력 프로세싱이 이룬 쾌거였다. 그 후 100년에 걸친 컴퓨팅 산업의 중심에 IBM이 서게 되는 사건이기도 했다. 당시에 IBM의 테뷸레이팅 머신은 사람들 사이에 슈퍼 컴퓨터라고 불렸을 정도였다. (1950년대부터 메인 프레임 분야를 독식하던 IBM은 1981년 PC의 시대를 연다.  IBM은 1990년 IT 서비스 회사로 변신을 하고 PC 사업부를 중국에 팔았다.)


1941년 IBM의 자금 지원을 등에 업은 콘라드 추제(독)가 기계식이지만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고 실제로 작동하는 컴퓨터 Z3를 소개한다.


1942년 아이오와 대학의 아나타소프 교수와 제자 베리는 진공관을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를 소개했다. 계산과 메모리가 분리되어 있었으며 단일 목적을 위한 단일 계산에만 쓰이는 10진법 연산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은 불가능했다. 뒤이어 나온 영국의 콜러서스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최초의 진공관 컴퓨터가 되었다.



애니악의 의미

본격적인 전자 컴퓨터 시대를 연 컴퓨터는 누가 뭐래도 1946년에 선을 보인 애니악이다. 애커트와 모클리에 의해 개발된 애니악은 단연 세계 최대였으며 최고였다. 2만개에 가까운 진공관이 사용되었고 27톤이나 나갔으며 1초에 17만J의 에너지를 먹어 치우며 1초에 5000번의 덧셈을 할 수 있었다. 미분과 적분을 덧셈과 뺄셈으로 해내는 괴물이었다. 노련한 수학자들이 20여 시간 매달려야 해결했던 미사일의 탄도 계산을 30초 만에 끝내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애니악 이전에도 수 많은 컴퓨터가 있었지만 가공할만한 속도의 계산력은 불가능으로 여겨졌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것은 애니악이 처음이었다.

이렇게 애니악의 등장은 현대 컴퓨터사에 있어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 일대의 사건이었다.

탄도 계산 이외에도 애니악은 날씨 예측 수소 폭탄의 제조, 우주선(cosmic ray) 등 여러 계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도시의 전력 사용량과 맞먹는 에너지 식성, 수명이 짧고 고장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진공관 문제, 잦은 고장과 유지 보수 문제, 수 주에서 수 개월까지 걸리는 리프로그래밍 문제, 10진법 연산 등 많은 문제점을 숙제로 남기고 1955년 벼락 맞아 죽는다.



현대적 의미의 컴퓨터

앨런 튜링은 컴퓨터 연산 방식으로 2진법을 주장했고 폰 노이만은 프로그램 내장형 방식을 제안했다. 현대의 모든 컴퓨터는 아직까지 2진법과 프로그램 내장 방식을 쓰고 있기 때문에 현대적 컴퓨터의 특징은 언제나 2진법과 프로그램 내장 방식이 꼽힌다.

특히 폰 노이만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애니악의 문제점을 개선코자 애니악 개발자들과 함께 2진법과 프로그램 내장형 컴퓨터인 EDVAC을 기획한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실험 수학자 윌크스는 EDVAC 보고서 초안을 읽고 자신이 만들고자 했던 컴퓨터에 폰 노이만 방식을 적용한다. 윌크스의 컴퓨터 EDSAC이 EDVAC보다 3개월 정도 먼저 개발되었기 때문에 현대적 의미의 최초의 컴퓨터라는 영예는 EDSAC이 차지 하지만 프로그램 내장형을 제안한 사람이 폰 노이만인 점을 감안한다면 폰 노이만이 애커트, 머클리와 함께 에니악을 개선한 EDVAC을 현대 컴퓨터의 시조로 보아도 무방하다.


초기의 진공관 컴퓨터들은 탄도 미사일의 궤적 계산이나 암호 해석과 같은 군사적 요구로부터 개발되었고 국방성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지만 애니악은 군사적 목적 말고도 다른 용도로 많이 쓰였다. 최초의 다목적 컴퓨터나 범용으로 쓰인 컴퓨터는 애니악일지 모르지만 범용 또는 상업용으로 처음부터 개발되고 공장에서 양산이 된 최초의 컴퓨터는 UNIVAC(1951)이 최초이다. 특히 UNIVAC은 195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예측을 CBS와 상반되게 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물론 선거 결과는 UNIVAC의 예상대로 아이젠하워의 압승으로 끝났다.



벨 랩의 3총사

기업가 정신의 총 본산이자 벤처 기업 경의 모델로 여겨지는 곳, 모든 공학도들에게 꿈과 현실을 이어주는 곳, 많은 투자자들에게 대박과 쪽박을 모두 안겨 주는 곳이 캘리포니아 남부 뜨거운 태양 아래에 있다. 그 곳은 땅바닥에 2번째로 많은 원소 실리콘 밸리라고 불린다.

빌 게이츠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가장 가 보고 싶은 순간이 1947년 12월 23일이라고 한다. 에디슨 효과에서 시작된 진공관 문명이 고체 반도체 문명으로 쉬프트 되는 순간이어서 그렇다고 한다.

1947년 12월 23일 벨 연구소의 윌리엄 쇼클리, 윌터 브래튼, 존 바딘 3명은 포레스트가 만든 3극 진공관이 아닌 고체 물질을 통해 100배나 커진 ‘Hello’를 회사 중역들에게 들려 주었다. 연구소 소장은 그 고체 물질을 반도체 또는 트랜지스터라고 불렀다.

진공관은 인류에게 전자를 알려주었고 인류는 진공관을 통해서 전자를 제어했다. 그것이 2극 진공관 3극 진공관이었다. 하지만 진공관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덩치와 부담을 주기에 충분한 전기 에너지 식성, 그러면서 ‘톡하고 건들면 깨질 것만 같은 그대’였다. 인류에게 큰 선물을 주기는 했지만 차가운 외면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 당시 과학자들 사이에는 유리와 같은 부도체적 특성과 구리와 같은 도체적 특성을 모두 가진 물질을 찾기만 하면 전기와 자기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팽배해 있었다. 또한 이런 믿음을 가장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던 사람이 윌리엄 쇼클리였다.

벨 연구소의 모기업이자 미국 최대의 통신 회사인 AT&T사는 이러한 반도체의 출현에 목말라 하고 있었고 반도체라는 신소재 개발을 위해 최고의 고체 물리학자 3명을 묶는다. 그들은 회사의 기대에 부응했으며 노벨 물리학상까지 수상했다.


사실 크리스마스 전전 날 회사 중역들이 반도체를 통하여 증폭된 소리를 들을 때 윌리엄 쇼클리는 없었다. 최초의 반도체는 우정이 돈독한 브래튼과 바딘의 연구 결과였고 그 둘 만이 개발자로 언급되었다. 하지만 셋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쇼클리는 일주일 만에 브래튼과 바딘의 반도체가 갖는 문제점을 완전히 해결한 샌드위치형 반도체를 만들어내고 뉴스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회사에서 반도체 개발팀은 3명이었고 동급의 대우를 해주었으나 이에 불만을 가진 쇼클리는 나머지 2 사람을 배격한다. 신사 브래튼마저 그 후 평생 쇼클리를 보지 않았을 정도로 쇼클리의 악행은 저질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바딘은 초전도체 분야로 관심 분야를 바꾸어 후에 다시 한번 노벨상을 수상한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졌다.  


고위 관리직으로 승진시켜주지 않은 회사의 대우에 불만이었던 쇼클리는 회사를 떠날 것을 결심하지만 어떠한 회사도 그의 성에 차지 않았다. 쇼클리는 투자를 받아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로 마음을 정했다. 쇼클리가 세운 회사의 주소는 캘리포니아 주 산 안토니오 391번지 살구 저장 창고였다. 현재 그곳에는 실리콘 밸리가 시작된 곳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8인의 배신자와 실리콘 밸리

회사를 차린 쇼클리는 젊고 유망한 과학자들을 모았다. 그 중에는 인텔의 창립자인 로버트 노이스, 고든 무어도 끼어 있었다.

쇼클리의 괴팍한 성격과 게르마늄 고집에 불만을 품은 8명은 반란을 시도한다. 투자자(엔젤)에게 쇼클리의 경영권 제한을 요구했다. 하지만 투자자는 쇼클리의 손을 들어 주었다. 고립된 8명은 회사를 나와 페어차일드 그룹의 지원을 받아 페어차일드 반도체란 이름의 회사를 차린다. 그리고 8인의 배신자들은 실리콘 소재를 사용한 트랜지스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한다. 이는 그 동안 불가능했던 트랜지스터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졌음을 의미하였고 8인의 배신자가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가졌음을 증명해주는 사건이었다. 그 후 페어차일드는 시대의 기술 선도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페어차일드 그룹은 8인의 멤버들을 제대로 대우해주지도 않았고 회사 본사 사람들을 낙하산식으로 페어차일드 반도체에 보냈다. 이에 불만을 느낀 8인의 배신자들은 하나 둘씩 회사를 그만두었다. 멤버중 리더 역할을 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만이 최후까지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을 했다. 하지만 페어차일든 본사에서 보낸 사장과의 불화가 커지면서 로버트 노이스는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한다. 회사를 그만둔 로버트 노이스는 고든 무어에게 함께 회사를 창업하자고 제안한다. 원래부터 단짝 사이였던 고든 무어는 로버트 노이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페어차일드 그룹과 연결시켜준 뉴욕의 금융가인 아서 록에게 투자자를 모집해달라고 부탁한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무어가 새로운 사업을 한다고 하자 미국 전역에서 투자자들이 줄을 섰다. 당사자만 몰랐을 뿐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는 그 동안의 여러 실적 덕분에 반도체 분야에서 슈퍼스타와 같은 존재였다. 둘이 작성한 사업 계획서라고 해봐야 냅킨에 적어둔 메모밖에 없음에도 불과하고 단 하루 만에 250만 달러나 되는 돈을 투자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무어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자 언론에 대서특필될 정도로 그 둘은 업계에서는 유명인사였다.

처음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무어는 회사이름을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노이스-무어 일렉트로닉스(Noyce-Moore Electronics)로 정했다. 하지만 노이즈가 많다(Noise Moore)라는 소리로 들린다는 의견에 따라서 통합을 뜻하는 Integrate와 전자를 의미하는 Electronics 두 단어를 조합해서 회사이름을 인텔(INTEL)이라고 결정한다. 인텔의 첫번째 직원은 앤디 그로브이다. 앤디 그로브는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출중한 실력으로 명성을 드높였던 직원이었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그리고 앤디 그로브는 완벽한 삼두체제를 이루며 인텔의 성공을 이끌었다. 로버트 노이스는 하나의 기판에 여러 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최고의 권위자였다. 그는 이런 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지금까지 없었던 제품을 개발하려 했다. 이러한 고민 끝에 등장한 제품이 바로 메모리이다. 로버트 노이스가 인텔이 만들어야 할 제품에 대한 비전을 제시했다면 실제의 시제품으로 만드는 과정에는 고든 무어가 있었다. 로버트 노이스가 설계도를 그렸다면 이를 구현한 건 고든 무어였던 것이다.

우리가 CPU 전문 회사로 알고 있는 인텔이지만 사실 인텔의 시작은 메모리회사였다. 그런데 메모리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대량생산이었다. 시제품을 만들었지만 대량 생산 과정에서 번번히 좌절되었다. 이때 활약한 사람이 바로 앤디 그로브였다. 1969년 첫 번째 메모리가 개발됐지만 실제 대량생산에 들어간 것은 1970년이었다. 앤디 그로브는 공장의 모든 설비를 직접 세팅하였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뽑고 교육을 시켰다. 초기 메모리의 양산율은 10% 밖에 안되었다. 10개를 만들면 9개가 불량품이었는데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서 앤디그로브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나중에는 성공률을 50%로 끌어 올렸다. 이 과정에서 앤디 그로브는 먼지가 반도체 생산에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미세 먼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진복을 최초로 고안한다. 인텔의 광고를 보면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춤을 추는데 이와 같이 방진복은 어느덧 인텔의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보통 인텔의 창업자를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로 알고 있지만 앤디 그로브 역시 창업자 대우를 해준다. 앤디 그로브는 그 자신 스스로 창업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만약 자신을 제외하고 창업자를 이야기하면 화를 낼 정도다.

로버트 노이스와 고든 무어 그리고 앤디 그로브의 활약 덕분에 인텔은 주식시장에 상장된 후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면서 벤처 신화를 완성한다. 인텔이 실리콘 밸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실리콘 밸리라는 단어 자체가 사실은 8인의 배신자들을 취재하던 돈 회플러가 탄생시킨 말이다.



CPU에 대하여

ALU CU Register로 이루어진 CPU 코어는 그 자체로 사용이 불가능하여 여러 개의 핀과 캐시 메모리, 버스 등을 연결하여 사용한다. 하나의 CPU에 코어가 여러 개 있으면 멀티 코어, 마더보드에 여러 개의 CPU가 연결되어 하나의 메모리를 공유하고 있으면 멀티 CPU, 멀티 프로세싱이라고 한다.

00011100과 01110000은 모두 8bit이지만 다른 전기 신호이다. 01110은 5bit 크기의 전기 신호이다. 이런 전기 신호를 1초 동안 처리할 수 있는 양으로 CPU의 성능을 표시하는 데 클럭 수라고 부르며 단위는 Hz를 사용한다.  

소위 메인 프레임이라고 불리는 중대형 컴퓨터는 개인용 컴퓨터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CPU를 사용한다. 개인용 컴퓨터가 복잡하고 긴 문장의 명령어를 사용하는 CISC 방식이라면 IBM이 선도하는 중대형 컴퓨터에서나 공학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워크스테이션에서는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의 명령어를 사용하는 RISC 방식으로 설계된다.

인텔의 CPU는 상품명 8086이 IBM의 5150에 들어가면서부터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다. 오픈 플랫폼을 선택한 IBM이 개인용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IBM이 열어 젖힌 8bit 시장을 넘어 인텔은 16비트 시장을 주도했다. 그때부터 AT 또는 286 컴퓨터라는 말이 쓰였으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컴퓨터 형태였다.

32비트 연산이 가능해지면서 386이라고 불렸으며 RISC 방식을 흉내내면서 연산 속도가 빨라져 486이라고 불렸다.

펜티엄은 일종의 586 이라고 부르던 CPU를 말한다. 586이라 부르지 않고 Pentium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미국 정부에서는 이름이 숫자로 된 물건에는 이름에 대한 저작권을 부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Intel의 경쟁사들이 똑같이 386, 486이라는 이름을 달고 CPU를 생산하고 있었다.

소비자는 혼란스러워지고 Intel의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이름을 펜티엄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펜티엄(Pentium)은 현재까지도 많은 PC에 사용되고 있는 CPU로, 75MHz∼200MHz라는 높은 동작 클록을 갖추었고, L1·L2 캐시의 확장을 통해 상당한 속도 향상을 가져왔다.

그 후로 멀티 미디어 기능을 강화한 펜티엄 MMX, 소켓 방식에서 슬롯 방식으로 메인보드에 장착되는 펜티엄2, 다시 소켓으로 돌아온 펜티엄3, 하나의 코어에 가상의 코어를 덧붙여 속도를 향상시키는 하이퍼 쓰레딩 기법이 사용되었으나 메인보드가 받쳐 주지 않아서 엄청난 실망감만 안겨준 프레스캇, 싱글 코어로는 최고의 완성도를 보여주는 노스우드로 대변되는 펜티엄4로 싱글 코어의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인텔 사는 클럭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하다고 여기고 하나의 물리적 CPU에 2개의 연산 장치를 얹어 놓는 듀얼 코어를 시장에 내놓았지만 캐시 메모리를 각각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성능 향상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채 시장의 냉담한 반응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 후 2개의 코어가 캐시 메모리를 공유하는 코어2듀오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멀티 코어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인텔에게 숙명의 라이벌인 AMD의 탄생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사람은 다름이 아닌 인텔의 창업자 로버트 노이스였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독립한 제리 샌더스와 동료들은 AMD를 창업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하지만 인텔과 다르게 투자를 받지 못했다. 이에 안타까움을 느낀 로버트 노이스는 전 직장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일부러 AMD에 자금을 투자한다. 업계의 슈퍼스타인 로버트 노이스가 투자를 한다고 하자 이 소식이 빠르게 외부에 알려졌고 덕분에 AMD는 쉽게 창업자금을 투자 받을 수 있게 된다.



PC의 시대

1981년 8월12일 출시된 IBM '5150'을 출발점으로 삼는 PC의 역사는 사실 적잖은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IBM 모델이 나오기 전에도 PC란 꼬리표를 달고 출시된 제품들이 많기 때문인데 1975년 출시된 MIT의 알테어, 1977년 애플사의 '애플 2' 등이 모두 '집에서 쓰는 작은 컴퓨터'란 이념을 구현한 초창기 PC '전도사'였었다.

그러나 IBM 5150이 진정한 원조 PC라는 것은 시간적 최초를 의미하지만은 않는다. 본체 기술을 개방해 다른 경쟁업체도 유사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오픈 플랫폼' 제도를 채택, PC를 대중화시킨 첫 모델이란 점 때문에 첫 개인용 컴퓨터라고 사람들 사이에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5150 이후 IBM PC는 독점 체제를 고집하던 '애플' 등 라이벌 컴퓨터를 제치고 빠르게 세계 시장을 장악, 결국 PC를 'IBM 방식의 컴퓨터'와 동의어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세계 최대 PC 업체 델(Dell)의 창업자 마이클 델은 최근 인터뷰에서 "IBM PC의 오픈 플랫폼 정책은 컴퓨터의 진화과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업계 생태계(ecosystem)'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5150 모델은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를 일으켜 세운 '행운의 여신'이기도 했다.

이 제품에 넣을 운영체제(OS)를 급히 찾던 IBM 개발진이 당시 대학을 중퇴한 컴퓨터 매니아에 불과했던 빌 게이츠를 만나 며칠 안에 OS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을 했다. 게이츠는 OS 'MS-도스 1.0'을 건네면서 이 소프트웨어의 라이센스 권한을 차지했고 이후 IBM PC가 대박을 터뜨리자 막대한 라이센스 수입을 벌어들이며 '마이크로소프트 신화'의 기틀을 쌓았다. OS 권한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IBM으로는 두고두고 땅을 칠 후회거리가 된 셈이다.

5150 모델은 지금 데스크톱 PC의 기본 틀을 세운 제품이다. 본체만 있어 TV나 모니터에 따로 연결해야 했던 예전 PC들과 달리 본체, 키보드, 모니터가 한 데 묶인 구조였고 외부 저장 장치로는 5.25인치 플로피디스크 드라이브를 썼다.



MS의 독과점

컴퓨터 시장이 침체기를 걷고 있던 1992년, 일리노이 대학 내 설치된 미국 슈퍼컴퓨터 연구소(NCSA)에서 아르파이트를 하던 마크 안드리슨이 만든 최초의 웹 브라우저 명칭은 모자이크였고 모자이크가 제공되자 웹이 폭발적으로 시장의 활기를 불어 넣었다. 팽 당한 안드리슨은 NCSA에서 퇴사한 후 새로운 브라우저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새로 만든 회사의 이름인 Netscape는 Internet과 Virtual landscape를 합쳐서 만든 이름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넷스케이프의 첫 이름은 모질라(mozilla)였는데, 모질라는 고질라와 모자이크를 합친 단어로 모자이크 킬러를 의미한다고 한다.

1994년 10월 넷스케이프가 웹을 통해 무료로 배포되었다. 모자이크를 추월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사용자 수는 곧바로 200만 명을 넘어갔으며 95년이 되자 1000만 명이 되었다. 주식공개로 모두 부자가 된 후 1년여 동안 넷스케이프는 인터넷을 지배했다. MS가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들기 전까지 31달러로 시작된 넷스케이프의 주식은 174달러에 이르렀고 시장점유율은 80%대에 이르게 되었다.

익스플로러는 애초에 모자이크의 코드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안드리슨의 소스코드는 다시 만들어져 넷스케이프에서 사용되고 개작되긴 했지만 익스플로러에서도 사용된 것이다. MS는 워낙 급하게 브라우저 시장에 뛰어든 것이기에 새로운 기술 유전자를 만들어낼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MS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하자 브라우저 시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만약 넷스케이프의 독주를 허용한다면 이 작은 애플리케이션이 하나의 운영체제처럼 변할 수도 있고 MS의 영향력은 점차 줄어들 것이 분명했다. 넷스케이프의 네비게이터에 대한 준비의 일환으로 MS는 NCSA와 모자이크를 기본으로 한 웹 브라우저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넷스케이프에 대항하기로 했다. 1995년이 되자 인터넷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중요한 목표가 되고 말았다. 회사의 최우선 전략을 인터넷으로 선정하고, 윈도우 95의 발표가 있은 지 몇 주 후 MS 익스플로러가 발표되었다. 그해 말 빌게이츠는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개선이 MS의 핵심 사업이며 이를 무상으로 배포하겠다고 선언했다.

1995년 말 빌 게이츠의 선언이 있고 나서 넷스케이프의 주가는 폭락했다.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높았으나 넷스케이프 사용자보다 많은 윈도우 95의 사용자들이 이미 있었고, 이들 중 많은 수기 무상의 익스플로러를 사용할 것은 분명했다. MS는 넷스케이프를 고사시키는 작업을 병행했다. 컴팩이나 HP나 AOL에 압력을 행사해 기본 브라우저로 넷츠케이프가 탑재되는 것을 방해했다. 일부 회사들에게는 익스플로러 채택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1998년이 되자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는 익스플로러에게 시장점유율을 추월 당했다. 결국 그해에 넷스케이프는 프로그래밍 소스를 공개하면서 손을 놓아야 했다. 코드명은 다시 모질라(Mozilla)로 되돌아갔다. 넷스케이프는 코드가 퇴물이 되어 완전히 가치를 상실하기 전에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긴급한 결정을 내렸다.

1년도 안 된 브라우저 업체를 상대로 벌인 MS의 가혹한 탄압은 훗날 다른 업체가 중요한 아이템을 선점했을 때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를 미리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중요한 경쟁자를 몇 번만 처리하고 나면 시장의 지배는 확실시될 수밖에 없다. 나중에 MS는 법무부에 기소되었는데 중요한 혐의점은 다른 기업을 희생시킬 목적으로(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이루어진 정책, 번들링, 배타적인 계약 체결의 강요 등이었다. 수천 명의 변호사가 동원되고 관련 서류의 양도 엄청난 분량이었으나 기소는 MS에 그다지 큰 손실을 주지 않은 상태로 끝나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 이후부터 암묵적으로 MS의 익스플로러를 이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웹에 대한 거의 모든 무의식과 문화는 MS가 강요하지 않더라도 익스플로러의 창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분간 이보다 큰 싸움은 없을 것이다.




카피레프트

1980년 MIT 공대의 인공 지능 연구소 팀원들은 제록스사에 자신들이 쓰는 프린터기의 소스 코드를 요구했다. 여러 컴퓨터와 연결되어 있던 프린터기에 종이가 맞물려 들어가면 어떤 단말기의 인쇄 작업이었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프린터의 명령어를 몇 개 수정 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요구는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리처드 스톨만은 소스 코드 공유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빌 게이츠가 DOS의 라이선스 권한으로 본격적인 카피 라이트의 기지개를 펼 때쯤에 스톨만은 유닉스의 상용화에 반대하며 자유 소프트 웨어 재단을 설립하고 GNU 라는 캐치 프래이즈를 내건다. 1991년 리누즈 토팔즈라는 핀란드 청년이 이 운동에 큰 힘을 불어 넣는 짓거리를 하게 된다. 분산형 컴퓨팅의 혁신을 가져올 OS를 개발하고 소스를 공개한 것이다. 오픈 소스 운동은 불길처럼 번져서 오늘날 리눅스 사용자는 수천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맞춤형 소프트 웨어가 힘들고 사후 관리 업데이트 비용이 상용 소프트웨어보다 비싸다는 점이 단점으로 좀 더 많은 사용자들이 이 운동에 참여를 머뭇거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

클라우드는 인터넷 기반이라는 뜻이다. 컴퓨팅의 무게 중심이 인터넷으로 옮겨 가면서 PC에 대한 제약이 없어지고 있다.

굳이 PC에 소프트웨어를 저장해 두지 않아도 인터넷 상에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개인 저장 매체에는 기록을 남겨 두지 않기 때문에 보안성이 보장되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기업들이 선호하고 있다. PC라는 말은 사라지고 단말기라는 말만 남을 것이다. 어떤 PC어떤 프로그램을 CD로 구매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단말기(PC, 씬클라이언트, 노트북, 핸드폰, PDA, 네비게이션 등)에서 어떤 서비스를 받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비슷하게 들리는 그리드 컴퓨팅이란 컴퓨터 자원을 네트워크 상에서 어떻게 연결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면 클라우드 컴퓨팅이란 공장이 전기를 쓰기 위해 발전소를 따로 만들지 않고 전력 공사에게서 전기를 빌려 쓰듯이 IT를 위해 데이터베이스와 소프트 웨어를 구매하여 시스템화 하지 않고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빌려 쓴다는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구글의 앱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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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PPT 2012. 9. 30. 03:26

머니볼(Money Ball)

마이클 루이스 지음 / 윤동구 옮김 / 송재우 감수

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 419쪽 / 13,000원



▣ 저자   마이클 루이스

마이클 루이스는 월 스트리트의 이면을 그려낸 베스트셀러 『Liar's Poker』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CEO 빌리 빈의 이야기를 담은 『머니볼(Money Ball)』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2004년 출간된 『머니볼』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그 해 전미(全美)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물론 기업을 경영하는 CEO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 역자   윤동구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했다. 현재 여의도고 영어교사로 재직하면서 틈틈이 번역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악어 찰리와 마법의 잔』, 『감성지수』, 『타임베이스경영』, 『이카로스 패러독스』 외 다수가 있다.


▣ 감수   송재우

Xports 해설위원. 메이저리그에 관한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으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경기 해설을 계기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졌다.


▣ Short Summary

이 책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가난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팀과 이 팀의 운영을 맡고 있는 단장 빌리 빈, 그리고 그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경영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고 있다.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최고의 리그라는 자부심과 함께 오랜 노하우로 다져진 그들만의 경영전략과 선수수급의 철학이 있다. 빌리 빈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가 도전한 것은 이러한 낡아빠진 전통과 철학이었다. 태풍처럼 강력한 혁신적 방법으로 빌리 빈과 그의 팀은 풍부한 자금력으로 무장한 라이벌들을 무너뜨리면서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이라는 기적을 이루게 된다. 빌리 빈의 승리는 메이저리그라는 기업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들, 즉 숨겨진 인재를 찾아내는 데에도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하고 있다.


야구는 즐거움이지만 프로구단 운영은 철저한 사업이자 과학이다. 야구라는 분야를 지탱하는 수많은 숫자들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해석은, 그 어떤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성공은 새로운 것을 찾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성시킬 때 이룰 수 있음을, 빌리 빈과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 차례

감수의 글 - 한 권의 책에 담긴 수많은 교훈들

저자의 글 - 빌리 빈, 신화를 쓰는 사나이


제1장  길을 잃은 천재

제2장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라

제3장  깨달음

제4장  무지(無知)의 필드

제5장  제레미 브라운 스페셜

제6장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끄는 과학

제7장  지암비의 허점

제8장  스캇 해트버그의 부활

제9장  트레이드 테이블

제10장  투수 해부하기

제11장  인간적인 요소

제12장  아이디어의 속도


에필로그 - 오클랜드의 오소리 이야기

감사의 글


















머니볼(Money Ball)

마이클 루이스 지음 / 윤동구 옮김 / 송재우 감수

한스미디어 / 2006년 7월 / 419쪽 / 13,000원



1. 길을 잃은 천재


빌리 빈은 어렸을 적부터 운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이길 자신이 넘치는 아이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교 대표팀 투수로 등판했던 그는 2학년 때 미국 전역에서 가장 수준 높은 고교 리그에서 5할 대 타율을 올렸다. 3학년이 되어서는 키가 190cm를 넘어섰고 체중이 80kg을 넘어섰다. 야구의 파이브 툴(five tool : 스피드, 어깨, 수비, 정확도, 장타력)을 모두 갖춘 빌리는 나이 어린 선수들의 미래를 점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에게 한마디로 감동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가면 같은 것이었다. 모두 그의 천부적인 재능에만 관심을 쏟았고 경기가 부진할 때 나타나는 행동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것이다. 졸업반이 된 빌리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으면 무언가를 항상 부러뜨렸고 걸핏하면 화를 내곤 했다. 그는 실패를 싫어했지만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는 천재였던 것이다.  


1980년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시작되자 1라운드 전체 1차 지명권을 갖고 있는 뉴욕 메츠가 상상 이상의 관심을 빌리에게 표했다. 원하기만 하면 그를 데려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빌리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야구와 풋볼 모두에서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했다. 드래프트 날이 임박하자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빌리를 계약 불가능 선수로 분류했다. 프로에서 뛰지 않겠다는 철없는 고교생 하나를 잡기 위해 드래프트 첫 번째 선발권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욕 메츠의 수석 스카우터 로저 용게워드는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 해 여름 메츠 팀이 원정경기를 위해 빌리가 사는 샌디에이고에 도착했을 때 용게워드는 빌리를 메츠 팀의 클럽하우스에 데리고 갔다. 이곳에서 빌리는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선물로 받고 쟁쟁한 스타 선수들의 환대를 받았다. 그들은 팀이 빌리를 매우 필요로 하고 있으니 당장 빅 리그로 들어오라고 부추겼다. 빌리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곳은 신성한 곳이었다. 꿈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빌리는 12만5천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메츠에 입단하게 된다. 빌리는 시즌이 끝날 때를 이용하여 강의에 참석함으로써 학업을 지속할 생각이었지만 스탠포드 대학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더 이상 자기 대학의 선수로 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학을 거절하는 서신을 보내온 것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2.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라


2002년 여름 어느 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을 5년 째 맡고 있는 빌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카우터들과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이날은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를 일주일 남겨놓은 시점이었다. 드래프트가 팀의 장래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클랜드는 싼 노동력을 찾아내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대우에 있어서는 자유시장의 논리가 빅 리그만큼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에 한 명의 선수를 지명하고 계약까지 마친 구단은 그 선수에 대해 마이너리그 7년과 메이저리그 6년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소유할 수 있다. 즉 그 기간만큼은 선수가 가진 진정한 가치보다 훨씬 낮은 연봉으로 계약이 가능한 것이다. 오클랜드가 올해 배리 지토(2002년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투수)에게 50만 달러만 지급할 수 있었던 것도 1999년 드래프트에서 그를 지명한 덕택이었다. 다른 팀에 있었다면 지토는 1천만 달러를 받았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 회의에서 빌리는 제 2의 지토를 찾아내야 한다.  


스카우터들이 수집해 온 북미 지역 아마 야구 선수들의 명단은 680명 정도로 정리된다. 스카우터들은 명단을 놓고 한 명씩 탈락시키면서 스카우트 대상자를 압축한다. 책임자가 명단에 오른 한 신인 선수 이름을 거론하면 그 선수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스카우터들의 짤막하고 냉정한 평가가 이어지는 방식이다. 스카우터들은 반드시 피해야 할 선수들을 그들만의 언어로 표현하곤 했다. ‘돌머리’는 극복 가능한 결함을 의미하고, ‘연약하다'는 일말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실구조‘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는 표현인데 이들 중에는 전과자나 알코올 중독 또는 성격 장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그들은 부실구조가 아니더라도 고교생 선수이거나 예상가격이 높은 선수의 파일은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다.


3일째로 접어들면서 스카우터들은 신인 선수들의 명단을 판단이 확실해진 유망주 부류와 그렇지 않은 선수들로 구분했다. 이때부터 그들의 관심은 누구를 선발할 것인지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었다. 빌리가 1순위로 지명한 선수는 오하이오 출신의 중견수 닉 스위셔였다. 그는 스카우터들이 사랑하는 원초적 재능을 가진데다가 빌리가 중시하는 성적 통계도 뛰어났다. 아이러니한 것은 빌리 자신은 스위셔의 경기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자칫 빌리가 스위셔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 스위셔의 주가는 수직상승할 것이고, 이로 인해 오클랜드가 가진 드래프트 첫 번째 지명권이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빌리가 두 번째로 뽑은 선수는 세인트메리 대학의 3루수 마크 티헨이었다. 티헨은 타격자세는 좋지만 파워가 부족한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티헨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표명하자 빌리가 말했다. “좋은 타자가 파워를 가진 타자로 발전하기는 쉽지만, 힘있는 타자가 좋은 타자로 발전하기는 어렵지요.” 빌리를 보좌하는 폴이 컴퓨터에서 뽑아낸 티헨의 성적을 제시했다. “출루율 4할9푼3리, 장타율 6할2푼4리, 총 194번의 타석에서 30개의 4구를 얻었고 삼진은 17개에 불과합니다.” 스카우팅 총 책임자 에릭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제 2의 제임슨 지암비(2000년 아메리칸 리그 최우수 선수)를 찾는다면 이 친구가 해답이 될 것 같군.” 지암비는 오클랜드가 그를 드래프트한 다음부터 파워를 기르기 시작한 타자였다.


“이제 제레미 브라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스카우터들은 기가 막혔다.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모르던 마크 티헨이란 놈을 견뎌내고 나니 그보다 더한 작자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앨러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는 삼류 중의 삼류 선수였다. 스카우터들이 제레미의 뚱뚱한 몸매에 대해 불평하자 빌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뽑는 사람은 모델이 아닙니다. 제레미의 장점은 4구를 얻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입니다.” 폴이 앨라배마 대학 홈페이지를 보며 말했다. “지난 2년간 390타석에서 98개의 4구를 얻고 38개의 삼진을 당했는데 이는 마이너리그의 어떤 선수보다도 좋은 기록입니다. 21개의 홈런이 있고요.” 스카우터들과 빌리와의 논쟁에서 문제의 본질은 어떤 방식으로 유망주를 선발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빌리는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찾아내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폴의 컴퓨터를 통해서였다. 폴의 노트북은 유망한 선수들을 찾아내는 최고의 도구였다. 이곳에는 의미 있는 통계수치들이 가득했다. 통계수치들은 합리적이고 정확한 판단의 근거자료가 되었으며 현장을 중시하는 스카우터들이 갖고 있는 온갖 편견들, 가령 키 작은 우완 투수나 발만 빠르고 왜소한 타자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편견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레미에 대한 논쟁이 끝나자 폴이 말했다. “이제 여러분에게 8명의 타자 목록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몹시 필요로 하는 선수들입니다.” 폴이 이름을 부른 8명 모두는 대학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 싫어하거나, 심지어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는 선수들이었다. 이들 중에 어떤 선수가 어린 시절 빌리 빈의 모습과 가장 흡사한가라는 필자의 질문에 50년을 야구와 함께 한 어떤 스카우터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봐 작가 양반, 여기에 빌리 빈은 없어.” 왜 그러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그는 말했다. “빌리는 우리 모두가 꿈꾸던 선수였으니까.” 그의 말은 스카우터들이 꿈꾸던 선수들이 일찌감치 빌리에 의해 체계적으로 제거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3. 깨달음


메츠에 입단한 후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한 빌리는 경기장에서 잘 뛰고 잘 던지고 잘 잡았으며 게다가 침착했다. 다만 방망이에 공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쨌든 헛스윙이 반복됨에 따라 그의 자존심도 무너져 내렸고, 조금이라도 재능이 발휘되는 듯 하면 누군가 시기라도 하듯 기회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곤 했다. 1986년 결국 메츠 구단은 빌리를 포기하고 그를 미네소타 트윈스로 트레이드  하고 말았다. 이후 3년 반 동안 빌리는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 사이를 오가다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를 거쳐,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로 옮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성공하겠다는 의욕보다 망신만은 피하겠다는 소극적인 성격으로 변해갔다. 그 결과 삼진아웃은 줄어들었지만 그에게 주어졌던 천부적인 파워가 사장되고 말았다. 이렇게 프로야구 선수로 보낸 8년 동안 그의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1990년 스프링캠프와 함께 빌리는 현실 앞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그는 이제 성인이었다. 고교 시절 만난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아내의 뱃속에는 7개월 된 아이도 있었다. 그는 한때 모든 스카우터들이 동경하는 야구선수였지만, 야구는 그를 인생의 패배자로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야구 없는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었기에 빌리는 구단 측에 스카우터 일을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이로써 빌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여 온 부질없는 천재의 이미지를 벗어버렸다.


오클랜드 단장인 앨더슨은 아이비리그 출신 변호사로 경기 중의 전략은 물론 선수평가에 이르는 모든 것들이 야구인들의 경험과 직감보다는 과학적 통계를 따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야구 선수의 어떤 면에 돈을 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가?’라는 질문에 앨더슨은 “출루율이 높은 타자에게 돈을 써야 한다.”라고 답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야구에서 아웃을 세 번 당하기 전까지는 어떤 플레이도 가능하다. 따라서 공격하는 팀의 입장에서 아웃의 확률을 낮출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합리화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통계는 타자가 아웃을 당하지 않을 확률, 즉 출루율이다.”


1993년 앨더슨은 스카우터로서 뛰어난 업무능력을 보여주는 빌리 빈을 자신의 보좌관으로 임명한 뒤, 올바르게 평가되지 않고 있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찾아오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그리고 자신의 야구철학을 담은 책자를 빌리에게 보여주었다. 빌리는 책을 읽는 동안 벅찬 감동을 느꼈다. 이미 야구의 전통적 지식에 대해 날카로운 회의주의를 품고 있던 그는 책을 접하는 순간부터 야구경기를 풀어가기 위한 급진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접근방식을 찾게 되었고, 그것은 단장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행동으로 나타났다. 앨더슨은 빌리에게 야구에 관한 자신의 생각에 일대 혁신을 가져다준 빌 제임스의 책 몇 권도 선물했다. 빌리는 빌 제임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앨더슨이 다루는 내용 대부분이 빌 제임스의 이론에서 빌려온 것임을 알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 무지의 필드


빌 제임스의 <야구 개요서> 시리즈는 전통적인 야구 개념에 대해 공격의 포문을 연 것이었다. 1979년 판에서 제임스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의 최종목표는 점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매년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공격부문 순위표를 만들면서 팀 성적의 첫째 목록에 가장 많은 점수를 기록한 팀이 아닌 최고의 타율을 기록한 팀을 올려놓는다. 하지만 공격의 최고 목표는 가장 많은 점수를 만드는 것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는 이어서 점수는 어떤 식으로 획득되는가를 밝히기 위해 일정한 수의 4구, 안타, 도루 등이 주어질 때 각 팀이 이를 통해 얻는 점수가 얼마인지를 예측할 수 있는 모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제임스에 의해 ‘팀이 창출한 점수’라고 명명된 방정식 모양은 다음과 같다.  


팀 창출 점수 = (안타 + 4사구) x 총잔루수 / (타석 + 4사구)    


이 방정식은 그동안 야구 관계자들이 공격분야에 대해 잘못된 시각을 지녔음을 증명한다. 그들은 공식에서 중요한 요소인 4구와 장타율의 가치는 별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제임스가 거의 고려조차 하지 않던 타율과 도루만을 지나치게 강조해왔던 것이다.


5. 제레미 브라운 스페셜


2002년 드래프트 예정일 아침 빌리는 사무실에서 남부지역을 담당하는 스카우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카우터는 지난 며칠간 제레미 브라운에게 구단의 의견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해 왔다. “그 친구 우리말 잘 알아듣던가?” 빌리가 물었다. “그 아이는 우리가 1라운드 35번째로 자신을 지명할 거라고 했더니 믿지 못하더군요.” 제레미는 전통적인 스카우터의 눈에는 형편없는 체격조건의 삼류 선수였다. 제레미가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스카우터는 제레미에게 두 가지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하나는 1라운드 35번째 지명자가 통상 받는 액수에서 백만 달러나 모자라는 35만 달러만 받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살을 빼라는 것이었다. 드래프트는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라운드 35번째 지명권이 다가왔다. 제레미는 부모와 여자 친구를 제외한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를 대비하여 자기가 한 말을 절대 비밀로 해달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한다. 웃음거리가 될지 모른다는 의구심은 자신의 이름이 불린 이후에야 사라질 수 있었다. “오클랜드는 앨라배마 대학 포수인 제레미 브라운을 지명합니다.” 그 순간 제레미의 집 전화기는 가족, 친지, 에이전트로부터 걸려온 전화로 불통이 되었다.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생각하는 바가 서로 비슷했다. 그들은 만일 20명의 희망자 명단이 있다면 드래프트에서 3명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클랜드의 예외적인 선수수급 방식은 희망자 명단 20명 가운데 13명의 선수 확보라는 믿을 수 없는 성과를 거두었다. 물론 그 중 몇몇은 너무 작고 마르거나 뚱뚱하고 느리다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강속구를 던지지 못하는 투수도 있고, 파워가 없는 타자도 있었다. 심지어 드래프트에 오른 것조차 기적으로 여겨지는 애송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평가가 무엇이든 빌리는 상관없었다. 그는 야구만 하는 선수들을 드래프트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증권가에 새로운 큰손이 등장하여 채식주의자 전문 식당의 주식과 전기 자동차 회사 주식들만 사들이는 것과 비슷했다. 엉뚱하기는 했지만 그의 방식은 참신했고 그것은 오클랜드가 2류급 선수들을 위해 쏘아 올린 희망의 축포였다.  


빌리 빈은 프로야구라는 이름의 제국에서 전통의 관습과 의식들을 공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고와 같은 존재였다. 그에게 가장 특징적인 것은 철저하게 자신과 닮지 않은 선수들을 찾아내려는 욕구에 있었다. 즉 빌리는 자신의 안티테제를 찾아 먼 여행을 떠났던 것이고, 기어이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한 여행의 첫 번째 결과물은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훌륭해야 한다는 관문을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이었다. 그들은 야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젊은이들이었고, 대학을 나온 선수들이었다.  


6. 불공정한 게임을 승리로 이끈 과학

적은 돈으로 많은 경기를 이기고 있던 오클랜드는 2002년 시즌이 시작되면서 그들의 행운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선수단 연봉은 전년에 비해 줄어들었고 그들이 소유한 세 명의 스타 선수(제이슨 이스링하우젠, 자니 데이먼, 제임슨 지암비)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려 다른 구단으로 떠나는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폴은 시즌 시작에 앞서 오클랜드가 2001년 거둔 102승보다 7승이 적은 95승을 기록하면서 2002년에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의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 명의 스타 선수를 방출함으로 인해 이 팀이 실제 잃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수밖에 없다.


우선 마무리 투수 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을 보자. 그는 1999년 뉴욕 메츠에서 트레이드 되어 올 때 마이너리거였다. 마이너리그의 별 볼일 없는 투수를 유능한 빅리그의 마무리 투수로 바꾸면서 그가 자유계약 선수로 풀리는 순간 요구하는 수백만 달러의 연봉을 지급하지 않는 솜씨의 핵심에는 마무리투수는 사오는 것보다 키우는 것이 낫다는 빌리의 철학이 깔려 있다. 빌리는 언제든지 평균보다 약간 더 우수한 투수를 선택, 마무리 보직을 맡겨서 그에게 찬란한 세이브 성적을 얻게 한 뒤, 그것으로 시장에서 비싼 값이 매겨지게 만들 수 있다. 이스링하우젠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선수인 셈이다.  


그러나 중견수 자니 데이먼은 성격이 달랐다. 전문가의 관점에서 볼 때 데이먼은 도루 능력을 갖춘 나무랄 데 없는 선두타자였다. 하지만 출루율을 가치있게 여기는 폴의 관점에서 데이먼은 평균적인 공격능력을 갖춘 대체가능한 선수였다. 문제는 데이먼의 수비력은 대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폴은 데이먼을 테렌스 롱이라는 중견수로 대체할 경우 손실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았다. 손해비용을 경기당 잃을 수 있는 점수로 환산하자 매 10번의 경기당 1점이라는 수치로 나타났다. 결국 폴은 데이먼의 수비능력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간 800만 달러를 지불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먼과 이스링하우젠과의 결별은 비록 그들이 검증된 스타이긴 해도 오클랜드에게 큰 충격으로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오클랜드가 이 두 선수만 잃는 것으로 끝났더라면 폴의 컴퓨터는 2002년에도 자기 팀이 2001년과 똑같은 경기 수만큼 이길 것이라는 예상결과를 산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제임슨 지암비까지 잃었다는 것이다. 지암비는 메이저리그에서 점수를 산출해내는 부분에서는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전문가였고, 경기 중에 가장 효율적으로 활약하는 공격수였기 때문이다.           


7. 지암비의 허점


폴은 외부인들을 격리하기 위해 설치된 장애물을 스스로 뚫고 들어간 빅리그 최초의 외부인이었다. 빌리가 두 개의 대립국가(‘실제 야구 참가’라는 봉건국과 ‘야구 잘하는 법 연구’라는 공화국)사이에 다리를 놓은 인물이라면, 폴은 제일 먼저 그곳을 건넌 사람이었다. 그는 오른손에는 컴퓨터를 들고, 왼손에는 빌 제임스의 사상을 들고 있었다.


2002년 초 어느 날 폴의 질문은 “왜 제이슨 지암비(아메리칸리그 최고 1루수)를 방출해야 하는가?”에 집중되어 있었다. 물론 오클랜드가 지암비를 대체할 만한 선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그와 같은 1루수는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있다 해도 오클랜드는 그런 식으로 그의 공백을 메울 돈도 없었다. 대신 지암비의 복합체를 구성하는 각 부분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는 것은 가능했다. 지암비의 가장 강력한 공격 부문인 출루율을 대체하기 위해 폴이 강구한 방식은 다른 팀에서 원치 않아 저렴하게 사 온 세 명의 선수(데이빗 져스티스, 스캇 해티버그, 제레미 지암비)들을 내부적으로 승격시키는 방법이었다. 제레미 지암비(제이슨 지암비의 동생)는 느린 발을 가진 선수로 유명하지만 오클랜드에서는 좌익수 자리를 맡고 있다. 오클랜드가 좌익수 자리에 허둥대는 어릿광대를 세운 것은 그의 타격 능력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인 것이다.


양키스에서 데려온 데이빗 저스티스의 결함은 나이였다. 대부분의 구단이 36세의 그를 퇴물로 보았기 때문이다. 폴의 말로는 4구를 많이 얻는 선수들은 나이를 먹으면 더욱 많은 4구를 얻어낸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데이빗은 누구보다도 4구를 잘 얻는 선수였다. 그의 홈런을 때려내던 힘의 상당 부분이 지금은 사라졌지만 오클랜드 구단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로서는 그의 우수한 출루율로부터 몇 방울이라도 짜낼 수 있다면 그만이었다. 지암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세 개의 부속품 중 가장 끝 부품에 속하는 스캇 해티버그도 타석에서의 인내심이라는 그리 특별하지 않는 장점을 지닌 선수이다. 그러나 다른 구단이 보는 해티버그는 점수를 만들어내는 능력에 포수로서의 능력을 겸비한 선수가 아니라, 우선 포수로서의 능력을 먼저 갖추고 그 뒤에 몇 개씩의 안타를 쳐낼 수 있는 선수였다. 그랬기에 그의 송구하는 쪽 팔꿈치 신경이 파열되었을 때 그의 포수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고 이곳에 싼값으로 올 수 있었다.


8. 스캇 해티버그의 부활


론 워시는 오클랜드의 내야 수비 코치다. 그의 주 임무는 빌리가 데려다 놓은 온갖 허접한 선수들을 스프링캠프 기간 동안 훈련시켜서 최소한 홈 팬들의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 만큼 바꿔놓는 일이다. 워시에게 스캇 해티버그를 6주 만에 오클랜드의 선발 1루수로 만들어 놓으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22년간 포수를 했던 해티가 스프링캠프에서 겪은 1루수로서의 생활은 공황 상태의 연속이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까지 그의 수비 능력이 나아지지 않자 1루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빌리는 젊은 유망주인 페냐를 트레이드 해 왔다. 그러나 시즌 초반 오클랜드의 팀 성적이 하락세에 접어들자 빌리는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팀의 선발멤버 3명을 쫓아내 버렸는데 그 중에는 페냐도 포함되어 있었다. 순식간에 팀의 정규 1루수가 사라지자 임무는 해티에게로 떨어졌다. 1루수로서의 경기는 포수였을 때보다 훨씬 어려웠다. 공이 유격수나 3루수 앞에서 튀는가 싶더니, 어느새 준비 자세를 갖추지 못한 그에게로 날라 왔고, 내야 플라이는 잠시 시야에서 놓쳤다 싶으면 어느새 10미터 이상 떨어진 파울 지역까지 날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모종의 변화가 일어났다. 1루수 수비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도 차츰 그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6월이 끝나갈 무렵부터 그는 자신감을 갖고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던 플레이를 펼치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그에게는 ‘평균 이상의 1루수’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능력은 공격으로 점수를 얻을 때 팀에 도움이 되려고 하는 타격자세에 있었다. 그는 투 스트라이크 이후에도 자주 안타를 때려냈고 삼진을 당하는 일도 드물었다. 해티가 지닌 이런 자질은 팀 공격에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지만 시장에서는 큰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질은 어떻게 획득되는 것일까? 그것은 학습된 기술인가 개인의 천성인가? 만약 천성이라면 그것은 신체적 재능인가, 아니면 정신적 기질인가? 해티는 이에 대해 전해줄 말이 많은 사람이다. 어떤 타자든지 빅리그에 들어서면 그의 허점은 각 팀들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이 된다. 고치지 못하면 그것으로 상황 끝이다. 해티는 누구보다도 이 이론을 잘 습득한 선수였다. 그는 각 투수가 던지는 특정한 투구에 집중하고자 했고, 그것을 늘 두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덕분에 자신이 칠 수 있는 것과 칠 수 없는 것에 대해 정확히 터득할 수 있었다.


시즌이 끝나자 폴은 오클랜드의 전 타자들의 성적을 색다른 방식으로 측정했다. 그는 각 타자들이 타석에서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알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것은 해당 타자들을 똑같이 여러번 세워서 라인업을 구성했을 때 얼마나 많은 점수를 기록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폴의 계산에 의하면 아홉 명의 해티버그로 구성된 라인업은 연간 940점 내지 950점의 점수를 기록했는데, 이와 비교하면 뉴욕 양키스는 897점의 점수를 기록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해티버그가 아홉 명만 있다면 메이저리그 최상의 공격 팀을 이루는 것이다.     


9. 트레이드 테이블


오클랜드가 시즌 후반에 대활약을 보이는 이유는 실제로 다른 팀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이면 성적이 나쁜 팀은 희망을 일찌감치 포기한다. 희망을 포기하면 비용부터 삭감하고 싶어지고, 가장 먼저 선수들부터 무더기로 팔아 치우게 한다. 이런 식으로 선수들의 공급이 넘치면 가격이 폭락한다. 시즌 중반에 빌리가 데려오려고 하는 선수들의 가격은 시즌 초라면 꿈도 꿀 수 없는 액수들이다. 시즌 초 빌리의 목표는 6월 말까지 경쟁에서 완전히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성적만 유지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 빌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꼭 필요한 선수들을 쇼핑하기 시작한다. 2002년 7월 30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 될 때까지 그가 데려오려고 신경을 집중한 선수는 클리블랜드의 좌완투수 린콘이었다. 장터에 나선 그에게 가장 큰 문제는 현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린콘의 연봉 중 남은 기간 동안 지급될 액수는 불과 50만 8천 달러지만 구단주는 그 돈을 내주는 것조차 아까워하고 있었다. 따라서 린콘을 얻으려면 이쪽에서 제시한 이적료가 최상임을 클리블랜드 측에 설득시키는 것 이외에 린콘의 나머지 봉급을 다른 수단을 써서라도 지불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빌리의 아이디어는 오클랜드의 실력있는 좌완투수 베나프로를 경매시장에 내놓는 것이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가 린콘에게 눈독을 들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의 단장 브라이언 새빈에게 베나프로를 저렴한 가격으로 건네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그것으로 순식간에 린콘을 사올 자금의 일부(베나프로의 연봉)를 저축함과 동시에 경쟁 팀(샌프란시스코)에게 베나프로를 대안으로 선택할 기회를 줌으로써 린콘에 대한 관심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욕 메츠도 린콘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은 빌리는 메츠의 단장 스티브 필립스에게 베나프로를 팔겠다고 제안하고 그 대가로 현금과 마이너리그 선수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새빈과 필립스가 빌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자 빌리는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모든 위험을 자신이 부담하고 린콘을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린콘을 데려옴으로써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구원투수 매그난테에게 방출을 통보하였다.  


방출을 통보 받은 매그난테는 말없이 라커룸을 나섰다. 젊은 때라면 자신에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에 여기저기 떠들고 다녔겠지만 전성기가 지난 지금은 침묵만이 그가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한편 조금 전까지 클리블랜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린콘도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갈 것이란 소문이 떠돌던 것이 불과 2~3일 전인데 하루아침에 오클랜드의 유니폼을, 그것도 오클랜드 대 클리블랜드의 시합 직전에 입게 되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빌리의 트레이드를 지켜보던 폴은 문득 주식을 거래하는 것과 인간을 거래하는 것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람의 거래는 잘못하면 불쾌감이 따른다. 빌리는 자신의 일에 그런 불쾌감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선수란 장기판의 말과 같기에 필요하면 언제든지 적과도 교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10. 투수 해부하기


오클랜드의 투수들 가운데 채드 브랫포드는 정통적 개념과는 거리가 먼 투수이다. 하지만 그는 팔의 힘이 아닌 상상력을 이용해서 끝내 빅리그로 올라섰다. 그는 원래 뛰어난 투수가 아니었다. 15세에 고교 야구부에 합류한 채드는 투수가 되길 원했지만 코치는 그에게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코치에게 사이드암 투구법을 배우면서 채드의 직구는 실전에 사용할 만한 무기로 변했다. 물론 그가 사이드암 투구 방식을 체득한 것은 팔이 마비될 정도로 매일 연습을 한 덕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채드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의 직구는 웃음거리만 면하는 수준이었고 가족을 건사하느라 시즌이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러나 1998년 그에게 변화가 생겼다. 투구자세를 한층 더 낮춰 아예 타자보다 낮은 위치에서 공을 뿌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추락에 대한 불안감이 그로 하여금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다. 볼에 새로운 변화가 생기면서 타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했고 그는 여세를 몰아 꿈에 그리던 빅리그 입성을 하게 된다. 1999년 스프링캠프에 모습을 드러낸 그의 가슴속에는 ‘나도 메이저리거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화이트삭스는 그의 성공을 신뢰하지 않았다. 팀 관계자들은 그가 빅리그 타자에게는 통할 수 없는 속임수를 사용하는 투수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그는 마이너리그로 내려갔다. 그로부터 2년 간을 마이너리그 선수로 뛰면서 메이저리그의 땜질용 투수 역할을 하던 그를 어떤 팀이 지켜보고 있었다.


폴은 화이트삭스가 이러한 투수를 썩혀 두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빌리에게 채드를 오클랜드로 데리고 와야 한다고 설득했다. 채드를 주목한 또 한 사람은 보로스라는 환타지 야구를 즐기는 법률가였는데 그는 투수의 가치평가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투수의 가치를 평가할 때 공을 던진 뒤 안타를 맞지 않는 능력을 기준으로 삼았지만, 보로스는 투수들은 일단 공이 인플레이 상태가 된 이후에는 안타를 막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투수들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홈런과 4구, 아니면 삼진으로 공이 인플레이 상태가 될 가능성 자체를 막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빅리그의 누구도 보로스의 주장을 검토하지 않았지만 폴은 달랐다. 그의 기사를 본 폴의 반응은 “빌 제임스에 버금가는 사람이 보로스다.”라는 평가였고, 그에 앞서 보인 반응이 “채드를 잡아야 한다.”였다.


채드는 폴의 컴퓨터에 몇 가지 차별화된 성적을 지닌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웬만해서 타자를 4구로 거르는 일이 없다. 홈런도 잘 내주지 않고, 삼진은 이닝당 한 개꼴로 기록하고 있다. 또 장타를 잘 허용하지 않았다. 폴이 가장 흡족하게 생각한 부분은 이상하게도 스카우터들이 그를 싫어했다는 점이다. 빌리는 2000년 시즌이 끝날 무렵 화이트삭스 단장인 윌리엄즈에게 “투수 명단에서 열두 번째나 열세 번째 자리를 차지할 만한 선수를 구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화이트삭스에 트레이드 희망자 명단을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윌리엄즈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침내 채드를 거명했다. 하지만 그가 허리를 다쳤기 때문에 당장 보내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빌리가 대답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11. 인간적인 요소


2002년 9월의 어느 날 오클랜드는 미네소타를 상대로 20연승에 도전하고 있었다. 빌리는 자신의 팀이 경기를 벌이는 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는 야구란 확률을 확인하는 과정일 뿐이라는 자신의 믿음을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TV에 차베스라는 선수가 비치자 빌리는 선천적인 재능을 가진 24살의 그가 얼마나 밝은 미래를 갖고 있는지를 필자에게 설명했다. 나는 궁금했다. 어떻게 인간의 미래에 대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그의 반응은 간단했다. 야구선수들은 모두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고, 패턴은 기록을 통해 뚜렷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나는 차베스가 빌리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아무거나 막 휘둘러' 식의 타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빌리는 내 말을 가볍게 일축했다. "그는 젊고 잘 생겼고, '아무거나 막 휘둘러'도 나름대로 잘 소화하고 있잖아요. 당신이라면 저 나이에 어땠을 것 같아요?" 이것이 바로 과학적인 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려고 하면서도 자신의 행동은 그렇지 못한 빌리의 모습이었다.    


TV는 오클랜드의 중견수 테렌스가 내야땅볼을 치고 전력질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전까지 그는 내야땅볼을 치면 천천히 뛰어가다가 이내 되돌아 왔기 때문이다. 빌리에 따르면 며칠 전 테렌스는 주차장에서 누군가 자신의 차에 흠집을 낸 것을 발견했다. 그 소식을 들은 빌리는 테렌스의 팬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범인이라면서 보내온 이메일을 테렌스에게 보여주었다. 이 팬은 테렌스가 어슬렁거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한 것이 너무 화가 나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한다. 그 사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은 작지 않았다. 땅볼을 치고 1루까지 조깅하던 습관을 버리고 최대한 빨리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시합에서 오클랜드의 포수 에르난데스는 바깥쪽 직구 두 개를 밀어 쳐서 모두 2루타를 만들어내었다. 이것도 색다른 현상이었다. 시즌 내내 그는 바깥쪽 공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빌리가 에르난데스의 라커룸을 찾아와서 내기를 걸었다. 그가 바깥쪽 공을 만날 때마다 밀어 쳐서 안타를 때려낸다면 빌리가 50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모르는 사실은 자신들이 빌리의 교묘한 조종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람자체를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바꾸려는 노력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12. 아이디어의 속도


2002년 시즌 종료와 함께 오클랜드가 플레이오프 진출 팀으로 확정된 이후 코치들과 선수들, 신문기자들 모두가 빌리의 번트와 도루 기피증에 대해 심각한 근심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들은 모두 정규시즌의 성적은 잊어버린 듯했다. 그리고 그 해 플레이오프에서 오클랜드가 트윈스에 패하자 언론은 오클랜드가 투수력과 홈런에만 의존하고 번트나 도루에 의해 점수를 제조하는 법을 모르기에 패배를 자초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사실 플레이오프는 합리적으로 팀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좌절시킬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작은 오차 범위의 문제점만으로도 충분히 실패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파머는 메이저리그에서 실력 차이로 발생하는 경기당 점수의 차이는 1점 정도지만, 운에 좌우되는 점수는 4점 정도라고 계산한 바 있다. 다만 여러 팀이 오랫동안 경기를 하는 시즌 중에는 운이 공평하게 돌아가므로 결국 최후에 빛을 발하는 것은 실력 차이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처럼 몇 번의 시합으로 끝나는 승부라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가 있다. 결국 지금과 같은 메이저리그의 시즌 운영 방식은 구조적으로 합리성을 비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빌리는 자신의 팀이 플레이오프에서 패한 것을 보고도 놀랄 만큼 침착했다. 필자가 왜 그렇게 초연한지 묻자 그는 말했다. "내 전략은 플레이오프에는 별 효력이 없거든요."


플레이오프가 끝나고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빌리와 계약을 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에게는 5년 간 1,250만 달러라는 연봉이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그 어떤 단장들도 받아보지 못했던 큰 액수였다. 이제 남은 일은 그가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 뿐이었다. 문제는 레드삭스라고 하는 그가 별로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구단을 위해 일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특수한 재능을 증명해 보이는 것도 나름의 가치는 있었다. 그것도 금전적 보상이 따르는 가치였다. 그러나 그 점이 또한 그의 정체성에 모순을 일으키고 있었다. 결국 빌리는 레드삭스와의 계약을 포기했다. 그리고 그는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었던 사실 하나를 필자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평생 돈을 위해 의사결정을 내린 적이 딱 한 번(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메츠 구단과 계약한 것)있었는데, 그 이후로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소."


필자는 빌리가 특별한 사고만을 담아두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담아두었던 사고들은 오늘도 한 곳에서 다른 곳을 찾아 끝없이 이동하고 있다. 이런 사고들 덕분에 빌리는 행동인이 될 수 있었고, 또 행동인이 되었기에 뚜렷한 업적도 이룰 수 있었다. 그는 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숨겨진 장점을 평생 알릴 기회가 없었던 선수들에게는 삶의 구원자와도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선수들이 오늘도 그의 호의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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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 실시 배경

myPPT 2012. 9. 30. 03:18

기아자동차 디자인경영

 

 

 

 

 

 

 

 

 

 

 

 

 

 

 

 

 

 

 

 

 

목    차

2

 


 

 

 

Ⅰ 디자인이란...........................................................3

1.        디자인의 개념

2.        디자인의 진화

3.        디자인의 부상 배경

4.        디자인 활용 전략

 

 

 

Ⅱ 대상 기업 개요 및 연혁..........................................7

1.        기업 개요

2.        주주현황

3.        기업 연혁

 

 

 

Ⅲ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 실시 배경........................10

1.        과거의 실패

2.        현대자동차의 합병과 그늘

3.        정의선 사장의 취임, 야심작 ‘로체’의 실패

 

 

 

 

 

 

 

 

 

 

 

 

 

 

 

Ⅵ 기아자동차 디자인경영 추진 과정..........................13

1.        핵심역량으로써의 디자인 선언

2.        피터슈라이어 부사장 영입

3.        기아차 다자인 방향 제시

4.        디자인 기업 PR 광고

5.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 구축

6.        패밀리룩(Family Look) 탄생

7.        디자인 경영 생활화

 

 

 

Ⅴ 디자인 혁신기업의 조건과 기아자동차...................16

1.        최고경영자의 디자인마인드, CDO의 재량권

2.        우수디자인 인력 - CDO 피터 슈라이어

3.        제품 및 서비스 - 디자인 철학

4.        지원인프라 - 도전정신과 창의성

 

 

 

Ⅵ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의 성과.............................25

 

 

 

Reference

 

 

2

 


 

Ⅰ 디자인이란?

 

1. 디자인의 개념

 

‘디자인’은 예술 영역뿐만 아니라 공학, 건축, 경영 등 분야에서 다양한 의미로 혼용된다. 일반적으로 경영에서는 기획, 공학에서는 설계, 예술에서는 도안의 의미로 통용된다. 미국산업디자인협회에서는 ‘생산자와 사용자에게 모두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상품의 기능, 가치, 외관을 최적화하는 전문적 활동’을 디자인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6년 마이클 파르(Michael Farr)의 저서 ‘디자인 경영(design management)’에서 기업이 디자인 인력과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활동을 ‘디자인 경영’이라고 최초로 정의하였다.

 

 

2. 디자인의 진화

 

산업 혁명 시기 대량생산되는 제품의 심미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탄생한 디자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해왔다. 1950년대부터 디자인 조직이 본격적으로 사내에 구성되기 시작했으며, 1980년대에는 소니, 필립스, 스와치 등과 같이 디자인을 핵심경쟁력으로 삼는 기업이 등장하였다. 1990년대부터 기업 간 기술격차가 감소하고 소비자의 감성적 욕구가 증가하면서 디자인은 상품혁신을 주도하기 시작한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창조와 혁신’이 기업경영의 화두로 등장한 후 글로벌 선진기업들은 경영활동 전반에 디자인의 창의성을 활용하고 있다.

 

시   기

특      성

주 요 이 슈

공예적 디자인

1800 중반 ~ 1900년

          디자인과 공예의 구분 모호

          개인에 의한 상품 설계, 생산, 판매

          디자인 전문기업의 前身 미술 공예 기업 등장

기능적 디자인

1900 ~ 1930년

          상품의 실용성, 기능성, 생산성을 중시하는 디자인

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기능주의’

          기업 통합 이미지 전략 효시(AEG)

          최초의 현대 디자이너 (피터 베렌스)

상업적 디자인

1930 ~ 1945년

          경제공황 이후 디자인의 상업성 강조

          디자인 전문사무실 활성화

디자인 전문화

1950 ~ 1975년

          사내 디자인 전문 조직 구축 본격화

(IBM, 브라운)

          경영학에서 기업 경영의 기능으로 디자인을 인정

          스타 디자이너 증가

기업의 핵심 경쟁력

1975 ~ 1990년

          전사차원의 디자인 역량 강화

(소니, 필립스, 스와치)

          포스트 모던 이후 다양한 스타일 공존

혁신의 새로운 주체

1990 ~ 현재

          디자인이 상품혁신 주도

(푸마, P&G, 애플)

          IT, 웹디자인 등장

          디자인의 사회성 대두

디자인의 시대별 변천 - 삼성경제연구소(2008), 디자인의 진화와 기업의 활용 전략

 

디자인은 1900년대부터 기업활동과 연관되면서 역할과 위상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1930년 기업활동의 기능적 요소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에는 상품의 외형을 담당하는 심미적 측면을 담당한다.

1990년대 들어 상품 개발을 주도하는 역할로 변모하기 시작한 디자인은 기업에서는 품질과 가격을 넘어 경쟁수단으로 디자인을 활용하기 시작한다. 가치 사슬의 최종단계에서 상품의 외형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서 마케팅까지 전반적인 활동을 디자인 중심으로 개편하는 기업이 부상하기 시작한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명예교수 로버트 헤이즈는 포춘지(1991)와의 인터뷰에서 “기업은 가격으로 경쟁했고, 지금은 품질로 경쟁한다. 미래는 디자인 경쟁의 시대가 될 것이다.”라고 했다.

2000년대 들어 ‘창조와 혁신’이 기업경영의 화두가 되면서 디자인의 창의적 프로세스를 경영활동에 폭넓게 활용하기 시작한다.

 

 

3. 디자인의 부상 배경

 

1)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 인식

디자인을 통해 성공적 혁신을 이룬 기업이 과거에 비해 증가, 디자인 역량 강화 기업들의 성과 우수하게 나타났다. 영국 디자인 협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디자인 선도 기업(design led company - 디자인 수상 경력이 있는 63개 기업)의 주가가 1994년 FTSE 100(Financial Times Stock Exchange 100 : 런던국제증권거래소 상장 100개 기업)과 유사한 수준이었으나 2007년에는 약 2배의 격차를 보였다.

그리고 디자인 역량이 클수록 매출과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경향을 보였는데 대표적 디자인 혁신 기업 애플은 2007년 브랜드 가치와 매출액이 2003년 대비 각각 2배, 1.7배 증가하였다.

 

 

 

 

 

 

한편 경영 및 소비 환경의 변화로 디자인이 우수한 히트상품의 영향력이 확대된 것 또한 기업들이 디자인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1980년대 ‘워크맨’, 1990년대 ‘겜보이’, 2000년대 ‘아이팟’과 ‘레이저’의 1억 대 판매 기간이 점차 단축되고 있는 것을 제시한 바와 같이 디자인의 영향력은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디자인 차별화에 성공함으로써 일거에 시장을 평정하는 경우도 발생했는데 삼성전자는 와인 글라스 이미지를 형상화한 ‘보르도 TV’를 선보임으로써 2005년 4위이던 LCD TV 시장점유율을 1년 만에 1위로 끌어올렸다. 경쟁사들이 ‘보르도 TV’와 유사한 디자인을 잇따라 출시할 정도로 직선형 일변도의 평판 TV 시장에 새로운 스타일 표준을 제시하였다.

 

2) 경쟁환경의 변화

  월드 프리미엄 제품들은 기능과 기술은 물론 감성의 벽까지 넘기 위해 디자인과 브랜드 등 소프트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소비자도 제품 구매시 기술이나 기능보다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소비 목적이 기능적 필요성에서 라이프 스타일의 표현으로 변화되고 자신이 사용하는 제품(의류, 자동차, 식품, 가구, 가전제품 등)에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회적 정체성을 표현하게 되었고, 차별화 및 개성화를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디자인이 우수한 제품의 프리미엄 가격 지불에 호의적이 된 것이다.

 

3) 기 타

이 밖에도 일부 제품군의 라이프 사이클이 성숙기에 접어든 것 또한 디자인이 부상하게 된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가전, IT, 자동차 등의 제품군은 시장 초기 기술력으로 경쟁을 했으나 점차 기술격차가 감소하고, 2000년대 들어 기술은 소비자가 차이를 인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또한 소비자 경험이 중요한 경쟁환경에서 디자인 프로세스를 통해 효과적인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 정성적, 정량적 데이터 속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산하고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활동할 수 있다는 디자인 프로세스의 장점 또한 디자인 부상 요인 중 하나다.

4. 디자인 활용 전략

 

기업에서 디자인을 활용하는 방안은 디자인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구분할 수 있다.

 

1) 전통적 디자인 관점 : 제품 및 서비스 혁신

1          제품과 서비스 차별화를 통해 매출 및 수익 증진에 기여 : 혁신적 상품을 개발하여 경쟁우위를 확보하거나 새로운 시장을 공략하고 리디자인(redesign)을 통해 제품의 수명주기를 연장

2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하여 브랜드 가치 증대 : 새로운 디자인으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거나, 기업 및 상품이미지를 강화하여 고객 로열티 확보

 

2) 새로운 디자인 관점 : 경영활동 전반에 참여

1          디자인 인력을 다른 분야에 투입하여 창의적 역량 활용 : 디자인적 사고를 조직 내부에 전파

2          디자인 프로세스를 활용하여 효율성 향상 : 사무공간, 물류 및 생산시설 등의 개선방안 도출

 

리디자인

(Redesign)

 

‘BMW 미니’

1           과거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디자인은 기존 충성 고객을 유인하기 용이

2           보유 브랜드 자산 활용은 리스크 적고 비용 절감 효과

3           2001년 재출시된 ‘미니’는 판매량 7.8배 ↑

 

 

 

 

고객로열티

 

‘Apple’

1           애플은 사용하기 어려운 기술을 디자인을 통해 일반인도 사용하기 쉽게 개선하는 강력한 힘 보유

2           가전 업계의 경우 신속한 제품개발과 최초 100만 고객 확보가 성공열쇠인데 애플의 경우 100만 매니아가 대기하고 있어 신제품 출시에 대한 부담이 적고, 이들은 애플 디자인에 익숙해 학습기간 필요 없음

 

 

 

 

프로세스혁신

 

‘보잉’

1           2001년 엔지니어와 생산라인 작업자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737공장 리모델링

2           생산공간 40% 축소, 최종 공정 소요기간 22일11일로 생산성 50% 향상

3           생산라인중심으로 작업자, 설계자, 사무직 인력 공간 재배치를 통해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

 

Ⅱ 대상 기업 개요 및 연혁

 

1. 기업 개요

 

 

 

ㆍ회사명

: 기아자동차

ㆍ대표이사

: 정성은, 서영종

ㆍ대표업종

: 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

ㆍ설립일

: 1944년 12월 11일

ㆍ자산총계

: 15,452,278백만원

ㆍ자본금

: 1,848,652 백만원

ㆍ결산기

: 12월 결산

ㆍ본점주소

: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231번지

ㆍ상장일

: 1973년 07월 21일

ㆍ대표전화

: 02) 3464-1114

 

 

2. 주주현황

 

구 분

성명

주식의 종류

소유주식수

지분율

비 고

최대주주

현대자동차

보통주

134,285,491

38.67%

계열회사

주요주주

국민연금

보통주

8,415,470

2.40%

-

등기임원

정성은

보통주

15,188

0.00%

대표이사

정의선

보통주

6,904,500

1.99%

사외이사

조동성 

보통주

10,000

0.00%

사외이사

소계

보통주

6,929,688

-

-

출처 : 기아차 홈페이지

 

3. 기업연혁

 

1944

ㆍ경성정공 설립

 

1952

ㆍ최초의 국산자전거 '3000리호' 생산

ㆍ경성정공에서 기아산업㈜로 개칭

1957

ㆍ시흥공장 준공

 

1961

ㆍ2륜오토바이 생산

 

1962

ㆍ경 3륜화물차 생산

 

1965

ㆍ자전거 미국에 첫 수출

ㆍ오토바이 생산

1967

ㆍ3륜트럭 생산

 

1971

ㆍ4륜화물차 'E-2000', 'E-3800' 생산

ㆍ기아써비스㈜ 설립

1973

ㆍ기업공개,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 상장 [07.21] 
ㆍ㈜기아정기 인수

ㆍ소하리공장 완공 
ㆍ국내 최초 가솔린엔진 생산

1974

ㆍ최초의 국산 승용차 '브리사' 생산

 

1975

ㆍ서해공업㈜인수

 

1976

ㆍ아시아자동차공업㈜인수
ㆍ㈜기아기공 설립

ㆍ기아협력회 설립

1978

ㆍ디젤엔진 생산

 

1979

ㆍ'푸조604', '피아트132' 생산

 

1980

ㆍ소형화물 승용차 '봉고' 생산

 

1981

ㆍ중소형화물차 및 버스전문생산업체 지정

ㆍ소형버스 '봉고 코치' 생산

1982

ㆍ발명대상(자동차역진 제어장치)수상

 

1983

ㆍ일본 마쯔다와 이토츄상사 자본 참여

 

1984

ㆍ중앙기술연구소 완공

 

1986

ㆍ기아특수강㈜ 인수

 

1988

ㆍ자동차 생산 100만대 돌파

 

1989

ㆍ기아경제연구소 설립

 

1990

ㆍ아산만공장 준공

ㆍ기아자동차㈜로 개칭

1992

ㆍ일본현지법인 KJC설립

ㆍ미국현지법인 KMA설립

1993

ㆍ자동차생산 300만대 돌파

 

1994

ㆍ기아자동차㈜ 창립 50주년 
ㆍ그룹 CI변경

ㆍ오토공장 준공

ㆍ㈜기아인터트레이드 설립

1995

ㆍ아시아자동차공업㈜ 창립 30주년

ㆍ동경 R&D센터 준공

ㆍ기아정보통신㈜ 설립

ㆍ기아포드할부금융㈜ 설립

1996

ㆍ기아시화연구소 준공

ㆍ자동차생산 5백만대 돌파

1997

ㆍ부실징후기업 정상화 지원 대상 선정 [07.15] 
ㆍ화의절차개시 신청 [09. 22] 
ㆍ회사정리절차개시 신청 [10. 24] 
ㆍ회사 재산보전처분 결정 [10.31]

ㆍ중국 합작공장 준공

1998

ㆍ회사정리절차 개시 [04.15]] 
ㆍ주식인수계약체결 [12.01]【현대자동차, 기명식 보통주 153,000,000주(지분율 51%)】 
ㆍ회사정리계획인가 결정 [12.28]

ㆍ수출 200만대 달성

1999

ㆍ회사정리계획 변경계획안인가 결정 [05.25] 
ㆍ아시아자동차공업(주), 기아자동차판매(주), 아시아자동차판매(주), 기아대전판매(주) 흡수합병 [06.30]

ㆍ아산만공장 화성공장으로 명칭변경

2000

ㆍ회사정리절차 종결 신청[01.17] 
ㆍ회사정리절차 종결 결정【법정관리 해지】[02.16] 
ㆍ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 [08.31]

 

2001

ㆍ대규모기업집단 지정【현대자동차그룹】[04.02]

ㆍ기아 타이거즈야구단 정식출범

2002

ㆍ유럽 5개국에 직영법인 설립 
ㆍ2002 한국서비스 품질 최우수 기업상 수상

ㆍ2002 가치경영 대상 수상

ㆍ생산 1천만대 돌파

2003

ㆍ기아/현대 R&D 거점 통합 및 환경기술 연구소 착공 
ㆍ글로벌 환경경영 선포식

ㆍ기아차 수출 400만대 달성

ㆍ무역의 날 수출 50억불 탑 수상

2004

ㆍ기업이미지(CI) 새단장
ㆍ한국서비스품질지수 1위 기업선정

ㆍ한국물류대상 은탑 산업훈장 수상
ㆍ무역의 날 - 수출 70억불 탑 수상

2005

ㆍ현대기아차 - FIFA공식파트너로 선정
ㆍ서유럽시장 2년 연속 판매성장률 1위('03,'04)

ㆍ수출 5백만대 달성

2006

ㆍ미국공장 조인식

 

2007

ㆍ슬로바키아공장 준공식

ㆍ중국 제2공장 준공식

2008

ㆍ마이크로소프트사와 전략적 제휴 체결
ㆍ미국법인 신사옥 및 디자인센터 준공식
ㆍ한국서비스품질지수 자동차부문 5년 연속 1위
ㆍ디자인경영 대통령상 수상

ㆍ로체 이노베이션 출시

ㆍ럭셔리 준중형 세단 포르테 출시
ㆍ쏘울 출시

2009

ㆍ준중형 스포츠 세단 포르테 KOUP 출시

ㆍ소렌토 R 출시

ㆍ쏘울 2009 레드닷 어워드 수상

 

 

 

 

 

 

 

 

 

 

 

 

 

 

 

 

Ⅲ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 실시 배경

 

1. 과거의 실패

 

1997년 기아차의 부도는 미증유의 사태였던 외환위기의 기폭제였다. 이 때 기아차가 몰락한 이유가 바로 디자인이었다. 당시 수천억원의 개발비를 투입했음에도 디자인에서 거의 최악의 선택을 한 크레도스와 아벨라가 철저하게 시장에서 외면당한 것이 기아차 몰락의 결정적 계기였다.

 

 

 

크레도스

아벨라

 

 

2. 현대 자동차와의 합병과 그늘

 

이후 기아차는 1998년 현대차에 합병되었다. 기아차가 현대차그룹으로 편입되면서 현대차와 총 4개의 플랫폼을 공유하는 등 두 회사 제품간 기술적 차이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성능도 거의 비슷한데 왜 현대차가 아닌 기아차를 사나?"란 소비자들의 질문에서는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는 현대차와 중복되던 세그먼트에서의 판매부진으로 이어지곤 했다.

또한 세라토, 로체 등 현대차 그룹 편입 후 내놓는 모델마다 현대차에서 한 급 아래 모델에 쓰던 엔진을 장착하거나 현대차에서 이미 나온 플랫폼을 쓰는 등 현대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중형차 로체가 현대차의 준중형 아반떼의 플랫폼을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일부 다른 모델들도 그와 비슷한 평가를 받기도 했다.

 

 

 

세라토

로체

 

 

이 때문에 기아차 모델은 동급의 현대차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가 나돌고 같은 가격이면 현대차를 사겠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시장에서 나돌았다. 과거 기아차가 '기술의 기아'라 불리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 기아차는 동력성능과 코너링 면에서 뛰어나 승차감을 위주로 하던 현대차의 동급 모델들과는 다른 색깔로 사랑 받았다. 예를 들어 1990년대 기아차의 프라이드와 세피아는 베스트셀링카였고 마니아층도 상당했다. 그런 기아차가 합병 이후 통합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위해 같은 플랫폼을 쓰게 되면서 시장에서 나름 인정 받아왔던 자기 고유의 색깔을 잃게 된 것이다. 
 

 

 

프라이드

세피아

 

국내자동차 시장의 대표격인 현대차는 각 세그먼트별 모델이 대부분 히트를 치면서 과반수의 시장점유율을 보여 왔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아차의 신차는 현대차의 후발주자가 되면서 기아차만의 색깔을 못 내고 섞이는 과정이 되풀이 되어 왔다는 평가가 상당했으며 실제 자동차 판매량에 있어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났다. 물론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월등하고, 국내 자동차 업계를 이끌어 온 현대차의 신차 자체가 시장을 선도하고 소비자의 흐름을 잘 파악해서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추진해온 탓에 경쟁에서 밀린 탓도 있다. 브랜드와 제품에 대한 시장의 신뢰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차가 기아차 인수 후 자사에서 개발 중이었던 모델을 기아차를 위해 인도해 준 모델인 옵티마, 카스타가 현대 브랜드를 달고 출시되었을 경우 과연 그렇게 단명할 수 밖에 없었던 모델이었을지 의심해볼 만 하다.

 

 

 

옵티마

카스타

 

 

이러한 분위기는 해외에서도 이어져 현대차는 상당한 수의 지역에서 긍정적인 평가와 판매 실적을 꾸준히 쌓아 왔다. 그 속에 낀 기아자동차는 본연의 색깔을 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렇게 지난 몇 년 동안 기아차는 현대차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현대차와 중첩되는 세그먼트의 경우 2위는 고사하고 3위 고수도 힘든 경우가 많으며 자연스럽게 기아차가 현대차에 섞이는 과정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었다.

1998년 현대차에 흡수된 이래 기아차에 내수시장 점유율 30%를 넘어보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기아차가 부도 전 현대와 맞설 때 유지했던 점유율이 30%였다. 현대 합병 뒤 기아차는 1999년 딱 한 달만 30%를 넘어봤을 뿐이다. 지엠대우와 르노삼성차의 공격에 3위로 떨어지는 설움을 겪기도 했다.

또한 현대와 기아의 연구개발센터가 통합되면서 하나의 조직에서 플랫폼과 부품 공유로 두 개 브랜드의 모델을 만드는 일에 대한 내부적인 혼선으로 기아차의 아이덴티티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현대는 승용차, 기아는 RV'하는 식으로 특화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의견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결국 기아차의 가장 뿌리깊은 고민은 현대차와 차별화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고, 따라서 기아차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대차와는 다른 '기아차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었다.

 

 

3. 정의선 사장의 취임, 야심작 ‘로체’의 실패

 

2005년 2월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의 아들 정의선씨가 기아자동차 사장으로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임직원에게 ‘디자인 경영’을 주문했다. 그 동안 기아차는 국내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현대차 트렌드를 쫓아가는 전략을 선호했다. 그러다 보니 기아차는 개성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을 받아 왔었다.

기아가 디자인 경영에 액셀러레이터를 밟게 된 것은, 로체의 실패 때문이었다. 2005년 11월 기아차는 옵티마에 이어 5년 만에 야심차게 중형차 로체를 내놨다. 로체는 현대 쏘나타와 같은 엔진을 써 성능에 뒤질 것이 없는데다 가격도 100만원 이상 쌌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정 사장은 뛰어난 성능에도 판매가 부진한 원인을 쏘나타와의 차별화 실패로 봤다. 현대차와 같은 엔진과 차체를 쓰는 기아차는 디자인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체 실패에 자극 받은 정 사장은 2006년 초 “기아차 브랜드 경쟁력을 단시일 안에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디자인 능력부터 끌어올려야 한다”며 세계적인 디자이너 영입을 주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 해 아우디·폭스바겐의 수석디자이너로 유럽에서 손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데려왔다. 회사 안에서는 굳이 외부 디자이너를 수혈 받을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정 사장은 “디자인 경영엔 그가 꼭 필요하다”며 밀어붙였다. 과감하고 감각적인 디자인의 신차를 앞세워 현대차와 겹쳐진 이미지를 벗고, 기아차를 ‘젊은 차’로 포지셔닝하게 된다.

 

결국 기아차가 디자인 역량을 강화한 것은 철저히 생존 전략에서 비롯된 셈이다. 모델 라인업 등이 한 지붕 아래 있는 현대차와 겹치는 상황에서 기아차만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디자인 역량 강화가 해답이었던 것이다. 결국 고유의 디자인으로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인다는 목표 아래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Ⅳ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 추진 과정

 

1. 핵심역량으로써의 디자인 선언

 

기아차는 2005년 ‘디자인(Design)’을 미래 핵심 역량으로 설정하고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6년 9월 파리모터쇼에서 세계무대에 디자인경영 출사표를 던지고 기아차의 도약을 위한 시동을 걸었다. 정의선 사장은 '기아차 브랜드를 표현할 수 있는 독자적인 디자인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며, '차량 라인업의 디자인을 업그레이드시키고 감각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기아차만의 고유하고 우수한 디자인으로 기아차의 경쟁력을 향상시켜 세계시장에서 승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2. 피터 슈라이어 부사장 영입

 

2006년 7월 30일 기아차 정의선 사장은 디자인경영의 첫걸음으로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Peter Schreyer)를 기아차 디자인 총괄담당(CDO: Chief Design Officer) 부사장을 전격 영입한다. 과거 기업 고위층의 의사에 따라 모델 디자인이 변했던 현대차의 문화와는 달리 슈라이어 부사장은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기아차 해외디자인거점들을 모두 관장하며 차별화된 기아차만의 독자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게 한다.
 


3. 기아차 디자인 방향 제시

 

2007년 4월 기아차는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개최한 디자인 세미나에서 '직선의 단순화(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는 기아차의 미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했다.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라인을 만들어 내겠다'는 이 명제는 이후 출시된 기아의 신차들이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중요한 지침이 된다. 그리고 200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KND-4, 큐(Kue)를 통해 가시화된다.

 

 

 

KND 4

Kue

 

 

 

 

4. 디자인 기업 PR 광고

 

기아차는 2007년 디자인을 주제로 한 기업 PR 광고를 하며 '디자인 기아(DESIGN Kia)'를 대내외에 알렸다. '연구도 디자인이다', '영업도 디자인이다', '생산도 디자인이다'라는 3편의 기업 PR광고 카피는 디자인(design)이라는 테마로 전 부문에서 고객을 위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기아차를 표현했다. 기아차 기업PR광고는 '디자인(DESIGN)이란 단순히 차량의 외관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기아만의 브랜드 이미지'라는 의미를 전달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5.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 구축

 

2007년 9월 기아차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건설한 유럽총괄법인(KME) 신사옥에는 기아차 단독의 유럽디자인센터가 자리잡았다. 이어 2008년 6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 기아차 단독의 미국디자인센터도 건설했다. 독일과 미국의 단독 디자인센터 완공으로 기아차는 한국, 유럽, 미국, 일본 등 아시아-유럽-북미를 잇는 글로벌 디자인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한국의 디자인센터는 우선 서울에 위치한 선행디자인연구 부문과 남양의 글로벌디자인센터로서 그 역할을 보다 강화했으며, 유럽(프랑크푸르트), 미국(캘리포니아), 일본(치바) 등 해외 주요 디자인센터는 글로벌 최신 디자인 트렌드 관련 정보 수집 및 현지 소비자들을 위한 디자인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아차는 2005년부터 추진해온 디자인경영을 유럽과 북미 등 해외 현지에서도 공유하게 되었다.
 


6. 패밀리룩 (Family look) 탄생

 

2008년 6월 기아차는 로체 이노베이션을 통해 패밀리 룩을 선보였다. 기아차의 패밀리룩은 호랑이 코와 입을 모티브로 한 라디에이터 그릴의 디자인으로 동물의 인상을 형상화함으로써 제품의 특성을 강조했다. 이빨을 드러낸 호랑이의 코와 입모양처럼 상하단 라인의 가운데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 모양으로 일명 ‘슈라이어 라인’이라고도 불린다. 
  기아차의 패밀리룩은 지난해 프랑크푸르트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키(Kee)에 최초로 적용됐으며, 올해 뉴욕모터쇼에서 선보인 콘셉트카 쿱(Koup)에도 적용됐다. 양산차로는 로체 이노베이션에 이어 포르테와 쏘울 등에 적용됐고 앞으로 출시될 모든 제품에 이를 적용함으로써 기아차만의 패밀리룩을 완성할 계획이다. 기아차 정의선 사장은 '호랑이 모양의 라디에이터 그릴은 처음으로 구체화 된 기아차만의 디자인 요소'라며,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 로고의 조합을 통해 기아차의 패밀리룩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7. 디자인경영 생활화

 

2008년 4월, 기아차는 디자인 슬로건을 각종 사무용품들과 문서 서식에 적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디자인경영에 대한 직원들의 공감대 확산에 나섰다. 기아차 디자인 슬로건은 영어 DESIGN의 알파벳 'S'를 호기심을 나타내는 '?'(물음표)로 알파벳 'I'를 창의적 아이디어를 나타내는 전구로 표현했다. 이는 고객의 생활에 끊임없는 물음을 던져 보다 나은 가치를 창출하고자 하는 기아차의 미래 경영철학을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디자인 슬로건이 적용되는 분야는 '명함', '종이컵', '결재판', '서류철', '봉투' 등 업무상 자주 사용하고 접하는 사무, 생활용품들과 이메일 개인서명 양식, 전산문서 양식, 보고서 표지 양식 등 각종 문서 서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로써 기아차는 그 동안 추진해온 디자인경영의 성과와 창의적 마인드를 직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보다 차별화되고 강화된 기아 브랜드를 내부적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Ⅴ 디자인 혁신 기업의 조건과 기아자동차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디자인 혁신 기업이란 디자인이 제품 개발을 주도하고 기획, 생산, 마케팅 등 가치사슬 전체에 관여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하고 디자인 선진 기업의 사례를 통해 디자인 리더십, 디자인 조직, 제품 및 서비스, 지원 인프라 4가지 측면에서 디자인 혁신 기업이 되기 위한 조건을 아래와 같이 도출했다.

 

 

 

 

본 연구에서는 상단에 제시한 모델을 기초로 ①디자인 리더십, ②디자인 조직 - 우수한 디자인 인력, ③제품 및 서비스 - 디자인 철학, ④지원인프라 -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중심으로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세부 내용을 하단에 제시한 바와 같이 살펴보도록 하겠다. 관련 홈페이지, 웹문서를 바탕으로 한 본 연구의 연구방법상 그 깊이에 한계가 있음을 미리 밝혀둔다.

 

디자인 혁신 기업의 조건

본 연구 [ 기아자동차 ]

디자인 리더십

최고경영진의 디자인 마인드

정의선 기아차 사장

디자인 책임자 [CDO]의 재량권

디자인 조직

우수 디자인 인력

CDO 피터 슈라이어

다양한 분야의 협업

 

제품 및 서비스

디자인 철학

‘직선의 단순화’, 슈라이어 라인

지원인프라

디자인 평가 시스템

 

도전 정신과 창의성

기업문화로써의 디자인 경영

 

 

 

 

 

1. 최고 경영진의 디자인 마인드, 디자인 책임자 [CDO]의 재량권

 

2005년 2월 기아차 사장으로 취임한 정의선씨는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임직원에게 디자인 경영을 주문했다. 기아차가 지속적인 성장과 도약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대차와 차별화된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기아차는 정의선 사장의 주도 아래 2005년부터 디자인경영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첫 실험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이었다. 천문학적 연봉과 특별대우를 받는 ‘얼굴마담’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등 주변에서 회사 내.외부에서 우려가 컸지만 정 사장은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담당 부사장으로 앉히고 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 기아차 해외 디자인 거점까지 관장하도록 하였다. 현대차, 기아차는 디자이너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경영진들이 한마디씩 하면서 전혀 엉뚱하고 색깔 없는 차로 만들어버리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정 사장은 슈라이어에게 디자인에 대한 전권을 맡긴 것이다.

 

 

정의선 기아차 사장 (좌측)

또한 정사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유럽디자인 센터를,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 미국 디자인센터를 열었다. 디자인 경영을 해외 현지와 공유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또한 브랜드 경영팀을 신설한 데 이어, 디자인 슬로건을 각종 사무용품과 문자 서식 등에 적용해 디자인 경영에 대한 사내 공감대 확산을 주도했다.

2008년 디자인 경영이 전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도 성과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사장은 “경계를 늦추지 않고 디자인 경영에 가속도를 내겠다. 오는 2010년까지 체계적 브랜드 관리 및 평가시스템을 구축하겠다.”라고 밝혔다.


  한 전문가는 정 사장의 피터 슈라이어 영입을 “한마디로 최근 기아가 한 결정 중 가장 잘한 일이다. 자동차회사는 개발 생산과 판매로 크게 조직이 구분된다. 현대기아는 개발생산 부문이 판매 부문에 비해 크게 권한이 없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일관성 없는 모델을 개발해 낼 수 없다. 피터 슈라이어는 디자인 부문에서라도 중심을 잡고 일관성을 만드는데 충분히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제품을 통해 보여 주었다.”라고 하면서 그러한 결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겠지만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던 기아자동차에게 디자인경영이라는 기치를 내 건 것은 아주 좋은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정 사장이 영입한 피터 슈라이어는 한 인터뷰에서 "최근 고유가와 관련해 원가절감을 주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정 사장이 엄청난 책임감을 갖고 일에 매진하고 있음을 느꼈다"면서 "감성적이면서도 매우 논리적인 경영자"라고 말했다. 또한 자신이 디자인계에서도 차의 크기를 줄이고 불필요한 것은 없애는 '단순함'이 화두가 되고 있다고 설명하자 정 사장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단순한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알고 있다며 공감을 표시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아울러 정 사장이 주도한 MS와의 전략적 제휴에 대해서는 "젊은 경영자의 패기가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핵심임을 느낀 일이었다. 단순 기술적 제휴가 아니라 기아차 실내 디자인의 혁명이 진행될 수 있는 전기로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 우수 디자인 인력 - CDO 피터 슈라이어

 

국내 자동차 디자이너 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디자이너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기아차는 세계적인 디자인 트렌드를 선도할 책임자가 필요했다. 고심 끝에 기아차는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CDO. Chief Design Officer)으로 영입했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

 

그는 1994년부터 2002년까지 아우디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 있으면서 아우디에서 A2를 시작으로 A3, A4, A6, A8 등 아우디 전 라인업을 아우르며 디자인에 참여했고 아우디 최고 히트작인 TT와 TTS를 디자인하며 최고 디자이너로 각광받았다.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아우디의 변혁을 이끌면서 “기술과 성능뿐이던 아우디에 디자인이란 최고의 무기를 들려 주었다.”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2002년부터는 폭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역임하면서 골프 5세대 모델과 제타, 파사트, 뉴비틀, 이오스 등 디자인을 담당한 자동차 디자인계의 거물이다. 
 

 

 

아우디 TT

폭스바겐 뉴비틀

 

기아차 합류 이후 그는 2007년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 큐(KUE),익씨드(ex_cee’d). 서울모터쇼에서 공개된 컨셉트카 KND-4 등과 첫 양산차 모델인 모하비 등을 내놓았다. 이들 모델들은 모두 ‘직선의 단순화’라는 디자인 방향성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동시에 디자인 부분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직선의 단순화란 화려함보다는 보면 볼수록 우러나오는 자동차 미학을 강조한다는 의미”라면서 “최근 선보인 기아차의 차량들에서 기아차만의 정체성이 확인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글로벌 경기 침체와 현대차와의 경쟁을 성공적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평가되는 뉴모닝, 포르테, 로체 이노베이션, 글로벌 히트작으로 떠오른 쏘울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그는 기아차의 디자인 경쟁력에 대해“아우디, 폭스바겐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런 역사로 그들만의 브랜드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기아차는 현재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그는“만들어 간다는 것, 변화해 간다는 것 자체가 경쟁력”이라며 “기아차는 기아차만의 브랜드로써 시장에 새롭게 얼굴을 비춰갈 것”이라고 강조한다. 
  부임 이후 성과에 대해 어떻게 ‘아니다’고 말하겠는가? 라고 하면서도“지금 기아차 디자인 역사는 얇은 책 한 권에 불과하지만 2010년이 되면 기아차 디자인 역사의 분량은 배가 될 것”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아울러“한국인들이 아직 자동차 디자인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라는 그는 “현재까지는 선택의 폭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취향이나 디자인에 대해 개방된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점차 변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속 적자를 내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기아차는 슈라이어 부사장이 디자인 총괄로 부임하면서 달라졌다. 마치 20여 년 전 신차 실패와 적자로 허덕이던 아우디를 구했듯 그는 이번에도 창조적인 디자인으로 회사를 구해낸 것이다.

그는 디자인은 기업 비전과 전략을 세워내는 데 가장 효과적인 툴(도구)이며 디자인은 기업 브랜드에 선명한 색을 입혀준다고 강조한다. 슈라이어 부사장 설명대로 기아차는 지난 수십 년간 그야말로 '무난한 차'를 만들어왔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성능이 무난한 차들은 어느 정도 팔렸지만 사람들은 기아차를 탄다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지도, 내세우고 싶어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기아차를 탄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는 “기아차로 오기 전에 유럽에는 기아차가 참 없구나, 안 팔렸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없었던 것이 아니라 꽤 있었어요. 다만 눈에 안 보였을 뿐이었죠. 기존 기아차는 특유한 색깔이 없어 수많은 차 속에서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봐도 기억나지 않았고,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라고 하면서 그 동안 기아차 디자인이 지나치게 무색무취였다고 지적했다.

 

기아차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작업은 기아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이었다. 모하비로 보여준 그의 디자인 컨셉트 '직선의 간결함'은 뉴모닝, 로체이노베이션, 포르테, 그리고 쏘울로 완성됐고 사람들은 새로운 기아차에 열광했다.

 

특히 그는 쏘울을 자랑스러워한다. 쏘울을 '한국 최초 이모셔널 카(Emotional Car)'라고 칭했다. 그에게 이모셔널 카는 제원이나 가격, 성능을 보고 고르는 차가 아니라 딱 보자마자 '사고 싶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차다. 그냥 디자인만 봐도 사고 싶은, 이를테면 BMW 미니나 아우디 TT 같은 차로 자동차 회사에 이런 차 한두 대 정도는 꼭 필요하다면서 쏘울이 그 일을 해냈다고 자평했다. 사실 쏘울은 젊은 층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반듯한 직선이 인상적인 이 귀여운 박스카는 한국차로써는 이례적으로 다양한 컬러를 입고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New Morning

Soul

그는 2년여에 걸쳐 기아차 디자인의 변신을 주도해 왔던 그가 젊음을 표방한 기아차만의 '디자인 차별화'와 글로벌 브랜드로서 기아차가 나아갈 디자인 방향을 제시했다. 기아차는 미래를 위해 반드시 현대차와의 차별화가 필요한 상황. 기아차도 디자인에서 그 해법을 찾고 있는 만큼, 디자인 총괄 책임자로서 그의 해답은 다음과 같다. 

  그는 현대차가 큰 형님(Big brother)인 것은 맞다고 인정하면서 반면 기아차는 젊고 현대차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에 '젊고 신선하고 멋지면서도 단순함'이라는 패밀리룩 콘셉트를 잡았다고 밝혔다. 자동차 디자인에서 패밀리룩의 구축은 자사의 모든 라인업에 디자인 공통분모를 심어 독자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즉, 디자인에서만큼은 현대차의 그늘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결국 이는 로체이노베이션, 포르테, 소렌토R 등을 통해 실현되었다. 
 

 

 

 

 

 

 

 

 

 

 

 

 

 

 

 

 

 

 

 

 

 

 

 

 

 

 

 

3. 제품 및 서비스 - 디자인 철학

 

1) 패밀리룩 (Family Look)

패밀리룩이란 같은 회사에서 생산하는 일련의 제품에 일관된 디자인을 적용하는 것으로 자동차 메이커의 DNA라고 할 수 있으며 누가 봐도 한눈에 해당 업체의 모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세계적인 자동차 업체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패밀리룩을 적용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들이 패밀리룩을 적용하는 것은 수많은 업체들끼리 경쟁하면서 각 사의 독특한 디자인철학을 통해 경쟁업체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다. 패밀리룩을 통한 디자인 일관성으로 각 업체들은 추구하는 방향과 정체성을 나타낸다.
 

BMW

 

 

 

 

 

7 시리즈

M6

X5

 

 

 

 

PEUGEOT

 

 

 

 

 

207

407

807

 

 

 

 

Audi

 

 

 

 

 

R8

A8

S4

 

예를 들어 BMW는 두 개로 나눠진 라디에이터 그릴이 사람 신장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키드니 그릴(Kidney Grille)이라고 이름 붙인 패밀리룩을 적용하고 있다. 키드니 그릴은 1931년 2인승 로드스터에 최초로 도입됐고,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 소개된 신형 303시리즈에 적용된 이후 BMW 대명사가 됐다.
  푸조는 '펠린 룩(Feline Look)'을 이어오고 있다. 고양이과를 의미하는 펠린은 말 그대로 고양이의 우아함과 날렵함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말한다. 푸조는 모든 모델에 고양이 눈을 연상시키는 크리스털 헤드라이트를 적용해 디자인 일관성을 지키고 있다.

아우디는 범퍼까지 내려오는 대형 라디에이터 그릴과 사각형의 헤드램프를 패밀리룩으로 채택하고 있다.

'패밀리룩'은 한국 자동차 메이커의 끊이지 않는 화두였다.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은 국산 자동차들도 하루빨리 패밀리룩을 이뤄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나라 자동차 디자인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다고 한 목소리를내왔다. 그렇다면 자동차에는 왜 패밀리룩이 필요한 걸까?

패밀리룩은 마케팅의 일부다.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선택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그 마케팅으로 인해 더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굳이 패밀리룩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특히 패밀리룩으로 인해 발전적인 디자인을 하기 힘들어지고 그것이 판매 감소로 이어진다면 패밀리룩은 독이 된다.
 

국내 완성차 메이커의 맏형인 현대차가 베라크루즈, 제네시스, 뉴 에쿠스에는 패밀리룩을 적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를 공식화하지 않았고 또한 굳이 소형차들에 새로운 패밀리룩을 급하게 적용하지 않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로 인한 결과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사가 오래된 자동차 브랜드들이 자신만의 패밀리룩을 유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패밀리룩이란 1~2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HYUNDAI

 

 

 

 

 

베라크루즈

제네시스

뉴에쿠스

 

이런 의미에서 국내 자동차 메이커중 본격적으로 패밀리룩을 시작한 곳은 기아차다. 구체적인 디자인 방향성이 제시된 것은 2007년 4월. 한국산업디자이너협회가 주최한 디자인 세미나에서 디자인 총괄 부사장은 슈라이어는 기아차의 미래 디자인 방향성을 ‘직선의 단순화(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라고 발표했다.

 

기아차는 로체이노베이션, 포르테, 소렌토R, 쏘울, 오피러스 프리미엄 등에 일명 `슈라이어 라인'을 적용했다. 슈라이어 라인은 호랑이 코와 입을 형상화해 라디에이터 그릴에 적용한 것으로, 슈라이어 라인의 그릴을 보면 누구나 그 차가 기아차임을 알게 했다. 패밀리룩을 통한 디자인 일관성으로 기아차가 추구하는 방향과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다. 슈라이어 라인이 적용된 모델들은 각 세그먼트의 기존 기아 신차와는 달리 시장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는데 이에 대해서는 “디자인 경영의 성과”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KIA

 

 

 

 

 

로체이노베이션

포르테

소렌토 R

 

 

4. 지원 인프라 - 도전정신과 창의성

 

   시장 환경을 살펴보면, 과거에 기능 및 편익이 중요시되던 것이 점차 감성 및 디자인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한편 전략적 측면에서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확고한 브랜드이미지를 통해 시장에서의 강력한 고객흡입력을 확보하고 있다. 벤츠의‘프리미엄’, BMW의‘젊고 역동적인 성능’, 볼보의‘안전’이 그것이다. 기아차도 이러한 고유 핵심역량을 개발하기 위해 시장의 경향, 성공가능성, 자체의 능력과 잠재력 및 당사 브랜드 방향성(즐겁고 활력을 주는)을 다각적으로 분석했고 그 결과 디자인을 미래 핵심 전략으로 선정했다.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은 기반구축을 위한 활동이 시행됐던 1단계,‘디자인 경영 추진기반 확립기’(2005~2006년)와 다양한 경영활동이 추진되고 구체적 성과가 나타나는 2단계, ‘디자인 경영 본격 추진기’(2007년~현재)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1단계에서는 우선 디자인을 미래핵심역량으로 선정하고 경영 전략화해, 시장 경쟁력으로 전환하고 경영혁신의 도구로 활용하기 위한 세부 추진전략이 수립됐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자인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또한, 사내 전 부문에서 디자인 중시문화를 조성하고자 CDO(Chief Design Officer) 체제를 도입해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초대 CDO로 영입했다. 그 외에도 선행 디자인 연구조직을 신설하고, 역동적이며 활기찬 브랜드 방향성을 구현하기 위한 디자인을 제시하는 등의 전략을 수행했다.


  2단계에서는 디자인 경영을 소재로 한 커뮤니케이션이 강화됐다. 대외적으로는 디자인을 주제로 한 기업광고를 했으며, 대내적으로는 모든 임직원이 일상에서 디자인을 경험할 수 있도록‘생활에서 느끼는 Design & Brand 문화 캠페인’을 전개했다. ‘직선의 단순화’와 더불어‘Dynamic, Fun, Sporty’라는 디자인 컨셉이 구체화 되어 양산 차에 적용됐고, 기아차만의 공통된 이미지를 나타내는 패밀리룩이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 등에 적용되어 외관상의 통일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단순히 디자인을 잘하는 회사보다는‘항상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창의적, 혁신적 기업’으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는 제품이 아닌 기업문화, 겉모양이 아닌 생각의 방식, 그리고 디자이너에 국한되지 않은 전 임직원의 창의적 사고와 행동을 포괄하는 의미다. 따라서 변화와 혁신의 마인드(Design Thinking)와 창의적인 행동의 방식(Design Acting)을 33,000여 명의 모든 임직원이 함께 공유하고 내재화해 창의적인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에 가장 중점을 두고 있다.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열린 기아의 새 차 ‘쏘울’ 발표회. 정의선 기아차 사장이 기자에게 내민 명함 뒷면엔 빨강색 바탕에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기아차 브랜드 컬러는 빨간색이다. 영어 ‘DESIGN’(디자인)을 변형한 것인데, ‘S’는 호기심을 나타내는 ‘물음표’로, ‘I’는 창의성을 보여주는 ‘전구’로 각각 표현돼 있었다. ‘DESIGN’이라는 글씨가 회사 이름인 ‘KIA’보다 컸다.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 의지와 철학을 명함에 앞세웠다. 물음표는 차를 향한 호기심을 표현했다. 느낌표는 바로 그 해답이다. ‘왜’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와’라는 고객 감동을 주자는 경영 의지를 작은 명함에까지 형상화한 것이다.

 

또한 기아차 기업 PR 광고는 '디자인(DESIGN)'이 자동차 디자인뿐만 아니라 생산, 연구, 영업 등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광고는 모든 분야에서 고객을 위해 끊임없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design) 기아차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마인드를 보여줬다.
 

   기아차는‘디자인 기아’로의 변화를 더욱 강화해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만족하게 하는‘디자인가치’, 활기차고 역동적인 기업으로 고객에게 신뢰받는‘브랜드가치', 창의적 기업으로의 변화를 통한‘기업문화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 이성과 감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디자인 가치' ▲ 젊고 역동적인 기아 브랜드로 고객에게 신뢰받는 '브랜드 가치' ▲ 창의적 기업으로서 변화를 이끌어가는 '기업문화 가치'라는 세가지 핵심 가치 창출을 통해 디자인(design)을 통한 기아차의 고객 최우선경영을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기아차만의 독특한 가치를 만들어내 고객에게 즐겁고 놀라운 자동차생활의 경험을 제시하고, 고객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고객 최우선경영을 실천할 것이며, 이러한 패러다임은 국제 시장으로 확산되어 모든 임직원이 함께 하고, 전세계 고객들로부터 사랑 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기아차의 디자인경영은 제품의 디자인에만 치중하는 좁은 의미의 디자인경영이 아니라 창의적인 사고를 중심으로 기업문화를 바꾸는 디자인경영, 즉 기업을 디자인하는 경영전략이다. 품질의 시대를 넘어 디자인의 시대를 맞은 세계 자동차 산업에서 기아차는 디자인경영을 바탕으로 글로벌 탑 브랜드로의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다.

 

 

 

 

 

 

 

 

 

 

 

 

 

 

 

 

 

 

 

 

Ⅵ 기아자동차 디자인 경영의 성과

 

  기아차 슈라이어 라인의 본격적인 출시는 2008년 6월(로체이노베이션), 8월(포르테), 9월(쏘울)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가지 변수가 존재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해당 기간 자동차 판매량, 시장점유율, 증권사 보고서, 각종 프레스 자료를 근거로 ‘디자인 경영’의 성과를 가늠해보도록 하겠다.

 

 

▣ 차량 메이커별 국내 판매 추이 (단위 : 만 대)

 

 

2005년

2006년

2007년

2008년

증감율

현대

51.7

58.1

62.5

57.1

-8.6%

기아

26.7

27.1

27.2

31.6

16.2%

GM대우

10.8

12.8

13.1

11.7

-10.7%

르노삼성

11.5

11.9

11.7

10.2

-12.8%

쌍용

7.6

5.6

6.1

3.9

-36.1%

 

 

 

▣ 차량 메이커별 국내 승용차 시장 점유율 (%)

 

 

2004

2005

2006

2007

2008

현대

45.5%

45.5%

45.7%

46.5%

45.8%

기아

23.0%

23.4%

23.6%

22.6%

28.8%

GM대우

10.5%

10.3%

12.0%

12.9%

10.7%

르노삼성

9.6%

12.6%

12.7%

11.9%

10.6%

쌍용

11.4%

8.3%

6.0%

6.1%

4.1%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으로 국내 모든 완성차 메이커들의 2008년 판매량은 2007년 대비 감소하였지만 기아차만 두 자릿수 증가세를 나타내었다. 슈라이어 라인 적용 모델들이 포함된 승용차 세그먼트에서도 기아차만이 점유율이 증가하였다.

 

모닝은 지난 한해 전년대비 196.4%가 늘어난 8만4,177대가 판매되는 등 10년 만에 경차 전성시대를 부활시켰다.

2008년 6월 출시된 로체이노베이션은 출시 후 연말까지 총 3만273대, 월평균 4,300여대씩 판매되며 월 평균 2,800대에 머물렀던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0% 이상 성장했다. 르노삼성의 SM5를 제치고 현대차의 쏘나타에 이어 중형차 시장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또한 기아차 중형차 모델로는 최초로 수출 월 1만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2008년 8월 말 출시된 프리미엄 준중형세단 포르테는 연말까지 1만7,669대가 판매되며 준중형시장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포르테의 등장으로 지난해 월 1,300대 수준으로 저조했던 기아차의 준중형차 판매가 월 3,500대로 세배 가까이 늘었다. 
  2008년 9월 출시된 CUV 쏘울도 12월까지 4개월간 9,574대가 판매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쏘울은 한국 자동차시장에 지금껏 존재하지 않던 신개념 CUV이며 기아차 디자인경영의 결정체로 평가 받고 있다.

 

덕분에 기아차는 2008년, 3년 만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그 규모가 3,000억원에 달했다. 또한 마의 장벽으로 여겨졌던 내수 시장 점유율 30%를 넘어섰고 2008년 11월에는 15년 만에 35%를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 기아차 중요 경영지표 추이 (단위 : 억 원)

 

 

2005

2006

2007

2008

매출액

     159,994

     174,399

     159,485

     163,822

영업이익

         740

- 1,253

- 554

       3,085

순이익

6,809

393

136

1,138

 

한편 2009년 1분기의 경우 국내 자동차 수요가 -15.2% 감소한 가운데 기아차는 +6.4% 성장세를 보였다.

 

▣ 기아차 내수시장 점유율 변화 (%)

 

 

기아차의 디자인 경영은 외국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 미국은 2009년 2월까지 16개월 연속으로 판매가 줄고 있고 6개월 연속 판매 대수가 100만대 이하를 기록했다. 80년대 초 2차 석유파동 당시와 비슷한 수준이다. 기아차는 이런 상황에서도 외국에서 선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에 따르면, 지난 2009년 3월의 경우 미국차 브랜드와 일본차 브랜드가 각각 -42.0%, -36.7%의 판매 감소를 기록했다. 반면 기아차의 판매 감소는 -0.6%에 불과했다. 현대차의 판매 감소율 -4.8%와 비교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2009년 1분기 기준으로는 미국 자동차 수요가 전체적으로 -38.4%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차 판매는 +1.0% 성장세를 보였다. 기아차는 2009년 1분기 6만8893대를 수출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1% 증가했다. 시장점유율도 2%대에서 3%대로 끌어올렸다. 특히 쏘울이 미국 시장에서 첫 선을 보이자마자 1,200대가 팔린 점이 고무적이다. 경쟁 모델인 도요타의 싸이언이나 BMW의 미니가 월 2천~3천대가 팔리는 점을 고려할 때 양호한 실적으로 보인다. 기아차는 2009년 6월 신차 포르테를 수출한다. 이를 위해 지난해 수출 재고 물량을 모두 처리하는 등 해외딜러 조직망을 정비하는 데 많은 투자를 했다. 기아차는 딜러망과 수출 재고를 정비한 효과가 올해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기아차 미국시장 점유율 변화 (%)

 

전문가들의 평가도 우호적이었다. 한국자동차산업학회 회장인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아차가 가격경쟁력을 가진 소형차 부문에서 디자인은 상당히 중요한 차별점”이라며 “기아차가 디자인을 잘 치고 나갔다”고 평가했다. 모 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자동차 업체들의 시험 시장으로 떠올랐을 정도로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이 인정한 만큼 기아차 디자인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아차는 생산량의 70%를 수출한다.

 

기아차에 디자인 경영의 의미는 판매에서의 중요성 이상이다. 현대차의 그늘에 존재해온 기아차가 새로운 브랜드 가치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모 증권사 기업분석팀장은 “기업 인수합병으로 플랫폼이 흡수통합될 경우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되는 데까지는 통상 15년 정도가 걸린다”며 “기아차가 10년 만에 새로운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 동안 기아차는 현대차보다 좀더 싼 점으로 시장에서 생존해왔다. 그러면서도 기아차의 준중형과 중형차는 현대의 아반떼와 쏘나타에 밀려 거의 힘 한번 써보지 못했다. 하지만 로체와 포르테의 선전으로 기아차의 경쟁력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게 됐다. 이런 이미지 변신 덕분에 기아차가 2009년 3월 발행한 4천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공모에는 무려 8조원이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문이 몰려 기아차가 환율을 잡아냈다는 말까지 나왔다.

 

 

▣ 기아차 주가 변화 (최근 6개월 : 2008년 12월 ~ 2009년 6월)

 

 

 

 

  이러한 기아차의 움직임에 투자자들도 기아차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하고 있으며, 수치에서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증권사 기업 분석 보고서에서 주식 보유, 매수, 목표주가 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 증권사별 기아차 실적 예측

 

2009년 5,6월 기준

매출액

영업이익

순이익

 

2008년

     163,822

       3,085

       1,138

NH투자증권

2009년(E)

     164,546

       5,346

       5,068

 

2010년(E)

     171,550

       6,246

       6,545

 

2011년(E)

     175,111

       6,776

       7,193

신영증권

2009년(E)

     161,194

       6,126

       5,843

 

2010년(E)

     175,952

       8,475

       8,192

 

2011년(E)

     193,709

      10,721

      10,453

굿모닝신한

2009년(E)

     147,927

       3,904

       3,377

 

2010년(E)

     166,500

       7,907

       6,348

 

2011년(E)

     189,432

      11,104

       8,882

한화증권

2009년(E)

     171,194

       4,622

       3,717

 

2010년(E)

     180,815

       6,329

       5,089

 

2011년(E)

     189,277

       7,571

       6,150

 

 

그러나 디자인 경영 추진에 있어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기아차 관계자의 말처럼 “현대차와 형제차란 인식을 넘어 기아차만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 2008년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기업 부문 대통령표창 수상
 

기아차는 지식경제부가 주최한 '2008 대한민국 디자인대상' 시상식에서 디자인경영 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디자인 부문에 있어 우리나라 최고 권위의 상으로 디자인(design)을 회사의 미래 핵심역량으로 선정하고 이에 따라 활발히 추진해온 기아차 디자인경영의 성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아차 정의선 사장은 "2005년부터 추진해온 디자인 경영이 결실을 맺은 것 같습니다. 제품뿐만 아니라 경영활동 전반에 창의적인 디자인 마인드를 확산시킬 생각입니다. "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 ‘쏘울’에 쏟아지는 찬사
 

기아차 디자인 경영의 야심작 쏘울은 2009년 3월 한국차 최초로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2009 레드닷 디자인상에서 'Honorable Mention'상을 수상했다. 또한 4월에는 미국 자동차 전문미디어인 워즈오토(Ward's Auto)의 '올해의 인테리어상-가장 멋진 인테리어(Grooviest Interior)'에 선정되는 등 개성 있는 디자인을 해외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1. 미국 최대 방송사 중 하나인 MSNB는 연비가 우수한 3개 차종을 소개하면서 포드 퓨전 하이브리드, 마쯔다3와 더불어 소형차 부문에서는 기아차 쏘울(Soul)을 추천하였으며 이날 방송에 출연한 미국 컨슈머리포트誌 자동차 총괄책임자인 데이비드 챔피언(David Champion)은 "기아차의 쏘울은 우수한 연비와 더불어 운전이 즐거운 차량, 우수한 인테리어, 넓은 실내공간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가장 똑똑한 소형차 (Sensible Small Car)"라고 평가했다. 컨슈머리포트誌는 품질신뢰도, 안전, 성능 등을 종합 평가하여 그 우수성이 입증된 차량만 철저하게 외부에 추천하고 있으며 컨슈머리포트지의 현지 시장에서의 신뢰도 및 권위, 시장 영향도로 보아 기아차의 브랜드 인지도 향상 및 쏘울 차량의 판매증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 미국 USA TODAY誌에서는 "쏘울이 기아차의 새로운 이미지를 정립하고 있다"며 "기아차 쏘울이 베스트셀러 카에 등극할 것(KIA Soul becomes a hot seller)"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최대 중고차 평가기관인 켈리블루북 (Kelley Blue Book)의 잭 네라드(Jack Nerad) 편집장의 말을 인용하면서 "기아차가 현재까지 가격 및 가치 측면에서 판매되어 왔다면 쏘울은 멋진 스타일링으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고 밝혔다. 
 


3. 기아차 쏘울 미국 TV 광고가 동물권익보호단체인 '동물을 인도적으로 대하는 시민 모임(PETA)'로부터 '좋은 광고상(GOODY AWARD)'에 선정된바 있으며 미국 텍사스 자동차 전문기자협회(TAWA)가 실시한 '2009 스프링 챌린지(2009 Spring Challenge)'에서 쏘울(Soul)이 '기자단의 선택-2009 최고 가치상(Best Value in the Writers’s Choice)'에 선정되었다. 
 

 


4. 미국의 유력 자동차 평가기관인 켈리블루북이 선정한 '5개 최상의 선택차종(5 Great Deals)'에 선정되었으며 미국 자동차 전문지인 '파퓰러 메카닉스'에서 실시한 비교테스트에서도 경쟁모델인 싸이언xB와 닛산 큐브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는 등 호평을 이어가며 화제가 되고 있다. 
 


5. 세계적 잔존가치 평가기관인 ALG(Automotive Lease Guide)社가 최근 발표한 잔존가치 보고서 5/6월호에 따르면, 기아차 쏘울은 3년 후 잔존가치 평가에서 56%를 기록해 경쟁차종인 닛산 큐브(54%)를 앞질렀으며 사이언 xB(57%)와 근소한 차이를 보이는 등 미국 박스카 시장에서 주목 받는 신차로 떠올랐다. 특히, 이 수치는 이번 ALG社 잔존가치 평가 중 쏘울이 속한 미드 컴팩트 세그먼트 평균 점수인 48%보다 크게 높은 결과로 이번 평가를 통해 쏘울의 우수한 품질과 상품성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잔존가치(Residual Value)란 신차를 일정 기간 사용 후 예상되는 차량의 가치를 산정한 것으로, 잔존가치가 높을수록 중고차 가격 역시 상승하며 이는 신차 수요로 연결되어 브랜드 가치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출시 직후 신차에 대한 3년 후 중고차 잔존가치 예측 평가는 해당 신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도를 보여주는 중요한 평가결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 시장에서 쏟아지고 있는 “쏘울”에 대한 찬사는 판매량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 쏘울 출시 후 미국 판매 추이 타 모델 비교

▣ 쏘울 국내 및 해외 판매 추이

 

 

 

  CUV인 쏘울을 SUV인 모하비, 투산, 대형 승용차인 제네시스와 직접 비교하기 어려우나 상단 좌측에서 볼 수 있듯이 출시 이후 판매 속도가 가장 빠르며, 상단 우측에서는 해외 판매량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2009년 2월 미국 시장에서 출시된 쏘울은 2월 34대, 3월 1,246대로 기대 이하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4월 3,228대를 기록하면서 미국시장에서 유일한 경쟁 차종이라 할 수 있는 도요타의 Scion xB를 추월했다. 쏘울이 신규 모델(기존 모델의 대체 모델 아님)이며 100년 이상의 자동차 역사를 가진 미국시장에서 그것도 자동차 산업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 정도 호응을 이끌 어 낸 것, 그리고 검증된 모델인 도요타 Sicon xB를 추월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 기아차 쏘울과 도요타 Scion xB 판매 추이 비교

 

 

 

한편 쏘울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 9월 출시 예정이다. 쏘울이 속한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중국 내 시장 비율은 2008년 15% 수준이었으나 2009년 들어 20%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쏘울의 선전이 기대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른 감이 있지만 쏘울이 선진 시장과 이머징 시장에서 모두 사랑 받는 월드카가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중국 내 Cross over 시장 추이

 

 

 

 

 

 

 

 

 

Reference

 

기아차 2004년 경영실적

기아차 2005년 경영실적

기아차 2006년 경영실적

기아차 2007년 경영실적

기아차 2008년 경영실적

기아차 2009년 1분기 경영실적

기아차 2009년 지속가능 보고서

2009년 1분기 자동차 산업 리포트(2009),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투자전략 보고서(2009), 한화증권, 동부증권, 부국증권 NH 투자증권, 신영증권

하송, 유한호(2008), 디자인의 진화와 기업의 활용 전략, 삼성경제연구소

하송, 홍선영, 이동훈(2008), 디자인 혁신을 위한 7계명, 삼성경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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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bizweek.com (한경비즈니스)

http://www.fnnews.com (파이낸셜뉴스)

http://kari.hmc.co.kr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http://www.global-autonews.com (글로벌 오토 뉴스)

http://news.mk.co.kr (매경이코노미)

http://news.hyundai-kiamotors.com (현대.기아차 그룹 뉴스플라자)

http://www.hankyung.com (한국 경제 신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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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SNU

국제금융사기 피해 예방 2006년 국가 정보원 배포 자료

myPPT 2012. 9. 30. 02:26
--

















































































--0838-06-0358-01 
국제금융사기 
피해 예방은 이렇게
국제금융사기 
피해 예방은 이렇게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역· 
금융 등 상거래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국제 
금융사기조직들도 국가와 지역을 초월하여 더욱 다양한 
방법으로 사기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인 우리나라도 국제사기단들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으며 그 대상도 기업인을 비롯하여 가정 
주부·유학생·해외교포 등 일반인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국제사기조직들은 비자금 이체를 빙자한 거액 사례금 제공 및 
외국 로또복권 당첨 미끼 등으로 유혹하고 있는데 아국인들의 
일확천금 기대심리 등으로 해마다 사기 피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고 있는 국제금융사기는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범인이 정체불명의 외국인 
이라서 사법 당국의 추적이 어렵고, 피해자들도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아 피해규모 파악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이에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는 우리 기업·국민들의 
피해 예방을 위해 최근 발생한 국제금융사기 유형별 피해 
사례·수법 및 대처요령 등을 소개한 책자를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본 책자가 날로 지능화·다양화되고 있는 국제금융 
사기로부터 피해를 예방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2006. 9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장 
안 내 문
국제금융사기 소개 / 1 
국제금융사기 최근 동향 / 3 
나이지리아 금융사기 유래·수법 / 6 
아프리카 사기조직 특성 및 활동실태 / 13 
Ⅰ
피해사례 및 사기 수법 / 17 
거액 외국 로또복권 당첨미끼 사기 / 19 
탄자니아 금·구리 수출미끼 사기 / 22 
염색미화 이용 사기 / 25 
모조미화 이용 사기 / 28 
위조 외국채권·증명서 이용 사기 / 30 
입찰 수주·무역거래 이용 사기 / 33 
국내 투자·대출 이용 사기 / 38 
비자금·유산·휴면예금 이체 미끼 사기 / 43 
Ⅱ 
목 차
대처 요령 / 53 
Ⅲ
부 록 / 63 
해외 한국공관 연락처 / 65 
각국의 범죄신고 전화번호 / 75 
KOTRA 해외무역관 연락처 / 77
국제금융사기 소개
70~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일명「나이지리아식 
선불사기」가 각국으로 확산되면서 여전히 국제사기 
범죄의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들 사기조직들은 주로 고위관리의 비자금, 상속인이 
없는 거액유산·휴면예금 등을 해외로 이체할 계좌 
제공시 거액의 커미션을 주겠다는 이메일·편지 등을 
발송한 후 이에 응하는 대상자를 노리고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유럽 
등 세계 각국의 국민들과 기업들이 이들의 꾐에 빠져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IMF 이후 경기 침체기와 외환시장 
개방을 틈타 나이지리아 사기조직들이 집요하게 공략해 
오고 있어 그 피해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3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국제금융사기에 대해 아십니까? 
국제금융사기 최근 동향
최근 들어서는 국제금융사기 범죄 발원지가 서아프리카는 
물론 유럽지역 등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에서 시작된 금융사기가 카메룬· 
가나·베냉 등 인근 국가로 확산되는‘범죄 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나이지리아식 아프리카 금융사기 수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해외거주 조직원을 활용하여 제3국에서 
우편을 발송하거나 스위스·네덜란드 등 유럽 지역에 
본사나 공장이 있다고 속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이러한 전통적인 나이지리아 사기 말고도 신종 
금융사기가 등장하는 등 유형이 점차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국제복권사기단이 거액 해외 로또복권 당첨을 미끼로 회원 
가입을 유도하여 가입비를 받아 챙기는 것은 물론 개인 
신용정보를 다른 범죄조직에게 팔아 넘기기도 합니다. 
국제광물사기단이 금·구리를 국제시가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하겠다며 운송비·보관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거나 다른 물품으로 바꿔치기하는 등 
합법적인 무역거래를 가장한 사기도 적발되었습니다. 
4
국제금융사기단들이 내국인·해외교포와 공모하는 등 
사기수법이 날로 대담해지고 지능화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이라고 밝힐 경우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메일 발송시 우리나라 은행임원·전직 대통령 친인척· 
사업가 등으로 사칭하면서 내국인과 해외 교포들에게 
까지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간혹 국내 범죄조직과 연계, 직접 방한하여 사기 대상자를 
물색하거나 미국·유럽인 및 해외 우리교포를 브로커로 
내세워 내국인의 경계심을 이완시키는 수법도 쓰고 있습니다. 
또한 사기를 치는데 필요한 정부 문서나 은행 서류 
등 관련자료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위·변조하고 
진위 여부를 확인토록 권유까지 할 정도로 대담하고 
치밀하게 속이고 있습니다. 
5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 거액 외국 로또복권 당첨미끼 사기, 탄자니아산 금·구리 수출미끼 사기 등 나날이 
새로운 사기 유형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나이지리아는 1960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28년간 
군부통치를 거치는 과정에서 정치·사회적 불안으로 
경제적 빈곤이 가중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배금주의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고질적인 정치불안과 경제난을 피해 유럽과 
북미로 이주하였으나 구직이 어려워지자 현지 범죄조직과 
연계하여 각종 범죄행위에 가담하게 되었습니다. 
6 
나이지리아 금융사기 유래·수법 
유 래 
.. 나이지리아 전도
이에 유럽과 북미 각국은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대적인 단속과 함께 범죄 조직원 및 불법 
이민자들을 대거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추방위기의 범죄 조직원들은 불법 체류하며 계속 
범행을 자행하거나 제3국으로 진출하여 범죄조직을 
구성, 금융사기 등 더욱 지능적인 범죄행위를 자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나이지리아 범죄조직은 생계형 가족단위 범죄 집단 
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전세계에 걸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국제범죄조직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7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 아프리카 지역은 내전이나 종족·종교 갈등 등으로 정치·경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국내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범죄분석가들은 70~80년대초 나이지리아 당국이 수입 
절차상 필요사항을 허가하는 과정에서의 과도한 권한 
남용 때문에 나이지리아 금융사기가 발생하게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당시 막대한 오일 달러가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 
지리아로 대량 유입되어 넘치는 달러로 인해 정부와 
민간의 구매수요가 급증하게 됨에 따라 막대한 양의 
물자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공무원과의 유착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담당 공무원이 허가권 등을 과도하게 남용하자 수입업자 
들이 뇌물을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불법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사기행각을 자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8 
.. 나이지리아 의회 전경 및 회의 장면
나이지리아 금융사기는 통상 비자금 이체 또는 투자· 
대출 등을 미끼로 일정액의 선불 수수료를 요구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어‘선불사기(Advance Fee Fraud) 
라고 하며 나이지리아 형법 제419조에서 이를 사기죄로 
규정하고 있어 통상「419사기」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이지리아 선불사기는 가나, 카메룬, 베냉 등 
경제적으로 낙후된 서아프리카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이러한 선불사기를 통상 ‘나이지리아 금융사기’라고 
통칭하고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연 1억불 이상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피해자들이 수치심, 당국의 
처벌 또는 범죄조직의 보복 등을 우려, 신고를 기피하고 
있어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이 선불사기 조직들은 어떤 수법을 이용하고 
있을까요? 
먼저 이 선불사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손쉽게 벌 수 있다는 뜻하지 않은 연락(편지· 
FAX·이메일)을 받으면서부터 시작됩니다. 
9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수 법
그들은 정부 고위직 관료 또는 유력인사를 사칭하거나 
믿을만한 공문서 발송 및 수신자부담 전화 제공 
등 각종 사기수법을 동원하여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 
합니다. 
상대방이 믿는다고 판단되면“엄격한 심사를 거쳐 
당신이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연락과 함께 극도의 
신뢰와 보안유지를 당부하며 실명계좌 통보를 요청 
합니다. 
이후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보증금· 
세금·인지대·활동자금 및 뇌물 등 갖가지 명목으로 수 
천에서 수 만 달러까지 요구하기 시작합니다. 
10
극히 일부사람들만 사기로 의심하여 현지 교민이나 
기관을 통해 은밀한 조사를 시도하기도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이 거액의 반대급부에 비하면 선수금은 얼마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송금합니다. 
만일 피해자가 송금을 주저하면 증빙서류를 보여주면서 
현지를 방문하여 물품을 확인시켜준 후 해당 정부 
기관에 선수금을 직접 납부하라면서 현지 방문을 
유도하기 까지 합니다. 
이때 현지를 방문하면 사기조직에게 납치되어 돈을 
강탈당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잃는 사례도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 
11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 최근 거액 외국 로또복권 당첨미끼 사기에 우편이 이용되었습니다.
12 
사기단 주요 사기수법 절차 
① 무차별 서신·메일 등 살포 
정부기관·은행 고위인사다. 
비자금 인출 등 도와주면 사례하겠다. 
인적사항·주소·계좌번호 알려달라. 
② 수신자 관심 
사실일까? 
잘못 보낸 것 아닌가? 
나에게도 이런 행운이? 
③ 신뢰감 획득 
정부기관 증명서 있다. 
직접 확인하고 상담해도 좋다. 
④ 현지방문 유도 
바로 이 물건이다. 
수수료(3~5천불)·착수금이 필요하다. 
⑤ 수수료 등 송금 
(입금 확인후) 
추가수수료(3~5만불) 보내라. 
⑥ 피해자 의심·확인 
(사기단 잠적) 
현지 찾아가면 납치·감금·폭행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사기조직은 마피아나 야쿠자, 
삼합회 처럼 고도로 조직화되거나 엄격한 위계·규율은 
존재하지 않지만 공동체 의식이 강한 범죄조직입니다. 
이들은‘가족’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외부인들이 조직안으로 침투하거나 상세한 조직정보를 
입수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13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조직의 특성 
① 조직원 2~5명 정도의 소규모·폐쇄적 조직으로 조직원 
간에‘한식구’라는 의식으로 똘똘 뭉침 
② 조직원들은 통상 같은 종족이나 부족·학교동창·친구와 
같이 철저하게 검증된 인물로 구성됨 
③ 범행후에는 조직을 일시 해산하고 일정기간이 지나면 
재집결함 
아프리카 사기조직 특성 및 활동실태
14 
④ 역할을 세분화하여 분담하며 범행 전모에 대해서는 조직원 
들에게도 비밀을 유지함 
⑤ 검거된 조직원으로 부터 다른 조직원들에 대한 추가 
정보를 입수하기 어려워 단속기관이 조직의 전모를 밝히는 
데 어려움이 있음 
⑥ 위변조된 여권 또는 신분증을 사용하며, 국적 및 신분을 
세탁하는데 매우 뛰어남 
⑦ 당국의 추적을 피하고 조직 유지·보호를 위해 다양하고 
지능화된 범죄수법과 특히 체류국 법체계의 허점을 이용함 
⑧ 부패한 공무원들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하여 유착관계를 
형성함 
⑨ 조직원들의 교육수준이 높은 편이며 사회경험이 풍부하고 
기본적인 법률지식도 가지고 있음 
⑩ 조직강화를 위해 거액의 돈을 주고 전문가를 특별 채용 
하거나 변호사 등의 자문을 받음
오늘날 나이지리아 외에 코트디부아르, 베냉, 카메룬 등 
다른 아프리카 범죄조직들도 선불사기 등 각종 금융 
사기에 개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나이지리아 범죄조직들이 
선불사기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 나이지리아 금융감독기관은 2003년도에 
개최된 인터폴 회의에서 참가국 138개국중 122개국이 
자국내에서 발생한 금융사기 사건에 나이지리아인들이 
개입되어 있다고 응답한 사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아프리카 금융사기 조직들은 통상 2~5명의 소규모로 
움직이며 이들 중에는 관계당국의 전자메일 추적을 
피하기 위해 전산전문가나 법률 전문가, 회계사 등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 
Ⅰ. 국제금융사기 소개 
.. 나이지리아 선불사기는 서아프리카 주변국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인터넷 발달로 동일 패턴의 사기메일을 불특정 다수에게 
동시에 살포하고 우리 나라도 2000년 이후 무역업자 
뿐만 아니라 주부, 학생 등 일반인들도 거금을 벌 수 
있다는 아프리카 금융사기에 현혹되어 2천만 달러 이상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아프리카 사기조직과 연계된 우리 해외 
교포가 투자를 가장하여 국내 입국, 사기 피해자를 
직접 접촉하거나 내국인이 직접 이들 조직과 공모하여 
사기범죄를 자행하는 등 활동양태가 더욱 지능화·다양화 
되고 있습니다. 
16 
.. 인터넷 서비스가게에서 하루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며 
대상자를 물색합니다.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19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거액 외국 로또복권 당첨미끼 사기 
국제금융사기 수법은 정말 다양합니다. 
국제복권사기단은 실제 존재하는 유명 외국복권회사의 
에이전트를 가장하여 1억달러 이상 거액 당첨기회를 구실로 
회원등급이 높을 수록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며 유인합니다. 
회비는 현금·신용카드 내지는 외국은행이 발행한 수표만 
결제토록 유도하며 연락수단도 전화나 세관통과가 용이한 
국제등기 우편만을 이용토록 하는 등 용의주도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어 구사가 가능한 교포 등을 직원으로 고용하여 
국제전화나 편지, 이메일 등을 통해 대상자를 모집합니다. 
회원가입신청서에 성명·주소 등 개인정보는 물론 신용 
카드 등 금융정보도 기재하도록 요구하고 있어 개인 신용 
정보가 제3의 국제범죄조직으로 넘어가 악용될 가능성도 
매우 높습니다.
06.3 인천 거주 P는 캐나다 밴쿠버 소재 로또복권회사로 
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회원으로 가입하면 등급에 따라 
최고 1억 4천만 달러의 당첨금이 지급된다며 가입을 원할 
경우 가입신청서를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P는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50달러 정도는 당첨금에 
비하면 푼돈이라 생각하고 보내온 가입신청서에 신원 
정보와 함께 가입비 50달러를 송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Australian Lotto 6/45」캐나다 에이전트를 
가장한 사기 집단이었습니다. 
P씨처럼 금융사기라고 의심은 하면서도 소액이라서 
속는 셈치고 캐나다 복권사기단에 송금한 우리 국민들이 
06.1~3월간 하루 10여명씩 1,000여명이나 되고 있는데, 
피해액이 총 10만 달러 정도가 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20
06.3 서귀포 거주 주부 K는「Canadian Lottery Board」
남아공 지역 사무소로부터 42만 달러의 복권에 당첨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고 기쁜마음으로 자신의 주소, 
성명, 전화번호 등을 발송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로부터 당첨금이 남아공화국「First National 
Bank」의 조건부 발행계좌에 예치되어 있는데 송금하기 
위해서는 수수료가 필요하다며 3,000달러를 먼저 보내 
라는 연락을 받고 국제금융사기로 의심되어 당국에 
신고하여 피해를 예방할 수 있었습니다. 
21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로또복권 가입안내서 및 피해자의 가입신청서
06.4 경기 무역회사 G이사는 기업간 전자상거래 사이트 
(B2B)를 통해 탄자니아에서 구리 7,000톤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광고를 낸 사기조직원들과 연락, 잠비아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22 
탄자니아 금·구리 수출미끼 사기 
탄자니아 구리사기단은 구리가 많이 생산되는 잠비아의 
전직광산청장·국회의원들이 탄자니아로 구리를 은밀히 
수출한 것이라고 가장하며 접근합니다. 
탄자니아 금사기단은 콩고 반군들이 자금 확보를 위해 
탄자니아에서 생산된 금을 몰래 빼낸 것이라며 국제시세 
보다 30~40% 낮은 가격으로 판매한다면서 대상자를 
유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해외교포·백인·변호사 등을 내세워 접근, 각종 
위조서류와 보세구역 출입 등을 통해 물건의 존재를 믿게 
만든 후 운송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사취하거나 물건을 
바꿔치기하고 있습니다. 
탄자니아 광물은 채광단계부터 국제광물거래망이 연결되어 
있어 불법거래는 불가능하며 광물수출도 정부의 엄격한 
통제하에 진행되어 개인적인 거래는 허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잠비아에서 G는 이들과 함께 대규모 광산·제련소 견학 
및 화물열차에 적재된 광물을 보고 운송료로 45,000달러를 
지불하였으나 사기로 밝혀져 당국에 신고하였습니다. 
06.3 서울 거주 K는 덴마크 교민 G로부터 탄자니아산 
금 100㎏을 암스텔담에 보관하고 있는데 국제시가의 
60%선에 구매하라는 연락과 함께 탄자니아 금 수출업자 
E를 소개받았습니다. 
K는 탄자니아로 가서 세관 통관시 금인 것을 직접 확인 
하고 금 97㎏ 구입대금 35만달러를 지불하였으나 홍콩 
에서 수취한 것은 돌덩어리 였습니다. 
탄자니아 금 수출업자 E는 탄자니아 경찰청장의 동생이 
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경찰청장 부재시 자택을 함께 
방문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하였습니다. 
23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탄자니아에서 금·구리 등 광물은 채광단계에서 부터 국제광물거래망으로 연결되어 
철저히 관리되고 있어 불법 거래는 매우 어렵습니다.
06.3 부산 거주 U는 탄자니아의 광물수출업자라는 
사람으로부터 탄자니아 반군이 자금확보를 위해 비축해 
둔 금을 g당 4달러에 총 340㎏을 판매하겠다는 제안을 
받고 탄자니아로 갔습니다. 
사기범들은 보세구역에 있는 금과 함께 진본 Swiss 
Cargo 송장을 위조한 가짜 송장을 보여주었으며 U는 
이를 믿고 비용·세금 등 명목으로 13만 달러를 지불 
하였으나 사기를 당하였습니다. 
동 서류들은 화물 항공사에 운송예약만 하면 발급해 주는 
서류에 불과하였습니다. 
05.11 안산 거주 H는 탄자니아 금 수출업자 J의 대리인 
이라는 탄자니아 교포 L로부터 탄자니아산 금을 수입하라는 
제의를 받고 수입대금 27만 달러를 송금하였으나 사기를 
당하였습니다. 
사기 주범인 탄자니아인 J는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공항 
경비회사 직원으로 판명되었으며 이들은 銅을 금가루로 
도금한 후 수출용 금이라고 속였던 것입니다. 
한편 탄자니아 교포 L은 같은 수법으로 부산의 L로부터 
3만 달러를, 서울의 K로부터는 아프리카 열대어 수입을 
중개한다며 1만 달러를 사취한 바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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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중소기업인 C에게 자칭 스위스 외교관이라는 
나이지리아인 O가 찾아와 이 회사제품을 대량 구입 
하겠다며 검은 종이뭉치 다발이 가득 든 가방을 보여 
주면서 도난방지를 위해 염색한 미화라고 설명했습니다. 
C는 O의 스위스 외교관 신분증을 확인했고 그가 눈앞 
에서 이상한 약품으로 검은 칠을 벗겨내어 미 달러화를
25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염색미화 이용 사기 
염색미화 사기조직들은 미국 정부가 분쟁지역 국가에 
지원했던 자금인데 정권 붕괴로 은밀히 보관하느라 염색해 
놓은 것이라며 검은 색종이 또는 영문글자가 새겨진 종이 
뭉치를 이용하여 사기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기단은 염색미화를 화공약품으로 처리하면 진짜 
미화로 원상 복구된다며 약품 구입비 명목으로 금품을 
사취하는 수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최초 접촉시 신뢰획득을 위해 염색한 진폐 100불권 
샘플에 약품을 처리, 진폐로 환원하는 묘기를 보여 주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현혹되기 쉽습니다. 
또한 속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폭력을 이용,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후 신변을 위협하거나 금품을 갈취하기도 합니다.
만드는 것을 보고 의심없이 체재비 등 명목으로 1,500 
만원을 전달하였습니다. 
C는 며칠후 O로부터 약품 구입비 6만 달러를 추가로 
요구받고 가방안 확인을 요청하였으나 O가 이 종이는 
빛을 보면 원래 돈으로 되돌릴 수 없다며 가방안을 살펴 
보는 것을 막아 사기로 의심되어 경찰에 신고하였습니다. 
06.2 시드니에서 부동산업을 하는 교포 L은 사업차 
아랍에미레이트를 방문하였는데 현지 호텔에서 만난 
가나인 R이 액체와 파우더를 이용하여 염색미화 5백만 
달러중 4천 달러를 원상회복시키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드니로 돌아온 L은 원상회복한 미화의 진위여부를 
확인한 결과 진폐로 판명되자 다시 아랍에미레이트를 
26
.. 이들은 최초 접촉시 진폐 미화에 검은 칠을 한 후 약품 처리해서 진폐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신뢰를 획득합니다.
방문, R로부터 염색미화 400만 달러 원상회복을 위한 
액체·파우더 구입 비용으로 30만 달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수 차례에 걸쳐 6만 달러를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염색미화를 받기로 하는 순간 갑자기 R이 체포 
되었으니 피신하라는 연락을 받고 급히 시드니로 돌아 
왔으나 아직까지도 사기 당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05.3 이스라엘 유학생 J는 자칭 감비아공화국 교통부장관 
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인도네시아에서 트럭 수입업무를 
대행하고 있는 케냐 출신 N을 만나 도움을 주면 커미션 
으로 거액을 주겠다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인도네시아로 간 J는 수입업무와는 상관없이 N이 이상한 
약품을 이용해 100불권 염색미화를 진폐로 변환되는 
장면을 보여주자 이에 현혹되어 약품구입비로 10만 
달러를 주고 염색미화 500만 달러를 받았으나 나중에 
사기당한 것을 알고 당국에 신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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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06.3 국내 대형교회 K장로는 미국 교포 A로부터 교회 
부속건물 신축공사에 100만달러를 기부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A는 대만 장개석 총통이 미국에 금을 제공하고 받은 
1928년 발행 미화 100만불권 1매라고 밝히며 수수료 
10%를 요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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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조미화 이용 사기 
모조미화는 통용되지 않는 고액권을 모조한 것으로 현재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미화중 최고액권은 100불권으로 
100만불권은 발행된 적이 없습니다. 
모조미화 이용 사기에 활용되는 100만불권 모조미화는 미국 
IAM사 등에서 관광상품·기념품으로 1매당 1~18달러 정도에 
판매하는 일종의 행운 상품으로 종류도 아주 다양합니다. 
100만불권 이외 10만불권도 자주 사기에 이용되는데 1934년에 
발행된 10만불권은 주로 은행간 거래를 위해 발행된 적은 
있으나 시중에 유통된 적은 없습니다. 
국제사기조직은 이들 모조미화를 중국·미국 등지에서 
국내로 밀반입하여 미국 정부의 가짜 보증서까지 보여주며 
액면가의 50% 이하에 판매하거나 수수료 등 명목으로 
금품을 사취합니다.
K는 그 미화가 진폐로 확인되는대로 10만 달러를 지불 
하기로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당국에 미화의 진위 
여부를 문의하였습니다. 
당국의 분석 결과 그것은 진폐가 아니라 미국 관광지 
등에서 기념품으로 판매하는 모조 달러화로 밝혀져 
사기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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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관광객을 대상으로 기념품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조미화
05.6 미 시민권자 K는 나이지리아·파푸아뉴기니 등 국제 
범죄 조직원과 부평에 유령회사를 설립하고 나이지리아인 
B와 함께 미 씨티은행 발행 500억불 위조 예금증서를 
제시하며 무역업을 하는 K 등으로부터 국내 송금 수수료 
명목으로 1억원을 사취하였습니다. 
게다가 파푸아뉴기니인 P도 자기 나라 총리 명의 가짜 
‘기간시설 건설 위임서신’과 금괴 수입사업 투자를 미끼로 
내국인 J 등으로부터 5억원을 사취, 도주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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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 외국채권·증명서 이용 사기 
사기에 이용되는 가짜 미국채권은 500만·1,000만불권과 
1억·5억·10억불권 등 매우 다양하며 주로 중국·대만· 
싱가폴·필리핀 등지에서 많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국제사기조직은 국내에서 가짜채권의 진위여부 식별이 
어렵고 미국측 감정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기단이 은행 또는 세관으로부터 채권의 진위여부를 
불문하고 보호예수증(수수료 지불후 은행보관)이나 외국환 
등록증을 발급받아 사업상 긴급한 사정이 생겼다며 액면가의 
절반이하 가격에 판매하는 수법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05.6 ○○재단 O이사장은 위조범 K와 공모하여 서초동에 
유령투자회사를 설립하고 대만 조직원 T가 제공한 10억불권 
위조 스위스은행 지급보증서를 보여주며 경기 지역 일원에 
스포츠타운을 건설할 예정이라며 투자자를 모집하였습니다. 
건설회사 L대표는 동 지급보증서를 믿고 공동투자 및 
외자유치 수수료 명목으로 10억원을 지급하였으나 나중에 
사기를 당한 것을 알았습니다. 
05.3 유령단체인 전세계금융연합 총수라고 자칭하는 
H는 거액의 자금을 한국에 투자할 예정이라며 언론사 
등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등 정부와 교감이 있는 
것 처럼 선전하였습니다. 
31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가짜채권의 진위여부 식별이 어렵고 미국측 감정에 장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믿고 ○○은행 P지점장 등은 H가 보관하고 있는 
10조원 상당의 유고슬라비아 수표, 34년 발행 5억 달러 
짜리 위조채권 및 미 재무성 발행 10억 달러 짜리 위조 
金보관증서 250장 등을 확인하고 투자금 명목으로 
8억원을 지불하였으나 사취 당하였습니다. 
H는 동 채권을 미 경제 공황시 자신의 할아버지가 미국을 
도와주고 받았다거나 미국이 한국 독립자금으로 지원해 준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조사 결과 위조 브로커에게 
300만원을 주고 구입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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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미국채권은 500만·1,000만불권 및 1억·5억·10억달러 등 매우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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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입찰 수주·무역거래 이용 사기 
전혀 모르는 해외 기업으로부터 대량의 물품을 수입하겠다는 
제의를 받으면 일단은 사기로 의심해야 합니다. 
휴대폰, 컴퓨터 등 단위가격이 높은 물품의 대규모 거래를 
제안하며 시일이 촉박하고 정부기관의 샘플검사가 필요 
하다는 등의 이유로 사전 샘플을 요구하여 사취합니다. 
입찰사기의 경우 ①대부분 천문학적인 입찰 금액제시 
②고위층 측근이나 친척임을 강조 ③비밀표식이 있는 정부 
기관 레터헤드용지를 위조하여 사용 ④연락처로 휴대폰 
번호를 제시 ⑤증빙서류 등을 팩스·이메일 등으로 쉽게 
송부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국가기관의 대형 입찰시 사전 정보유출 및 불법 낙찰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이러한 경우 사기로 간주하여 반드시 
관련기관에 직접 문의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기단들이 물품 확인을 위해 방한 초청장을 요구할 경우 
초청장을 보내면 제3자에게 판매하고 사라지거나 직접 입국 
하여 불법체류하며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 피해가 고스란히 초청장 발급자에게 돌아오므로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06.3 ○○산업 S는 대만총통의‘亞太지역 고문’이라는 
내국인 K로부터 대만정부 발주 수십조원 규모의 대형공사 
입찰에 참가, 수주를 받으면 수십억원의 이익을 볼 수 
있다며 공동추진 제안을 받았습니다. 
S는 대만측 수주 참가기업의 대리인인 K가 내국인이고 
대만 정부의 중요직책을 맡고 있어 대형공사 수주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S는 K의 주선으로 대만측 대행사 대표 대만인 M과 300만 
달러에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수차례에 걸쳐 동 
대행사 계좌로 송금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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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대량의 물품 구입이나 대규모 입찰에 공동투자 등 제안을 
받으면 일단 사기로 의심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만 정부에서 발주한 어떠한 대형공사도 없었 
으며 내국인 K는 한국인을 유인하기 위해 고용된 대만 
무역사기단 일원임이 밝혀졌고 대만 당국이 이들을 
체포해서 조사하고 있지만 피해액을 환수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05.9 ○○전자산업은 중국의 수입업체 B사로부터 30만 
달러 가량의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며 샘플을 가지고 중국에 
와서 상세한 상담을 했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이에 중국을 방문, 성공적으로 계약을 체결하자 대리인인 
조선족 동포가 중국의 관례라면서 계약이 체결되면 
구매자에 대한 호의로 약간의 선물을 준다면서 중국측 
사장의 선물비(3,000달러)와 자신들이 지정한 호텔로 
숙소를 옮길 것을 요청하여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중국측의 예상치 못한 경비 요구에 의심이 들어 다음날 
중국 당국에 B사 존재 여부 등을 문의한 결과 등록되지 
않은 회사라는 답변을 듣고 납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 
급히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05.3 건설장비 수출업체인 ○○사는 이라크 소재 이탈리아 
A사로부터 이라크 재무부 엠블렘 및 수출대금 지급보증서가 
첨부된 2천만 달러 상당의 수출계약 요청서를 접수하였습니다. 
35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사는 A사가 선진국인 이탈리아의 회사라서 동 제안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A사는 납품 시일이 촉박한 관계로 계약성사시 
이라크 정부로부터 받게될 대금 6백만 달러중 1백만 
달러를 우선 지급하겠다며 정식계약 이전에 우선 물품 
선적을 요구하였습니다. 
○○사는 A사의 지속적인 물품선적 요청에 의혹이 들어 
주이라크 우리대사관 및 이라크 재무부를 통해 A사의 
실체를 확인한 결과 A사는 유령업체이고 정부 지급보증서도 
가짜임을 알았습니다. 
36
.. 대규모 물품 구매시 필요로 하는 증명서 등 제반 서류들을 FAX나 이메일 등을 통해 
너무도 쉽게 그리고 빨리 보내오고 있습니다.
또한 이탈리아 정부도 수출대금 지급보증 사기 시도가 
3~4건 더 있었음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04.12 휴대폰 제조업체인 ○○사는 카메룬의 C사로부터 
정부에 납품할 휴대폰 1,400만 달러 어치를 수입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접수하였습니다. 
아프리카 지역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긴 ○○사는 적극적인 교섭에 나섰습니다. 그러자 
C사에서 휴대폰 정부 납품물품 등록비 5,000달러를 
요청하여 송금해 주었습니다. 
이후 C사가 선적에 앞서 동 물품의 세관통과 절차를 
위해 총액의 0.1%인 14,000달러를 우선 송금해 줄 것을 
다시 요청해 오자 ○○사에서 사기로 의심이 되어 거래 
일을 조금 늦추었는데 연락이 두절되었다고 합니다. 
37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06.2 해양플랜트 제작업체 K대표는 자칭 美CIA 
동아시아 담당관이라는 내국인 H로부터 CIA가 관리하고 
있는 후진국 정치 비자금 30조원으로 한국에서 펀드회사를 
설립, 투자할 계획이라며 투자 참여 요청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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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투자·대출 이용 사기 
외국은행 자금의 대출과 투자 유치는 다른 나라도 우리 
나라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절차와 노력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외국은행에서 또는 그 대리인이 나에게 
그렇게 쉽게 그 많은 자금을 투자하고 대출해 주려는지에 
대해 일단 냉정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비상식적 거래에 
대해서는 우선 사기라고 간주하여 대응해야 합니다. 
♣ 이런 엄청난 기회와 제의가 왜 나에게, 우리 기업에게 
왔는가 
♣ 우리가 그들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가 
♣ 그들이 나를 어떻게 알고 투자자로 선택하였을까 
♣ 내가 지금 자금압박을 겪고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 이렇게 친절하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려는 이유는 뭘까
K는 H가 평소 알고 지내던 고교 여자후배의 남편이라는 
사실에 큰 의심없이 자신의 사업에 1천억원을 지원해 
주겠다는 말만 믿고 리베이트 및 활동비 명목으로 19억 
원을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H는 전형적인 금융사기꾼으로 이미 경남 ○○ 
조선업체에 대해서도 같은 방법으로 피해를 입힌 바 
있었음이 밝혀졌고 결국 K도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05.7 섬유회사 K사장은 베냉공화국 펀드투자가 S로부터 
베냉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1,300만 달러를 한국에 투자할 
계획인데 투자처 물색 등 도움을 주면 사례를 하고 
싶다는 제의를 이메일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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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거액의 투자나 대출 제안을 받을 경우 개인이나 기업은 일단 
사회적 통념이나 상식선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S는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는 다국적 기업이고 펀드를 
주로 아시아에 전문으로 투자하고 있다면서 홍콩인 P, 
말레이시아인 E 등을 소개하며 동 자금 인출에 도움을 
주면 공동 투자하겠다고 유혹하였습니다. 
이에 K는 자신이 직접 투자금을 활용할 목적으로 동 자금 
인출을 위해 필요한 증명서·베냉공화국 재무부어음 
인출청구서 발급 신청 및 한국 투자절차 이행 활동비 
명목으로 67,000달러를 송금하였으나 이후 연락이 두절 
되어 사기를 당하였습니다. 
05.3 LA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인 J와 
교포 L은 방한하여 국내 건설업자 L에게 9,700만 달러 
예치증명서를 보여주며 이중 5,000만 달러 정도를 
한국에 투자하고 싶다며 주선을 요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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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투자의 경우 대부분 천문학적인 입찰금액을 제시하지만 국가기관의 대형 
입찰에서 사전 입찰정보의 유출이나 불법 낙찰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에 국내 건설업자는 아파트 시공자금 확보를 위해 이들 
자금 국내 유치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체제비 등으로 
1억원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업은 전혀 진척이 없었고 이 미국인들로부터 
한달후 재방한하겠다며 체재비 2만 달러 송금요청을 
추가로 받으면서 사기임을 알고 당국에 신고하였습니다. 
당국의 확인 결과 이미 국내 다른 건설업자도 미국 
변호사와 연계된 사기단의 자금 유치에 현혹되어 10억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04.9 서울에서 여행업체를 운영하는 P는 나이지리아 사기 
조직과 공모하여 자금난을 겪고 있는 국내 중소기업인 
6명에게 외국은행으로부터 회사 운영자금 등을 대출해 
주겠다며 접근하였습니다. 
41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외국은행 자금의 대출과 투자 유치는 
수많은 절차와 노력이 들어가는 작업 
입니다.
P는 중소기업인들에게 자신은 나이지리아 정부 경제 
보좌관과 친분관계가 있다고 과시하며 나이지리아 소재 
영국계 은행인 Union Credit Bank를 통해 대출을 
알선해 줄 수 있다며 수수료 등 명목으로 11억원을 
받아 나이지리아로 송금, 사취하였습니다. 
그러나 UCB는 美시카고의 유령회사였으며 동 사이트에 
P명의의‘미화 3천만 달러 예치’내용을 허위 게재해 
대상자들을 속여왔으며 ○○건설도 170억원을 대출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수수료 1억 5천만원을 사취당하였 
습니다. 
04.9 美시민권자 L은 국내에 의류업체를 설립하고 
아프리카 가나 사기조직으로부터 지원받은 네덜란드 
AMRO 은행 명의 9천만 달러 위조 예치증서를 미끼로 
국내 투자를 위한 동업자를 물색한다며 내국인에게 
접근하였습니다. 
국내 부동산업자 K 등은 L의 유창한 영어실력과 세련된 
매너에 속아 L이 추진한다는 제주도 리조트 사업에 
투자자로 참여하여 계약금 등 명목으로 7억원을 사기 
당하였습니다. 
42
43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비자금·유산·휴면예금 이체 미끼 사기 
비자금·유산·휴면예금 이체 미끼 사기는 가장 전형적인 
나이지리아 선불사기 수법으로 전체 금융사기 사건의 30%를 
차지하고 있지만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실제로 
이 수법에 의해 사기를 당한 피해는 그리 크지 않은 편입니다. 
비자금 이용 사기는 불법활동에 따른 큰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당신과 나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라고 강조하여 대상 
자로 하여금 공범의식을 갖도록 유도한 후 보안유지하에 
거액의 커미션을 가로채는 수법입니다. 
또한 이들은 아국인과 공모하거나 국내 은행간부 등 아국인을 
사칭하면서 국내 사정을 잘 모르는 해외교포 또는 외국인을 
상대로 사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아프리카 등 세계 다른 모든 나라들도 휴면예금은 
정부·은행·금융 감독기관 등 공공기관이 체계적으로 관리 
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금융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기단이 비자금 등을 직접 확인하라며 외국으로 초청할 
경우 절대 응해서는 안됩니다. 외국에서 그들과 접촉하는 
순간 금전적 피해는 물론 신체적 안전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05.9 회사원 Y는 토고공화국 P라는 사람으로부터 로메 
○○ 석유회사에 근무하던 한국인 Y와 그 가족이 교통 
사고로 모두 사망했는데 이들이 남긴 유산 850만 달러를 
같이 인출하자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P는 지난 2년간 한국대사관을 통해 Y의 친척을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어 토고 상공회의소 협조를 받아 
사망한 Y와 성씨가 같은 당신에게 연락한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자신은 변호사로서 당신이 유산을 상속할 수 있도록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제안하며 시일이 촉박한 관계로 
연락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제안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유혹하였습니다. 
05.3 아틀란타 거주 우리 교포는 남아프리카은행 감사관 
R이라는 자로부터 남아공 상공회의소에서 연락처를 알았 
다며 자신의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외국인 명의 휴면계좌의 
돈을 발견하였는데 나누어 갖자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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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각국은 정치·경제·종교적인 문제로 정부군과 반군간 
내전 및 쿠데타가 빈발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A의 예금 1,800만 달러가 최근에 휴면 
예금으로 바뀌었는데 상속인이 없어 국고로 귀속될 
예정으로 은행은 동 계좌의 정보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지불하기로 결정했다고 했습니다. 
R은 이와 같은 은행 방침을 설명하며 계좌 진위여부 
확인을 위한 정확한 정보는 자신이 알려줄 수 있으니 
조속한 회신을 기다리고 있겠다며 자신의 전화와 이메일 
주소 등을 알려 주었습니다. 
또 자신은 은행 감사관이라서 외국인 계좌에도 자유롭게 
송금할 권한이 있기 때문에 믿어도 되며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당신이 보내온 일체의 서류는 파기할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으며 돈은 외국에서 함께 찾아 분배하자고 
제의하는 등 갖가지 제안으로 메일을 발송한 바 있습니다. 
45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사기 조직원은 상대방의 신뢰를 얻어 
내기 위해 증빙서류에 자신의 이름 등 
신원을 밝히기도 합니다만 그대로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05.3 국내 중소기업대표 A는 라이베리아 前대통령 경제 
고문이라는 B로부터 대통령 통치자금중 일부인 1,500만 
달러를 보관하고 있다면서 운송료로 10%를 지불하면 
동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이메일 연락을 받았습니다. 
평소 유사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 관심이 없었으나 당시 
운영자금으로 목돈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2개월간 메일을 교환하다가 역시나 하고 연락을 
중단하였습니다. 
그러자 05.7 갑자기 B로부터 현금 1,500만 달러를 
말레이시아로 송금하였으니 대리인을 만나 돈을 찾아가 
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급히 말레이시아를 방문, 쿠알라룸푸르 인근 
힐튼호텔에서 라이베리아 외교관 여권을 소지하고 있는 
대리인 3명을 만나 현금 1,500만 달러가 든 가방은 
물론 진폐 여부도 확인하였습니다. 
46 
.. 前정권 대통령, 대통령 아들, 축출된 고위인사, 경호원, 반군 지도자, ○○ 
공화국 왕자 등 다양한 신분으로 엄청난 거액의 비자금이 있다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당장 줄 수는 없고 말레이시아 
통관절차를 마친후 제공하겠다며 라이베리아 정부 발행 
납세증명서 발행비용 5만달러와 운송료 15만 달러 등 
총 20만 달러를 요구하였습니다. 
눈앞에서 돈을 확인한 A는 우선 수고비로 2만 달러를 
현장에서 지급한 데 이어 05.9 재차 말레이시아를 방문, 
납세증명서 발행비용 5만 달러를 지급하고 운송료 15만 
달러는 현금을 인도받은 후 지불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그들로부터 아무런 어떤 연락도 없습니다. 
47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국제 금융범죄조직은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정부발행 지급지시서 및 
석유공사 지급승인서 등 다양한 명의의 위조문서를 사용합니다.
05.1 홍콩 ○○은행 지점장 C는 거래하던 이라크인 
M의 정기예금이 만기가 되었는데도 연락이 없어 확인한 
결과 M과 가족이 전쟁중 모두 사망한 사실을 알았다며 
상속인을 가장하여 동 예금을 인출하자는 제의를 우리 
국민들에게 무차별 살포하였습니다. 
특히 C는 홍콩법에 따르면 동 자금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은 경우 홍콩 정부에 귀속된다면서 상속인을 가장 
하기 위한 인적사항만 통보해 주면 나머지 절차는 자신이 
처리할테니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로 유혹 
하였습니다. 
04.12 회사원 K는 짐바브웨 정부의 탄압으로 사망한 
정적의 아들로 현재 남아공에 거주하고 있다는 L이라는 
자로부터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48 
.. 피의자가 체포되어도 보상에는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며 금전적인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L은 자신의 부친이 남긴 유산 1,300만 달러를 인출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계좌가 필요한데 협조해 주면 총액의 
30%를 사례비로 지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K는 의심이 나면 현지에서 직접 확인해 줄 수도 있다는 
L의 말을 믿고 계좌 개설비용 2,000달러를 보낸 후 
남아공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러나 공항에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04.5 회사원 H는 홍콩은행장 W라는 자로부터 2,500만 
달러를 예치하고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고객이 유족이 
없어 7년간 인출하지 않을 경우 국가에 귀속되니 H를 
상속자로 하여 동 예금을 인출후 분배하자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49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비행기사고·교통사고· 
전쟁 등 갖가지 사유로 
유혹하지만 거액의 휴면 
예금은 체계적으로 관리 
되고 있습니다.
H는 동 예금 잔액조회를 캐나다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확인해 본데 이어 W가 보내온 위조 유언장 및 여권 
복사본 등에 현혹되어 자기 신상정보와 함께 증명서 
발급비용 4,000만원을 송금하였습니다. 
이후 H는 지금까지 W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형태로 또 다른 회사원 P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독일 사업가 유산을 공모하여 빼돌리자는 제의를 받고 
이에 현혹되어 수차례에 걸쳐 추진경비 등으로 6,000 
만원을 사취 당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05.4 독일 거주 우리 교포 L 등은 한국 ○○은행 신용 
담당자 D라는 사람으로부터 최근 자동차 사고로 가족 
전원이 사망한 독일인 F의 3,100만 달러 유산을 인출, 
분배하자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D는 5년내 한국으로 귀속될 동 유산상속 서류작성을 
위해 성명·주소 등을 알려주면 25%의 사례비를 세계 
어느 곳 계좌라도 송금해 줄 수 있다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D가 제시한 사이트는 한국 ○○은행 사이트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발신자 D의 한국어 이름이 
자연스럽지 않아 아국인을 사칭한 제3국인의 사기 행각 
으로 보입니다. 
50
04.3 미국 뉴욕 소재 투자자문사 회장 D는 한국 ○○ 
은행 감사 L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럽컨설팅사에 근무 
하던 M이라는 자가 미화 4,500만 달러를 예치한 후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면서 같이 인출하자는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L은 M이 상속인이 없어 만기 5년 경과시 동 유산은 
국고에 귀속된다며 이름과 계좌를 제공해 주면 상속 
증명서를 작성한 후 20%의 수수료를 지불할 계획이니 
비밀을 유지해 달라고 제의하였습니다. 
그러나 국내 ○○은행에 L이 재직한 사실이 없고 M 
명의의 거액 외화자금 예치 사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판명 되었습니다. 
51 
Ⅱ. 피해사례 및 사기수법 
.. 비행기 사고·전쟁 등으로 예금만 남기고 전가족이 몰살하였다, 범죄조직에 
쫓기고 있다, 알려져 있지 않은 비자금의 소재를 당신만이 알고 있다 등 
갖가지 방법으로 유인하고 있습니다.
06.1 해외 우리공관 근무 P는 한국 ○○은행에 근무 
한다는 W로부터 우연히 한국 정부계좌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에 박정희 前대통령 명의 4,800만 달러의 
휴면계좌를 발견하였다며 송금할 계좌를 제공하면 사례 
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06.2 호주 교포들은 노태우 前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노 前대통령의 비자금 300만 달러를 
인출하여 해외에 투자하고 싶다면서 도움을 줄 경우 
사례금을 제공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04.2 전두환 前대통령의 동생이라는 자가 全대통령 
재임시 조성한 비자금 3,000만 달러를 관리하고 있는데 
동 자금을 인출할 계좌번호 및 연락처를 제공해 주면 
상당한 액수의 사례금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이 
다수 발견되었습니다. 
52
대 처 요 령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제금융사기단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금융사기는 개인의 재산권 침해 뿐만 아니라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왜곡하고 국가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범죄 
행위로 나날이 새로운 수법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황당한 사기사건에 걸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지만 순간의 판단 착오로 자기도 
모르게 말려드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습니다. 
첫째,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이 사기피해를 방지합니다. 
국제금융사기 피해사례를 보면 조금만 사려깊게 판단 
하였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최근에는 국제금융사기단이 국내 범죄단체와 연계 
하거나 해외교포들을 고용하여 사기를 시도하고 있어 
세심한 주의가 요망됩니다. 
55 
Ⅲ. 대처 요령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정부기관을 사칭하거나 고위층·유력인사와의 친분 
관계를 과시하면서 뜻하지 않은 거액 투자나 대출 
제안 또는 의심이 가는 금융거래 제안은 일단 사기로 
판단해야 합니다. 
구리·금 등 광물 구매시 정상가 보다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은밀한 거래를 제안받을 시 광물 사기단으로 
간주해도 무방합니다. 
사기단은 아프리카 지역 뿐만 아니라 유럽·미국· 
한국 등 지역을 불문하고 불특정 다수인을 상대로 
신종 사기수법을 개발, 유혹하고 있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제안을 받았을 경우 반드시 관계 
기관에 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해 보는 습관이 필요 
합니다. 
정상적인 절차나 방법을 무시한 일확천금이나 불로 
소득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56
둘째, 어떤 이유로든 돈을 미리 지불하거나 신용 
거래를 확대해서는 안됩니다. 
나이지리아 선불사기는 통상 비자금 이체 및 투자· 
대출 등을 미끼로 일정액의 선불 수수료를 요구하는 
수법입니다. 
처음에는 5,000달러 정도의 소액을 요구하다가 이에 
반응을 보이면 각종 명목으로 점점 비용 단위를 높여 
요구합니다. 
무역사기단은 업체 등을 대상으로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단위가격이 높은 제품의 대규모 거래를 제안하며 
샘플 등을 우선 보내주기를 요구합니다. 
주로 샘플대금은 실제 선적대금 지급시 포함시키겠다고 
제의하는데 대금을 받기 전 고가의 샘플을 미리 보내지 
않으면 사기는 예방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명목으로든 일단 돈을 먼저 지불하는 순간 사기로 
연결됨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57 
Ⅲ. 대처 요령
셋째, 사기단의 현지·제3국 방문 초청 및 직접 
방한제의에 응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의심하면서 송금을 주저하거나 망설이면 관련 증빙 
서류와 현금을 소지하고 현지 해당 정부기관을 방문, 
직접 비용을 납부하거나 자세한 상담 등을 하자고 
유인합니다. 
신뢰감을 주기 위해 현지에서 세관 보세창고 등을 
견학시켜주거나 변호사, 공무원 및 백인, 우리 교포 
등을 브로커로 내세워 믿을만하고 안전한 거래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현지에서도 속지 않으면 해당 물품이나 자금을 영국 
이나 프랑스 등 안전한 제 3국으로 옮겨 놓았으니 
그곳에서 협상을 진행하자며 유인합니다. 
이러한 경우 사기조직에게 돈을 강탈당하고 폭행 
당하거나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또한 구체적인 자료 제시나 물품을 확인해 주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겠다며 초청장 요구시 이를 제 3자에게 
판매하거나 직접 입국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58
그들의 불법행위 적발시 초청장을 발급한 업체나 
개인에게 그 책임이 있으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넷째, 해당국 정부로부터 어떠한 도움도 기대하지 
마십시오. 
나이지리아 등 해당국 정부도 금융사기 척결을 위해 
특별법안 제정, 상설 전담기구 설치 등 나름대로 
강력한 척결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한 
실정입니다. 
아프리카 당국들도 이러한 범죄를 추적하고 있으나 
부패한 사회환경과 열악한 행정서비스 및 사법 시스템 
등으로 근절에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오히려 주변국 
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정학적인 측면과 국민성, 사회 
구조, 치안능력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고질적인 국제 
사기의 근절은 요원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현지 당국에 피해신고를 해도 사회구조·시스템 문제 
등으로 범인을 추적하는데 소극적이어서 행정적인 
지원과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59 
Ⅲ. 대처 요령
특히 사건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비공식적인 채널로 
금품 등을 지불할 경우‘뇌물증여’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금융사기는 대부분 아프리카 등지에서 소재불명의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돈을 받은 후에는 잠적해 버리기 때문에 범인 추적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설사 대상자를 검거하였다 해도 피해자가 해당국을 
방문하여 관련사항을 진술해야 하고 합의·재판에서 
승소하여도 보상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것은 
물론 금전적 손해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다섯째, 해외 우리공관이나 국가정보원 국제범죄 
정보센터(☎111)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전세계적으로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사기피해가 발생 
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피해자들이 일확천금을 기대 
하다 낭패를 보았다는 수치심과 범죄조직의 보복 등을 
우려, 신고를 기피하고 있어 정확한 통계 파악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60
사기조직들에 의해 매일 발송되고 있는 사기성 이메일 
중 당국에 신고되는 건수는 전체 0.3%에 불과할 
정도로 신고가 미미한 상황입니다. 
국가기관 대형입찰, 대규모 무역거래 등 해당국 경제 
여건 등을 고려시 비정상적인 제안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KOTRA 등 관계기관 및 전문가에게 
직접 문의하는 신중한 접근이 중요합니다. 
해외에서 이러한 사기 기도사례나 피해를 입은 경우 
주재국 우리 공관에 신고하고 조금이라도 의혹이 가는 
사안에 대해서는 우선 상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국내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거액의 
커미션을 제공하겠다는 제의 등을 받을 경우에는 일단 
금융사기로 판단하여 국가정보원 국제범죄정보센터로 
전화(☎ 111)하거나 홈페이지(www.nis.go.kr)를 
방문하여 문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61 
Ⅲ. 대처 요령
62 
국 제 범 죄 정 보 센 터 
국가정보원(www.nis.go.kr) 
21세기 글로벌시대 
튼튼한 국가안보가 경쟁력입니다 
신고상담은 국번없이 111 
금융사기·마약·위폐·여권위변조·테러 등
부 록
65 
부 록 
해외 한국공관 연락처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가 나 
가 봉 
과 테 말 라 
교 황 청 
그 리 스 
나 이 지 리 아 
남 아 프 리 카 
공 화 국 
네 덜 란 드 
네 팔 
노 르 웨 이 
뉴 질 랜 드 
덴 마 크 
도 미 니 카 
P.O.Box GP13700, No.3 Abokobi Rd. East Cantonment 
Accra, Ghana 
B.P. 2620, Libreville, Gabon 
Avenida Reforma 1-50 Zona 9 Edificio Reformador, 
7mo. Nivel Apartado Postal 3615, Ciudad de 
Guatemala, Guatemala, C.A. 
Via della Mendola 109, 00135, Rome, Italy 
10th Fl., 124 Kifissias Avenue, 115 26 Athens, Greece 
Plot 934 Idejo Street, Victoria Island, G.P.O.Box 
4668 Lagos, Nigeria 
Greenpark Estates #3, 27 George Storrar Drive, 
Groenkloof, Pretoria, South Africa 
Verlengde Tolweg 8, 2517 JV, The Hague, The 
Netherlands 
Rabi Bhawan, Kalimati, Kathmandu-14, Nepal 
P.O.BOX 1058 Ravi Bhawan Tahachal, Kathmandu, 
Nepal 
Inkognitogaten 3, 0244 Oslo, Norway 
11 Fl., ASB Bank Tower, 2 Hunter Street, Wellington, 
New Zealand 
SvanemΦllevej 104, 2900 Hellerup, Denmark 
Av. Anacaona No.7, Esq. Hatuey, Los Cacicazgos, 
Santo Domingo, Republica Dominicana 
(233-21) 77-6157, 7533 
(241) 73-4000, 4186 
(502) 2334-5480, 5509, 
5518 
(39-06) 331-4505, 1695 
(30-210) 698-4080/2 
(234-1) 261-5353, 5420 
(27-12) 460-2508 
(31-70) 358-6076 
(977-1) 4270172, 
4270417, 4277391 
(47) 22547090 
(64-4) 473-9073/4 
(45) 3946-0400 
(1-809) 532-4314/5
66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독 일 
본 ( 분 관 ) 
동 티 모 르 
라 오 스 
러 시 아 
레 바 논 
루 마 니 아 
리 비 아 
말 레 이 시 아 
멕 시 코 
모 로 코 
몽 골 
미 국 
괌 ( 출 장 소 ) 
미 얀 마 
Schoeneberger Ufer 89-91, 10785 Berlin, Germany 
Mittelstrasse 43, 53175 Bonn, Germany 
Avenida de Portugal, Motael, Dili, East Timor 
Lao-Thai Friendship Road, Ban Watnak, Sisattanak 
District, P.O.Box 7567, Vientiane, Lao PDR 
St. Plyushchika56, Building 1, Moscow, Russia(Index. 
131000) 
5th Fl., Camelia 3 Bldg., Said Freiha Street, Hazmieh 
P.O.Box 40290 Baabda, Lebanon 
Mircea Eliade Blvd. #14, Sector 1, Bucharest, Romania 
Abounawas Area Gargaresh St., P.O.Box 4781, 
Tripoli, Libya 
Lot No.9&11, Jalan Nipah, Off Jalan Ampang 
55000 Kuala Lumpur, Malaysia 
Lope de Armendariz No.110, Col. Lomas de Virreyes 
C.P.11000 Mexico, D.F 
41. Av. Mehdi Ben Barka, Souissi, Rabat, Morocco 
P.O.Box 1039, No.10, Olympic St. Sukhbaatar District, 
Ulaanbaatar, Mongolia 
2450 Massachusetts Avenue, N.W. Washington, DC 
20008, U.S.A. 
125C Tun Jose Camacho St., Tamuning, Guam 
96931 U.S.A. 
No.97, University Avenue Yangon,Union of Myanmar 
(49-30) 26065-0 
(49-228) 943-790 
(670) 332-1635 
(856) 21-352-031/3 
(7-095) 783-2727 
(961-5) 953167~9 
(40-21) 230-7198 
(218-21) 483-1322~3 
(60-3) 4251-2336 
(52-55) 5202-9866, 
(212-37) 75-1767, 6791 
(976-11)32-1548 
(1-202) 939-5600 
(1-671) 647-6488~9 
(95-1)527-142/4, 
515-190
67 
부 록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방 글 라 데 시 
베 네 수 엘 라 
베 트 남 
벨 기 에 
불 가 리 아 
브 라 질 
브 루 나 이 
사 우 디 
세 네 갈 
세 르 비 아 - 
몬 테 네 그 로 
수 단 
스 리 랑 카 
스 웨 덴 
4 Madani Avenue Baridhara, Dhaka, Banglade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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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h Fl., Dae Ha Business Center, Kim Ma St., Han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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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2) 881-2088/90, 
2041 
(58-2) 954-1270, 1139, 
1006, 0230 
(84-4) 831-5110/6 
((32-2) 675-5777 
(359-2) 971-2181 
(55-61) 3321-2500 
(673) 2330248 
(966-1) 4882211 
(221)821-8658, 
822-5822 
(381-11)3674-225 
(249)1-8323-9170/1 
(94-11) 2699036/8 
(46-8) 5458-9400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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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 위 스 
스 페 인 
라 스 팔 마 스 
싱 가 포 르 
아랍에미리트 
아 르 헨 티 나 
아 일 랜 드 
아프가니스탄 
알 제 리 
에 콰 도 르 
에 티 오 피 아 
엘 살 바 도 르 
영 국 
오 만 
오 스 트 리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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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gor-Mendel Strasse 25, A-1180 Vienna, Austria 
P.O.Box 3060, Amman 11181, Jordan 
(41-31) 356-2444 
(34-91) 353-2000 
(34-928) 23-0499, 0699 
(65) 6256-1188 
(971-2) 443-5337 
(54-11) 4802-8062, 
8865, 9665, 0923 
(353-1) 660-8800, 8053 
(873-76) 272-8479 
(213)2179-3400 
(593-2) 2970-625∼8 
(251-1) 728111/14 
(503) 2263-9145 
(44-20) 7227-5500 
(968) 2469-1490~2 
(43-1) 478-1991 
(962-6) 593-0745/6
69 
부 록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우 루 과 이 
우즈베키스탄 
우 크 라 이 나 
이 라 크 
이 란 
이 스 라 엘 
이 집 트 
이 탈 리 아 
인 도 
뭄바이 (분관) 
인 도 네 시 아 
일 본 
고베 (출장소) 
중 국 
짐 바 브 웨 
체 코 
칠 레 
Av.Luis Alberto de Herrera 1284, TorreⅡ, Piso10(WTV), 
Montevideo 
700029 Afrociab 7, Tashkent, Uzbekistan 
43, Volodymyrska St., 01034, Kyiv, Ukraine 
915/10/11Al-Jadria, Hay Al-Jamea, Bagdad 
No.18 West Daneshvar St. Shaikhbahaei Ave. 
Tehran, Iran 
38 Sderot Chen, Tel Aviv 64166, Israel 
3 Boulos Hanna Street, Dokki, Cairo, Arab Republic 
of Egypt 
Via Barnaba Oriani 30, 00197 Roma, Italy 
9, Chandragupta Marg, Chanakyapuri Extension, 
New Delhi-110021, India 
9th Fl., Kanchanjunga Bldg. Deshmukh Road(Peddar 
Road), Mumbai 400 026, India 
Kav. 57, Jalan Gatot Subroto, Jakarta Selatan, 
Indonesia 
1-2-5, Minami-Azabu, Minato-ku, Tokyo, Japan 
2-21-5 Nakayamate-Dori, Chuo-Ku, Kobe, Japan 
5No.3, 4th Avenue East San Li Tun, Chaoyang 
District, Beijing 100600, China 
3rd Fl., Redbridge, Eastgate Building, 3rd Street/Robert 
Mugabe Road, P.O.Box 4970, Harare, Zimbabwe 
Slavickova 5, 160 00 Praha 6-Bubenec, Czech 
Republic 
Av. Alcantara 74, Las Condes, Santiago, Chile 
(598-2) 628-9374/5 
(998-71) 152-3151/3 
(380-44) 246-3759/61 
(1-914) 360-5108 
(98-21) 8805-4900∼4 
(972-3) 696-3244/7 
(20-2) 761-1234/7 
(39-06) 802461 
(91-11) 2688-4840 
(91-22) 2388-6743~5 
(62-21) 520-1915 
(81-3) 3452-7611/9 
(81-78) 221-4853/5 
(86-10) 6532-0290 
(263-4)756541/3 
(420)234-090-411 
(56-2)228-4214
70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카 자 흐 스 탄 
카 타 르 
캄 보 디 아 
캐 나 다 
케 냐 
코 스 타 리 카 
코트디브와르 
콜 롬 비 아 
쿠 웨 이 트 
탄 자 니 아 
태 국 
터 키 
튀 니 지 
2/77, Dzharkentskaya Street, Gorny Gigant, Almaty 
480099, Kazakhstan 
P.O.Box 3727 West Bay, Diplomatic Area, Doha, 
Qatar 
No.64, st. 214 Sangkat Boung Rain Khan Doun 
Penh, Phnom Penh, Cambodia 
150 Boteler Street, Ottawa, Ontario, K1N 5A6, 
Canada 
15th Fl., Anniversary Towers, University Way, Nairobi, 
Kenya 
Apartado Postal 838-1007, Oficentro Ejecutivo La 
Sabana Edificio #2, 3er Piso, Sabana Sur, San Jose, 
Costa Rica 
Rue Monseigneur, Lot 100, Abidjan, Cote d'Ivoire 
Calle 94 No.9-39, Bogota, Colombia 
Qurtoba Block 4, Street 1, Jaddah 3, House No.5, 
Kuwait 
Plot No.8/1 Tumbawe Road, Oysterbay, P.O.Box 
1154, Dares Salaam,Tanzania 
23 Thiam-Ruammit Road, Ratchadapisek, Hway- 
Kwang, Bangkok 10320, Thailand 
Alacam Sok. No.5, Cankaya, Ankara, Turkey 
16, Rue Caracalla, Notre-Dame 1082 B.P.297 Tunis, 
Tunisie 
(7-3272)53-2660, 2691 
(974) 4832238/9, 
4837611 
(855-23) 211900-3 
(613) 244-5010 
(254-20) 220000 
(506) 220-3141, 3159, 
3160, 3166 
(225) 2032-2290, 
2022-5014 
(571) 616-7200, 8149 
(965) 533-9601/3 
(255-22) 2600496, 
2600499 
(66-2) 247-7537/9 
(90-312) 468-4822 
(216-71)799-905, 
783-231. 893-060
71 
부 록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파 나 마 
파 키 스 탄 
카라치(분관) 
파푸아뉴기니 
페 루 
포 르 투 갈 
폴 란 드 
프 랑 스 
피 지 
핀 란 드 
필 리 핀 
헝 가 리 
호 주 
Calle 51E, Ricardo Arias, Areabancaria, Campo 
Alegre, Panama, Republica de Panama 
Block 13, Street 29, G-5/4, Diplomatic Enclave Ⅱ, 
Islamabad, Pakistan, G.P.O.Box 1087 
23, Khyaban-e-Hafiz, Phase-Ⅴ, Defence Housing 
Authority, Karachi, 75500 Pakistan 
P.O.Box 381 POM, Fourth Floor, Pacific MMI 
Building, Section 21, Allotments 2&3, Champion 
Parade St., Granville, Port Moresby, NCD, PNG 
Av. Principal No.190, Piso 7, Santa Catalina, La 
Victoria, Lima-13, Peru 
Av. Miguel BomBarda 36-7, Lisboa 1051-802, 
Portugal 
ul. Szwolezerow 6, 00-464, Warsaw, Poland 
125 rue de Grenelle, 75007 Paris, France 
8th Fl., Vanua House, Victoria Parade, Suva, Fiji 
Fabianinkatu 8A, 00130 Helsinki, Finland 
10th Fl., The Pacific Star Bldg., Makati Ave., Makati 
City 1226, Philippines 
1062 BP Andrassy ut 109, Budapest, Hungary 
113 Empire Circuit, Yarralumla ACT 2600, Australia 
(507) 264-8203, 8360 
(92-51) 227-9380/1 
(92-21) 585-3950/1, 
3426/7 
(675) 321-5822, 5823 
(51-1) 476-0815, 0861, 
0874 
(351-21) 793-7200/3 
(48-22)559-2900 
(33-1) 4753-0101 
(679) 330-0977, 0683 
(358-9) 251-5000 
(63-2) 811-6139 
(36-1) 351-1179/81 
(61-2) 6270-4100
72 
대 표 부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유 엔 
제 네 바 
O E C D 
대 만 
335 East 45th Street, New York, NY 10017, U.S.A. 
1 Avenue de l'Ariana Case Postale 42 1211 Geneva, 
Switzerland 
2/4, rue Louis-David 75782 Paris cedex 16, France 
Rm. 1506, No.333, Sec.1, Kee-Lung Rd., Taipei, 
Taiwan 
(1-212) 439-4000 
(41-22) 748-0000 
(33-1) 4405-2050 
(886-2) 2758-8320/5
73 
부 록 
영 사 관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광 저 우 
나 고 야 
뉴 욕 
니 이 가 타 
로스앤젤리스 
몬 트 리 올 
벤 쿠 버 
보 스 턴 
블라디보스톡 
상 파 울 루 
삿 포 로 
상 하 이 
18F, West Tower, Guangzhou International Commercial 
Center, Tiyu Road East 122, Tianhe District, Guangzhou 
510620, P.R. China 
1-19-12, Meieki Minami, Nakamura-ku, Nagoya, 
Japan 
335 East 45th St. 4th Fl., New York, NY 10017, 
U.S.A. 460 Park Ave. 6th Fl., New York, NY 10022, 
U.S.A. 
2 chome, 1-13, Hakusanura, Niigata-city, Niigata, 
Japan 
3243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10, U.S.A. 
1 Place ville-marie, Suite 2015 Montreal, Quebec, 
Canada 
1600-1090 West Georgia St. Vancouver, BC, Canada 
V6E 3V7 
One Gateway Center Suite 251, 300 Washington 
Street, Newton, MA 02458, U.S.A. 
Pologaya St. 19, 690091 Vladivostok, Russia 
Av. Paulista 37, 9 and., cj. 91, Cerqueira Cesar, 
Cep:01311-902, Sao Paulo SP Brasil 
Kita 3-Cho Nish 21-Chome, Chuo-ku Sapporo, 
Japan 
60 Wan Shan Road, Shanghai, China 
(86-20) 3887-0555 
(81-52) 586-9221/3 
(1-646) 674-6000 
(81-25)230-3400, 3411 
(213) 385-9300 
(1-514) 845-2555 
(1-604)681-9581, 
685-9577 
(1-617) 641-2830 
(7-4232)40-2222, 2775 
(55-11) 3141-1278 
(81-11) 621-0288/9 
(86-21) 621-0288/9
74
주재국(도시) 주 소 전 화 번 호 
샌프란시스코 
센 다 이 
시 드 니 
시 애 틀 
시 카 고 
심 양 
애 틀 란 타 
오 오 사 카 
오 클 랜 드 
요 꼬 하 마 
청 도 
토 론 토 
프랑프푸르트 
호 놀 루 루 
호 치 민 
홍 콩 
후 쿠 오 카 
휴 스 턴 
히 로 시 마 
3500 Clay Street, San Francisco, CA 94118, U.S.A. 
5-22, 5-Chome, Kamisugi, Aobaku, Sendai, Japan 
8th Fl., 32-36 Martin Place, Sydney NSW 2000, 
Australia 
2033 Sixth Avenue #1125 Seattle, WA 98121, U.S.A. 
NBC Tower Suite 2700, 455 North Cityfront Plaza 
Drive, Chicago, Illinois 60611 U.S.A. 
13/14F. Mingzhe Bldg., No. 51, 14 Latitude Road, 
Heping District, Shenyang, Liaoning, China 
229 Peachtree St., Suite 500, International Tower, 
Atlanta, GA 30303 U.S.A. 
2-3-4, Nishi-shinsaibashi, Chuo-ku, Osaka, Japan 
Level 10, 396 Queen St., Auckland, New Zealand 
118, Yamatecho, Naka-ku, Yokohama, Japan 
Qinling Rd. #17, Laoshan District, Qingdao 266061, 
China 
555 Avenue Road, Toronto, Ontario, Canada, M4V 2J7 
Eschersheimer Landstr. 327, 60320 Frankfurt/Am 
Main, Germany 
2756 Pali Highway Honolulu, Hawaii 96817, U.S.A. 
107 Nguyen Du St., District 1, HoChiMinh City, Vietnam 
5/6th Fl., Far East Finance Center, 16 Harcourt 
Road, Hong Kong 
1-1-3, Jigyohama, Chuo-Ku, Fukuoka, Japan 
1990 Post Oak Blvd., #1250, Houston, Texas 77056, U.S.A. 
5-12, Teppocho, Nakaku, Hiroshima, Japan 
(1-415) 921-2251/3 
(81-22) 221-2751/3 
(61-2)9210-0200 
(1-206) 441-1011/4 
(1-312) 822-9485 
(86-24) 2385-7820, 
7651 
(1-404) 522-1611/3 
(81-6) 6213-1401/5 
(64-9) 379-0818, 0460 
(81-45) 621-4531/3 
(86-532) 897-6001 
(1-416) 920-3809 
(49-69) 9567520 
(1-808)595-6109, 6274 
(84-8) 822-5757, 5836 
(852) 2529-4141 
(81-92) 771-0461/3 
(1-713) 961-0186 
(81-82) 502-1151/3
75 
부 록 
각국의 범죄신고 전화번호 
국 가 명 신 고 전 화 국 가 명 신 고 전 화 
가 나 
가 봉 
과 테 말 라 
그 리 스 
나 이 지 리 아 
남 아 공 
네 덜 란 드 
노 르 웨 이 
뉴 질 랜 드 
도 미 니 카 
독 일 
대 만 
덴 마 크 
모 로 코 
몽 골 
미 국 
멕 시 코 
미 얀 마 
말 레 이 시 아 
베 네 수 엘 라 
베 트 남 
벨 기 에 
라 오 스 
191 
177 
110, 120 
100 
911 
10111 
112 
112 
111 
911 
110 
110 
112 
19 
101 
911 
060 
199 
999 
171 
113 
101 
191 
러 시 아 
레 바 논 
불 가 리 아 
루 마 니 아 
브 라 질 
브 루 나 이 
리 비 아 
사 우 디 아 라 비 아 
세 네 갈 
싱 가 포 르 
스 리 랑 카 
스 웨 덴 
스 위 스 
스 페 인 
아 랍 에 미 리 트 
아 르 헨 티 나 
아 일 랜 드 
알 제 리 
에 콰 도 르 
에 티 오 피 아 
엘 살 바 도 르 
영 국 
오 만 
02 
112 
166 
112 
190 
993 
193 
999 
17 
999 
243-3333 
112 
117 
112, 091 
999 
101 
999 
17 
101 
91 
121, 123 
999 
999
76 
국 가 명 신 고 전 화 국 가 명 신 고 전 화 
오 스 트 리 아 
요 르 딘 
우 즈 베 키 스 탄 
우 크 라 이 나 
이 란 
이 스 라 엘 
이 집 트 
이 탈 리 아 
인 도 
인 도 네 시 아 
일 본 
중 국 
체 코 
칠 레 
카 자 흐 스 탄 
카 타 르 
캄 보 디 아 
캐 나 다 
케 냐 
쿠 웨 이 트 
133 
192 
02 
02 
129 
100 
122 
113 
100 
112 
110 
110 
158 
133 
02 
999 
117 
911 
22-2222 
777 
코 스 타 리 카 
콜 롬 비 아 
탄 자 니 아 
태 국 
터 키 
튀 니 지 
파 나 마 
파 라 과 이 
파 키 스 탄 
파 푸 아 뉴 기 니 
페 루 
포 르 투 갈 
폴 란 드 
프 랑 스 
핀 란 드 
필 리 핀 
헝 가 리 
호 주 
홍 콩 
117 
112 
995 
1195 
115 
197 
104 
911 
15 
000 
105 
357-4566 
997 
17 
112 
117 
107 
000 
999
77 
부 록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해외무역관 연락처 
국 가 지 점 전 화 번 호 국 가 지 점 전 화 번 호 
과 테 말 라 
그 리 스 
나이지리아 
남 아 공 
네 덜 란 드 
노 르 웨 이 
뉴 질 랜 드 
대 만 
덴 마 크 
도 미 니 카 
독 일 
러 시 아 
레 바 논 
루 마 니 아 
리 비 아 
말 레 이 시 
멕 시 코 
모 로 코 
미 국 
과 테 말 라 
아 테 네 
라 고 스 
요하네스버그 
암 스 테 르 담 
오 슬 로 
오 클 랜 드 
타 이 베 이 
코 펜 하 겐 
산 토 도 밍 고 
뮌 헨 
베 를 린 
프랑크푸르트 
함 부 르 크 
모 스 크 바 
블라디보스토크 
베 이 루 트 
부 쿠 레 슈 티 
트 리 폴 리 
콸 라 룸 푸 르 
멕 시 코 시 티 
카 사 블 랑 카 
뉴 욕 
댈 러 스 
2367-2347 
210-6543-623 
1-774-6262 
11-784-2940 
20-673-0555 
23 32 76 50 
9-373-5792 
2-2725-2324 
3312-6658 
809-567-9733 
89-2424-2630 
30-2096-2636 
69-2429920 
40-3405-740 
495-253-2884 
4232-436466 
1-360215 
21-233-2172 
21-335-0418 
3-2117-7110 
55-5514-3173 
22-314280 
212-826-0900 
972-243-9300 
미 국 
미 얀 마 
방글라데시 
베네수엘라 
베 트 남 
벨 기 에 
불 가 리 아 
브 라 질 
사 우 디 
스 리 랑 카 
스 웨 덴 
스 위 스 
스 페 인 
싱 가 포 르 
아랍에미리트 
아르헨티나 
아 일 랜 드 
디 트 로 이 트 
로스앤젤레스 
마 이 애 미 
샌프란시스코 
시 카 고 
애 틀 랜 타 
워 싱 턴 
양 곤 
다 카 
카 라 카 스 
호 치 민 
하 노 이 
브 뤼 셀 
소 피 아 
상 파 울 루 
리 야 드 
콜 롬 보 
스 톡 홀 름 
취 리 히 
마 드 리 드 
싱 가 포 르 
두 바 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더 블 린 
248-355-4911 
323-954-9500 
305-374-4648 
650-571-8483 
312-644-4323 
77-508-0808 
202-857-7919 
1-255453 
2-881-3153 
212-762-9832 
8-8223944 
4-831-5177 
2-203-2142 
2-969-5656 
11-289-4200 
1-403-4366 
11-259-7494 
8-308-090 
1-202-1232 
91-556-6241 
6221-3055 
4-332776 
11-4393-3110 
1-261-3702
78 
국 가 지 점 전 화 번 호 국 가 지 점 전 화 번 호 
알 제 리 
영 국 
오 만 
오스트리아 
요 르 단 
우 루 과 이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이 라 크 
이 란 
이 스 라 엘 
이 집 트 
이 탈 리 아 
인 도 
인도네시아 
일 본 
중 국 
알 제 
런 던 
무 스 카 트 
빈 
암 만 
몬 테 비 데 오 
타 슈 켄 트 
키 예 프 
바 그 다 드 
테 헤 란 
텔 아 비 브 
카 이 로 
밀 라 노 
로 마 
뉴 델 리 
첸 나 이 
자 카 르 타 
나 고 야 
도 쿄 
오 사 카 
후 쿠 오 카 
광 저 우 
다 렌 
베 이 징 
상 하 이 
우 한 
청 두 
21-601624 
20-7520-5300 
565931 
1-586-3876 
6-5831-045 
2-628-9081 
71-120-6734 
44-495-2951 
1-778-1554 
21-2202-7003 
3-639-6488 
2-380-0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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